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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성인 유대철베드로 축일 : 10월 31일 1826-1839(14세)포청옥에서 교수형 1925년 7월 5일 시복. 1984년 5월 6일 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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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철(劉大喆, 1826년 - 1839년)은 한국 천주교회 103위 순교 성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가장 나이 어린 성인이다.
세례명은 베드로이다. 축일은 10월 31일이다.
조선 후기인 1862년 한성에서 유진길(아우구스티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 천주교 신자였던 아버지의 모범을 따라
입교한 후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천주교를 싫어하는 어머니와 누나에게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했으나 그때마다 항상
어머니와 누나의 회개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하루는 어머니가 어째서 “너는 어미의 말에 순종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짓만
고집하느냐?”하고 나무라자 유대철은 “하늘의 임금이시요 만물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법을 따르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하고 공손히 반박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로 많은 교우가 체포되어 순교하였으며 아버지마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후 유대철은 순교를 결심하고
포도청에 들어가 자수하였다.
재판관들은 어린 소년이었던 유대철을 배교시키기 위해서 13세의 나이로는 견디기 힘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유대철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구리로 된 대통으로 허벅지의 살을 뜯어내며 “이래도 천주교를 믿겠느냐?”하고 으름장을
놓는 형리들에게 “믿고 말고요. 그렇게 한다고 제가 하느님을 버릴 줄 아세요?”라고 대답하자 화가 난 형리들은 다시
시뻘겋게 달군 숯덩이를 그의 입에 집어넣려고 하였다. 그러자 유대철은 조금도 겁먹지 않고 의연하게 “자요!”하며 입을
크게 벌려 형리들을 놀라게 하였다.
포도청에서 총 14회의 신문을 받고 100여대의 매와 40여대의 치도곤을 맞아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으나 유대철은 항상
평화로운 마음을 간직했다고 한다. 형리들은 유대철을 좀처럼 배교시킬 수가 없게 되자 어린아이를 공공연하게 죽이면
민심이 크게 동요할까 봐 두려워 1839년 10월 31일 포청옥에서 몰래 노끈으로 목졸라 교살하였다.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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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유대철 베드로(Petrus)는 역관 유진길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의 장남이다. 그런데 이 집안은 이상하게도 부자는 열심히 천주교를 믿는 반면, 모녀는 믿기는커녕 이를 반대하여 가정에 불화가 그칠 날이 없었고 신자들을 욕하기까지 하였다. 어머니가 “어째서 너는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일을 고집하느냐?”라고 말씀하시면, 베드로는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복종하겠으나 하늘의 임금, 만물의 주님의 법을 따르는 것이 옳지 않느냐고 온순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어머니의 눈이 어두움을 한탄하면서도 어머니께 대하여는 언제나 지극한 효성을 보여주었다.
박해가 일어나자 그의 마음속에는 순교하고자 하는 열렬한 욕망이 일어났다. 당시 옥에 갇혀있던 부친과 여러 신자들의 본보기는 그의 마음에 불을 질러 놓았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가 체포된 후 하느님께 대한 열광적인 사랑에 끌려 1839년 7월경 관헌들에게 자수하였다. 재판관은 그의 집안 내력을 자세히 물어보고 신자의 자식임을 알게 되자 옥에 가두고, 배교한다는 말을 하게 하려고 어르고 엄포하고 고문하는 등 갖가지 방법을 다 사용하였다. 그리고 옥사장이 혹형을 대철에게 가하여 몸이 갈기갈기 찢기고 사방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보면서도 이 용감한 어린이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하루는 어떤 포졸이 구리로 된 담뱃대 통으로 그의 허벅지를 들이박아 살점을 한 점 떼어내면서 소리쳤다. “이래도 천주교를 버리지 않겠느냐?” “그러면요, 이쯤으로 배교할 줄 아세요?” 그러자 포졸들은 벌겋게 달군 숯 덩어리를 집어 들고 입을 벌리라고 하였다. 대철이 “예” 하고 입을 크게 벌리니 포졸들은 놀라서 물러나고 말았다. 다른 교우들이 그에게 “너는 아마 많은 괴로움을 당한 줄로 생각하겠지만 큰 형벌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고 말했다. 대철은 “저도 잘 알아요. 이건 쌀 한 말에 대해서 한 알 같은 것이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그 후 고문을 당한 끝에 까무러친 그를 데려와서 다른 죄수들이 정신이 들게 하려고 허둥지둥할 때 그가 한 첫마디는 “너무 수고를 하지 마세요. 이런 것으로 해서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고 말해 형리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서울대교구 절두산 순교자박물관에 있는 성 유진길 아우구스티노와 성 유대철 베드로 성화
유 베드로는 문초받기를 1회, 고문 14회, 태형 6백대 이상과 치도곤 45대 이상을 맞았지만 항상 기쁜 얼굴로 지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기적이라고 생각하였다. 관헌들은 어린 그를 공공연히 죽이면 군중이 반발할까 두려워서 1839년 10월 31일 형리가 옥 안으로 들어가 상처뿐인 이 가련한 작은 몸뚱이를 움켜쥐고 목에 노끈을 잡아매어 죽였다. 이때 베드로의 나이는 겨우 14살이었다. 그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첫댓글 ST. PETRUS YOU 성 유대철 베드로여!
ORA PRO NOBIS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주님,
유대철베드로의 상처뿐인 가련한 작은 몸뚱이를 살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