자유학기제 전면 시행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정부는 자유학기제를 통한 교육변화를 꾀하고 있다. 관련법을 제정하고 진로교육, 체험처 확보, 학부모 대상 설명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자유학기제 성공 여부는 교육주체인 교사와 학생들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선학교 교장, 교사들이 어떻게 준비해서 운영하는가에 승패가 달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자유학기제 성공신화를 창조한 교사들이 전하는 "선생님, 자유학기제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를 기획 연재한다. <편집자 주>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대체 나와 당신은 어떤 관계였을까요?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인정없이 떠나가는데 말이죠, 브릿지 맵으로 표현해봅시다."
시 '나룻배와 행인'에 나타난 '나와 당신의 관계'를 다양한 관점으로 분석하고 있는 2학년 10반 학생들. 사진 홍혜경 리포터
지난 9월 26일 2학년 10반 6교시 국어 수업 시간. 정미숙 교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이들의 손놀림이 분주해진다. 15분 뒤 7개 모둠의 학생들은 한용운의 시 '나룻배와 행인'에 나타난 '나와 당신의 관계'를 다양한 관점으로 분석했다. 브릿지 맵을 처음 활용한다는 한샛별 양은 "맵을 활용한 수업은 1학년 자유학기제 때부터 해 오던 수업이라 많이 익숙해요. 새로운 맵이 나와도 활용 방법이 비슷하니까 언제나 즐겁게 공부할 수 있어 좋아요"라고 말했다.
브릿지 맵(Bridge Map)은 글과 그림을 이용해 생각을 전달하는 씽킹맵( Thinking map)의 한 종류. 정 교사는 "이 단원에서는 아이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자신의 인식 수준과 경험, 가치관에 맞게 시를 해석 할 수 있어야 한다. 브릿지 맵은 한 가지 사실을 통해 또 다른 사실을 유추할 수 있어서 '시'를 배울 때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원의 성격에 따라 수업 활용에 활용하는 맵도 달라진다는 얘기다. 이날 수업의 하이라이트는 모둠 발표 시간. 학생들은 각 모둠의 분석 이유를 꼼꼼히 따져 묻는다. 상호 토론 과정에서 친구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 내용은 틀린 해석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같은 시각 3학년 10반 사회 수업 교실. 친구의 설명을 듣고 단어를 맞추는 '스피드 퀴즈'가 한창 진행 중이다. 정답을 맞출 때마다 "와우"하며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는 학생들의 호응으로 교실안이 떠들썩하다. 다음 주면 중간고사를 치를 3학년 수업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는 교실 풍경이다.
최영아 교사는 "자유학기제라고 해서 배우고 익히는 수업의 본질을 넘어 설 수는 없다. 단원에 따라 강의가 필요한 수업도 있다. 하지만 '일상생활과 법'이라는 단원은 개념 정리가 중요하다. 스피드 퀴즈로 문제를 내고 만드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개념을 익힐 수 있다고 생각해서 활동 중심으로 수업을 구성했다"고 전했다.
이어 "자유학기제를 경험한 3학년 학생들은 활동 중심의 수업에 익숙해져 있고, 무척이나 역동적이어서 가급적이면 학생 활동 중심의 수업을 구성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정기 고사가 있는 3학년 수업에서 자주 활용하기는 어려운 일. 정세윤 군(3학년 10반)은 "2,3학년에 올라와서도 우리가 수업에 직접 참여하는 기회가 많았어요. 그렇지만 시험 범위에 맞춰 진도를 나가야 하니까 아무래도 한계는 있는 것 같아요. 시험이 없는 1학년에 비해 활동 중심 수업이 줄어든 만큼 아쉬움도 커요"라고 전했다.
누군가에게 한 명이라도 위로가 된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하며 시도한 괜찮아, 힘내 캠페인. 사진 용수중학교 제공
◆명품 중학교로 만든 '교사 동아리'의 힘 =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에 있는 용수중학교는 대단지 아파트 밀집 지역에 있어 자녀 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도 많은 편이다. 하지만 자유학기제를 처음 실시할 때 학교가 걱정한 것은 오히려 높은 교육열이다. 학력 저하를 우려한 학부모들 때문이다.
용수중학교는 2013년 시범학교를 시작으로 올해로 4년째 자유학기제를 실시하고 있다.
지역에서 명품 중학교로 발전하기 까지 학생 역량 강화 중심의 수업을 끝없이 고민하고 발전시켜온 교사들의 힘이 컸다.
박찬규 교장은 "수업 시간에 복도를 지나다 보면 판서 수업을 하는 교실을 찾아보기 힘들다. 다소 시끄럽기는 한데 그만큼 활동 중심 수업이 이뤄지고 있는 반증"이라며 "학교를 명품으로 만든 저력은 수업 개선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온 교사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학업역량을 강화시키는 데 초점을 두고, '교사 동아리' 활동을 통해 토론 수업, 프로젝트 융합 수업, 하브루타 수업 등 교수 방법을 연구해 왔다.
용수중학교는 현재 세 개의 교사 동아리가 있다. 수석교사와 신규교사가 함께 배우는 '수달(수업의 달인)', 토의토론모임인 '토토모', 동료 교사에게 자신의 수업을 공개하고, 수업 방법을 배우는 '씨앗' 동아리 등이다. 30여명의 교사가 한 달에 두 번, 격주 목요일에 만나 오후 3시30분부터 5시 30분까지 약 두 시간 동안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다.
◆'드림윙' 통해 감춰둔 '끼' 발산 = 이날 점심시간에는 댄스 발표회가 있었다. 꿈에 날개를 단다는 의미의 '드림 윙(Dream Wing)' 프로그램의 하나로 댄스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이 모여 스스로의 끼를 발산한 것. 학생 300여명이 몰려와 관람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아이들은 '드림 윙'을 통해 아침 자습 시간이나 점심시간, 방과 후 시간을 활용해 평소 하고 싶었던 활동이나 꿈을 펼친다. 학교는 아이들이 정한 활동 시간과 장소가 학교 일정과 겹치지 않는 한 최대한 배려해 꿈을 찾는 여정을 도와주고 있다.
꿈을 이루게 하기 위해선 먼저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는 얘기다. 바다를 본 아이들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떤 학생들은 동물 학대에 대해 탐구 활동을 한 뒤, 다대포 해수욕장까지 가서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먹여도 될까요?'를 묻는 대시민 설문조사를 벌였다. 낙서를 즐기던 중1 아이는 '긁적 그림전(애니메이션 작품전)'을 통해 자존감이 높아져 울산 애니원고등학교에 진학하기도 했다.
평소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부끄러워하는 아이들도 과감히 도전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상담사가 되고 싶다며 '괜찮아 힘내'라는 글귀가 적힌 전지 한 장씩을 들고 얼굴을 가린 채 정문 앞에 선 것. 마침 기말고사가 끝난 다음날이서 등굣길 학생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김정숙 진로진학상담부장은 "시험이 사라지자 종전의 교육과정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며 "배 만드는 게 꿈인 아이에게 배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바다를 보여주는 게 자유학기제다. 우린 그동안 배를 누구보다 '빨리' '더 잘' 만들어야 한다는 것만 가르쳐 왔다"고 설명했다.
*출처 : 내일신문 (http://www.naeil.com/news_view/?id_art=2118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