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돈(Phédon, Φαίδων)(영혼에 관하여, Sur l'âme, Paîdon ē Peri psukhēs)
M. Dixsaut, in Les Oeuvres I, Dictionnaire, PUF, 1992, pp. 264-265. (P.2190.)
- 플라톤(Platon, Πλάτων, 본명 Aristoclès 427-347; 80살) 기원전387년 조금 이후 쓴 작품.
- 디소(Monique Dixsaut s.d.) 프랑스여성철학자. 고대철학 플라톤전공, 3대학명예교수.
이 작품으로부터 성숙기(385-370) 작품에 속한다. 플라톤의 성숙기(기원전 385-370) 작품들로는 4편을 말한다. 파이돈(Phédon, Φαίδων)(영혼에 관하여, Sur l'âme), 향연(Le Banquet, Συμπόσιον(사랑에 관하여, Sur l'amour), 공화국(La République, πολιτεία(정의에 관하여, Περὶ πολιτείας De la justice), 파이드로스(Phèdre Φαῖδρος)(아름다움에 관해서, Sur le Beau)
소크라테스의 교훈은, 나로서는 “뒤돌아보아 알게 되는 기억은 현재의 문제거리를 구체적으로 하지 말라는 것을 가르친다. 회상하여 미래를 갖게 하는 것은 사기와 미신이다. (트위터, 47QMI)”이라 가르치는 것이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영혼론은 저세상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현재 삶에 연관을 더 이상 해결할 수 없을 때, 물음을 묻는 자아에게 대답은 영혼이 한다고 할 때, 그 영혼은 기억이다. 이 기억은 우리보다 더 좋은 곳에서 있었다고 하는 것은 도덕적이고, 우리가 위협에 대해 기대치를 가질 수 있는 노력으로 보면 인식적 근거이다. 이 인식적 근거를 존재론적으로 바꾸어 그 영혼이 있다고 하는 양태로 설명하면서 영혼이 실체적이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실재성으로서 영혼은 양태라기보다 구체적 실행을 하는 동작, 작동에 가깝다. 그 동작이 지속적이고 힘, 권능으로서 동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동적인 속성은 물체(물질)에서 그 표현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물질 물체로 드러나지 않은 구체성은 없다. 소크라테스 삶은 구체적이었고 그렇지 않은 것에는 용감하게 “아뇨”를 말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물질성과 관계 없이도 작동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배경에는 도덕성을 가설로 가지고 있고 또한 인민들에게 고취시킬 맘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영혼의 새명(삶)보다 더 상위 즉 류적인 것으로 만들 수 밖에 없었다. 맘을 몸의 삶보다 우위로 만들면서 그 맘이 영속해야 한다면 어떻게 어떤 실체로서 현존 또는 존재하는가? 소크라테스는 추상적 수학의 공리와 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까? 아니면 다음에 나오는 “향연”에서 끊임없이 확장되고 고양되는 어떤 힘(욕망, 성취, 사랑)으로도 표출하는 것일 것이다. 욕망도 성취도 사랑도 자기의 것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타인과 관계로서 이루어지는 데서 오는 자기 몸의 부재가 맘을 상위로 올려 놓은 것이 아닐까? 자기와 타인의 이중적(매개적, 합동적, 이접적, 그렇다고 이원적은 아니다)관계를 설득하는 수단으로서 맘(영혼)이 몸과 분리를 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47QMJ)
작중 인물들 *************
소크라테스(Socrate, Σωκράτης, 기원전 470년경-기원전 399년)
아폴로도로스(Apollodore, Ἀπολλόδωρος) 기원전 5세기경, 아테네 조각가, 소크라테스 제자. 별명 광인(« le Fou »), 철학자들의 조각상들을 만들었다. 향연편에도 나온다.
파이돈(Phédon d'Élis, Φαίδων) 5세기 그리스 철학자. 엘리스 귀족 출신이었으나 스파르타와 전쟁에서 노예가 되어 팔렸다. 소씨는 크리톤(Criton d'Athènes)에게 그들 되사게 했다. 그는 매우 아름다워서 노예 때 유곽에 있었다고 한다.
케베스(Cébès de Thèbes, Κέβης Θῆϐαι, 기원전430경–350) 테베출신으로, 피타고라스 학파의 필로라오스(Philolaos)제자였다. 심미아스와 동향이다. 아테네에 가서 소크라테스와 연결되었다. 소크라테스가 감옥에 있을 때, 탈출을 조직하고 재정을 담당했으나, 소크라테스가 거절했다.
에케크라테스(Échécrate de Phlionte Ἐχεκράτης Φλιούς/Φλειοῦς 피타고라스 제자. 피타고라스학파의 영혼의 조화를 주장한다.
심미아스(Simmias de Thèbes, Σιμμίας Θῆϐαι) 케베스와 동향인. 크로톤에서 필로라오스 제자였다가 소크라테스 제자가 되었다. 소크라테스 탈출기도에 참여했다.
크리톤(Criton, Κρίτων) 기원전 5세기 아테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제자. 그리고 그의 아들들 Critobule, Epigène et Ctésippe 이 나온다.
안티스테네스(Antisthène Ἀντισθένης / Antisthénês 기원전 444경-365) 그리스 철학자. 390년 경에 퀴니코스 학파 창설자. 그리고 스토아학파의 창조자이다.
아이스크시네스(Eschine de Sphettos, Αἰσχίνης 기원전435경-350경) 파이돈편과 소크라테스 변론 편에 나온다. 그의 아버지 뤼사니아스(Lysanias)는 소크라테스와 친구이다. 그는 소크라테스의의 재판과 죽음에 참여했다.
에우클레이데스(Euclide de Mégare, Εὐκλείδης 기원전 450경- 366경) 그리스 철학자. 소(小)소크라테스 학파에 속하며, 405년 경에 메가라 학파의 창시자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수학자와 혼동하지 말 것.
뤼시스(Lysis, Λύσις) 기원전 5세기경 아테네인. 데모크라테스(Démocratès)의 아들 또는 . 메넥세노스의 최상의 친구.
메넥세노스(Ménexène, Μενέξενος) 기원전 5세기경, 소크라테스의 제자. 크테시포스의 제자이기도 하고 사촌이다. 뤼시스의 친구. 플라톤이 말하기를 정치가 데모폰(Fils de Démophon)의 아들이다.
헤르모게네스(Hermogène Ἑρμογένης) 그리스 철학자. 기원전 5세기경. 파르메니데스와 소크라테스의 제자. 디오게네서 라에르티우스는 플라톤의 스승중의 한사람이라 한다.
테르프시온(Terpsion de Mégare, Τερψίων)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 제자, 테아이테토스편에서는 에우클레이데스의 친구로 나온다. 소크라테스 죽음에 참석한 사람이다.
크세노폰(Xénophon, Ξενοφῶν)은 아테네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플라톤(Platon, Πλάτων) 재판의 날에는 참석했으나, 최후의 날에는 아파서 참석하지 못했다.
케레크라테스(Chérécrate), 케레폰(Chéréphon)의 형제, 소크라테스 재판의 증인 중의 하나. 소크라테스 제자..
페돈데스(Phédondès) 알려지지 않은 인물.
# 내용
파이돈은 어떻게 소크라테스가 죽었는지를 이야기 한다. 서설에서, 호기심을 일으키는 여러 주제의 혼합(쾌락과 고통)이 대립되는 것들의 연대가 되는 주제를 알려준다. 소크라테스의 평온함(la sérénité)에 마주한 케베스와 심미아스는 놀라게 된다. 죽음은 선이며 자살은 금지되어 있다. 소크라테스는 기대치(l'espérance)의 변론으로 대답한다. 자기 삶 동안에 죽는 것에 전념[성찰]하는 철학자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느끼고 욕망하는 신체와 연결이 떨어지는(une déliaison) 궁극적인 경계 이상의 것이 아니다. 신체나 느낀다는 것은 가지적인 실재성을 파악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고, 욕망한다는 것은 [주의력] 분산의 근원이다.
따라서 어떤 기호적 선호가[선택이] 우연을 필연으로 바꿀 수 있고, 죽는다는 방식을 가치있게 할 수 있다. 이런 신념은 사유에 의해 절제된 탁월함으로 강화된, 진실한 철학자의 표시이다. 그러나 기대치란 죽음-연결끊김(la mort-déliaison)이라는 환원적 정의 위에 근거한다. 그런데 인간들이 걱정하는 이 파괴(destruction)[죽음]이다. 영혼은 불멸이라고 인간들을 설득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희망(l'espoir)은 착각이며, 위협(le risque)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1) 사람들은 연역적으로 신화를 정당화할 수 있다. 그 생성에서 각각의 반대자는 자기의 반대자로부터 생겨난다. 각각의 활동성은 두 대립자들의 사이에 이행이다. 죽는다는 것, 그것은 이 생성의 하나의 특별한 경우일 뿐이다. 그리고 만일 다시 산다는 것이 죽는다는 것과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면, 모든 것은 이미 무로 환원되었으리라.
2) 회상(la réminiscence) 감각적인 것들과 본질 사이에 차이를 의미한다. 감각들이 작동하는 기회에는, 본질을 다시 추억한다는 것은 감각적인 것의 결핍을 드러낸다. 또한 본질에 앞선 것, 영혼에 앞서 있는 것, 순수 사유의 능력 등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느낀다는 것과 연관하여 독립하는 것은 선 현존을 함축하는 것이지, 영혼의 잔존을 함축하는 것이 아니다.
3) 마법(l'incantation 주술 呪術, 주문 呪文)이 필요하다. 구성되고 변화가능하며, 보이는 실재성만이 파괴가능하다[경험적으로도]. 그런데 영혼은 보이지 않은 실재성과 닮은 면이 있으며, 비구성적이고 불변한다. 그 닮음[친족성]의 정도는 종말론(l'eschatologie)을 정당화한다. 그 철학자[소씨 같은 이]는 신체와 더불어 갖는 견해의 공통의 근원인 욕구가 정화되어서, 오직 신적 숙명을 가질 것이다. [그래도] 불신은 영속되고. 죽음은 로고스(le logos, λόγος)를 궁지로 몰아 넣는다.
두 이미지를 검토를 내 놓는다. 하나는 리라(lyre 현금 弦琴)과 다른 하나는 직조공(le tisserand)이다.
1) 조화로운 영혼의 주제는(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그의 이론의 순화) 회상의 주제와 양립불가능하다.
2) 유한한 수의 회상들의 주제는 영혼불멸 그리고 연장된 잔존과 혼동되고, 재생과 소멸(분해)의 원인들로 귀착된다.
아낙사고라는 잘 못하여 지성적 인과성이라 생각했다. 참여하고[나누어가진] 그리고 이름을 부여받은 형상들의 다수들로부터 출발하여, 귀결들의 정합성을 증명해야 하고, 가설이 충분하다는 것을 제시해야 한다. 이 가지적인 것들 속에서 반대자들은 서로 배제되고, 서로 생성하게 하지 못한다. 그런데 직접적인 대립(une contrariété 반대성질) 그 이외에도 매개적인 반대[반대성질]이 있다. 하나의 대립자를 갖는 어떤 형상(une Forme)에 참여하는 것 모두는 하나의 대립자를 갖는다. 따라서 생명에 참여하는 영혼은 반대로서 죽음을 매개적으로 갖는다. 따라서 생명의 접근에서, 영혼은 자기 본질을 간직하고 스스로 물러난다. 그것이 영혼 불멸이다. 신화는 이 위협을 정당화할 것이며, 따라서 각 영혼에게 자기의 삶의 종류에 맞게 받을 만한 지리학적 장소를 할당 받는다.
오르페우스-피타고라스주의[윤회사상], 이원론[몸맘 분리], 금욕주의[몸조심]은 한계[둘 사이의 경계]에 대한 반성에 의해 방법들을 취하게 되고 그리고 몇 가지 담론들에 의해 대립되고 인과 관계있는 양태들을 취하게 된다. 형상들(le Formes)의 가설, 로고스의 신뢰 등은 기대치의 변론에 뒤섞여 있다. 죽음은 혼합된 언어를 불러온다. 철학자에게 그가 아는 바의것들 믿도록 강화하면서, 증명적-고취적(demonstratif-protreptique), 주술적-논증적(incantatoire-argumentatif) 언어이다.
(47QM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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