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우먼 11월 주제_ 정리, 정돈
내 그릇은 작다
이 춘 명
A동 203호 할머니가 무시를 했다고 마구 소리친다. 문을 다 열어놓고 14가구 다세대 5층 모두에게 쏟아내고 있다. 무시하지 말라고. 청소를 하지 않고 헌 물건을 복도까지 늘여놓고 있다. 현관문이 닫혀지지 않을 만큼 발 디딜 틈 없이 모아 놓아 계단을 오르는 이웃들의 비난을 듣는 할머니이다.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는 대낮이다. 건너편 창으로 고스란히 들린다.
나는 얼마나 무시를 당하고 외면되어졌나 생각해본다. 한로가 지나고 가을을 돌아볼 사이 없이 춥다 하는 말이 입에 붙었다. 바쁘게 한 해도 두 장 남았다. 내년 내 그릇을 채울 약속을 하기 전에 충실하게 담으려했던 지난 겨울부터 봄, 여름을 돌아본다.
하루하루는 쪽대본으로 왔다. 보너스로 연장되는 날이다. 불평 불만과 체념은 시간 낭비이다. 내가 가는 길은 뜻밖의 기부가 된다는 주문으로 살아가고 있다. 내 그림자마다 충실하게 공손히 걷는다. 계획하고 꿈꾸는 삶은 나와 동행해주지 않았다. 애쓰고 좇으려했던 일들을 슬그머니 놓는다. 지키고 막으려했던 일들을 연초와 연말에 비교하면 늘 삐그덕거렸다. 놓치면 놓치는 대로, 달아나면 달아나는 대로 바라보기로 나를 달래고 있다. 손목에 힘을 빼는 나이가 더해지면서 더 이상 빚은 지지말자 자문하고 있다. 마음의 빚을 좀 더 갚아 내 자취에 외상 거래를 남겨 놓자하며 정리하고 있다.
내 그릇은 작다. 잊혀지는 대로 잊고 다가오는 대로 반갑게 인연걸이를 하고 있다. 나의 언행이 나의 신앙에 누를 끼치지 않을 범위 안에서 나를 꺼내어 멀리 내놓았다가 다시 내 안으로 안착시키고 있다. 구구절절 푸념은 사람을 떠나게 한 실수였다. 그저 매일 매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내가 지킬 수 있는 만큼만 채우며 산다. 삶에 맞장서는 오기는 이제 없다. 그러나 유혹한 잠재력은 억지로 누르지 않는다. 귀가 솔깃한 용수철로 튀어 오르는 호기심을 따라 가준다.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마다 나는 나에게 깜짝 놀라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 어울리고 잘 따라하고 재미를 붙이는 내가 점점 새롭다.
27살 래퍼에게 두 달째 힙합을 배우고 있다. 라임 버전으로 가사를 쓰고 녹음을 하고 흥얼거리는 두 시간은 매번 짧은 아쉬움이다. 트로트 네 박자로 손으로 무릎을 치면서 박치와 음치가 어거지로 강사의 입모양을 따라 하고 있다. 모음과 자음을 더하고 곱하기를 배우고 있다. 참고 있던 언어들을 소통하고 싶어 시작한 수업은 나의 심리적 개방에 참 좋은 효과를 준다. 굵은 실밥으로 꼬매었던 성대를 탈출 시키는 뒷바람의 재미가 솔솔하다.
주위에 아까운 사람들이 불안에 당황하는 병으로 아파하는 것을 많이 본다. 나도 혹여 멍들고 시들고 말라가지 않게 예방 치료를 하고 있다. 대놓고 따지고 터트리지 못하는 나의 의사를 마음껏 눈치보지 않고 터트리고 있다. 어깨를 들썩이며 던져보는 또 다른 변신은 내 그릇을 신선하게 채우고 있다. 남들보다 작은 내 그릇에 별똥별이 떨어지고 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마을마다 축제가 시작된다. 1년을 정리하며 그 지독한 더위를 견뎌 온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는 거리 축제가 곳곳에서 벌여진다. 살아주어 고맙고 이겨내어 흐뭇한 동네 주민들이 모이는 한마당에는 아이들 청장년 노인 할 것 없이 흥분된다. 부스를 맡아 체험하며 즐기는 활력에 건성으로 돌던 나였다. 복지관 안에서 주민센터 교실에서 소극적이고 축 쳐지는 뒷자리였다. 정적인 모습으로 굳어져 있었다. 집에서도 40대 자녀와 말이 어눌한 아동까지 3세대 가운데 끼어 대화나 의견이나 행동에서 가끔 불협화음이 있었다. 자꾸 옛날 이야기만 주절거리고 과거 회상만 하였다. 짧으면 20년 더 길게 바라보면서 내가 젊게 물들어가고 가까이 가면서 눈높이를 맞추고 그 세대들이 선호하는 문화를 잡으려 하고 있다.
나만의 고집스런 삶의 방식은 각이 있었다. 조금씩 궁글리면서 초침을 따라가지 않고 더디게 자박자박 신세대를 따라가려 한다. 기웃거림은 낯설었지만 먼저 공유의 문을 열어주는 젊음들에게 도리어 고마움을 느끼며 접해보지 못한 나이에 맞지 않을듯한 것을 도전하고 있다. 늙음에 맞서는 나의 생각은 미리 젊게 포장하는 것이다. 가식이 아니고 퓨전이다. 익숙한 느림에 조미료를 치고 있다. 멈추고 닫혀있는 뇌리를 콕콕 자극시키고 있다.
허튼 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한다. 비단같은 말을 해 놓고 지키지 않는 껍데기 노인이 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한다. 할 수 있는 만큼만 약속하고 젊음에 앞서 경험한 역경들을 소스 역할을 하는 쪽으로 유도하고 있다. 내 그릇 밑바닥에 굳어져 있는 고정 관념의 찌꺼기를 다 긁어내고 새로운 버전의 노랫말을 다시 담고 있다. 손뼉을 치면서 무릎을 두드리며 고개짓을 하며 직설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웅얼거리면 곁에서 따라하는 아이는 쉽게 같은 박자를 맞추어 준다. 어렵고 잘 듣지 않았던 곡조에 아이에게 일러주는 말을 하니 빠른 효과가 나왔다.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노인이 되는 시간이다. 너그럽고 여유있게 대화하는 방법을 하나 더 배운 힙합 할머니 교육은 힘들고 긴 현실에 리듬을 주고 정답게 화해하는 방법이 되고 있다. 뭘 배운다고, 그 나이에 배워서 하며 웃는 사람들이 많다. 잘못 들었나 두 번 세 번 묻는 이들도 있다. 내 나이가 어때서 하며 강사의 지도하에 가사를 맞추고 다시 고치고 자기 표현을 발표하는 시간에 나는 점점 용감해지는 돈키호테가 되고 있다.
첫 달력을 걸 때 다짐했던 약속 중에 기죽기 말자, 안 해본거 해보자, 더 늦기 전에 도전해 보자, 남의 시선 의식하지 말자였다. 얼굴도 점점 펴지고 목소리도 빠르고 정확하게 꼭 할 말만 하는 습관이 늘고 있다. 내가 아는만큼 실행하고 내가 마음 먹은만큼 움직이고 내가 지키는 규칙만큼 순응하면서 내가 먼저 젊음의 광장에 발을 쑤-욱 들이민다.
노인들의 단순한 놀이와 관심과 이야기들보다 좀 유별나게 보일지라도 다시 못 올 이 생에서 다시 느낄 수 없는 오늘 더 신바람나게 살아보려는 남아있는 두 달은 이미 들떠 있다. 내 그릇은 작다. 그러나 넘치지 않고 비어있지 않다. 채우고 퍼내고 가끔씩 뒤집어 나이를 잊고 살려 한다. 나만큼 내 나름대로 사는 것이 순응하는 비결이다.
A동 203호 할머니는 조용하다. 한 집 두 집 귀가하여 창마다 불이 켜져 있을 때 그 한 집만 컴컴하다. 음식 냄새와 가족들 목소리가 들리는 저녁 시간에 더욱 고요하다. 인기척이 있으면 이중 창문이 열리지 않는다. 이웃들은 꼭 그 집 앞을 지나 올라간다. 오르면서 코를 막고 찡그리고 잔소리를 한 두마디씩 한다. 그러나 다른 이웃과 나누는 일상을 안부를 나누지 않는다. 주차장을 건너 마주 보이는 할머니 방은 섬이 되고 있다.
그렇게 늙고 싶지 않다. 나는 지금 어디쯤 머물러 있는가, 어떻게 물들어 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해본다. 숨소리까지 건너오지 않는 할머니 창을 바라본다. 살아 있으면서 사는 것 같지 않는 그 어둠은 겨울이다. 나서서 해결을 하거나 참견을 하거나 신고를 할 의견들은 분분하다. 그 속에 있는 나는 나를 채우며 무사히 넘긴 어제까지를 배웅한다. 남아 있는 나의 겨울을 추스러 본다. 내가 나를 대우해주면서 화해하며 보내야 할 내일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