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죄와벌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놈이 울었고
비 오는 거리에는
사십 명 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는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1963.10)
이 시는 죄를 질 충분한 각오를 가졌다고 생각하고 아내에게 죄를 지었지만 화자의 각오는 사라지고 잃어버린 지우산을 아까워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는 내용이다.
전체적인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사람이면서 죄를 질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한다고 화자는 생각한다. 그러나 화자는 자신을 희생을 당하게 하는 여편네를 충분한 각오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비오는 밤의 길거리에서 때려눕힌다. 비오는 거리의 현장에는 화자와 화자의 아내 옆에서는 자신인 어린놈이 울었고, 사십 명 가량의 취객들이 자신들의 모습을 구경하러 모여들었다. 현장을 떠나 집에 돌아왔으나 범행의 현장에 있던 취객 중에 자기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봐 마음이 꺼림칙하다. 그런데 화자는 체면보다는 현장에 버리고 온 지우산을 더 아깝게 생각한다.
이 시를 구절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제목 ‘죄와벌’은 러시아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가 지은 소설의 제목과 같다. 이 소설에는 지독한 가난에 쪼들리고 있었던 주인공인 ‘라스콜리니코프’가 살인을 한다. 이 시의 1연에서 ‘살인을 한다’는 구절이 있는 것을 보면 이 시의 제목은 토스토예프스키 소설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 살인을 한다.’는 살인을 할 두 가지 조건을 말하고 있다. 살인을 할 수 있는 첫째 조건은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사람이고 둘째 조건은 죄를 질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이어야한다. 오직 이 두 가지 조건을 갖춘 사람이 만이 ‘살인’이라는 죄를 짓는 것이다. ‘-만이’는 이 두 가지 조건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살인’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충분한 각오 가진 사람’은 죄인 ‘살인’을 하고서도 후회를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죄’는 살인을 당한 사람에게 ‘벌’을 준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의 눈에는 ‘죄’를 저지른 것이지만 자신은 살인을 당한 사람에게 ‘희생을 당’하였기에 ‘벌’을 주는 것은 ‘살인’일지라도 후회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산대로 /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 우리들의 옆에서는 / 어린놈이 울었고 / 비 오는 거리에는 / 사십 명 가량의 취객들이 / 모여들었고 / 집에 돌아와서는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 보았는가 하는 일이다.’는 화자가 길에서 아내를 때렸을 때의 모습과 집에 돌아와서 아는 사람이 그 모습을 보았을까 걱정했다는 말이다.
화자는 아내를 때려눕힌다. 그 이유는 이 시에서 들어나지 않는다. 다만 제목과 1연을 토대로 유추하자면 ‘가난’으로 인하여 ‘남에게 희생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그 남이 ‘여편네’가 아닌가 한다. 화자는 ‘여편네’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대상이고 화자가 ‘여편네’를 때려눕힌 행위는 ‘충분한 각오’를 하고 행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는 1연의 조건에 화자가 해당한다는 생각으로 행한 ‘죄와 벌’의 구체적인 행위인 ‘우산대로 / 여편네를 때려눕’힌 행동이 1연의 조건에 맞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 화자는 비오는 밤거리에서 자식이 옆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편네를 때려눕혔으나 집에 돌아와서는 ‘사십 명 가량의’ 모여든 ‘취객들’ 중에 화자가 ‘아는 사람이’ 있어서 자신이 저지른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봤을까봐 걱정을 한다. 걱정을 한다는 것은 화자가 자신이 한 행위가 ‘충분한 각오’를 가지고 행한 것 아니라는 것이다. 화자는 ‘충분한 각오’를 가지고 행한다고 했으나 행하고 보니 ‘충분한 각오’가 없었다는 깨달았다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화자가 행한 행위는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범행’을 한 것이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는 화자가 아는 사람들이 자신이 행한 행위보다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것을 더 아까워하는 존재였다는 것을 말한다. 결국 화자는 ‘충분한 각오’를 가지고 ‘죄’를 지은 사람을 ‘벌’하는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화자는 ‘죄와 벌’보다는 ‘현장에 버리고 온’ ‘지우산’을 아까워하는 존재였을 뿐이다.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왔다는 것은 화자가 ‘캄캄한 범행의 현장’에서 주변의 시선을 피하려고 급하게 움직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화자는 자신이 ‘죄’를 지은 자를 ‘벌’을 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는 ‘죄’를 지은 자를 ‘벌’을 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화자가 체면보다는 지우산을 아까워하는 찌질한 사람에 불과 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화자는 자신이 행한 행동을 반성하고 있는 것이고 ‘죄와 벌’을 행할 존재가 못된다고 고백하는 것이다.20150420월전1221전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