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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달마법온족론 제6권
10. 성제품(聖諦品)
어느 때 박가범은 바라니사(婆羅泥斯)의 선인논처(仙人論處) 시록림(施鹿林)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4성제]
“이것은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이니,
만일 이와 같이 일찍이 듣지 못했던 법에 대하여 이치대로[如理] 사유(思惟)하면 반드시 안(眼)ㆍ지(智)ㆍ명(明)ㆍ각(覺)이 발생하느니라.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集聖諦]이니,
만일 이와 같은 일찍이 듣지 못했던 법에 대하여 이치대로 사유하면 반드시 안ㆍ지ㆍ명ㆍ각이 발생하느니라.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滅聖諦]이니,
만일 이와 같은 일찍이 듣지 못했던 법에 대하여 이치대로 사유하면 반드시 안ㆍ지ㆍ명ㆍ각이 발생하느니라.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道聖諦]이니,
만일 이와 같은 일찍이 듣지 못했던 법에 대하여 이치대로 사유하면 반드시 안ㆍ지ㆍ명ㆍ각이 발생하느니라.
또 필추들아, 이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는 통혜(通慧)로써 마땅히 두루 알아야[遍知] 하나니,
만일 이와 같은 일찍이 듣지 못했던 법에 대하여 이치대로 사유하면 반드시 안ㆍ지ㆍ명ㆍ각이 발생하느니라.
이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는 통혜로써 마땅히 영원히 끊어야 하나니,
만일 이와 같은 일찍이 듣지 못했던 법에 대하여 이치대로 사유하면 반드시 안ㆍ지ㆍ명ㆍ각이 발생하느니라.
이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는 통혜로써 마땅히 증득해야 하나니,
만일 이와 같은 일찍이 듣지 못했던 법에 대하여 이치대로 사유하면 반드시 안ㆍ지ㆍ명ㆍ각이 발생하느니라.
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는 통혜로써 마땅히 닦아 익혀야[修習] 하나니,
만일 이와 같은 일찍이 듣지 못했던 법에 대하여 이치대로 사유하면 반드시 안ㆍ지ㆍ명ㆍ각이 발생하느니라.
또 필추들아, 이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를 나는 통혜(通慧)로써 이미 두루 알았나니,
만일 이와 같은 일찍이 듣지 못했던 법에 대하여 이치대로 사유하면 반드시 안(眼)ㆍ지(智)ㆍ명(明)ㆍ각(覺)이 발생하느니라.
이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를 나는 통혜로써 이미 영원히 끊었나니,
만일 이와 같은 일찍이 듣지 못했던 법에 대하여 이치대로 사유하면 반드시 안ㆍ지ㆍ명ㆍ각이 발생하느니라.
이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를 나는 통혜로써 이미 증득하였나니,
만일 이와 같은 일찍이 듣지 못했던 법에 대하여 이치대로 사유하면 반드시 안ㆍ지ㆍ명ㆍ각이 발생하느니라.
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를 나는 통혜로써 이미 닦아 익혔나니,
만일 이와 같은 일찍이 듣지 못했던 법에 대하여 이치대로 사유하면 반드시 안ㆍ지ㆍ명ㆍ각이 발생하느니라.
필추들아, 알아야 한다. 나도 이와 같은 4성제에 대하여,
만일 아직 3전(轉)ㆍ12행상(行相)이 있지 않아서 아직 안(眼)ㆍ지(智)ㆍ명(明)ㆍ각(覺)이 발생하지 못했다면,
아직 이 하늘ㆍ사람ㆍ세간의 악마와 범(梵)과 사문(沙門)과 바라문(婆羅門) 등에서 해탈하거나 벗어나지 못했으리니,
아직 뒤바뀜이 있는 많은 머무르는 마음[多住心]을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이요,
또한 아직 스스로가 사실대로 ‘나는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無上正等菩提]를 증(證)하였노라’고 일컬을 수 없었으리라.
나는 이와 같은 4성제에 대하여 이미 3전(轉)ㆍ12행상(行相)이 있어서 이미 안ㆍ지ㆍ명ㆍ각이 발생한지라, 곧 이 하늘ㆍ사람ㆍ세간의 악마와 범과 사문과 바라문 등에서 해탈하고 벗어나게 되었나니,
이미 뒤바뀜이 있는 많은 머무르는 마음을 제거하였기 때문이며,
또한 이미 사실대로 스스로가 ‘나는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보리를 증하였노라’고 말할 수 있었느니라.”
이 법을 설하실 때에 구수(具壽) 교진나(憍陣那)와 8만의 천자(天子)들은 티끌을 멀리 하고[遠塵] 때를 여의어[離垢] 모든 법 가운데서 청청한 법안(法眼)이 생겼다.
그때 부처님께서 교진나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설한 법에 대하여 너는 이미 이해하였느냐?”
교진나가 말하였다.
“저는 이제 이미 이해하였으며 두 번째와 세 번째의 것에서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교진나는 먼저 법을 이해한 까닭에 세간에서는 다 같이 그에게 아야다(阿若多)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신(地神)과 야차(夜叉)는 이 말을 들은 뒤에 기뻐하고 좋아 뛰면서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부처님께서는 지금 이 바라니사의 선인논처 시록림 가운데서 세간의 모든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시어 이익되고 안락한 일을 얻게 하기 위하여 세 번이나 법륜(法輪)을 굴리셨다. 그 법륜은 12행상(行相)을 두루 갖추셨으니, 세간의 사문이나 바라문ㆍ하늘ㆍ악마ㆍ범 등으로서는 모두가 이 법륜을 굴릴 수 있는 이가 없다.
부처님께서 이 위없는 법륜을 굴림으로 말미암아 교진나 등은 이미 성스러운 진리를 보았으며, 지금으로부터는 하늘의 대중은 점차로 불어날 것이요 아소락(阿素洛) 대중은 점차로 줄어들 것이니, 이로 인하여 차츰차츰 모든 하늘과 사람들은 모두 뛰어난 이익과 안락을 얻으리라.”
허공을 날아다니던 야차가 이 소리를 들은 뒤에 기뻐하면서 사대왕천(四天王天)에 전해주었고 거기서도 또 소리를 높여 차츰차츰 그 위에다 전하였으므로 잠깐 동안에 그 소리는 범천(梵天)에 이르렀다.
그때에 대범왕(大梵王)은 듣고 나서 기뻐하면서 부처님을 경하(慶賀)하였다.
“위없는 법륜을 굴리셨으니, 끝없는 모든 유정을 이익되고 안락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가운데서는 전법륜(轉法輪)의 일을 널리 말씀하셨으니, 이 때문에 『전법륜경(轉法輪經)』이라 한다.
그때에 다섯 필추[五苾芻]와 8만의 천자들은 경을 듣고 기뻐하면서 믿고 받아 받들어 행하였다.
1)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어떤 것이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인가?
나는[生] 것이 괴롭고 늙는[老] 것이 괴로우며, 병드는[病] 것이 괴롭고 죽는[死] 것이 괴로우며, 원수끼리 만나는[怨憎會] 것이 괴롭고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愛別離] 것이 괴로우니 요약하여 말하면 온갖 5취온(取蘊)이 괴로운 것이다.
어찌하여 ‘나는[生] 것이 괴롭다’고 하는가?
‘난다[生]’고 함은,
곧 저 여러 유정들이 곧 저 유정들의 무더기 가운데서 모든 나고[生], 평등하게 나며,
나아가 들고, 출현하며, 온(蘊)을 얻고 계(界)를 얻고, 처(處)를 얻으며,
모든 온(蘊)이 생기고, 목숨[命根]이 일어나는 등의 이것을 통틀어 ‘난다’고 한다.
무슨 인연 때문에 ‘나는 것을 괴롭다’고 하는가?
유정이 태어날 때[生時]에는 갖가지로 몸[身]의 괴로운 일을 받아들이고 섭수하기 때문이며,
갖가지로 마음[心]의 괴로운 일을 받아들이고 섭수하기 때문이며,
갖가지로 몸과 마음[身心]의 괴로운 일을 받아들이고 섭수하기 때문이며,
갖가지로 몸의 뜨거운 번뇌[熱惱]의 일을 받아들이고 섭수하기 때문이며,
갖가지로 마음의 뜨거운 번뇌의 일을 받아들이고 섭수하기 때문이며,
갖가지로 몸과 마음의 뜨거운 번뇌를 일을 받아들이고 섭수하기 때문이며,
갖가지로 몸의 불타듯[燒然] 하는 일을 받아들이고 섭수하기 때문이며,
갖가지로 마음의 불타듯 하는 일을 받아들이고 섭수하기 때문이며,
갖가지로 몸과 마음의 불타듯 하는 일을 받아들이고 섭수하기 때문에 나는 것을 말하여 괴롭다고 한다.
또 날 때에는 두 가지 괴로움을 느끼게 되나니,
첫째는 고고(苦苦)요 둘째는 행고(行苦)이다.
이 때문에 나는 것이 괴롭다고 한다.
어찌하여 ‘늙는[老] 것이 괴롭다’고 하는가?
‘늙는다’고 함은,
곧 늙었을 때에는 머리칼이 빠지고 머리가 희게 되며, 가죽이 느슨해지고 얼굴이 주름지며, 몸이 구부러지고 등골이 휘어지며, 숨을 헐떡거리게 되고 지팡이를 붙잡고 다니게 되며, 온몸에 검은 반점이 생기고 쇠퇴하여지며, 암둔해지고 감관이 익숙하여 변해서 무너지며, 모든 행(行)이 낡아 못쓰게 되고 썩어서 파괴되며, 마르고 야위게 되는 등 이런 것을 통틀어 늙은 것이라 한다.
무슨 인연 때문에 ‘늙음이 괴롭다’고 하는가?
유정이 늙을 때에는 갖가지로 몸의 괴로운 일을 받아들이고 섭수하게 되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갖가지로 몸과 마음의 불타듯 하는 일을 받아들이고 섭수하기 때문에 늙는 것을 말하여 괴롭다고 한다.
또 늙을 때에는 세 가지 괴로움을 느끼게 되나니,
첫째는 고고요, 둘째는 행고며, 셋재는 괴고(壞苦)이다. 그러므로 ‘늙는 것은 괴롭다’고 한다.
어찌하여 ‘병드는[病] 것은 괴롭다’고 하는가?
병이라 함은,
곧 머리가 아프고[頭病], 눈이 아프고[眼病], 귀가 아프고[耳病], 코가 아프며[鼻病], 혀가 아프고[舌病], 얼굴이 아프며[面病], 입술이 아프고[脣病], 이가 아프며[齒病], 잇몸이 아프고[齶病], 심장이 아픈[心病] 것과,
풍병(風病)ㆍ기침병(嗽病]ㆍ호흡병[氣病]ㆍ씨근거리는 병[噫病]과,
나병(癩病)ㆍ치칠병[痔病]ㆍ설사병[痢病] 및 임질병[痳病]과,
한병(寒病)ㆍ열병(熱病)ㆍ미친병[癲病]ㆍ지랄병[癎病]과,
구역ㆍ종기ㆍ옴ㆍ혹ㆍ대하증ㆍ누설병ㆍ어지러움병ㆍ조갈증이며,
그리고 그 밖의 갖가지 몸과 마음에 의하여 일어나는 몸과 마음의 질병 등을 통틀어 병이라 한다.
무슨 인연 때문에 병든 것을 괴롭다고 하는가?
유정이 병이 들 때는 갖가지로 몸의 괴로운 일을 받아들이고 섭수하기 때문이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갖가지로 몸과 마음의 불타듯 하는 일을 받아들이고 섭수하기 때문에 병든 것을 말하여 괴롭다고 한다.
또 병이 든 때에는 두 가지 괴로움을 느끼게 되나니,
첫째는 고고요, 둘째는 행고이다. 그러므로 ‘병든 것은 괴롭다’고 한다.
어찌하여 ‘죽는 것은 괴롭다’고 하는가?
죽는다 함은 저 여러 모든 유정들이 곧 다른 여러 유정의 무더기로 옮아가고, 무너져 없어지며, 물러나고, 이별하며, 수명과 따뜻한 기(氣)와 의식이 소멸하고, 목숨 뿌리[命根]가 움직이지 않으며, 모든 온(蘊)이 파괴되고, 요사(夭死)하며, 순직하는[殉逝] 것 등의 이런 것을 통틀어 ‘죽는다’고 한다.
무슨 인연 때문에 죽는 것을 말하여 괴롭다고 하는가?
유정이 죽을 때에는 갖가지로 몸의 괴로운 일을 받아들이고 섭수하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갖가지로 몸과 마음의 불타듯 하는 괴로운 일을 받아들이고 섭수하기 때문에 죽는 것을 말하여 괴롭다고 한다.
또 죽을 때에는 세 가지 괴로움을 느끼게 되나니,
첫째는 고고(苦苦)요, 둘째는 행고(行苦)며 셋째는 괴고(壞苦)이다.
그러므로 ‘죽는 것은 괴롭다’고 한다.
어찌하여 ‘원수[怨憎]와 만나는 것은 괴롭다’고 하는가?
원수와 만난다는 것은 모든 유정들이 사랑할 수 없고, 좋아할 수 없고, 기뻐할 수 없고, 뜻에 맞지 않는데도 그러한 이와 함께 한곳에 있게 되고 짝이 되며 따로 있지 못하고 달리하지 못하며 떠나지 못하고 흩어지지 못하면서 한데 모이고 어울리게 되는 등 이런 것을 통틀어 ‘원수와 만난다’고 한다.
무슨 인연 때문에 원수와 만나는 것을 괴롭다고 하는가?
모든 유정이 원수와 만날 때에는 갖가지로 몸의 괴로움을 받아들이고 섭수하기 때문이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갖가지로 몸과 마음의 불타듯 하는 일을 받아들이고 섭수하기 때문에 그런 것을 말하여 괴롭다고 한다.
또 원수와 만날 때에는 두 가지 괴로움을 느끼게 되나니,
첫째는 고고요, 둘째는 행고이다.
그러므로 ‘원수와 만나는 것은 괴롭다’고 한다.
어찌하여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愛別離] 것이 괴롭다’고 하는가?
사랑하는 이와 이별한다 함은 모든 유정들로서 사랑할 만하고 좋아할 만하고, 기뻐할 만하고, 뜻에 맞는 이들이 그들과 함께 있지 못하고 동일한 처소에 있지 못하며, 짝이 되지 못하고 따로 있게 되며, 달리하며 떠나며 흩어지면서 한데 모여 있지 못하고 어울리지 못하는 것 등의 이런 것을 통틀어 ‘사랑하는 이와 이별한다’고 한다.
무슨 인연 때문에 사랑하는 이들과 이별하는 것을 괴롭다고 하는가?
모든 유정으로서 사랑하는 이와 이별할 때에는 갖가지로 몸의 괴로운 일을 받아들이고 섭수하기 때문이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갖가지로 몸과 마음의 불타듯 하는 일을 받아들이고 섭수하기 때문에 그런 것을 말하여 ‘괴롭다’고 한다.
또 사랑하는 이와 이별할 때에는 세 가지 괴로움을 느끼게 되나니,
첫째는 고고요, 둘째는 행고며, 셋째는 괴고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것은 괴롭다’고 한다.
어찌하여 ‘구하여 얻지 못하는[求不得] 것이 괴롭다’고 하는가?
구하여 얻지 못한다 함은 곧 뜻에 맞는 빛깔[色]ㆍ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감촉[觸]과 의복ㆍ음식ㆍ침구ㆍ의약이며 모든 몸을 돕는 살림도구 등을 바라고 구하는데도 얻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며, 성취하지 못하고 화합하지 못하는 것 등 이런 것을 통틀어 ‘구하여 얻지 못한다’고 한다.
무슨 인연 때문에 구하다가 얻지 못하는 것을 괴롭다고 하는가?
곧 모든 유정들이 구하다가 얻지 못할 때에는 갖가지로 몸의 괴로운 일을 받아들이고 섭수하기 때문이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갖가지로 몸과 마음의 불타듯 하는 일을 받아들이고 섭수하기 때문에 그것을 말하여 ‘괴롭다’고 한다.
또 구하다가 얻지 못할 때에는 두 가지 괴로움을 느끼게 되나니, 첫째는 고고요 둘째는 행고이다.
그러므로 ‘구하여 얻지 못하는 것은 괴롭다’고 한다.
어찌하여 ‘간략하게 말하여 온갖 5취온(取蘊)은 괴롭다’고 하는가?
5취온이라 함은,
색취온(色取蘊)과 수취온(受取蘊)과 상취온(想取蘊)과 행취온(行取蘊)과 식취온(識取蘊)을 통틀어 5취온이라 한다.
무슨 인연 때문에 간략하게 말하여 온갖 5취온을 괴롭다고 하는가?
곧 5취온은 무상하고, 이전하여 움직이고, 고달프고, 몹시 파리하게 되는 것이어서,
이것은 곧 잃어버리고 무너지는 법[失壞法]이며,
날쌔고 빨라 멈추지 않고 쇠하여 썩어서 항상 있지 않으며, 보존하거나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니 이것은 곧 변하고 파괴되는 법이다.
증가가 있고 손감이 있어서 잠깐 머물렀다가 속히 없어지며 본래는 없었다가 있고 있다가는 도로 없어지게 된다. 이런 인연 때문에 ‘간략하게 말하여 온갖 5취온은 괴롭다’고 한다.
말한 것과 같아서 취온(取蘊)은 모두 그 성품 됨이 괴로운 것이니, 안온하지 못하기 때문이요 성인의 마음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모든 괴로움을 괴로움에 대한 진리[苦諦]라 하는데,
여기서 무상(無常)하다는 것은 진실로 그것은 무상한 것이요,
여기서 괴로움[苦]이라 하는 것은 진실로 그것은 괴로운 것이어서,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거나 출현하지 않거나 간에, 이와 같은 괴로움의 법[苦法]은 법으로서 법계(法界)에 머무르는 것이다.
모든 여래는 저절로 통달하시고 바르게 깨달으시어 널리 펴 설하고 시설하고 건립하고 분별하고 열어 보여서 그로 하여금 분명히 나타나게 하시는 것이니,
‘이것은 바로 무상한 것이다, 이것은 바로 괴로운 것이다, 이것은 바로 무상한 성품이다, 이것은 바로 괴로움의 성품이다, 이것은 진실이다, 이것은 거짓이 아니다, 이것은 진리이다, 이것은 여(如)이다, 망령된 것이 아니고 헛된 것이 아니며 뒤바뀐 것이 아니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괴로움에 대한 진리라고 한다.
성스러운 진리[聖諦]라 하는 데서 성스럽다[聖] 함은 모든 부처님과 제자들을 말하는 것이어서 이것은 바로 그분들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곧 그분들은 이것에 대하여 아시고 보시면서 분명하게 이해하며 바르게 깨달으시어 진리로 삼고 계시나니,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또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라 함은,
임시로 명상(名想)과 언설(言說)을 세워서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 하는 것이니, 긍가(殑伽)의 모래 수보다 더 많은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다 같이 이와 같은 이름을 붙이셨기 때문이다.
2)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어떤 것이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集聖諦]인가?
온갖 모든 애(愛)와 후유의 애[後有愛]와 기쁨을 함께 하는 애[喜俱行愛]와 저 여러 기쁨이 있는 애[彼彼喜愛]이니, 이와 같은 것은 바로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에 대한 간략한 설명[略說]이다.
만일 자세하게 설명한다면[廣說], 곧 2애(愛)와 3애(愛)와 또 다른 3애와 4애와 5애와 6애와 온갖 착하지 않은 법[不善法]과 온갖 유루의 착한 법[有漏善法]과 온갖 결(結)ㆍ박(縛)ㆍ수면(隨眠)ㆍ수번뇌(隨煩惱) 및 전(纏) 등을 모두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무슨 인연 때문에 온갖 모든 애와 후유의 애와 기쁨을 함께 하는 애와 저 여러 기쁨이 있는 애를 모두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 하는가?
이 4애(愛)는 모두가 과거ㆍ미래ㆍ현재의 괴로움의 원인[因]이요 근본(根本)이며 도로(道路)요 연기(緣起)이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이 몸이 무너진 뒤에는 이것으로 인하여 원인이 되어 괴로움의 과[苦果]가 생기기 때문에 이것을 말하여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무슨 인연 때문에 ‘2애와 3애와 또 다른 3애와 4애와 5애와 6애와 온갖 착하지 않은 법과 온갖 유루의 착한 법과 온갖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 및 전 등을 모두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고 하는가?
이 모든 법은 모두 과거ㆍ미래ㆍ현재의 괴로움의 원인이요 근본이며 도로요 연기이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이 몸이 무너진 뒤에는 이것으로 인하여 원인이 되어 괴로움의 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말한 것과 같아서 애(愛) 등은 모두 곧 괴로움의 원인이 되나니, 그것이 근본이 되어 더 많은 괴로움을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애(愛) 등을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진리[集諦]라 하는데,
곧 여기서 애 등이라 하는 것은 진실로 그것이 애 등이요,
여기서 괴로움의 원인[集]이라 하는 것은 진실로 그것이 괴로움의 원인이어서,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시거나 출현하지 않으시거나 간에, 이와 같은 괴로움의 원인의 법[集法]은 법으로서 법계(法界)에 머무르는 것이다.
온갖 여래는 저절로 통달하시고 평등하게 깨달으시어 널리 펴 설하고 시설하고 건립하고 분별하고 열어 보여서 그로 하여금 환히 나타나게 하는 것이니,
이른바 ‘이것은 곧 애 등이다, 이것은 바로 괴로움의 원인이다, 이것은 바로 애 등의 성품이다, 이것은 바로 괴로움의 원인의 성품이다, 이것은 진실이다, 이것은 거짓이 아니다, 이것은 진리[諦]이다, 이것은 여(如)이다, 망령된 것이 아니고 헛된 것이 아니며 뒤바뀐 것이 아니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진리라 한다.
성스러운 진리[聖諦]라 함에 있어서 성스럽다[聖] 함은 모든 부처님과 제자를 말하는 것이어서 이것은 바로 그 분들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곧 그 분들은 이것에 대하여 아시고 보시어 분명하게 이해하며 바르게 깨달아서 진리로 삼으시는 것이니, 이런 인연으로 인하여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또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 함은,
임시로 명상(名想)과 언설(言說)을 세워서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 하는 것이니, 긍가 모래 수보다 더 많은 부처님과 제자들이 다 같이 그와 같은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
3)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어떤 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滅聖諦]인가?
곧 모든 애(愛)와 후유의 애[後有愛]와 기쁨을 함께 하는 애[憙俱行愛]와 저마다 기쁨이 있는 애[彼彼憙愛]가 남김없이 영원히 끊어지고[永斷], 버리고[葉捨], 변하여 토하고[變吐], 다하고[盡], 물듦을 여의고[離染], 사라지고[滅], 고요하고[寂靜], 숨어 없어지는[隱沒] 것이니, 이와 같은 것이 바로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를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다.
만일 자세하게 설명한다면, 곧 2애(愛)와 3애와 또 다른 3애와 4애와 5애와 6애와 온갖 착하지 않은 법과 온갖 유루의 착한 법과 온갖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ㆍ전 등 남김없이 영원히 다하고, 버리고, 변하여 토하고, 다하고, 물듦을 여의고, 사라지고, 고요하고, 숨어 없어지는 것을 모두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무슨 인연 때문에 곧 모든 애와 후유의 애와 기쁨을 함께 하는 애와 저 여러 기쁨이 있는 애가 남김없이 영원히 다하고, 버리고, 변하여 토하고, 다하고, 물듦을 여의고, 사라지고, 고요하고, 숨어 없어지는 것을 모두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 하는가?
곧 이 4애(愛)를 만일 아직 두루 알지 못하고, 아직 소멸하지 못하고, 아직 토(吐)하지 못하면 후유(後有)와 괴로움의 과[苦果]가 잇달아 생기지만,
만일 이미 끊었고, 이미 두루 알았고, 이미 소멸하였고, 이미 토하여 버렸다면 후유와 괴로움의 과가 다시는 생기지 않기 때문에 곧 영원히 끊는 것 등을 바로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무슨 인연 때문에 2애(愛)와 3애와 또 다른 3애와 4애와 5애와 6애와 온갖 착하지 않은 법과 온갖 유루의 착한 법과 온갖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ㆍ전 등을 남김없이 영원히 끊고, 버리고, 변하여 토하고, 다하고, 물듦을 여의고, 사라지고, 고요하고, 숨어 없어지는 것을 모두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 하는가?
곧 이 모든 법을 만일 아직 끊지 못하고 아직 두루 알지 못하고, 아직 소멸하지 못하고, 아직 토하지 못했으면 후유와 괴로움의 과가 잇따라 생기지만,
만일 이미 끊었고, 이미 두루 알았고, 이미 사라졌고, 이미 토하여 버렸다면 후유와 괴로움의 과가 다시는 생기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영원히 끊은 것 등을 바로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곧 이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滅聖諦]를 또한 집[室宅]이라 하고 또한 섬[洲渚]이라 하며,
또한 구호(救護)라 하고 또한 귀의(歸依)라 하며,
또한 나아갈 데[應趣]라 하고 또한 근심이 없다[無憂]고 하며,
또한 병이 없다[無病]고 하고 또한 죽지 않는다[不死] 하며,
또한 치연이 없다[無熾然]고 하고 또한 열뇌가 없다[無熱惱]고 하며,
또한 안온하다[安穩]고 하고 또한 맑고 시원하다[淸涼]고 하며,
또한 고요하다[寂靜]고 하고 또한 착한 일[善事]이라 하며,
또한 길상하다[吉祥]고 하고 또한 안락하다[安樂]고 하며,
또한 동요하지 않는다[不動]고 하고 또한 열반(涅槃)이라고 한다.
말한 것과 같아서 열반은 바로 진실로 괴로움의 소멸[苦滅]이니, 이것은 곧 모든 사문(沙門)의 마지막[究竟] 과위[果]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끊는 것[斷] 등을 소멸에 대한 진리[滅諦]라 하는데,
여기서 열반이라 하는 것은 진실로 그것이 열반이요,
여기서 소멸[滅]이라 하는 것은 진실로 그것이 소멸이어서,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시거나 출현하시지 않거나 간에, 이와 같은 소멸의 법[滅法]은 법으로서 법계(法界)에 머무르는 것이다.
온갖 여래는 저절로 통달하시고 평등하게 깨달으시어 널리 펴 설하고 시설하고 건립하고 분별하고 열어 보여서 그로 하여금 환히 나타나게 하시는 것이니,
‘이것은 곧 열반이다, 이것은 바로 사라짐이다, 이것은 바로 열반의 성품이다, 이것은 바로 소멸의 성품이다, 이것은 진실하다, 이것은 거짓이 아니다, 이것은 진리[諦]이다, 이것은 여(如)이다, 망령된 것이 아니고 헛된 것이 아니며 뒤바뀐 것이 아니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소멸에 대한 진리라 한다.
성스러운 진리[聖諦]라 함에 있어서 성스럽다[聖]고 함은,
모든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말한 것이니, 이것은 바로 그 분들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 분들은 이것에 대하여 아시고 보시어 분명하게 이해하고 바르게 깨달아서 진리로 삼으신 것이니, 이러한 인연으로 말미암아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또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滅聖諦]라는 것은,
임시로 명상(名想)과 언설(言說)을 세워서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 하는 것이니, 긍가(殑伽)의 모래 수보다 더 많은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다 같이 이와 같은 이름을 붙이셨기 때문이다.
4)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어떤 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道聖諦]인가?
도(道)와 거룩한 행[聖行]은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어서 괴로움을 영원히 끊을 수 있고, 버릴 수 있으며, 변하여 토할 수 있고, 다할 수 있으며, 물듦을 여읠 수 있고, 소멸할 수 있으며, 고요히 할 수 있고, 숨어 없어지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 무엇인가?
[8정도]
8지성도(支聖道) 즉 이것은 정견(正見)ㆍ정사유(正思惟)ㆍ정어(正語)ㆍ정업(正業)ㆍ정명(正命)ㆍ정근(正勤)ㆍ정념(正念)ㆍ정정(正定)이다.
어떤 것이 정견(正見)인가?
성스러운 제자[聖弟子]가 괴로움[苦]에 대하여는 괴로움을 사유(思惟)하고,
괴로움의 원인[集]에 대하여는 괴로움의 원인을 사유하며,
괴로움의 소멸[滅]에 대하여는 괴로움의 소멸을 사유하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에 대하여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사유하는,
무루(無漏)의 작의(作意)와 상응하는 모든 법에 대하여 간택(簡擇)하고 극히[極] 간택하고 가장 지극하게[最極] 간택하며,
분명하게 알고 평등하게 알고 가까이 알며,
기민한 슬기로 통달하고 자세히 살펴서 뛰어나게 밝으며,
각(覺)과 명(明)과 지혜[慧]로 행하는 비발사나(毘鉢舍那)를 곧 정견이라 한다.
어떤 것이 정사유(正思惟)인가?
성스러운 제자가 괴로움에 대하여는 괴로움을 사유하고,
나아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사유하는,
무루의 작의와 상응하는 모든 법에 대하여 사유(思惟)하고 평등하게 사유하고 가까이 사유하며,
찾아 구하고[尋求] 평등하게 찾아 구하고 가까이 찾아 구하며,
미루어 찾고[推覓] 평등하게 미루어 찾고 가까이 미루어 찾되,
마음으로 하여금 법에 대하여 거칠게 움직이면서 구르게 하는 것을 곧 정사유라 한다.
어떤 것이 정어(正語)인가?
성스러운 제자가 괴로움에 대하여는 괴로움을 사유하고,
나아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사유하는,
무루의 작의와 상응하는 사택(思擇)하는 힘 때문에 삿된 생활[邪命]에 나아가는 말[語]의 4악행(惡行)을 제외한 그 밖의 말의 악행에 대하여 얻는,
무루(無漏)의 멀리 여읨[遠離]과, 뛰어나게[勝] 멀리 여읨과, 가까이[近] 멀리 여읨과, 지극히[極] 멀리 여읨과,
고요함[寂靜]과, 율의(律儀)와,
조작이 없고[無造作] 버리고[棄捨] 막아 수호하는 것과,
배[船]ㆍ떼[筏]ㆍ교량(橋梁)ㆍ둑[堤塘]ㆍ담[牆] 및 보루[塹]와,
제약(制約)하는 것에 대하여 넘지 않고, 넘지 않는 성품[不踰性]과, 초월하지 않고, 초월하지 않는 성품[不越性]과, 무표(無表)의 어업(語業), 이것을 바로 정어라 한다.
어떤 것이 정업(正業)인가?
성스러운 제자가 괴로움에 대하여는 괴로움을 사유하고 나아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사유하는 무루의 작의와 상응하는 사택(思擇)의 힘 때문에 삿된 생활에 나아가는 몸[身]의 3악행(惡行)을 제외한 나머지 몸의 악행에 대하여 얻는 무루의 멀리 여읨과 나아가 무표(無表)의 신업(身業)을 곧 정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정명(正命)인가?
성스러운 제자가 괴로움에 대하여는 괴로움을 사유하고 나아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사유하는 무루의 작의와 상응하는 사택의 힘 때문에 삿된 생활[邪命]에 나아가는 몸과 말의 악행에 대하여 얻는 무루의 멀리 여읨과 나아가 몸과 말의 무표업(無表業)을 곧 정명이라 한다.
어떤 것이 정근(正勤)인가?
성스러운 제자가 괴로움에 대하여는 괴로움을 사유하고 나아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사유하는 무루의 작의와 상응하는 온갖 근(勤)과 정진(精進)으로 세차고 날래고 왕성하게 하면서 제어하기 어려운 격려의 뜻으로 멈추지 않는 것을 곧 정근이라 한다.
어떤 것이 정념(正念)인가?
성스러운 제자가 괴로움에 대하여는 괴로움을 사유하고 나아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사유하는 무루의 작의와 상응하는 온갖 염(念)하고 따라 염하며 오로지 염하고 기억하며 잊지 않고 잃지 않으며 빠뜨리지 않고 새지 않으며 잃지 않는 법의 성품[不失法性]이요 마음에 분명히 기억하는 성품[心明記性]을 곧 정념이라 한다.
어떤 것이 정정(正定)인가?
성스러운 제자가 괴로움에 대하여는 괴로움을 사유하고 나아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사유하는 무루의 작의와 상응하는 온갖 마음의 머무르고[住] 평등하게 머무르며 가까이 머무르고 편안히 머무르며 흩어지지 않고 어지럽지 않으며 가다듬고 그치는[攝止] 등지(等持)요 심일경성(心一境性)을 곧 정정이라 한다.
이와 같이 말한 8지성도(支聖道)와 나머지 무루의 행[無漏行]을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고 한다.
말한 것과 같아서 성스러운 행[聖行]은 곧 진실한 도(道)이니, 마침내는 괴로움을 여의고 열반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성스러운 행을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진리[道諦]라 하는데,
여기서 성스러운 행이라 하는 것은 진실로 그것이 성스러운 행이요,
여기서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이라 하는 것은 진실로 그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어서,
부처님이 세간에 나오시거나 나오시지 않거나 간에, 이와 같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법[道法]은 법으로서 법계(法界)에 머무르는 것이다.
모든 여래는 저절로 통달하시고 평등하게 깨달으시어 널리 펴 설하고 시설하고 건립하고 분별하고 열어 보여서 그로 하여금 분명히 나타나게 하시는 것이니,
‘이것은 바로 성스러운 행이다,
이것은 바로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
이것은 바로 성스러운 행의 성품이다,
이것은 바로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성품이다.
이것은 진실이다, 이것은 거짓이 아니다, 이것은 진리[諦]이다, 이것은 여(如)이다,
망령된 것이 아니요 헛된 것이 아니며 뒤바뀐 것이 아니요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진리라고 한다.
성스러운 진리[聖諦]라 함에 있어서 성스럽다[聖] 함은 모든 부처님과 그 제자이니 이것은 곧 그분들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분들은 이것에 대하여 아시고 보아서 분명하게 이해하며 바르게 깨달아 진리로 삼으셨다. 이
러한 인연으로 인하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또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道聖諦]라 함은,
임시로 명상(名想)과 언설(言說)을 세워서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 한 것이니, 긍가의 모래보다 더 많은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다 같이 이러한 이름을 붙이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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