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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해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새해는 비싼 댓가를 치르고 받은 듯 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새해이지만 그러나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새해가 아니라는 것을, 사랑하는 한 목사님의 소천을 통하여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저와 저희 가정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던 세분의 기도의 부모님(저의 어머님, 그리고 돌아가신 저의 아버님과 연세가 같으신, 그래서 같은 시대에 목회사역을 하셨던 두 분 목사님) 중 한 분이셨습니다.
온유와 겸손, 예수님의 성품이 그대로 묻어나시는 그런 분이셨지요.
분냄과 질책보다는 기다림을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몸소 체험하시고 증거하는 그런 삶을 사신 분이지요.
물질과 명예에 대한 유혹이 왜 없었을까마는 주님의 은혜로 잘 지켜나오신 그런 분이지요.
모든 사람들이 가고자하는 중심으로, 더 높은 곳으로 보다는
주님께서 그러하셨듯이 가장자리로, 더 낮은 곳으로 가시고자 하셨던 분,
사람들이 내켜하지 않는 그런 길들을, 주님만을 바라보고 순종하며 가신 분 이셨습니다.
제 인생의 팔팔하던 30대에, 그리고 목사님은 70대의 노년기에 힘들고 거친 개척사역을 감당하고 계셨던 20년 전에, 목사님을 처음 뵙게 되었고, 그 후로 지금까지 쭉 만남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께서는 한번도 먼저 제게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말씀하시지 않으셨고, 저와 저희 가족에게 목사님을 도와 함께 교회를 섬기자고 강제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머뭇거리는 저희들을 이해하시고 기도로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씀하셨지요. 여러 여건들을 따져가면서 핑계대는 저희들을 위해서 늘 기도해 주실 뿐 아니라, 오히려 87년에 대전지역에서 처음으로 막 시작된 중증장애아 교육실인 “명은 어린이 집”을 위해서 기도로 물질로 후원해 주셨던 그런 분이셨습니다.
목사님께서 대덕한빛교회를 섬기시든 첫 10 년은 정말로 인간적으로 가장 힘드신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잘 도와드리지 못하였던 것이 정말로 죄송하고 마음에 큰 부담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셔서 2000년도부터 대덕한빛교회를 함께 섬기면서, 매주 목사님을 뵙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요.
오랫동안의 당뇨로 인해 실명상태이셨던 사모님께서 여러 합병증으로 인해 투병하시는 동안에도 손수 병수발을 하시면서 꽤나 먼 충대병원까지 오시면서 정성을 다하셨던 목사님.
하나님께서 96년에 먼저 사모님을 부르셔서 보내드리고서도, 혼자 올곧게 사시면서 그저 남모르는 기도로 조용히 교회를 도우시고 성도들을 섬기셨던 목사님.
어느 누구를 만나셔도 반갑게 두손으로 맞잡고 악수해 주시면서, 아이들 이름까지 기억하시면서 안부를 물어보시던 목사님
연세가 드시면서 생길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일들로 병원을 찾는 일이 잦아지시고 그때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시려고 되도록 혼자 다니시던 목사님
몇주전 감기기운이 있으시다고 해서 집사람이 병원에 모셔다 드리고 나서는 더 잘 챙겨 보지 못했던 것이 결국에는 목사님을 떠나보내시게 할 원인이 될 줄이야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더랬습니다. 24일 아침에 출근준비를 하는데 목사님께서 전화하셔서 “밤새 기침 때문에 잠을 설쳤고, 콧물 가래 때문에 힘들다고, 충대병원에 오시겠다”는 것을 요즘 감기가 좀 지독한 놈이라서 그러니 우선 근처 병원으로 먼저 가시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출근했습니다. 목사님을 봐드렸던 “성내과“원장이 전화를 해서 목사님이 폐렴이 심하신 것 같으니 입원하시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아이고 그래서 그렇게 힘드셧던 것이고, 체면 불구하시고 충대병원 오시겠다“ 한 것을 ”그것도 모르고 내 생각만 했구나“라고 속으로 자책을 하면서 얼른 오시라고 하고 부랴부랴 병실준비하고 하는 동안에 소운섭집사님 부부와 목사님을 도우셨던 전도사님과 함께 오셨습니다. 그런데 꽤나 숨차하셨고, 사진도 생각보다 심하신 것 같아 우선 따님께 연락하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중환자실 사용 등에 대해 알아놓고, 가족들에게 호흡기 사용 등에 대해 설명할 것을 담당의에게 이야기해 두었습니다.
저녁이 되면서 일시적인 호흡기 도움으로는 상태가 더 호전되지 않을 것이란 판단하에 가족들께 말씀을 드리고 지속적인 인공호흡기 사용을 위하여 기도삽관을 하고 호흡기를 부착하였습니다.
목사님께서 입원하러 오시면서 부탁하시기를 그날이 24일이라 교회가 바쁘고 하므로 폐를 끼치지 않으시려고 25일 크리스마스 행사가 끝나면 그 때 알려달라고 말씀하시던 그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런 일에는 전심하여 기도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 오후 내내 교회 사무실로, 목사님께로 전화연락을 시도했지만 이날따라 애 그리 연락이 되지 않던지요. 그래서 연락하는 일은 집사람에게 맡기고 교회 홈피에다 그 기도부탁을 위한 글을 올렸습니다.
많은 분들의 기도 덕분으로 조금씩 회복해 가셨지만, 새벽마다 혈압이 떨어지고 열이 나는 등 좋지 않은 징조도 자꾸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 좋아지셔서 호흡기 떼는 연습도 해보았지만 노령에, 긴 시간 동안 호흡기를 사용한 탓에 좀더 시간을 필요로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상황은 예상보다 더 나빠지지는 않았고, 혹시나 해서 순환기, 신장, 신경과 등 다른 과 교수들의 자문도 받아가며 30일 주일 밤만 잘 넘기시면 그래도 회복하실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가졋고 은목사님께도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아 그런데 이것이 왠일입니까?
합병증으로 나타난 공팥문제도 점차 해결되어가고, 페렴도 점차 회복단계에 들어가고, 산소포화도도 잘 유지되었기에 우리 의료진들 누구도 목사님께서 돌아가시리란 생각을 하지 않았었는데.... 새벽에 갑자기 예상치 못했던 심장마비가 생기다니요?
“하나님 시간을 조금만 더 주십시오. 목사님께서 가족들과 그리고 사랑하는 성도들과 만나 말씀도 나누시고 하실 기도도 더해 주시고, 그리고 불러가시라”고 간절히 기도했었고, 목사님의 모든 상태가 그런 반응을 보여서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는 줄 알고 있었는데...
아! 이것이 하나님의 불러가심이구나
의학적 판단이 그분의 결정 앞에선 아무 것도 아니란 것이 또 한번 증명된 것이었습니다.
한해의 마지막 날에 우리 인간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불러가신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돌아가신 이목사님은 하나님의 생각을 아셨고 그래서 인간들의 마음에 의탁치 않으시고 그분께 순종하며 목사님의 평소 방식대로 더 좋은 본향으로 가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하루를, 아니 한시도 버틸 수 없습니다.
한해를 마무리 하는 마지막 날에 목사님은 인생의 마지막으로 삼으시고,
새로운 해를 하나님 품안에서 천국에서 맞이하시는 아름다운 날을 삼으신 것 입니다.
마지막 날의 고통과의 이별, 새로운 날의 영광과 기쁨.
이것은 결코 아무 인생에게나 허락하시지 않은 하나님의 복주심의 방식일 것이리라
이제 이 한해도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어떠함을 친히 보여주셨던 목사님을 본받아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그리고 우리도 떠나가야 할 시간이 언제라도 온다는 것을 생각하며 아름다운 마지막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