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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기둥과 같은 느낌을 주는 화순대리석불입상은 조선시대 후기 돌장승에서 흔히 보는 양식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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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 가운데에 석불이 있었다. 정식 명칭은 화순대리석불입상이다.
수로를 따라 논두렁을 조심조심 건너 석불로 다가갔다. 석불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얼굴이었다. 아! 석불의 얼굴은 바로 아까 터미널에서 본 할머니의 얼굴이었다.
대리석불입상은 보성과 화순을 지나는 길목에 있다. 사찰에서만 볼 수 있는 불상이 개인의 기복과 마을의 안녕을 비는
길거리에서 쉽게 대하는 불상이 되면서 '민불(民佛)'로 불리었다.
그 얼굴도 부처의 엄숙함에서 벗어나 민초들의 소박한 표정이 담겨 있다. 불교와 민간신앙이 섞인 형태로 그 생김새가
매우 친근하다. 석불과 할머니의 얼굴이 닮은 것은 어찌 보면 우연은 아니었다.
▲ 화순군내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조귀순(90) 할머니는 석불을 꼭 닮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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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미륵세상을 꿈꾸다
화순대리석불입상(전남문화재자료 제243호)은 문화유적이 많은 화순의 다른 지역과 달리 변변한 유물이 없어
다소 밋밋할 수 있는 화순 읍내에 홍일점과 같은 존재다.
화순읍에서 남쪽으로 경전선 철길이 달리는 논 한가운데에 있는 석불은 얼핏 보면 무슨 선돌로 보이기도 한다.
잘 자란 느티나무 두 그루를 일산삼아 서 있는 모습에서 사뭇 위엄까지 느껴진다.
가까이서 보니 석불은 제법 키가 크다. 멀리서의 위엄 있는 모습과는 달리 친근하고 해맑은 인상이다.
동그란 맨머리에 기름한 눈은 편안하다. 넓적한 코는 장승처럼 순박했고 일자형의 입은 도톰하니 작은 것이 순하다.
턱과 목이 구분되지 않고, 목 부분이 어깨로 바로 연결되어 돌기둥과 같은 느낌을 주는 조선시대 후기 돌장승에서
흔히 보는 양식이다.
석불은 돌기둥에 가까운 자연석을 사각형으로 대충 다듬은 뒤 앞쪽에 얼굴 부분만 돋을새김을 하고
나머지 턱 밑으로 내려온 몸체 부분은 선각으로 처리했다.
주변에 절터로 추정할 만한 곳은 없고 다만 동쪽으로 약 500m 떨어진 곳에 이 고장 출신인 진각국사
(송광사 16국사중 제2세) 탄생설화와 관련된 학서정이 있을 뿐이다.
▲ 화순대리석불입상은 당산나무 두 그루를 일산삼아 서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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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사람들은 이 석불을 '미륵'이라 부르기도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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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민불을 마을에선 '미륵'이라고 부른다. 미륵이라. 이곳에는 한 기가 있을 뿐이지만 인근의 운주사라는 절에 가면수백 기의 미륵이 모여 있다. 아득한 신앙의 세계에 머물던 불교를 자기들의 생활 속으로 끌어와 신앙물인 '민불'에 의탁한 것이다
말 그대로 백성들의 부처가 된 것이다. 비록 투박하여 근엄한 외경의 대상은 아닐지라도 자기들의 삶터에 깊이 뿌리내려
마을의 안녕과 개인의 복을 빌어 그들만의 미륵세상을 꿈꾸었을 것이다.
농사철이 되면 당산나무 아래 석불을 보며 새참도 먹었을 것이고 아이들은 이 둔덕을 놀이터삼아 뛰어다녔을 것이고
뜨거운 여름에는 마을 사람들의 쉼터가 되었을 것이다.
이곳은 그 자체로 마을 사람들의 고단한 몸과 마을을 달래는 이미 작은 미륵세상이었을 게다.
르 끌레지오와 이용대 체육관
200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르 끌레지오는 운주사를 찾았다가 천불천탑에 감명을 받아
<운주사, 가을비>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그가 운주사라는 절에 깊이 매료된 건 운주사에 담긴 염원과 정서가
우리만의 것이 아닌 세계 보편적인 의미와 공감을 담고 있는 공간이라는 걸 증명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 화순 운주사 경내의 석탑과 석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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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황석영은 <장길산>에서 운주사를 통해 미륵의 세상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
운주사 석불
정호승
운주사 와불님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거든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화순, 수 천 년 된 고인돌에서 아득한 시절 인간의 역사를 읽어내고,
조광조가 꿈꾸었던 이상사회와 동학농민군과 의병들이 죽음으로 이루어내고자 했고
해방 후에 화순탄광 노동자들이 바랐던 새 세상, 인간다운 세상이 있었다.
5·18 때는 화순군민들이 너릿재를 넘어 광주로 갔다.
어쩌면 그들은 이 고개를 넘으면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이,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졌을 것이다.
전국을 떠돌다 이곳 화순 동복에서 마지막으로 숨을 거둔 김삿갓, 그가 본 것은 또한 어떤 세상이었을까?
▲ 왼쪽 선로가 화순탄광으로 가는 화순선이고 오른쪽 곡선 철로가 경전선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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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남도 800리를 달리는 경전선과 화순탄광이 있는 동북으로 가는 화순선이
이곳에서 갈린다.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석탄을 많이 캐낸다는 화순탄광의 선로는 녹슨 지 오래였다.
o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