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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도론 제7권
14. 초품 중 ‘광명을 놓으시다’를 풀이함①
【經】 여기에서 세존께서는 스스로 사자좌를 펴셨다. 그리고는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추시고는 염(念)을 모아 눈 앞에 두고 삼매왕삼매(三昧王三昧)에 드시니, 모든 삼매가 모두 그 안에 들어갔다.
【論】
【문】 부처님께는 시자들도 있고 보살들도 있거늘 어찌하여 손수 사자좌를 펴셨는가?
【답】 이는 부처님께서 변화해 나투신 것으로서 대중에게 적절히 맞추시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아난이 펴지 못했다.
또한 부처님의 마음에서 변화해 낸 것이므로 ‘스스로 폈다’고 했다.
【문】 어째서 사자좌라 하는가?
부처님께서 사자를 변화해 내셨는가?
아니면 보배 사자가 왔는가?
혹은 금ㆍ은ㆍ나무ㆍ돌로 사자를 만들었는가?
또한 사자는 착하지 못한 짐승이므로 부처님에게는 필요치 않았을 것이며 또한 까닭 없이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답】 그 이름을 사자라 부르지만, 보배 사자는 아니다.
부처님은 인간 가운데 사자인지라 부처님이 앉으신 곳은 평상이건 땅이건 모두가 사자좌라 한다.
마치 지금 국왕이 앉는 곳을 모두 사자좌라 하는 것과 같다.
또한 왕이 건전한 사람을 부를 때에는 인간 사자[人獅子]라 하며, 사람들이 국왕을 부를 때에도 인간 사자라 한다.
또한 사자는 네발 가진 짐승 가운데서 으뜸이어서 두려울 것이 없이 능히 일체를 굴복시키는데,
부처님도 그와 같아서 96종의 길에 대해 그 모두를 항복시키되 두려움이 없는 까닭에 인간 사자라 한다.
【문】 앉는 법이 많거늘 어찌하여 부처님께서는 결가부좌만을 쓰시는가?
【답】 모든 좌법 가운데 결가부좌가 가장 편안하여 피로하지 않다.
이것은 곧 좌선하는 사람의 앉는 법으로 손과 발을 거두어 지니면 마음도 역시 흐트러지지 않는다.
또한 온갖 네 가지 몸의 위의 가운데서 가장 편안하니, 이것은 곧 참선할 때의 앉음새이며 도법(道法)을 취하는 앉음새이어서 마왕이 이를 보면 그 마음으로 두려워하게 된다. 이렇게 앉는 법은 출가한 사람의 법이니, 나무 밑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뭇 사람이 이것을 보고 모두 환희하며, 그 도인은 반드시 도를 얻으리라고 안다.
이런 게송이 있다.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몸이 평안하여 삼매에 들고
그 위덕을 사람들이 우러르니
태양이 천하를 비춤과 같다.
졸음과 게으름과 번뇌심을 제하고
몸이 가벼워 피로하지 않으며
깨달음도 역시 가볍고 편하니
의젓이 앉았음이 용이 도사린 것 같다.
가부좌로 앉은 그림만 보아도
마왕이 겁을 내고 두려워하거늘
하물며 도에 든 사람이
편안히 앉아 동요하지 않음이랴.
이런 까닭에 가부좌로 앉는 것이다.
또한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와 같이 앉아야 한다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어떤 외도들은 항상 한 발로 서서 도를 구하고, 혹은 항상 서 있거나 혹은 발을 올려 메기도 한다. 이런 기이한 모습[狷]으로는 마음이 삿된 바다에 빠지고 몸은 안온하지 못하다.
이런 까닭에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부좌를 맺고 몸을 곧게 하라 하셨다.
왜냐하면 몸을 바로 하면 마음을 바로 잡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 몸을 똑바로 세워 앉으면 마음이 게을러지지 않나니, 단정한 마음으로 뜻을 바르게 하여 염을 모아 눈앞에 두며, 마음이 흐트러지면 이를 다시 거두어들인다. 삼매에 들려는 까닭에 갖가지 잡념을 모두 거두어 모으니, 이와 같이 염을 모아 삼매왕삼매에 드는 것이다.
어찌하여 삼매왕삼매(三昧王三昧)라 하는가?
곧 이 삼매는 모든 삼매 가운데 가장 으뜸이고 자재하여서 능히 한량없는 법을 반연한다.
마치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왕이 제일이요, 왕 가운데에서는 전륜성왕이 제일이요, 모든 하늘 위와 하늘 아래서는 부처님이 으뜸이듯이,
이 삼매도 역시 그와 같아서 모든 삼매 가운데서 가장 으뜸인 것이다.
【문】 만일 부처님의 힘 때문이라면 모든 삼매가 다 제일이어야 할 것이어늘 어찌하여 삼매왕삼매만을 제일이라 하는가?
【답】 비록 부처님의 힘 때문에 부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삼매가 다 제일이겠지만 모든 법에는 응당 차등이 있는 법이다.
마치 전륜성왕의 뭇 보배가 비록 모든 왕들의 보배보다는 훨씬 수승하지만,
이 보배 가운데에도 스스로 차별이 있어서 귀하고 천함이 아득히 먼 것과 같다.
이 삼매왕삼매는 어떤 선정에 속하며, 어떤 모습인가?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삼매왕삼매는 자재상(自在相)이라 부르니, 능히 5중(衆)을 포섭하며 제4선(禪) 가운데 있다.
왜냐하면 일체의 부처님들이 제4선에서 견제도(見諦道)를 행하여 아나함42)을 얻고, 즉시에 18심 가운데서 불도를 얻으며, 제4선에서 수명을 버리고, 제4선에서 일어나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기 때문이다.
제4선 가운데 여덟 가지 태어나 머무는 곳[八生住處]이 있으며, 배사(背捨)와 승처(勝處)와 일체의 입(入)은 대개 제4선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제4선은 부동이라 하는데, 선정의 상태[法]가 차단되지 않는다.
곧 욕계에서의 모든 욕심은 선정의 마음을 막고, 초선에서는 각관(覺觀)의 마음이 움직이고, 2선에서는 큰 기쁨이 움직이고, 3선에서는 큰 즐거움이 움직이지만,
4선에서는 움직임이 없다.
또한 초선은 불에 타고 2선은 물이 이르고 3선은 바람이 이르지만,
4선에는 이러한 세 가지 근심이 없고 들고 나는 숨[息]이 없으며 잡념을 버리어 청정하다.
그러므로 마땅히 삼매왕삼매는 제4선 가운데 있으니, 마치 좋은 보물은 좋은 창고에 두는 것과 같다.”
또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부처님의 삼매에 대해 누가 그 모습을 알 수 있으랴” 한다.
일체의 부처님들의 법은 한 모습이고 형상 없고[無相] 한량없고 셀 수도 없어서 불가사의하다.
나머지 다른 삼매조차도 헤아릴 수 없고 셀 수도 없고 불가사의하거늘 하물며 삼매왕삼매이겠는가.
이러한 삼매는 오직 부처님만이 아신다.
부처님의 신족(神足)과 지계도 알 수가 없거늘 하물며 삼매왕삼매이겠는가.
또한 삼매왕삼매에는 일체의 삼매가 그 안에 들어가기 때문에 삼매왕삼매라 한다.
비유하건대 염부제의 여러 강이 모두 대해로 들어가는 것과 같고, 또한 모든 백성이 모두 국왕에게 예속된 것과 같다.
【문】 부처님은 일체지(一切智)이시니 모르시는 일이 없거늘 어찌하여 이 삼매왕삼매에 드신 뒤에야 능히 아시는가?
【답】 지혜가 인연에 의해 생기는 것을 밝히고자 하는 까닭이며,
외도인 6사(師)들이 “우리의 지혜는 언제라도 항상 존재하고 항상 안다”고 말하는 것을 막기 위한 까닭이다.
이런 까닭에 부처님께서는 삼매왕삼매에 드심으로써 아시며, 이 삼매에 드시지 않았다면 아시지 못하는 것이다.
【문】 만약에 그와 같다면 부처님의 힘이 줄어든 것인가?
【답】 이 삼매왕삼매에 드시는 일은 어렵지 않다.
생각을 내시자마자 곧 드시나니, 성문이나 벽지불이나 작은 보살들이 방편을 써서 들려고 하는 것과는 다르다.
또한 이 삼매왕삼매에 들면 6신통이 시방에 두루 퍼져서 한계도 없고 한량도 없게 된다.
또한 부처님은 삼매왕삼매에 드셔야 갖가지 변화를 일으키어 큰 신통력을 드러내신다.
만일 이 삼매왕삼매에 드시지 않고 신통을 나타내시면,
다른 사람이 생각하기를,
‘부처님은 환술의 힘이나 주술의 힘을 부리시는 것이다.
혹은 이는 힘센 용이거나 하늘이지 인간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한 몸에서 한량없는 몸을 내어 갖가지 광명과 변화를 부리기 때문이다’ 하여 사람이 아니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혹을 끊기 위해 부처님께서는 삼매왕삼매에 드신 것이다.
또한 부처님께서 만약에 다른 삼매에 드시면 하늘이나 성문이나 벽지불들이 곧 엿보아 알게 된다.
비록 부처님의 신력이 위대하다고는 해도 그것을 알 수 있다면 공경하는 마음이 정중치 못하게 된다. 이런 까닭에 삼매왕삼매에 드신 것이다.
일체의 성현들과 나아가서는 10주(住) 보살들까지도 부처님의 마음이 어디에 의지하였는지 무엇을 반연하시는지 헤아려 알지 못하나니, 이 까닭에 부처님이 삼매왕삼매에 드신 것이다.
또한 부처님께서 가끔 큰 광명을 놓으시고 큰 신통의 힘을 나타내시는 경우가 있다.
곧 처음 탄생하실 때와 도를 깨치실 때와 처음으로 법륜을 굴리실 때와 하늘 무리나 여러 성인들이 많이 모일 때와 외도를 무찌를 때는 모두 큰 광명을 놓으셨는데,
이제 그 수승하고 특출함을 보이시기 위하여 큰 광명을 놓으셔서 시방의 일체의 천인과 중생 및 모든 아라한ㆍ벽지불ㆍ보살들로 하여금 모두 보고 알게 하셨으니,
이런 까닭에 삼매왕삼매에 드신 것이다.
또한 광명과 신통력에 상ㆍ중ㆍ하가 있으니,
주술과 환술로 능히 광명ㆍ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하등이요,
하늘과 용과 신들이 과보로 광명과 신통력을 얻는 것은 중등이요,
모든 삼매에 들어가서 금생의 공덕심의 힘으로 큰 광명을 놓아 큰 신통력을 나타내는 것은 상등이다.
이런 까닭에 부처님은 삼매왕삼매에 드신 것이다.
【문】 모든 삼매에는 각기 모습이 있거늘 어찌하여 일체의 삼매가 그 속으로 들어갔다 하는가?
【답】 이 삼매왕삼매를 얻을 때는 모든 삼매를 다 얻기 때문에 모두가 그 속에 든다고 한다.
이 삼매의 힘 때문에 일체의 삼매를 얻음이 한량없고 셀 수 없고 가히 헤아릴 수 없으니, 이런 까닭에 들어간다고 한다.
또한 이 삼매왕삼매에 들면 일체의 삼매가 들고자하는 대로 곧 들게 된다.
또한 이 삼매왕삼매에 들면 모든 삼매의 모습을 능히 볼 수 있나니, 마치 산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 같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이 삼매왕삼매에 드시어 시방세계를 능히 보시며, 모든 중생들을 능히 관찰하시나니, 이런 까닭에 삼매왕삼매에 드신 것이다.
【經】 이때 세존께서는 삼매로부터 편안히 일어나시어 천안으로 세계를 관찰하시고는 온몸으로 미소 지으셨다.
【論】
【문】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삼매왕삼매에 드셨다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시고 선정에서 일어나셔서 세계를 관찰하셨는가?
【답】 부처님께서 이 삼매왕삼매에 드시면 모든 불법의 보배 창고가 모두 열리고 모두 보이게 된다. 이 삼매왕삼매 가운데서 보신 뒤에 생각하셨다.
‘나의 이 가르침의 보배 창고는 한량없고 셀 수 없고 가히 생각할 수 없도다.’
그런 뒤에 다시 삼매로부터 천천히 일어나셔서 천안으로 중생들을 관찰하시고는 중생들의 빈곤을 아셨다.
이 보장은 인연 따라 얻어지는 것으로 일체의 중생들도 얻을 수 있건만 다만 우치하고 어두운 곳에 앉은 채 구하거나 찾지 않을 뿐이다.
그러므로 온몸으로 웃으신 것이다.
【문】 부처님에게는 불안과 혜안과 법안이 있으셔서 천안보다 훌륭하거늘 어찌하여 천안으로 세계를 관찰하셨는가?
【답】 육안으로 보는 바는 두루하지 못한 까닭이다.
혜안은 모든 법의 실상을 알고,
법안은 그 사람은 어떤 방편으로 어떤 법을 행하게 하여야 도를 얻겠는가 함을 보고,
불안은 온갖 법을 눈앞에서 명료하게 아는 것을 말한다.
이제의 천안은 세계와 중생을 반연하되 장애가 없으나 다른 눈은 그렇지 못하다.
혜안ㆍ법안ㆍ불안이 비록 수승하나 중생을 보는 법이 아니다.
중생을 보고자 하면 오직 두 가지 눈, 즉 육안과 천안이어야 하는데,
육안은 두루하지 못하여 장애가 있기 때문에 천안으로 관찰하신다.
【문】 지금의 이 눈은 부처님께 있거늘 어찌하여 천안이라 하는가?
【답】 이 눈이 하늘 세계에 많기 때문이다.
또한 천안으로 보는 바는 산ㆍ수목에 장애되지 않나니, 어떤 사람이 지계와 선정을 부지런히 닦아 행력(行力)으로 얻는다면 이는 태어날 때 얻은 부분[生分]이 아니다.
이런 까닭에 천안이라 한다.
또한 사람들이 많이 하늘을 귀히 여기어 하늘을 주인[主]으로 삼나니, 부처님께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따르기 때문에 천안이라 한다.
또한 하늘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명천(名天)ㆍ생천(生天)ㆍ정천(淨天)이다.
명천이라 함은 천왕이나 천자(天子) 등이요,
생천이라 함은 제석ㆍ범왕 등 여러 하늘이요,
정천이라 함은 부처님ㆍ벽지불ㆍ아라한을 말한다.
정천 가운데서 가장 존귀한 분이 부처님이니, 이제 천안이라 해도 허물이 없다.
‘천안으로써 세계를 관찰한다’고 했는데, 세계의 중생은 항상 안락을 구하나 더욱 고통을 받고 마음은 나에 집착한다.
여기에는 실제로 나라 할 것이 없거늘 중생들은 항상 괴로움을 두려워하면서도 도리어 괴로움을 행하니,
이는 마치 맹인이 좋은 길을 구하건만 도리어 깊은 구덩이에 빠지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갖가지로 관찰하신 뒤에 온몸으로 미소지으신 것이다.
【문】 웃음이란 입으로 나오거나 눈으로 웃을 뿐이거늘 이제 어찌하여 온몸으로 웃는다 하는가?
【답】 부처님은 세상 가운데 가장 존귀하시고 자재를 얻으시어 능히 온갖 몸을 입 같고 눈같이 하실 수 있기 때문에 능히 웃으실 수 있다.
또한 모든 털구멍이 모두 열리므로 웃는다 할 수 있고, 입으로 웃으면서 기뻐하므로 온갖 틸 구멍이 모두 열리는 것이다.
【문】 부처님은 지극히 존귀하시거늘 어찌하여 웃으시는가?
【답】 대지는 아무런 일이 없거나 작은 인연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부처님도 그와 같아서 아무런 일이 없거나 작은 인연으로 웃지 않으신다.
이제는 큰 인연이 있는 까닭에 온몸으로 웃으신 것이다.
무엇이 큰 인연인가?
곧 부처님께서 『마하반야바라밀경』을 말씀하려 하시니, 마땅히 헤아릴 수 없는 중생들이 부처의 종자를 잇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큰 인연이다.
또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일찍이 여러 생 동안 작은 벌레나 악한 사람이었는데, 차츰차츰 여러 선(善)의 근본을 쌓아서 큰 지혜를 얻고 지금은 스스로가 부처를 이루었다.
신통력이 한량이 없어 가장 높고 가장 크니, 모든 중생도 그렇게 될 수 있거늘 어찌하여 공연히 헛고생을 하여 작은 길에 빠져 있는가”라고 하셨다.
이런 까닭에 웃으신 것이다.
또한 작은 인(因)으로 큰 결과를 얻고 작은 연(緣)으로 큰 갚음[報]을 얻으니,
불도를 구하는 자가 한 게송으로 찬탄하거나 나무불(南無佛)을 한 번 외우거나 향을 하나 사르거나 하면 반드시 부처를 이룬다.
그러니 하물며 모든 법이 실로 나지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나지 않는 것도 아니요 멸하지 않는 것도 아님을 들어서 알며, 인연의 업을 행한다면 또한 이루지 못할 리 없다.
이런 까닭에 웃으시는 것이다.
또한 반야바라밀의 모습은 청정하여 허공과 같아서 줄 수도 없고 취할 수도 없다.
하지만, 부처님께서 갖가지 방편과 광명과 신통으로써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마음을 길들게 한 뒤에 반야바라밀을 믿어 받들게 하고자 하신다.
이런 까닭에 웃으시면서 광명을 놓으신 것이다.
웃음에는 갖가지 인연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기뻐서 웃고, 어떤 사람은 성나서 웃고, 어떤 사람은 남을 경멸하여 웃는다.
또한 이상한 일을 보고 웃기도 하고, 부끄러운 일을 당해 웃기도 하고, 낮선 지방의 이상한 풍속을 보면 웃기도 하고, 희유하고 어려운 일을 보고 웃기도 한다.
지금은 가장 희유하고 어려운 일이니, 그 때문에 웃으신다.
모든 법의 모습은 나지도 않고 하지도 않으며, 참공[眞空]이어서 자(字)도 없고 이름도 없고 말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거늘 이름을 지어서 중생들을 위해 설명해 주어 해탈을 이루게 하려 하니, 이는 제일로 어려운 일인 것이다.
비유하건대 백 유순(由旬)이나 되는 큰 불구덩이에 어떤 사람이 마른 풀을 지고 불 속을 지나되 한 잎도 태우지 않게 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과 같다.
부처님도 역시 그와 같아서 8만이나 되는 온갖 법의 이름[名字]이라는 풀을 짊어지고 모든 법의 실상 속에 들어가서 물듦[染著]이라는 불에 타지 않고 장애 없이 곧장 지나가기는 심히 어려운 일이다.
이런 어려운 일 때문에 웃으신 것이다.
이와 같이 갖가지 희유하고 어려운 일 때문에 온몸으로 미소를 지으신 것이다.
【經】 발바닥의 천폭륜상43)에서 6백만 억의 광명을 놓으셨다.
【論】
【문】 부처님은 무엇 때문에 먼저 몸의 광명을 놓으시는가?
【답】 앞에서 웃는 인연을 답한 가운데서 이미 설명하였거니와 이제 다시 설명하리라.
어떤 사람이 부처님의 몸에서 한량없는 큰 광명을 놓는 것을 보면 신심이 맑아져서 공경하게 되는 까닭이니, 그로 인해 예사 사람이 아닌 줄 아는 것이다.
또한 부처님은 지혜의 광명의 신령스런 모습을 드러내고자 하실 때 먼저 몸의 광명을 내신다.
중생들은 부처님의 몸의 광명이 이미 나타났으므로 지혜의 광명도 곧 나타날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일체의 중생들은 항상 욕심과 쾌락에 집착되는데, 5욕(欲) 가운데서 으뜸가는 것은 빛이다.
이 묘한 광명을 보면 반드시 마음이 애착되어 본래의 즐기던 바를 버리게 된다.
곧 그들의 마음에서 차츰 욕심을 여의게 한 뒤에 지혜를 말씀해 주시기 위해서이다.
【문】 그 밖의 하늘 사람들도 광명을 놓는데 부처님의 광명 놓으심과는 어떤 차별이 있는가?
【답】 비록 하늘 사람들도 광명을 놓기는 하나 한량이 있다.
해와 달이 비치는 바는 오직 사천하뿐이지만, 부처님이 광명을 놓으시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차고, 삼천대천세계에서 나와서는 아래세계에까지 이른다.
다른 이의 광명은 사람들만을 기쁘게 하지만 부처님이 놓으시는 광명은 능히 일체로 하여금 법을 듣고 해탈을 얻게 한다. 이것이 다른 점이다.
【문】 한 몸에서 머리가 가장 높거늘 어찌하여 먼저 발밑으로부터 광명을 놓으시는가?
【답】 몸이 안정되게 머무를 수 있는 것은 모두가 발로 인해서이다.
또한 한 몸에서 비록 머리는 귀하고 발은 천하나 부처님은 스스로가 광명을 귀히 여기지 않으셨으니, 이양(利養)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한 곳에서 광명을 놓으신 것이다.
또한 용이나 큰 뱀ㆍ귀신들은 입으로부터 빛을 뿜어 앞의 물건을 독으로 해치는데,
만약에 부처님께서도 입으로부터 광명을 놓으시면, 중생들이 “이 무슨 큰 빛인가” 하고 겁을 내며, 해를 당할까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발밑으로부터 광명을 놓으신 것이다.
【문】 발밑으로 놓으신 6백만 억의 광명과 나아가서는 육계(肉髻)의 광명까지 모두 세어도 삼천대천세계에도 차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시방세계이겠는가?
【답】 이 몸의 광명은 모든 광명의 근본이어서 근본으로부터 가지가 흘러나와 한량없고 셀 수가 없다.
비유하건대 가라구라충(迦羅求羅虫)이 그 몸이 미세하지만 바람을 만나면 더욱 커져서 마침내는 모든 것을 삼키는 것과 같다.
광명도 그와 같아서 제도할 중생을 만나면 더욱더 커져서 한량이 없게 된다.
【經】 열 발가락ㆍ두 복사뼈ㆍ두 발꿈치ㆍ두 무릎ㆍ두 허벅지ㆍ허리ㆍ척추ㆍ배ㆍ등ㆍ배꼽ㆍ심장ㆍ가슴ㆍ덕자(德字)44)ㆍ어깨ㆍ팔ㆍ열 손가락ㆍ목ㆍ입ㆍ40개의 치아ㆍ두 콧구멍ㆍ두 눈ㆍ두 귀ㆍ백호상ㆍ육계에서 각각 6백억의 광명을 놓으셨다.
【論】
【문】 발밑의 광명으로도 족히 삼천대천세계 및 시방세계를 비치거늘, 어째서 몸의 각 부분마다 다시 6백만 억의 광명을 놓는가?
【답】 내가 먼저 말하기를,
“발밑의 광명을 놓아 아래쪽 세계를 비친다”고 했으나,
다른 쪽은 채우지 못하므로 다시 몸의 각 부분의 광명을 놓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발은 온몸이 의지하여 서는 곳이어서 가장 크지만 다른 곳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먼저 발밑으로 6백만 억의 광명을 놓으셔서 중생에게 보이신다.”
마치 32상 가운데 첫 번째인 족하안주상(足下安住相)과 같으니, 몸 전체에 모두 신통한 힘이 있다.
【문】 어떤 삼매에 의하고, 어떤 신통에 의하고, 어떤 선정에 머물러서 이 광명을 놓으시는가?
【답】 삼매왕삼매 가운데에서 이 광명을 놓으시며, 6신통 가운데에서 여의통(如意通), 네 가지 선정 가운데에서 제4선에 머물러서 이 광명을 놓으신다.
제4선 가운데 불이 우세하게 드러나는 경지[火勝處]에서의 불이 있으니, 일체가 이 가운데 들어가면 광명을 놓는다.
또한 부처님이 처음 탄생하실 때나 처음 성불하실 때나 처음 법륜을 굴리실 때에 모두 한량없는 광명을 놓아 시방을 가득하게 채운다.
그러니 어찌 마하반야바라밀을 말씀하실 때 광명을 놓지 않으랴.
비유하건대 전륜성왕의 구슬 보배는 항상 광명을 비추어 왕의 군중의 사방을 각각 한 유순씩 비추는 것과 같다.
부처님도 그와 같아서 중생의 반연 때문에 삼매에 들지 않아도 항상 상광(常光)을 놓으신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온갖 법의 보배를 성취하셨기 때문이다.
【經】 이 모든 광명으로부터 대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시고, 삼천대천세계로부터 다시 동방으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를 두루 비추셨다.
남ㆍ서ㆍ북과 네 간방[四維]과 위아래도 그러하였는데, 어떤 중생이라도 이 광명을 만나는 자는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論】
【문】 불의 모습은 위로 타오르고, 물의 모습은 아래로 젖고, 바람은 옆으로 퍼지듯이 이 광명은 불의 기운이므로 위로 뻗어야 할 것이거늘 어찌하여 삼천대천세계와 시방세계에 두루 차는가?
【답】 광명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불기운[火氣]이요 또한 하나는 물기운[水氣]이다.
일주(日珠)는 불기운이고 월주(月珠)는 물 기운인데, 비록 불의 모습은 위로 향해 불꽃이 오르나 사람의 몸속의 불은 위아래로 두루 퍼져 도달한다. 해와 불의 광명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여름날에 땅 위의 물이 모두 뜨겁다. 이것으로 미루어보건대 불이 모두 위로만 올라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광명은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하기 때문에 시방에 두루 미치나니, 마치 강한 활로 화살을 쏘면 어디든 향해 가는 것과 같다.
【문】 어째서 동쪽을 먼저 비추고 남ㆍ서ㆍ북방을 나중에 비추는가?
【답】 해가 돋을 때 동쪽에서 먼저 뜨기 때문이니, 부처님께서도 중생들의 생각에 따라 먼저 동쪽을 비추셨다.
또한 방위마다에 다른 한 가지씩의 질문이 있으니,
만일 먼저 남쪽을 비추셨다면,
“어째서 동ㆍ서ㆍ북쪽을 먼저 비추지 않았는가?”라고 묻게 되리라.
【문】 그 광명은 언제 사라지는가?
【답】 부처님께서 신통력을 써서 더 머물게 하고자 하면 더 머물고, 신통력을 거두시면 곧 사라진다. 부처님의 광명은 등불 같으며 신통력은 기름 같으시다.
부처님께서 신통력을 거두지 않으신다면 광명은 사라지지 않는다.
【經】 광명은 동쪽으로 뻗어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를 지났으며, 시방세계에 이르기까지도 그와 같았다.
【論】
【문】 어떤 것이 삼천대천세계인가?
【답】 부처님께서 잡아함(雜阿含)45) 가운데 분별하여 말씀하셨으니, 천 개의 해, 천 개의 달, 천 개의 염부제, 천 개의 구타니(衢陀尼), 천 개의 울달라월(鬱怛羅越), 천 개의 불바제(弗婆提), 천 개의 수미산, 천 개의 사천왕천, 천 개의 33천, 천 개의 야마천, 천 개의 도솔타천, 천 개의 화자재천, 천 개의 타화자재천, 천 개의 범세천, 천 개의 대범천(大梵天)46)을 소천세계라 하고 주리(周利)라고도 한다.
이 주리의 천(千)의 세계(世界)를 하나로 삼아 하나로부터 세어서 천에 이르면 2천(千)의 중세계(中世界)라 한다.
이 2천의 중세계(中世界)를 하나로 삼아 하나로부터 세어서 천에 이르면 삼천대천세계라 한다.
처음의 천은 소(小), 두 번째 천은 중(中), 세 번째는 대천(大千)이라 하는데, 천과 천을 거듭해서 세는 까닭에 대천이라 하고, 천과 천을 곱하기를 두 번 거쳤기 때문에 삼천(三千)이라 한다.
이것들을 모두 합해 백억의 일월 내지는 백억의 대범천이라 하며, 이를 삼천대천세계라 한다. 이는 일시에 생겼다가 일시에 사라진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머무는 시간이 한 겁이요, 사라지는 시간이 한 겁이요, 다시 생기는 시간이 한 겁이니, 이것이 삼천대천세계이다”라고 한다.
대겁(大劫)은 세 가지로 무너지니, 물과 불과 바람이다. 소겁(小劫) 역시 세 가지로 무너지니, 전쟁[刀]과 질병과 기아이다.
이 삼천대천세계는 허공 속에 놓여 있는데 바람 위에 물, 물 위에 땅, 땅 위에 사람이 있다.
수미산에는 두 하늘이 있으니, 4천처(天處)47)와 삼십삼천처(三十三天處)이다.
나머지 야마천 등은 복덕의 인연이 되는 7보의 땅으로서 바람에 의해 공중에 들려져 있으며 나아가 대범천까지도 모두가 7보의 땅으로서 모두가 바람 위에 놓여 있다.
이 삼천대천세계를 광명으로 두루 비추신 뒤에 나머지 광명이 흘러나와 다시 동쪽으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들을 비추시니, 남ㆍ서ㆍ북과 네 간방[四維]ㆍ위아래도 그와 같았다.
【문】 이 광명이 멀리 비쳤는데 어찌하여 사라지지 않는가?
【답】 광명은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근본을 삼나니, 근본이 있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용천(龍泉)은 용의 힘 때문에 물이 마르지 않듯이,
이 모든 광명은 부처님의 심력(心力) 때문에 시방에 두루 비치되 중간에 사라지지 않는다.
【문】 염부제 안에는 여러 큰 강이 있어 항하(恒河)48)를 능가하는 것이 있거늘, 어찌하여 항상 항하사 같다고 말씀하시는가?
【답】 항하에는 모래가 많은데 다른 강은 그렇지 못하다.
또한 이 항하는 부처님이 탄생하신 곳이고 유행하시던 곳으로 제자들이 직접 눈으로 보는 곳이기에 그것으로 비유를 삼으셨다.
또한 부처님은 염부제에서 나오셨는데 염부제를 흐르는 네 큰 강이 북쪽에서 흘러나와 사방의 큰 바다로 들어간다.
북쪽의 설산에 아나바달다(阿那婆達多)란 못이 있는데, 이 못에는 금빛 나는 7보의 연꽃이 있어 크기가 수레의 산개(傘蓋)만큼 크다. 아나바달다용왕은 7주(住) 대보살49)이다.
이 못에는 사방으로 흘러드는 물이 있는데 동쪽은 상두(象頭)요, 남쪽은 우두(牛頭)요, 서쪽은 마두(馬頭)요, 북쪽은 사자두(師子頭)이다.
동쪽의 상두에서 항하가 나오는데 바닥에는 황금 모래가 깔려 있다.
남쪽의 우두에서는 신두강[辛頭河]50)이 나오는데 바닥에는 역시 황금 모래가 깔려 있으며,
서쪽의 마두에서는 바차강[婆叉河]51)이 나오는데 바닥에는 역시 황금 모래가 깔려 있고,
북쪽의 사자두에서는 사타강[私陀河]52)이 나오는데 바닥에는 역시 황금 모래가 깔려 있다.
이 네 강은 모두 북쪽 산에서 나온다.
곧 항하는 북산(北山)에서 나와서 동해로 들어가고,
신두강은 북산에서 나와서 남해로 들어가고,
바차강은 북산에서 나와서 서해로 들어가고,
사타강은 북산에서 나와서 북해로 들어간다.
이 네 강 가운데 항하가 가장 크고, 사방 사람들의 모든 경서(經書)가 모두 항하를 복스럽고 길한 강으로 삼는다.
그 가운데 들어가 몸을 씻는 자는 모든 죄와 티끌과 삿됨이 모두 제해진다.
사람들이 다 공경하고 섬기어 모두 알고 있는 터이므로 항하사로써 비유하셨다.
또한 다른 강은 이름이 가끔 바뀌었지만 이 항하의 이름은 세세에 바뀌지 않았다.
그러므로 항하사로써 비유를 삼으시고 다른 강으로써는 비유를 삼지 않으셨다.
【문】 항하에는 얼마나 되는 모래가 있는가?
【답】 온갖 산수로도 알 수가 없다. 오직 부처님과 법신 보살만이 능히 그 수효를 아신다.
부처님과 법신 보살은 온갖 염부제 안의 미진(微塵)의 생멸과 많고 적음도 다 세어서 아시거늘 항하의 모래이겠는가.
부처님께서 기원 밖의 숲 속에서 나무 아래에 앉아 계실 때, 어떤 바라문이 부처님께 와서 물었다.
“이 숲에는 잎이 몇 개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즉시에 ‘몇몇 개가 있다’고 대답하셨다.
바라문은 의심했다.
“누가 이를 입증하겠습니까?”
그리고 바라문은 한 나무 옆으로 가서 나무 위에 달린 몇 개의 잎을 따서 감추고는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나무숲에는 정확히 몇 개의 잎이 있습니까?”
부처님은 즉시에 이제는 몇 개의 잎이 모자라는지 대답하셨다. 곧 그가 따 온 만큼의 수효를 말씀하신 것이었다.
바라문은 이를 알게 되자 마음으로 크게 공경하고 믿게 되어 부처님께 출가하였으니, 뒤에 아라한도를 얻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능히 항하의 모래 수효를 헤아리심을 알게 되는 것이다.
【문】 몇 사람이 부처님의 광명을 만나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가?
만약에 광명을 만나면 곧 도를 얻게 된다고 한다면 부처님은 대자대비하시거늘 어찌하여 항상 광명을 놓아 누구나 도를 얻게 하지 않으시고, 기어이 지계ㆍ선정ㆍ지혜 등을 닦은 뒤에야 도를 얻게 하시는가?
【답】 중생들은 인연이 갖가지로 도를 얻는 단계가 같지 않다.
선정으로 해탈을 얻는 이도 있고, 지계와 설법으로 해탈을 얻는 이도 있고, 광명이 몸에 닿아 해탈을 얻는 이도 있다.
비유하건대 어떤 성에 많은 문이 있어서 들어오는 곳은 다르나 이르는 곳은 다르지 않은 것과 같다.
어떤 이는 광명이 몸에 닿으면 해탈을 얻지만, 광명을 보거나 몸에 닿아도 해탈을 얻지 못하는 이가 있다.
【經】 여기에서 세존께서는 온몸의 털구멍으로 모두 미소를 지으시고,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셨다. [그 빛은]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에까지 이르렀으니, 이 광명을 만난 중생은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論】
【문】 위에서 이미 온몸으로 미소 지으셨다 했거늘, 어찌하여 이제 다시 모든 털구멍으로 웃으시는가?
【답】 온몸으로 미소를 지으신 것은 거친 부분[麤分]이요, 이제 일체의 털구멍으로 모두 미소를 지으신 것은 미세한 부분[細分]이다.
또한 앞에서 온몸으로 미소를 지으심은 한계가 있으나, 이제 털구멍으로 미소를 지으실 땐 광명이 한량이 없는 것이다.
또한 앞에서 온몸의 광명으로 아직 제도되지 못한 이가 이제 털구명의 광명을 만나 곧 해탈을 얻게 되는 것이다.
비유하건대 나무를 흔들어 열매를 따려 할 때 익은 과일은 먼저 떨어지지만 아직 덜 익은 것은 다시 흔들어야 되는 것과 같다.
또한 고기를 잡는 데 앞에 던진 그물이 충분하지 못했다면 나중의 그물로 잡는 것과 같다.
웃으신 인연의 설명을 마친다.
42)
범어로는 anāgāmin.
43)
범어로는 cakrāńgapāda.
44)
가슴에 새겨진 만(卍)자의 형상을 말한다.
45)
범어로는 Saṃyuktāgama.
46)
범어로는 Mahā-brahmā. 색계 초선천중 세 번째 천. 범중천ㆍ범보천ㆍ대범천의 세 천이 모인 것이 범천이다.
47)
곧 수미산의 중복에 있는 동방의 지국천(持國天), 남방의 증장천(增長天), 서방의 광목천(廣目天), 북방의 다문천(多聞天)을 말한다.
48)
범어로는 Gańgā.
49)
10주(住) 가운데 일곱 번째인 불퇴주(不退住)의 경지에 오른 것을 말한다.
50)
범어로는 Sindhu. 인더스강을 말한다.
51)
범어로는 Vakṣu.
52)
범어로는 Sitā.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구마라집(鳩摩羅什, Kumārajīva)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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