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현대사의 군사통치 그 시련과 민주화 투쟁의 거센 물결 속을 헤쳐 나간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 이름이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한 목사가 있다. 그런데 그가 감옥 안에서 겪었던 일이 하도 뜻밖의 일이어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
고영근목사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북한 출신으로 6·25전란 중에는 인민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탈출해 월남한 이후 줄곧 목회사역에 헌신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민주화 투쟁에 몸을 던지고, 1976년에 긴급 조치 위반으로 7년형을 언도 받는다. 그리고 1년 반을 복역한다. 그 다음부터 그는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는 날까지 계속 민주화 투쟁을 벌인다.
그래서 26년 간에 걸쳐 3백14회에 이르는 성명서나 공개서한을 당국에 제출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는 25회에 걸친 연행과 투옥에 시달린다. 그리고 48회에 이르는 재판을 받는다.
한데 그가 1979년 더운 여름, 감옥 안에 있을 때의 일이다. 그는 미전향 무기수 공산주의자 간첩과 대좌하게 된다. 한국 근대사에서 남북관계와 그 이데올로기의 격돌은 군사적인 측면이 아니면, 교회와 공산주의와의 관계가 가장 혹독했던 것이 아니던가. 극적인 장면이었다.
물론 그 무기(無期) 미전향수는 철저한 공산주의자였고 간첩으로 남파되었던 인물이다. 고영근목사 역시 철저한 신앙으로 무장되어 정의의 투쟁을 하다가 투옥되었던 인물이다.
그렇다면 비록 그 좁은 영어(囹圄)의 공간에서이지만, '남북의 철저한 두 소신(所信)의 해후(邂逅)'라는 드라마가 연출된 셈이 아니던가.
당시 우리나라에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의 공산주의자가 무기수로 50명 수용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25명은 남파 간첩이었고, 그 나머지 25명은 재일교포 아니면 남한 출신으로 공산주의를 고무 찬양한 혐의의 무기수였다.
남파된 간첩들은 20년에서 40년을 무기수(無期囚)로 복역하고 있어서, 나이가 70세 정도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우선 고 목사가 물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은 회개하고 '하야(下野)'하라고 성명을 냈다가 6년형을 선고받았는데, 북한에서 김일성에게 회개하고 '하야'하라고 하면 징역 몇 년을 받게 될 것인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공산주의자는 대답을 못하더라는 것이다. 이외의 여러 격론이 있었지만 고 목사는 자신이 이겼다고 자평(自評)하고 있었다.
한데 다음 차례는 그 무기수의 공박이었다. 그는 뭔가 소신에 찬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은 이러했다. 곧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은 남한에 공산주의를 전파하기 위해서 수 백명의 간첩이 남파되어 임무를 수행하다가 체포되어, 사형도 받고 또 이렇게 무기징역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도 북한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지들이 있다는 말과 함께.
그러나 그들의 신념 때문에 이렇게 잡히면 죽을 수밖에 없는 길을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한의 그 많은 목사들 중 그 신앙 전파를 위해 죽을 줄 알고서도 북한에 간 사람이 있느냐고 대답을 촉구하며 대들었다고 한다. 이번에는 고 목사가 묵묵 대답이었다.
다른 하나, 그 무기수는 그가 20여 년 재감하는 중 한사람에게서도 전도를 받아 본 일이 없다고 하면서, 공산주의 미전향 무기수라고 전도도 하지 않느냐며 대들었다고 한다. 여기 역시 묵묵 대답이었다.
그런 소리를 듣고 출옥한 고 목사에 의해서 향후 재감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전도사역이 시작됐다. 감리교 김선도목사와 여선교회 총연합회의 지원 때문에 가능했다.
이 무기수 간첩의 공격에 우리의 아픈 곳을 찌르는 비수가 있지 아니한가.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은 우리 교회를 그렇게 뚫어지게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다.
민경배/ 천안대학교 석좌교수
인터뷰/ 한국인권문제硏, 제1회 인권상 수상 고영근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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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7호] 1998년 10월 24일 (토) 00:00:00 [조회수 : 149] |
김성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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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정권 하에서 회개를 외치고 또 고난 받는 의인을 위해 주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 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살아 있는 자보다 민주화를 위해 희생당한 자들의 뜻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봅니다.』
한국인권문제연구소 창립 15주년 기념 서울대회에서 제1회 인권상을 받은 고영근목사(전주 노회 전도목사·목민선교회 회장)는 고통 받을 때마다 어려움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께 먼저 영광을 돌린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지난 13일 한국인권문제연구소(소장:이영후)는 민주화를 위해 또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정 신을 몸으로 실천해온 노력을 높이 평가해 고영근목사를 제1회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했 다.
1933년 평북 의주에서 태어난 고영근목사는 북한 공산치하에서 월남, 이후 군사정권 36년 동안 26회 연행 투옥되는가 하면 또 50회 이상 정치재판을 받는 등 하나님의 정의가 이 땅 에 실현되도록 노력해 왔다. 그때마다 고영근목사는 세상의 권력이나 부귀를 탐하지 않고 오직 성직자의 사명을 위해 살신성인의 자세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고영근목사는 『여전히 좌경과 우경, 남과 북, 동·서가 나눠지는 등 지역적으로 대 립돼 있는 이 나라가 조속히 화합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사역과 관련, 고 목사는 『자유 민주세력이 형성되고 이들이 국가의 중추세력으로 자리 잡도록 연수원을 설립해 전국민과 교역자를 대상으로 계몽해 나갈 생각』이라고 소개 했다.
김성진 ksj@kidokong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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