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사론 제3권
12) 육신애처(六身愛處)
육신애(六身愛:여섯 가지 몸에 대한 애착)라 하는 것은,
눈에 다시 애착을 일으키고 귀ㆍ코ㆍ혀ㆍ몸ㆍ뜻에 다시 애착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문] 마땅히 한 가지 애만을 말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구결(九結:아홉 가지 번뇌) 가운데 삼계에 대한 애를 애결(愛結:사랑으로 인한 번뇌)이라 세우는 것이 그 예이다.
또 두 가지 애라 말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칠사(七使) 가운데 욕계에 대한 애를 욕사(欲使)라 세우고,
색계와 무색계에 대한 애를 유사(有使)라 세우는 것이 그 예이다.
또 마땅히 세 가지로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미 말한 욕계에 대한 애는 욕애(欲愛)라 하고, 색계에 대한 애는 색애(色愛)라 하며, 무색계에 대한 애는 무색애(無色愛)라 하는 것이 그 예이다.
또한 마땅히 네 가지로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네 가지 애[四愛]가 일어나는 경우가 그것이다.
거기서 말하는 네 가지 애란, 비구와 비구니가 의지하는 환경에 인하여 애가 생기는 것을 말하며, 애를 일으키면서 일어나게 되고, 달라붙으면서 집착하게 되고, 일어서면서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즉 음식과 침상(寢牀)과 와구(臥具)와 환경[依]에 인하여 여기에 비구ㆍ비구니들의 애가 존재하게 되며, 애를 일으키면서 일어나게 되고, 달라붙으면서 집착하게 되고, 일어서면 세워지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
또한 마땅히 다섯 가지로 설명해야 한다. 견고단(見苦斷)ㆍ견습단(見習斷)ㆍ견진단(見盡斷)ㆍ견도단(見道斷)ㆍ견사유단(見思惟斷)이 그것이다.
또한 마땅히 아홉 가지로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홉 종류의 뛰어난 인연이 그것이다.
상지상(上之上)ㆍ상지중(上之中)ㆍ상지하(上之下)ㆍ중지상(中之上)ㆍ중지중(中之中)ㆍ중지하(中之下)ㆍ하지상(下之上)ㆍ하지중(下之中)ㆍ하지하(下之下)의 뛰어난 인연이 그것이다.
또 마땅히 열여덟 가지로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열여덟 가지 뜻의 행(行)이 그것이다.
또 마땅히 서른여섯 가지로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삼십육도(三十六刀)가 그것이다.
또 마땅히 백여덟 가지로 애를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백여덟 가지의 아픔이 시절(時節) 때문에, 뜻 때문에 생기는 것이 그것이다.
이렇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애가 있는데, 어찌하여 하나의 애를 자세하게 여섯 가지 기관 가운데 걸하고,
또 어떻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애를 간략하게 여섯 가지 신체 기관 가운데 설하여 육신애(六身愛)를 세우는가?
[답] 의지가 되기 때문에 육신애를 세우는 것이다.
만약 한 가지 애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애가 있다 하더라도,
그 모든 애는 육행(六行)ㆍ육문(六門)ㆍ육적(六迹)ㆍ육도(六道)ㆍ육도(六度)ㆍ육식(六識)에의 몸에 의지하여 이와 상응하고 이것이 의지가 되기 때문에 육신애를 말하는 것이다.
[문] 노여움[恚]과 무명(無明)도 육행(六行)과 육문(六門)ㆍ육적(六迹)ㆍ육도(六道)ㆍ육도(六度)ㆍ육식(六識)에의 몸에 의지하여 이와 상응하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여섯 가지 애에 얽힌 몸만을 말하고 여섯 가지 노여움이나 무명의 몸은 말하지 않는가?
[답] 이에 관해서는 부처님께서도 다른 말씀이 계셨다.
이는 내용을 밝힌 뜻과 문(門)이라는 뜻과 약(略)이라는 뜻의 애를 말한 것이니, 치 의미를 알아야 한다.
가령 육신애(六身愛)에 관한 애를 말할 경우 노여움과 무명도 역시 그렇게 설명해야 한다.
[문] 만약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슨 뜻인가?
[답] 애라 하는 것은 경계[界]를 끊고 경지[地]를 끊고 종자(種子)를 끊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애는 모든 번뇌[結]를 왕성하게 한다.”라고 하였고,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애라 하는 것은 크지 아니하여도 악한 마음이 불어나서 제거하기 어려우나,
노여움이 커져 악한 마음이 불어난다 하더라도 이는 제거하기 쉽다.
무명의 경우도 이것이 커져 악이 불어나게 되면 제거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문] 무엇 때문에 몸[身]을 말하는가?
[답] 많은 몸이 있기 때문에 몸을 말한 것이다.
몸이란 한 가지만 애착하는 것이 아닌 때를 말한 것이다.
눈으로 다시 애착한다[眼更愛]라고 한 것은 한 가지만 애착하는 것이 아닌 때를 말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생각으로 다시 애착을 느끼는[意更愛] 일에 이르기까지 오직 많은 것에 애착할 때만을 몸이라 말하는 것이다.
눈으로 다시 애착한다는 것은 많은 것에 애착할 때를 말하는 것이며,
생각으로 다시 애착하는 일에 이르기까지도 많은 것에 애착할 때를 말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한 마리의 코끼리가 아닌 것을 상군(象軍)이라 하며,
한 마리의 말이 아닌 것을 마군(馬軍)이라 하며,
하나가 아닌 수레를 차군(車軍)이라 하며,
하나가 아닌 보병(步兵)을 보군(步軍)이라 하고,
무릇 많은 코끼리를 상군, 많은 말을 마군, 많은 수레를 차군, 많은 보병을 보군이라 하는 것과 같이,
한 가지 애착이 아닌 때를 애라 말하는 것이며,
눈이 다시 애착한다고 하는 것은 한번만 애착하는 것이 아닌 때를 말하는 것이며,
나아가 생각으로 다시 애착한다는 것도 오직 많은 것을 애착할 때를 말하는 것이다.
눈으로 다시 애착한다고 하는 것은 많은 것을 애착할 때를 말하며,
나아가 생각으로 다시 애착한다는 것도 많은 것을 애착할 때를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몸의 애착 때문에 몸이라 표현한 것이다.
육신애(六身愛)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이것으로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