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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경전 御書에서 배운다 - ‘5∙3’ 기념 <생사일대사혈맥초>
개가(凱歌)의 민중 세기로!
‘구원의 맹우’와 이체동심의 전진을
찬란히 비치는 영광의 5월 3일!
이날은 ‘구원의 맹우(盟友)’인 창가(創價)의 사제(師弟)가 일염부제(一閻浮提) 광선유포(廣宣流布)라는 지용의 서원을 불태우며 위풍당당하게 출발하는 날입니다.
삼세(三世)에 걸친 동지가 저마다 사명의 무대에서 ‘승리의 깃발’을 높이 들고 상쾌한 마음으로 다 같이 스승의 슬하로 모여든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자랑스러운 ‘개선’이며, 새로운 ‘출진’입니다. 우리는 만년의 미래를 향한 싱싱한 생명력과 명랑한 스크럼으로 ‘전진’해 나갑니다.
‘5∙3’이 돌아올 때마다 내 가슴에는 그날의 엄숙한 맹세가 되살아납니다.
1951년 5월 3일, 우리 스승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선생님은 창가학회 제2대 회장에 취임하셨습니다. ‘광선유포 대원(大願) ‘을 달성하기 위해 스승이 홀로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후계인 제자 또한 함께 일어섰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이 5월 3일에 찍은 초상 사진 뒤에 한 편의 시를 써서 내게 수여해 주셨습니다.
현재도
미래도 함께
고락을
나누는 인연
불가사의 하구나
법화경에는 사제의 영원한 숙연(宿緣)을 “재재제불토(在在諸佛土) 상여사구생(常與師俱生)” (곳곳의 모든 불국토에 항상 스승과 함께 태어난다)이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광포의 사제는 삼세 영원히
광포의 사제는 구원의 묘법의 빛에 둘러싸여 삼세의 생사를 영원히 함께 살아나갑니다. 함께 고락을 나누고, 함께 싸우고, 함께 고난을 극복하고 그리고 함께 승리합니다.
은사로부터 ‘미래에도 함께’라고 엄연히 위탁을 받은 대로 나는 1960년 5월 3일, 스승의 ‘광선유포 대원’을 이어받아 제3대 회장에 취임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은사의 서원은 나의 서원으로서 흉중에 열렬히 맥동하고 있습니다.
광선유포는 묘법의 대광(大光)을 영원케 하여 모든 사람을 구해 나가는 싸움입니다. 당연히 그 일은 일대(一代) 만의 생애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일체중생(一切衆生) 개성불도(皆成佛道)’라는 법화경의 근본 목적이 끊기는 일이 있으면 안 됩니다.
광선유포라는 부처의 근본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바통을 건네는 이어달리기 경주처럼 어김없이 이 서원을 이어가는 것이 사제입니다. 올바른 ‘법’을 계승하는 사제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광선유포 대원’도 현실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번에는 우리 동지와 함께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血脈初)>①의 어서를 배독하면서 창가학회는 영원히 ‘사제불이의 신심’과 ‘이체동심의 신심’으로 승리한다는 것을 확인해 보고자 합니다.
①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血脈初) : 1272년 2월, 사도 지방(현재 니가타현) 쓰카하라에서 써서, 같은 사도에 유죄 중인 사이렌보(最蓮房)에게 주신 어서다. 본디 천태종의 학승으로 사도에서 대성인 문하가 된 사이렌보가 생사일대사혈맥이라는 성불의 핵심에 관한 법문을 질문한 것에 답하신 어서다.
이번 회에 배독하는 <생사일대사혈맥초>의 한 구절
총(總)하여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弟子檀那) 등은 자타피차(自他)彼此) 라는 마음 없이 수어(水魚)라고 생각을 해서 이체동심(異體同心)이 되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바를 생사일대(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고 하느니라. 더구나 지금 니치렌이 홍통(弘通)하는 바의 구극(究極)은 이것이니라. 만약 그렇다면 광선유포의 대원도 이루어질 것이니라. 더군다나 니치렌의 제자 중에 이체이심(異體異心)의 자가 있다면 예컨대 성(城) 안에 있는 자가 성을 파괴(破壞)하는 것과 같으니라. (어서 1337쪽 12행 ~ 14행)
찬란한 민중 승리의 대서사시를
우리가 늘 배독하는 어서입니다. 그리고 우리 창가학회의 사제만이 올바르게 배독하는 가장 중요한 금언(金言)이라 해도 좋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계 192개국∙지역에까지 묘법을 넓히고, ‘광선유포 대원’을 실현했다는 사실이 최고의 증명입니다.
이 어서에는 “니치렌의 제자단나 등”이라고 씌어 있습니다. 니치렌대성인에게 직결하는 사제의 중심축이 일체의 근간입니다.
‘생사일대사의 혈맥’은 일체중생에게 계승시켜 만인을 성불시키려는 혈맥입니다.
니치렌대성인은 석존(釋尊)으로부터 상행보살(上行菩薩)에게 맡겨진 묘법의 혈맥을 만인에게 펼치셨습니다.
이 “부처가 되는 혈맥”(어서 1337쪽)을 이으려면 광선유포를 향한 ‘사제불이의 신심’이 필요합니다. 사제의 행동 이외에 달리 신비적인 혈맥은 결코 없습니다.
그와 더불어 한 인간의 신심을 확립하기 위해 그 숙명전환의 드라마, 인간혁명의 드라마를, 세계로 미래로 무한히 넓혀나가려면 ‘이체동심의 신심’으로 맺어진 조직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광포의 스승과 ‘같은 마음’ 즉 스승과 동심인 제자들이 단결해 ‘이체동심’의 행동을 지속함으로써 ‘생사일대사의 혈맥’을 만인이 이어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제불이의 실천’과 ‘이체동심의 조직’이 있어야 ‘광선유포 대원’은 실현되는 것입니다.
금강불괴(金剛不壞)의 혼의 기둥을 중심축으로 삼아 동심원(同心圓)을 그리듯이 동지들의 아름다운 단결이 겹겹이 펼쳐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사제불이라는 ‘날실’과 이체동심의 ‘씨실’을 가지고 찬란한 민중승리의 대서사시를 엮어내고 있습니다.
‘니치렌 일문’의 화합승(和合僧)
우리 ‘창가’의 모임이 불법상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초대 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 선생님은 법난으로 투옥당한 옥중에서 검사의 신문에 대답하여, 창가교육학회는 이른바 승려가 운영하는 사원이 아니라, 독립된 “어엿한 하나의 재가적(在家的) 신앙단체입니다.”라고 잘라 말씀하셨습니다.
학회를, 말법악세(末法惡世)의 한복판에서 묘법을 광선유포하고, 현실사회의 변혁을 떠맡아 풍요로운 가치창조를 이루어나가는 단체라고 구상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국가권력의 격렬한 탄압을 견디지 못해 대부분 간부는 퇴전해 버렸습니다. 전란의 비참함 속에서 회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조직은 괴멸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패전 직전인 1945년 7월, 도다 선생님은 홀로 옥중 투쟁을 극복하여 출옥하자마자 곧바로 학회조직 재건에 착수하셨습니다.
“이제 두 번 다시 실패하지 않으리라!”
선생님은 전쟁 중 쓰라린 교훈에서, 어떠한 박해가 있어도 광선유포를 위해 불요불굴의 정신으로 싸우는 민중조직을 구축하려고 하셨습니다.
사제불이의 신심으로 홀로 서는 사자(師子)가 있으면 시대 차이나 물리적인 거리를 뛰어넘어서 광선유포의 돌파구가 반드시 열립니다.
그 사람의 주위에는 반드시 대성인 직결의 ‘니치렌 일문’의 화합승이 만들어진다고 선생님은 통찰하셨습니다.
사제의 길을 남겨두다
나는 도다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생사일대초혈맥초>강의를 들었습니다. 특히 잊을 수 없는 때는 선생님의 사업이 최악의 어려움에 빠진 시기, 즉 1950년 12월입니다.
선생님은 학회를 지키기 위해 이사장직에서 물러나 다시 대사명의 실에 서는 날을 기약하셨습니다. 그런 선생님의 마음도 모르고 내외에서 선생님에 대한 악구매리가 들끓는 속에서 열린 강의였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나는 <생사일대사혈맥초>어서를 나의 생명에 새겨놓듯이 일기에 적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학회를 재건하기 위해 일어선 창가 사제가 다시 대난의 폭풍을 극복할 수 있느냐 어떠냐 하는 갈림길에 선 순간이었습니다.
그러한 나날 속에 나는 맹세했습니다.
“사제의 길을 학회 영원히 남겨둘 것”
구원의 스승으로부터 구원의 제자에게 묘법유포의 서원과 사명을 부촉하는 일은 법화경의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사제의 원리를 말법 금시에 옮겨 석존 그리고 니치렌대성인의 유명(遺命)이신 광선유포 대원을 수행하기 위해 출현한 단체가 우리 창가학회입니다.
대난을 승리로 극복하여 은사는 제2대 회장에 취임함과 동시에 가장 중요한 포석을 놓으셨는데, 그것이 학회조직의 쇄신이었습니다.
이때 창간된 지 얼마 안 된 세이쿄신문에 “인류구제의 조직이 결성되다”라는 선명한 표제가 실렸습니다.
당시 겨우 3000명에 불과한 학회였습니다. 그러나 인원수의 많고 적음은 관계없습니다.
광선유포를 목표로 하는 ‘이체동심의 결합’은 반드시 인류사적인 대사명을 다하리라는 것을 도다 선생님은 깊이 확신하셨습니다.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②의 신념이 생각납니다. “그 사명에 대한 억누르기 어려운 신념으로 불이 붙은 결연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작은 단체는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
‘광선유포 대원’이라는 존귀한 사명에 불타서 싸우는 ‘억누르기 어려운 신념’으로 구성된 ‘민중 승리를 위한 조직’은 실로 ‘역사의 흐름’을 바꿔왔습니다.
② 마하트마 간디 : 1869년~1948년, 인도의 정치가이자 민족운동의 지도자. 인도 독립의 아버지로 존경받는다. 1893년, 남아프리카에서 백인이 인도인에게 인종차별하는 데에 반대하여 사티야그라하<진리의 파악>라 부르는 불복종운동을 전개했다. 제1차 세계대전 뒤 인도에 귀국해 1920년대 초부터 인도 국민회의파를 이끌며 독립운동을 지도했다. 인도 민족운동의 지도자로서 문호 타고르가 ‘마하트마(위대한 혼)’라고 불렀다.
불도수행에 힘쓰는 좋은 벗의 모임
은사가 “도다의 목숨보다 소중하다”고 말씀하신 창가학회 조직, 새삼스레 그 불법상의 의의를 확인한다면, 그것은 ‘화합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법(正法)을 행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의미합니다.
올바른 ‘법’을 영원히 전해 남기려면 반드시 전지(傳持)의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조직이 있어야 합니다.
석존 재세 시에도 그 주변에 제자들의 모임이 탄생하였습니다.
어느 날, 다문제일(多聞第一)인 제자 아난(阿難)이 “좋은 벗, 좋은 동료와 함께 있다는 것은 불도수행의 반을 성취 한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하고 스승에게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석존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니, ‘반’이 아니라 그것은 불도수행의 ‘전부’다”
그리고 석존은 계속 말을 이어갑니다.
“아난이여, 생각해 보아라. 사람들은 나(석존을 좋은 벗으로 함으로써 생로병사의 고뇌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았는가. 이 일에서 미루어 알 수 있듯이 좋은 벗, 좋은 동료와 함께 있음이 불도수행의 ‘전부’이니라.”
여기에는 ‘스승과 함께 걷다’라는 사제의 길을 근간으로 하면서 좋은 벗, 즉 동지와 함께 꿋꿋이 살아가는 것이 생로병사의 고뇌를 극복하는 대도(大道)라고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 표현으로 말하면 ‘사제불이’와 ‘이체동심’입니다.
또 불전(佛典)에 따르면, 또 다른 기회에 지혜제일(智慧第一)인 사리불(舍利佛)이 감개무량하게 술회합니다.
“나의 스승이여, 좋은 벗, 좋은 동료와 함께 있음은 실로 불도수행의 ‘전부’이군요.”
석존과 아난의 문답을 확인하는 듯한 한 마디였습니다.
그러자 석존은 “바로 그대로다, 바로 그대로다.”라고 찬탄하며, 거듭 “좋은 벗과 걷는 것이 불도수행의 전부이다”라고 강조하십니다.
석존은 함께 불도수행에 힘쓰는 동료들의 유대를 최대로 소중히 여겼습니다. 이러한 사제와 동지의 모임이 화합승입니다. ‘불패(不敗)의 모임’이라고도 합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또 세계에 넓게 펼쳐진 모임이었습니다. 석존은 모임에 참가하는 벗을 세간적인 신분이나 계급의 차별을 넘어서 최대로 존중하여 환영했다고 합니다.
서로 존경하고 서로 격려한다. 인간과 인간의 마음이 통하는 유대 관계가 본디불법의 세계입니다.
이 화합승을 파괴하는 일은 스스로가 ‘부처가 되는 길’을 닫고 파괴하는 “성안에 있는 자가 성을 파괴하는” 사자 몸속의 벌레와도 같은 모습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단결이 바로’승리의 힘’
이체동심이 바로 ‘불패의 모임’의 근간입니다.
그리고 단결이 바로 ‘승리의 힘’입니다. 말할 나위도 없이 이는 모든 것에 통하는 원리 입니다.
미국 독립운동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토마스 페인③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우리의 위대한 힘은 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결에 있다.”
하물며 광선유포의 신심을 근본으로 한 ‘이체동심의 단결’은 절대승리의 병법입니다.
우리는 이 불패의 민중성을 지키고, 영원히 승리해 나가야 합니다.
“이체동심이면 만사(萬事)를 이루고 동체이심이면 제사(諸事)가 이루어지는 일이 없다.” “니치렌의 동류는 이체동심이기에 사람들은 적지만 대사(大事)를 성취하여 반드시 법화경이 넓혀지리라고 생각하오.”(어서 1463쪽) 라는 말은 불멸의 금언입니다.
이 승리의 방정식은 지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③ 토마스 페인 : 1737년~1809년. 영국 출신의 혁명사상가, 1774년 미국에 건너가《상식》을 발표, 뒤에는 《인간의 권리》로 프랑스 혁명을 지지했다.
서로가 ‘모두 부처’라는 마음으로 존경
그러나 생신(生身)의 인간, 즉 말법의 범부의 모임이다 보니 단결, 단결이라고 말만 하면 쉽게 결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왠지 호감이 안 가는 사람,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인간사회의 현실이자 실상입니다. 그러므로 한때 감정에 흐르지 말고 서로 마음을 합치자, 단결하자고 하는 의지가 중요합니다.
거기에 아만편집(我慢偏執)의 수렁에 빠지지 않는 ‘현자(賢者)의 정도(正道)’가 있습니다.
정의감이 강한 반면 성미가 급하고 감정이 얼굴에 바로 나타나는 시조깅고에게 대성인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어도 친하게 지내도록 하시라.” “항상 화목하시라.”(어서 1172쪽) 등등, 몇 번이나 주위의 인간관계에 대한 배려를 자세히 지도하십니다.
게다가 <마쓰노전답서>에는 “어떠한 경우라도 법화경을 가진 자를 서로 헐뜯지 말지어다. 그 까닭은 법화경을 가진 자는 반드시 모두 부처이며, 부처를 헐뜯는다면 죄를 받는 것이니라.”(어서 1382쪽), “법화경의 일구일게(一句一偈)를 설하는 자는 ‘마땅히 일어나 멀리 마중하여 응당 부처를 공경하듯이 하라.’는 도리이므로 부처와 같이 서로 존경할지어다.”(어서 1383쪽)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우리가 명심해야 할 중요 가르침입니다. “법화경을 가진 자는 반드시 모두 부처”입니다. 싸우고 서로 헐뜯는 부처도 없고, 앙숙이 되는 부처도 없습니다.
어쨌든 인간은 인간 속에서만 닦을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인간 속으로! 이것이 대승보살의 맹세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자신을 극복하여 성장하기 위한 인간 수행입니다.
‘홀로 서는’ 참된 용자로
나는 젊은 날부터 광포 투쟁을 시작할 때 가슴에 새겨온 성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육천의 마왕은 십군(十軍)의 싸움을 일으켜서 법화경의 행자와 생사해(生死海)의 해중(海中)에서 동거예토(同居穢土)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빼앗으려고 다투고 있다. 니치렌은 그 당사자가 되어 대병(大兵)을 일으킨 지 이십 여 년인데, 니치렌은 한 번도 물러설 마음이 없었노라.”(어서 1224쪽)라는 사자후입니다.
일체중생을 고뇌의 대해에서 구하는 광선유포의 싸움은 법화경 행자의 세력과 제육천(第六天) 마왕(魔王)④의 세력의 격렬한 공방전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실, 대성인의 생애는 목숨이 위태로운 대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한 순간의 방심도 허락되지 않는 나날을 위풍당당하게 싸우셨습니다.
대성인은 훗날, “제천선신(諸天善神) 등은 니치렌과 힘을 합하신 고로 다쓰노구치(龍口)까지도 이겼고, 기외(其外)의 대난도 모면하였으니 지금은 마왕도 넌더리를 냈으리라.”(어서 843쪽) 하고 유연히 말씀하십니다.
말하자면 제육천 마왕이 “졌소이다.” 하며 항복했을 것이라고 갈파하시고 있습니다.
마왕의 세력을 떨게 하는 사자왕의 대투쟁은 제천선신을 내 편으로 가세시키고, 다쓰노구치 법난까지도 극복하셨습니다.
‘니치렌의 일문’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사자후의 혼을 계승한 용자(勇者)의 모임입니다.
“각기 나의 제자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겁내지 말지어다.”(어서 910쪽) 하고 엄명하신 대로 우리 이체동심의 민중 스크럼은,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자와 사자의 강인한 연대입니다.
이체동심의 철벽같은 단결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홀로 서는’ 신심입니다. ‘누군가가 하겠지’ ‘나와 상관없다’ 하는 나 몰라라 하는 태도와 남을 의지하는 나약함이나 무책임이 있는 곳에는 진정한 단결은 없습니다.
“그 지방의 불법은 귀하에게 맡기겠소.”(어서 1467쪽)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자신이 있는 그곳, 그 지역에서 홀로 서야 합니다.
④ 제육천(第六天) 마왕(魔王) : 고대 인도의 세계관으로 욕계(欲界)의 최상인 제육천(第六六天)에 살며 불도수행을 방해하는 마왕(魔王). 욕계의 중생을 지배하여 자유자재로 조종하기 때문에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라고도 불린다.
“간사이는 더욱 강해진다”
도다 선생님의 바람은 어떠한 권력의 마성이 박해해도 지지 않는 불요불굴의 민중성을 구축하는 일이었습니다.
잊을 수 없는 1957년 7월 17일, 억울한 죄로 투옥되었던 내가 2주 만에 출옥한 그날, 제천의 분노와도 같은 굉장한 폭우 속에, 나카노시마 중앙공회당에서 항의집회 ‘오사카대회’가 열렸습니다.
오사카사건은 간사이 단결의 중심에 있던 나를 겨냥하고 그 다음에는 도다 선생님의 체포까지도 시야에 넣은 학회 탄압이었습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조직은 괴멸 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권력이 흉악한 이빨을 드러냈을 때 창가 사제도, 정의의 민중인 우리 간사이 동지도 털끝만큼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간사이 동지가 이번 난을 어느 누구도 나 몰라라 하지 않고 자신의 일처럼 분노하고, 함께 기원하며, 싸운 단결을 진심으로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이제 간사이는 더욱 강해진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바야흐로 스승의 비원(悲願)대로 이체동심, 난공불락의 ‘금주성(錦州城)’이 대 간사이에 그리고 전 일본, 전 세계에 우뚝 솟아 있습니다. 그것이 나의 기쁨입니다.
지용의 연대로 세계광포 실현
내가 제3대 회장에 취임한 뒤로 세계 광선유포의 시대가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이 나라, 저 지역에 묘법의 씨앗 한 톨이 잇달아 탄생하여, 사명을 자각한 용자가 한 사람 또 한 사람 일어섰습니다.
힘겨운 겨울과 같은 시대를 거친 나라와 지역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곳일수록 지금은 훌륭하게 사회에 실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남미 브라질에는 군사정권하의 부당한 압력이 계속되어, 18년 동안 나는 방문할 수 없었습니다.
또 제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군국주의 일본의 지배에 신음한 한국과 타이완에서는 뿌리 깊은 오해와 편견으로 인해 우리의 동지는 수많은 고난을 참고 견디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 어느 곳이나 온갖 시련을 ‘이체동심의 단결’로 극복하고 모범적인 세계시민의 모임으로 발전했습니다.
석존이 탄생한 네팔의 동지들을 만났을 때, 나는 “첫째 사이좋게, 둘째도 사이좋게, 셋째도 사이좋게”라는 지침을 주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동지가 마음을 하나로 하여 사이좋게 전진하는 모임 속에‘ 희망’이 있습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승리’가 있습니다.
코트디부아르를 비롯하여 희망의 대륙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동지는 ‘이체동심!’과 ‘승리!’를 구호로 하여 아름다운 전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체동심’의 ‘이체’는 ‘다양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미국SGI 문화본부의 여러분과 간담을 했을 때, ‘획일주의’는 독재, 전제와 통한다. 불법은 그리고 우리 SGI는 자유롭게 ‘다양성’을 즐기며 살려나가야 한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는 흔히 ‘오케스트라’와 ‘샐러드볼’에 비유됩니다. 다채로운 악기의 음색이 멋진 하모니를 연주하듯이 또 다채로운 채소가 그릇 속에서 그대로 조화롭게 빛을 발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공생(共生)할 수 있는 사회입니다.
실제로 우리 SGI가 다민족, 다문화 나라나 지역에서 ‘다양성’을 커다란 특색으로 삼고 있다는 것에 세계 지성인들도 평가와 신뢰의 목소리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창가의 ‘이체동심’ 모임은 사실 글로벌 사회의 이상을 이미 체현(體現)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이 지구상 어느 곳에 있어도 그곳에 결연히 홀로 서는 우리 창가 동지의 연대가 넓혀지면 행복으로 나아가는 ‘가치창조의 길’이 열리고, ‘평화와 희망의 선율’이 연주될 것입니다.
그런 시대가 이제 다가왔습니다.
존귀한 동지를 불보살이 상찬
말법(末法) 금시에 만인성불의 묘법을 세계에 광선유포한 것은 과연 누구인가?
현실 속에서 고뇌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한가운데 뛰어들어 벗을 괴롭히는 절망의 어둠을 깨부수려고 내일을 향한 희망의 빛을 보내온 것은 누구인가?
자신도 어려움과 싸우면서 고뇌하는 벗의 마음에 바싹 다가서서 끈기 있게 살아가는 용기와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는 대화를 거듭해온 것은 누구인가?
“지금이 바로 숙명전환의 때입니다. 우리 함께 제목을 불러 투쟁합시다!”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됩니다. 이 고난을 극복하고 반드시 행복해져야 해요!” 전 일본, 전 세계에서 넘치는 확신과 격려를 계속해서 보낸 것은 누구인가?
그것은 존귀한 동지 여러분입니다. 지용보살의 교단인 창가학회이고, 우리 창가학회 사제입니다.
‘광선유포 서원’에 살아가는 창가학회가 엄연히 있기에 법화경 수량품의 “상주차설법(常住此說法)”(법화경 489쪽) 즉 구원의 부처가 사바세계에 있으면서 영원히 묘법을 설한다고 하는 법리도 현시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창가학회가 불의불칙의 교단인 의미도 여기에 있습니다. 실로 창가학회야말로 현대에 불법 정통의 ‘화합승’입니다.
그러므로 은사 도다 선생님은, 학회는 미래의 경전에 ‘창가학회불(創價學會佛)’이라고 기록될 것이라고 예견하셨습니다.
어본불 니치렌대성인이 그리고 삼세시방의 불보살이 우리 창가가 추진하는 세계광포의 전진을 최대로 기뻐하며 틀림없이 “바로 그대로다, 바로 그대로다.” 하고 상찬하실 것입니다.
‘서로 격려하고 함께 나아가라’
올해 1월, ‘세계광포 신시대 개막의 해’의 시작을 알리는 본부간부회에서 은사의 시를 쓴 ‘책’을 소개하고, 또 다시 전 세계 동지에게 선사했습니다.
이 노래를 새긴 노래비는 ‘광선유포 대서원의 전당’ 북쪽 광장에도 엄연히 설치되어 있습니다.
묘법의
광포 여정은
멀지만
서로 격려하고
함께 나아가라
우리 창가의 사제는 삼세 영원히 불이(不二)의 마음으로 ‘함께’ 살고, ‘함께’ 싸우고 그리고 ‘함께’ 광선유포 대원을 끝까지 달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생로병사라는 근원적인 고뇌와 마주 보며 ‘자타 함께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같은 목적을 공유하는 동지입니다.
그러므로 창가학회는 ‘함께 서로 격려하는 모임’입니다.
‘함께 떠받쳐주는 모임’입니다.
‘함께 배우고, 서로 촉발하는 모임’입니다.
‘함께 고난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모임’입니다.
나의 뇌리에는 동일본대지진 피해 지역에서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맺고 용기와 희망을 보내면서 부흥을 향한 빛을 크게 넓혀간 너무나 존귀한 동지의 모습이 떠나지 않습니다.
“지지 않을 거야!” 하며 불굴의 혼을 불태우며, 한 걸음 또 한 걸음 땅을 기어가듯이 앞으로 전진해 온 벗으로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지금 내일을 향한 ‘복광(複光)’이 드디어 그 광채를 더하고 있습니다.
일본만이 아닙니다. 세계 각지에서도 갖가지 어려움을 ‘함께’ 격려하면서 불요불굴의 투쟁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또 앞으로도 아니, 미래 영원히 우리 창가의 동지는 앞길에 어떠한 폭풍이 몰아치더라도 아름다운 이체동심의 신심으로 끝까지 ‘함께’ 격려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말고 ‘다 함께’ 용기와 희망의 원정을 계속해야 합니다.
거기에 바로 묘법의 일염부제 광선유포 실현이 있습니다. 그것은 또 ‘생명의 찬가’ ’인간의 찬가’가 울려 퍼지는 지구사회를 향한 길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이체동심’의 민중 단결이 기적 중의 기적으로써 인류사에 개가의 역사로 새겨지는 날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민중 개가’의 여명은 세계의 지용보살들의 스크럼에서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세계의 청년들
미래의 사자들
그리고 진심으로 신뢰하는
장년부와 부인부의 창가가족과 함께
승리와 영광과 희망의 ‘5∙3’을
맞이할 수 있음에
깊이깊이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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