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논평]
장갑차와 경찰특공대는 일상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
성평등한 사회라야 안전하다
- 공원성폭력여성살해 사건에 부쳐
여성은 직장, 학교, 공원, 거리 그 어느 곳에서도 안전할 수 없었다
2023년 8월 17일, 한 여성이 출근길에 일면식 없는 남성의 폭행과 강간으로 사망하였다. 피해자에게 애도를 표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건이 낯설지 않음에 분노한다.
7년 전 강남역 인근 공용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살해당했다. 작년 7월, 모 대학 캠퍼스 안에서 성폭력 사망사건이 발생했다. 불과 두달 후 지하철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가 스토킹 가해자에게 살해되었다. 여성들은 공원, 학교, 지하철, 화장실, 집, 거리, 엘리베이터 등 직장과 일상공간에서 차별과 폭력을 경험한다. 결국 차별과 폭력은 죽음으로 이어졌다.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 이후 여성들은 안전한 일상을 위해 국가와 사회에 말하고 싸우고, 서로 연대하였다.
국가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방치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절망적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정부 기조 아래,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도하고, 정책 및 법안에서 ‘여성’ 지우기에 몰두하였다. 여성가족부 장관은 대학 캠퍼스 성폭력 사건을 언급하며 “‘남성 가해자, 여성 피해자’ 프레임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이건 학생 안전의 문제이지 젠더폭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원 여성 성폭력 살해사건에 대해 사회구조적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내놓아야 할 국무총리는 이를 여성혐오범죄로 말하는 대신, 가해자 개인의 특성에 집중하는 이상동기범죄라고 명명했다. 더불어 가해자의 범죄행위를 ‘비정상적인 개인의 일탈적 행위’라고 언급하며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강화하기도 한다.
정치 진영은 젠더 기반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보다 ‘남녀 갈라치기’를 선동하며 표몰이에만 급급하였다. 이러한 정부와 정치 진영의 행보는 일상의 안전을 전혀 보장하지 않았다. 심지어 오랜시간 여성들의 목소리와 실천으로 만들어왔던 여성 안전정책과 제도 등을 후퇴시키거나 폐지했다. 이로 인해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더욱 공고해졌다.
장갑차와 경찰특공대는 일상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
정부는 도심에 장갑차를 배치하고, 곳곳에 경찰특공대 순찰을 돌린다. 의무경찰제도 재도입을 검토하고, CCTV, 보안등, 비상벨 등 범죄 예방 기반 시설을 대폭 확충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하였다.
안전은 사회적인 감각이다. 내가 있는 공간이 안전할 거라는 감각, 주변 사람들에 대한 신뢰 속에서 우리는 안전함을 느낀다. 장갑차와 경찰특공대가 일상의 공간을 감시하는 것은 내 옆의 누군가가 범죄자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또 누군가는 살해될 수 있다는 불안을 가중한다. 누군가를 감시하고 서로를 경계하는 사회에서 안전하다는 감각은 있을 수 없다. 경계와 감시가 기본값이 되는 국가의 방향은 결국 개인이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는 각자도생의 메세지와 다를바없다.
개인이 조심해야 하는 사회를 거부한다. 성평등한 사회라야 안전하다
젠더폭력은 문제적 인간에 의해 우연히 발생한 개인의 불행이 아니다. 이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대하는지, ‘여자한테는 그래도 된다’는 메시지가 허용되어왔던 구조적 문제이다. 공원 여성 성폭력 살해사건 가해자는 “강간하고 싶어서 범행을 했다”고 말했다. 아무렇지 않게 여성을 비하하고, 품평하고, 강간을 모의하며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것이 일상적·집단적으로 공유되는 남성사회에서, 성폭력은 범죄라기보다 ‘나도 언젠가는 할 수 있는’ 감각으로 공유되어왔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을 향한 폭력이 편견과 차별, 젠더 문제에서 비롯됐음을 인정하고 변화를 위한 관점과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정부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정부 기조를 앞세워 행했던 ‘여성 지우기’ 행보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그것이 누구도 죽지 않고 모두가 안전할 수 있는 길이다.
여성들은 차별과 폭력의 화살이 언제든지 나에게 향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기때문에 분노하고, 말하고, 변화를 위해 연대하였다. 절규하며 거리에 섰다. 일상의 곳곳이 싸움의 장이 되기도 하였다. 우리의 목소리가 분명 변화를 만들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죽음과 정부의 무책임한 행보에 우리는 무력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고개를 들어 곁을 바라보고 안부를 물으며,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에 방관하는 국가를 향해 “성평등해야 안전하다”고 외치고 ‘개인이 조심해야 하는 사회’를 거부할 것이다. 다시 한번 곁을 신뢰하며 안전하다는 사회적 감각을 쌓기 위해 더디더라도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것이다.
2023.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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