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설대안반수의경 하권
[37룸]
만약 숙명(宿命)의 대(對)가 당도한다면 무엇으로 물리치는가?
숨을 세고 서로 따르며 멈춤과 관(觀)과 돌이킴과 정(淨)을 행하며,
『37품경』을 염하여 능히 어려움을 물리칠 수 있으니,
숙명의 대를 물리칠 수 없다면 숨을 세고 『37품경』을 행한다.
어떻게 해서 능히 물리칠 수 있는가?
도를 생각하기 때문에 악이 소멸하니,
만약 숨을 세고 서로 따르며 멈추고 관(觀)하고 돌이키고 정(淨)하여 능히 악을 소멸하지 못한다면, 세간 사람들이 모두 도를 얻을 수 없겠지만, 악을 소멸하기 때문에 도를 얻는다.
숨을 세고 서로 따르며 멈추고 관하며 돌이키고 정(淨)하며, 『37품경』을 행한다면, 오히려 부처도 될 것인데 하물며 죄대(罪對)이겠는가?
시방에 산처럼 쌓였을지라도 정진하여 도를 행하면 죄와 만나지 않을 것이다.
경(經)에서 무슨 까닭에 만나지 않는다고 말하였는가?
이것을 짓기 때문이니, 숨을 세면 12품에 떨어지게 된다.
무엇이 12품인가?
숨을 셀 때는 4의지(意止)에 떨어지고,
숨이 어지럽지 않을 때는 4의념단(意念斷)에 떨어지며,
열 번째 숨을 얻으면 4신족(神足)에 떨어지게 되니,
이것이 바로 12품에 떨어지는 것이다.
무엇이 『37품경』을 생각함이 되는가?
숨을 세고 서로 따르며 멈추고 관하며 돌이키고 정(淨)하는 행이 바로 여섯 가지 일이며,
이것이 바로 『37품경』을 생각하는 것이다.
숨을 세기를 행하는 것은 또한 『37품경』을 행하기 위함이다.
무슨 까닭에 『37품경』을 행함이 되는가?
숨을 세면 4의지(意止)에 떨어지게 된다.
무슨 까닭에 4의지가 되고, 또한 4의단(意斷)에 떨어지는가?
생각을 기다리지 않기 때문에 4의단이 되고,
또한 4신족(神足)에 떨어지며, 신(信)을 따르기 때문에 4신족이 되는 것이다.
숨을 세면 신근(信根)에 떨어지게 되니, 부처님을 믿어서 뜻으로 기뻐하는 까닭에 신근이 생기며,
또한 능근(能根)에도 떨어지니, 앉아서 근(根)을 행하는 까닭에 능근에 떨어지게 되며,
또한 식근(識根)에도 떨어지니, 제(諦)를 아는 까닭에 식근이 되며,
또한 정근(定根)에도 떨어지니, 뜻이 편안한 까닭에 정근이 되며,
또한 혜근(慧根)에도 떨어지니, 어리석은 뜻을 여의고 묶임[結]을 푸는 까닭에 혜근이 되는 것이다.
숨을 세면 또한 신력(信力)에도 떨어지니 의심하지 않는 까닭에 신력이 되며,
또한 진력(進力)에도 떨어지니 정진하는 까닭에 진력이 되며,
또한 염력(念力)에도 떨어지니 유여한 뜻이 능히 쇠하지 않는 까닭에 염력이 되며,
또한 정력(定力)에도 떨어지니 마음이 한결같은 까닭에 정력이 되며,
또한 혜력(慧力)에도 떨어지니 앞에서 말한 4의지와 4의단과 4신족을 분별하는 까닭에 혜력이 되는 것이다.
숨을 세면 또한 각의(覺意)에도 떨어지니 고(苦)를 인식하는 까닭에 각의가 되며,
또한 법식각의(法識覺意)에도 떨어지니 도의 인연을 아는 까닭에 법각의(法覺意)가 되며,
또한 역각의(力覺意)에도 떨어지니 악을 버리는 까닭에 역각의가 되며,
또한 애각의(愛覺意)에도 떨어지니 도를 탐내고 좋아하는 까닭에 애각의가 되며,
또한 식각의(息覺意)에도 떨어지니 뜻을 멈추는 까닭에 식각의가 되며,
또한 정각의(定覺意)에도 떨어지니 생각하지 않는 까닭에 정각의가 되며,
또한 수각의(守覺意)에도 떨어지니 행을 여의지 않는 까닭에 수각의가 되는 것이다.
숨을 세면 또한 8행(行)에도 떨어진다.
뜻이 바른 까닭에 8행에 들어가니, 정의(定意)와 자심(慈心)과 정념(正念)과 정법(凈法)은 바른 몸이 되고 지성스러운 말과 부드러운 말과 곧은 말과 돌이키지 않는 말은 바른 입이 된다.
지혜에 뜻을 두며, 믿음에 뜻을 두며, 인욕에 뜻을 두는 것은, 바른 마음이 되니, 이른바 소리와 숨에서 기인한다.
이것이 10선(善)으로 도행(道行)에 떨어짐이 된다.
숨을 세면 또한 바른 소견에 떨어지니 자세히 관하는 까닭에 바른 소견이 되며,
또한 바른 행에 떨어지니 도를 향하는 까닭에 바른 행이 되며,
또한 바른 대치(對治)에 떨어지니 『37품경』을 행하는 까닭에 바른 대치가 되며,
또한 바른 뜻에 떨어지니 제(諦)를 생각하는 까닭에 바른 뜻이 되며,
또한 바른 정(定)에 떨어지니 뜻이 청백하여 마구니 떼를 파괴하는 까닭에 바른 정이 된다.
이것이 바로 8행이다.
무엇이 마구니 떼인가?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세활(細滑)이 바로 마구니 떼이며,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음이 바로 마구니 떼를 파괴함이 되니,
37품으로 응당 거둬 묶어야 한다.
[4의지(意止)]
만약 스스로 몸을 관하고 다른 사람의 몸을 관하면, 탐음을 멈추고 뜻이 어지럽지 않아서 나머지 뜻도 멈추며,
스스로 통양(痛痒)을 관하고 다른 사람의 통양을 관하면 성냄[瞋恚]을 멈추며,
스스로 뜻을 관하고 다른 사람의 뜻을 관하면 어리석음[愚癡]을 멈추며,
스스로 법을 관하고 다른 사람의 법을 관하면 도를 얻으니,
이것을 4의지(意止)라 한다.
[4의념단(意念斷)]
몸을 피하는 것은 경계를 피함이 되며,
통양(痛痒)을 피하는 것은 5락(樂)을 피함이 되며,
뜻을 피하는 것은 생각을 피하고 법을 피함이 되며,
원업(願業)에 떨어지지 않는 것은 생겨남을 대치함이니,
이것을 4의념단(意念斷)이라고 한다.
[4성제]
고(苦)를 인식한다는 것은 본래 고이기 때문이며,
고가 된다는 것은 몸이 있기 때문이며,
고를 좇아 인연이 일어난다는 것은 보는 바의 만물이 고(苦)이기 때문이다.
습(習)이라는 것은, 본래 고(苦)가 되기 때문에 고를 좇아 인연이 생기게 된다.
진(盡)이라는 것은, 만물이 모두 파괴되어 고(苦)와 습(習)을 늘리기 때문에 다시 8도(道) 가운데 떨어지는 것이다.
도인은 마땅히 이 8도를 생각해야 하니,
이것을 4위(爲)와 4수고(收苦)라고 하며, 4신족념(神足念)을 얻는다.
[5근(根)]
부처님을 믿어 뜻으로 기뻐하는 것을 신근(信根)이라고 하니 스스로 지키고 행하는 법이 되며,
제(諦)를 좇아 몸과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능근(能根)이라고 하니 정진이 되며,
제(諦)를 좇아 생각하여 제를 이루는 것을 제근(諦根)이라고 하니 수의(守意)가 되며,
제를 좇아 뜻을 한결같이 하고 제를 좇아 한 뜻에 멈추는 것을 정근(定根)이라고 하니 정의(正意)가 되며,
제를 좇아 제를 관하는 것을 혜근(慧根)이라고 하니 도의(道意)가 된다.
이것이 바로 5근(根)이다.
[5력(力)]
제(諦)를 좇아 믿어 다시 의심하지 않는 것을 신력(信力)이라고 하니 탐(貪)을 버리고 도를 행하며,
제를 좇아 스스로 정진하여 나쁜 뜻이 능히 정진을 파괴하지 못하는 것을 진력(進力)이라고 하니 나쁜 뜻이 일어나려고 하다가 즉시 없어지며,
제를 좇아 뜻을 옳게 하여 그 뜻을 능히 파괴할 수 없는 것을 염력(念力)이라고 하니 안과 밖을 관(觀)하며,
제를 좇아 정(定)하여 나쁜 뜻이 능히 좋은 뜻을 파괴하지 못하는 것을 정력(定力)이라고 하니 4선(禪)을 생각하며,
제를 좇아 지혜를 얻어 나쁜 뜻이 능히 지혜의 뜻을 파괴하지 못하는 것을 혜력(慧力)이라고 하니 나고 들며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남을 생각한다.
이것을 5력(力)이라 한다.
[7각의(覺意)]
제(諦)를 좇아 제를 염하는 것을 각의(覺意)라고 하니 도의 뜻을 얻으며,
제를 좇아 제를 관하는 것을 법식각의(法識覺意)라고 하니 생사의 뜻을 얻으며,
제를 좇아 몸과 뜻을 지니는 것을 역각의(力覺意)라고 하니 도를 지녀 잃지 않아서 힘이 되며,
제를 좇아 희제(喜諦)를 구족하는 것을 애각의(愛覺意)라고 하니 도법(道法)을 탐내어 도행(道行)과 도법을 행하며,
제를 좇아 뜻이 쉼을 얻는 것을 식각의(息覺意)라고 하니 이미 쉬어 안온하며,
제를 좇아 생각과 뜻을 한결같이 하는 것을 정각의(定覺意)라고 하니 스스로 뜻을 알아서 안정하며,
제를 좇아 뜻을 자재하고 행하는 바를 좇아 관하는 것을 이 수의각(守意覺)이라고 한다.
이렇게 4제를 좇아 뜻을 관하는 것을 7각의(覺意)라고 한다.
제(諦)를 좇아 제를 지키는 것을 바른 신도(信道)라고 하며,
제를 좇아 바르게 제를 행하는 것을 이 바른 염도(念道)라고 하며,
제를 좇아 몸과 뜻을 지니는 것을 바른 치법(治法)이라고 하니, 네 가지 악에 이른바 4전도(顚倒)에 떨어지지 않으려는 것이며,
제를 좇아 제를 생각하는 것을 바른 뜻이라 하고, 뜻을 어지럽히지 않는다고 하며,
제를 좇아 마음과 뜻을 한결같이 하는 것을 바른 정(定)이라고 한다.
한 마음으로 우두머리를 삼아 세 가지 법의(法意)의 행을 지을 것이니,
소리와 몸과 마음의 행을 갖춘다면 이와 같은 것이 불제자(佛弟子)의 8행이다.
이를 4선(禪)이라 하며, 4의단(意斷)이 되는 것이다.
첫 번째 행은 바른 생각이니 마음에 속하여 항상 도를 생각하는 것이요,
두 번째 행은 바른 말이니 입에 속하여 4의(意)를 끊음이요,
세 번째 행은 바른 관(觀)이니 몸에 속하여 몸의 안팎을 관함이요,
네 번째 행은 바른 소견이니 도를 믿음이요,
다섯 번째 행은 바른 행이니 네 가지 악인 이른바 4전도에 떨어지지 않음이요,
여섯 번째 행은 바른 대치(對治)이니 나머지 뜻을 끊음이요,
일곱 번째 행은 바른 뜻이니 탐욕에 떨어지지 않음이요,
여덟 번째 행은 바른 정(定)이니 마음을 바르게 함이다.
이것이 여덟 가지 행이니, 벽지불과 아라한은 행하지 않는 바이다.
첫 번째 행인 바른 생각이란 무엇이 바른 생각이 되는가?
이른바 만물을 생각하지 않아서 뜻이 그 가운데 떨어지지 않음이 바로 바른 생각이요,
만물을 생각하여 뜻이 그 가운데 떨어진다면 이것은 바른 생각이 아니다.
[4의지]
4의지(意止)란,
첫 번째 의지는 몸과 생각을 쉬는 것이요,
두 번째 의지는 통양(痛痒)을 생각하는 것이요,
세 번째 의지는 숨의 나고 듦을 생각하는 것이요,
네 번째 의지는 법의 인연을 생각함이니,
이것이 바로 4의지가 된다.
도인은 마땅히 이 4의지를 생각할 것이니,
첫째는 내가 전생에 몸을 사랑했던 까닭에 해탈을 얻지 못하였으며,
둘째는 지금 극심한 원수가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삶에 애착하는 것이니 마땅히 끊어야 하고, 이미 끊었다면 바깥 몸을 관하여 멈춰야 한다.
4의지(意止)에서 뜻을 멈춘다는 것은,
뜻을 몸에 두지 않는 것이 멈춤이 되고,
뜻을 통양(痛痒)에 두지 않는 것이 멈춤이 되며,
뜻을 뜻에 두지 않는 것이 멈춤이 되고,
뜻을 법에 두지 않는 것이 멈춤이 되지만,
뜻이 색(色)과 식(識)을 따라서 곧바로 생겨나면 이것은 멈추지 않음이 된다.
사람이 어떻게 4의지에 떨어지지 않는가?
고(苦)와 공(空)과 비신(非身)과 부정(不淨)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4의지에 떨어지지 않는다.
만일 사람이 뜻으로 늘 고와 공과 비신과 부정을 생각하여 도를 행한다면, 늘 이 네 가지를 생각하여 여의지 않으므로, 문득 빠르게 4의지를 얻는다.
무엇이 몸의 의지(意止)가 되는가?
이른바 늙고 병들고 죽음을 생각함이니,
이것이 몸의 의지가 된다.
무엇이 통양(痛痒)의 의지가 되는가?
이른바 옳지 못한 뜻이니,
이것이 통양의 의지가 된다.
무엇이 뜻의 의지가 되는가?
이른바 이미 생각하고 다시 생각함이니,
이것이 뜻의 의지가 된다.
무엇이 법의 의지가 되는가?
이른바 갈 때는 행(行)이 되고 돌아올 때는 법이 되며, 또한 이것을 지어 이것을 얻음을 말하니,
이것이 법의 의지가 된다.
4의지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무상(無常)을 생각하는 의지요,
둘째는 고(苦)와 몸[身]을 생각하는 의지요,
셋째는 공(空)과 유(有)를 생각하는 의지요,
넷째는 부정(不淨)과 낙(樂)을 생각하는 의지이니,
이것이 4의지가 된다.
일체 천하의 일은 모두 몸의 통양(痛痒)에 떨어지고 법에 떨어지니,
모두 합쳐도 이 네 가지 일에 불과하다.
4의지란,
첫째는 다만 숨을 생각하여 뜻을 삿되게 하지 않음이요,
둘째는 다만 선을 생각하고 악을 생각하지 않음이요,
셋째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몸도 아소(我所)가 아니며, 만물도 모두 아소가 아니다’라고 하여 다시는 향하지 않음이요,
넷째는 눈으로 색(色)을 보지 않아서 뜻을 법 가운데 둠이니,
이것을 4의지라 한다.
도인은 마땅히 4의지를 행할 것이니,
첫째는 눈으로 마땅히 몸 가운데 악로(惡露)를 헤아릴 것이요,
둘째는 뜻으로 기뻐하여 즐거움을 생각함에 마땅히 통양(痛痒)의 고(苦)를 생각할 것이요,
셋째는 나의 뜻이 성나면 다른 사람의 뜻도 또한 성내고 나의 뜻이 구르면 다른 사람의 뜻도 또한 구르므로 다시는 뜻을 굴리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나의 뜻이 질투하면 다른 사람의 뜻도 또한 질투하고 내가 다른 사람의 악을 생각하면 다른 사람도 또한 나의 악을 생각함으로 다시는 생각하지 않으니,
이것이 법이 된다.
몸의 의지(意止)라는 것은,
스스로 몸을 관하고 다른 사람의 몸도 관하는 것이다.
무엇이 몸이 되는가?
통양(痛痒)이 바로 몸이라고 말하려 하면 통양은 수(數)가 있지 않으며,
뜻이 바로 몸이라고 말하려 하면 과거의 뜻과 미래의 뜻이 있으므로 또한 몸이 아니며,
법이 바로 몸이라고 말하려 하면 과거와 미래의 법이 있으므로 또 한 몸이 아니며,
행이 바로 몸이라고 말하려 하면 행은 형용이 없으므로 몸이 아닌 줄을 아니,
이렇게 헤아려야 4의지가 된다.
뜻이 색(色)에 떨어지지 않으면 염식(念識)도 또한 생겨나지 않으며,
귀ㆍ코ㆍ입ㆍ몸도 또한 그러하다.
뜻을 몸에 두지 않으면 멈춤[止]이 되고,
뜻을 통양(痛痒)에 두지 않으며, 뜻을 생각에 두지 않으며, 뜻을 법에 두지 않으면 멈춤이 된다.
누가 몸과 뜻과 통양을 주장하여 아는가?
몸이 있어서 몸의 뜻이 알고,
통양이 있어서 통양의 뜻이 알고,
뜻의 뜻이 있어서 뜻의 뜻이 알고,
굶주림이 있어서 굶주림의 뜻이 알고,
목마름이 있어서 목마름의 뜻이 알고,
추움이 있어서 추움의 뜻이 알고,
더움이 있어서 더움의 뜻이 아니,
이것으로써 분별하여 안다.
몸의 뜻이 몸의 뜻을 일으키고,
통양의 뜻이 통양의 뜻을 일으키고,
뜻의 뜻이 뜻의 뜻을 일으키고,
법의 뜻이 법의 뜻을 일으키므로,
4의지는 이른바 뜻으로 악을 생각함을 제어하여 일으키지 않도록 하니,
이것이 바로 멈춤[止]이다.
4의지는 또한 4선(禪)을 따르며 4의지를 따르니,
4의지를 따르면 도에 가까워져 악을 짓지 않고 곧바로 선한 뜻이 생긴다.
4선(禪)은 4의정(意定)도 되고, 4의지도 된다.
도를 행하는 데 네 가지 인연이 있으니,
첫째는 몸을 멈춤이요,
둘째는 통양을 멈춤이요,
셋째는 뜻을 멈춤이요,
넷째는 법을 멈춤이다.
몸을 멈춘다는 것은 이른바 색(色)을 보고 부정(不淨)을 생각하는 것이요,
통양을 멈춘다는 것은 이른바 스스로 잘난 체 하지 않는 것이요,
뜻을 멈춘다는 것은 이른바 멈춰서 성내서 않는 것이요,
법을 멈춘다는 것은 이른바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도인은 4의지를 행하여서 뜻이 일어나고 생각이 생겨나면 즉시 대(對)를 인식하고 약을 쓸 것이니,
한 의지(意止)만 얻으면 곧바로 네 의지를 얻게 된다.
[4의정(意定)]
4의정(意定)이란,
첫째는 스스로 몸을 관(觀)하고 또한 다시 다른 사람의 몸도 관하며,
둘째는 스스로 통양(痛痒)을 관하고 또한 다시 다른 사람의 통양도 관하며,
셋째는 스스로 마음을 관하고 또한 다시 다른 사람의 마음도 관하며,
넷째는 스스로 법의 인연을 관하고 또한 다시 다른 사람의 법의 인연도 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일체의 몸에서 안팎의 인연과 이루어지고 어그러지는 일을 관하여 마땅히 나의 몸도 또한 이루어지고 어그러지는 줄 생각해야 하니,
이것이 바로 4의정이 된다.
사람이 4의(意)를 멈추고자 하면,
버리는 것으로 밖을 삼고,
거두는 것으로 안을 삼으며,
이미 거두어들인 뜻으로 밖을 삼고 버리는 것으로 안을 삼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몸을 관한다는 것은,
이른바 스스로 몸을 관하여 뜻을 여의지 않고 곧바로 다른 사람 몸의 괴로움을 관하여, 다른 사람의 몸이 통양이 아님을 관하는 것이니,
뜻과 법도 또한 그러하다.
스스로 몸을 탐한다면 마땅히 다른 사람의 몸을 관하며 다른 사람의 몸을 생각하고 곧바로 스스로 몸을 관하니,
이것이 4의지(意止)가 된다.
뜻으로 행하는 것을 보아서 어떻게 멈추는가?
뜻으로 자기가 몸을 탐하는 것을 관(觀)한다면 곧바로 다른 사람의 몸을 관하도록 하니,
뜻을 탐하는 것으로부터 굴렸기 때문에 응당 멈추며,
만약 뜻으로 다른 사람의 몸을 탐한다면 마땅히 돌이켜 자기의 몸을 관한다.
때로는 자신을 관하고 다른 사람의 몸은 관하지 않으며,
때로는 마땅히 다른 사람의 몸을 관하고 자신의 몸은 관하지 않으며,
때로는 자기의 몸도 관하고 또한 다른 사람의 몸도 관하며,
때로는 자기의 몸도 관하지 않고 또한 다른 사람의 몸도 관하지 않으니,
자기의 몸을 관하는 이는 계교하여 다른 사람의 몸도 관해야 한다.
뜻이 멈추지 않으면 모름지기 자기 몸에 비추어 생각하다가 곧바로 다른 사람의 몸으로 굴려서 비추어 다른 사람 몸의 살찐 몸뚱이와 하얀 살갗과 검은 눈썹과 빨간 입술을 관할 것이니,
살찐 것을 보고는 마땅히 죽은 사람의 불룩함을 생각하고,
하얀 것을 보고는 마땅히 죽은 사람의 뼈다귀를 생각하고,
눈썹의 검은 것을 보고는 마땅히 죽은 사람의 아주 검음을 생각하고,
붉은 입술을 보고는 마땅히 붉은 피를 생각해야 한다.
몸에 있는 모든 것을 계교하여 이런 뜻을 얻어 곧바로 굴린다면, 다시는 몸을 애착하지 않을 것이다.
[관(觀)]
관(觀)에 안과 밖이 있으니,
질투(嫉妬)ㆍ성냄[瞋恚]ㆍ어리석음[愚癡]은 안을 관하는 것에 해당되고,
탐음(貪婬)은 밖을 관하는 것에 해당한다.
탐(貪)한다면 마땅히 무상하여 어그러짐을 생각하고,
음(婬)하다면 마땅히 소유한 악로(惡露)를 생각할 것이니,
만약 자기의 몸을 관하여 음(婬)하다면 마땅히 4의단(意斷)을 생각해야 한다.
관(觀)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밖을 관함이요,
둘째는 안을 관함이다.
몸을 관하는 데 36가지가 있으니,
일체 대(對)가 있는 것은 모두 밖을 관함에 속하고,
소유가 없는 것은 도가 됨으로 이것은 안을 관함이 된다.
관(觀)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몸의 검고 파랗고 빨갛고 하얀 네 가지 빛깔을 관함이요,
둘째는 생사를 관함이요,
셋째는 9도(道)를 관함이다.
하얀 것을 관하여 검은 것으로 본다면 부정(不淨)이 되니,
마땅히 전례를 들어서 다음을 배운다면 도를 얻을 것이요,
아직 도를 얻지 못하여 듣기를 힘쓴다면 각별히 지혜를 증득할 것이다.
관(觀)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몸을 관하는 것이요,
둘째는 뜻을 관하는 것이요,
셋째는 행을 관하는 것이요,
넷째는 도를 관하는 것이 바로 네 가지 관이 된다.
비유컨대 사람이 물건을 지키다가 도적이 온다면 곧바로 물건을 놓아버리고 도적을 보듯이,
이미 관을 얻었다면 곧바로 몸을 놓아버리고 물(物)을 관하는 것이다.
관(觀)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밖의 모든 소유한 색을 관함이요,
둘째는 안의 무소유를 관함이다.
공(空)을 관하여 이미 4선(禪)을 얻었다면 공하여 소유가 없음을 관하니,
뜻이 있거나 뜻이 없거나 간에 소유가 없는 것이 바로 공이 되며,
또한 네 가지를 버려서 4선(禪)을 얻는다고 한다.
[37도품]
세간의 일을 끊으려면 마땅히 4의지(意止)를 행하고,
4의지를 제거하려면 마땅히 4의단(意斷)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탐욕에 떨어져 탐욕을 행하기 때문이다.
4신족(神足)을 행하여 날아다니되,
다만 5근(根)만 있고 5력(力)이 없으면 능히 제어하지 못하며,
다만 5력만 있고 5근이 없으면 능히 4신족을 얻지 못한다.
오히려 5력을 굴리면 능히 상차(上次)의 12품 4의단(意斷)을 제어할 수 있으니,
현재의 죄를 짓지 않고 다만 옛 죄를 마치는 것이 바로 4의단이 된다.
옛 것을 마치고 새 것을 받아들이지 않음이 4의지(意止)가 되며,
옛 것을 마치고 새 것을 그치는 것이 4의단(意斷)이 되며,
옛 것을 마치고 새 것을 끊는 것이 4신족(神足)이 된다.
족함을 알아서 다시 구하지 않는 것이 수의(守意)이니,
수의는 마침이 되고, 생겨남은 새 것이 되며, 늙음은 옛것이 되며, 죽는 것은 신체가 되고, 파괴되는 것은 다함[盡]이 된다.
[4의단(意斷)
4의단(意斷)이란,
늘 도를 생각하여 선한 생각이 생겨나면 곧바로 악한 생각이 끊어지는 까닭에 악도(惡道)를 끊게 되고,
선한 생각이 그치면 곧바로 악한 생각이 생겨나는 까닭에 악을 끊지 못하게 된다.
4의단(意斷)이라는 것은,
뜻이 스스로 악으로 향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바로 단(斷)이 되고,
또한 죄를 생각하지 않음을 단(斷)이라고 한다.
[4신족]
4신족(神足)이란,
첫째는 몸의 신족,
둘째는 입의 신족,
셋째는 뜻의 신족,
넷째는 도의 신족이니,
날음[飛]을 생각하여 소멸하려 하지 않음을 생각한다면, 도를 따르지 못한다.
4이제발(伊提鉢)이란,
4는 숫자가 되고 이제는 멈춤[止]이 되고 발은 신족이 되며, 날려고 하면 문득 날고 때로는 정진하여 7일 동안 앉는다면, 문득 얻으니 혹은 7개월 혹은 7년이 되기도 한다.
4신족을 얻으면 세간에 오래 있을 수 있어서 죽지 않는 약이 있으니,
첫째는 뜻이 구르지 않음이요,
둘째는 믿음이요,
셋째는 생각함이요,
넷째는 제(諦)가 있음이요,
다섯째는 지혜가 있음이니,
이것이 신족의 약이 된다.
4신족을 얻어 세간에 오랫동안 있지 않는 것에 세 가지 인연이 있으니,
첫째는 스스로 그 몸의 나쁜 냄새를 싫어하기 때문에 가며,
둘째는 사람이 능히 경도(經道)를 받음을 좇는 이가 없기 때문에 가며,
셋째는 나쁜 사람이 비방하여 죄를 얻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가는 것이다.
신족에 아홉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수레와 말을 타거나 그냥 걷거나 빠르게 달리는 것도 또한 신족이요,
밖으로 계(戒)가 견고함도 또한 신족이요,
지성스러움도 또한 신족이요,
인욕함도 또한 신족이니, 신족을 행함은 마땅히 날아다닌다는 뜻이다.
무엇이 날아다닌다는 뜻인가?
네 가지 인연이 있으니,
첫째는 믿음이요,
둘째는 정진이요,
셋째는 정(定)이요,
넷째는 구르지 않는 뜻이다.
무엇이 믿음의 비행(飛行)이며, 무엇이 정진의 비행이며, 무엇이 정의 비행이며, 무엇이 구르지 않는 뜻의 비행인가?
이른바 날아다니는 것에 집착하여 뜻을 굴리지 않는 것이다.
몸은 도를 행하려고 하지 않을 지라도 뜻이 행하려고 한다면 문득 행하여지니, 신족이란 이와 같이 뜻으로 날고자 하면 즉시 날 수 있다.
[5근(根)]
5근(根)이란,
비유컨대 물(物)을 심은 것이 견고해야 마침내 뿌리가 나며,
견고하지 않으면 뿌리가 있지 않은 것과 같으니,
신(信)은 빗물이 되고,
구르지 않는 뜻은 힘이 되고,
보는 바의 만물은 뿌리가 되며,
뜻을 제어함도 힘이 된다.
신근(信根) 가운데 3음(陰)이 있으니,
첫째는 통양(痛痒)이요,
둘째는 사상(思想)이요,
셋째는 식음(識陰)이며, 정근(定根) 가운데도 1음이 있으니, 식음(識陰)을 말한다.
5근(根)과 5력(力)과 7각의(覺意)에는 1음(陰)이 있기도 하고 2음이 있기도 하며 3음이 있기도 하고 4음이 있기도 하여 모두 음이 있다.
이 도행(道行)은 무슨 연(緣)으로 음이 있는가?
니원(泥洹)은 음이 없지만 나머지는 모두 음이 있으니, 7각의도 위의 셋은 입에 속하고 가운데 셋은 몸에 속하고 아래의 하나는 뜻에 속한다.
무엇이 각(覺)인가?
생각 생각이 각이 되고, 생각 생각이 얻음[得]이 되니, 이 뜻을 깨달아 얻으면 곧바로 도를 따르게 된다.
밖의 7각의는 생사에 떨어지고, 안의 7각의는 도를 따르게 되니,
안의 7각의는 『37품경』을 말하고, 밖의 7각의는 만물을 말한다.
각(覺)이라는 것은, 일을 인식하여 문득 각의(覺意)를 따르는 것이다.
어떤 각의는 도각(道覺)을 따르고, 어떤 각의는 죄각(罪覺)에 떨어지니,
『37품경』은 곧 바른 뜻이므로 이것은 도각을 따름이 되고, 악한 뜻은 죄각에 떨어지게 된다.
무엇이 제(諦)를 좇아 몸과 뜻을 지니는 것인가?
이른바 몸은 7계(戒)를 지니고, 뜻은 3계를 지니니, 이것이 몸과 뜻을 지니는 것이다.
제(諦)의 뜻을 좇아 휴식(休息)을 얻고,
4제(諦)의 뜻을 좇아 인연이 쉬니,
쉰다는 것[休]은 멈추는 것이요,
쉰다는 것[息]은 생각하는 것이며,
도를 얻음은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도법을 탐내고 좋아하여 마땅히 도를 행하는 것은 애각의(愛覺意)가 되고,
도를 지녀 잃어버리지 않음은 역각의(力覺意)가 되고,
이미 열 번째 숨을 얻어 몸이 안온한 것은 식각의(息覺意)가 되고,
이미 편안함을 저절로 아는 것은 정각의(定覺意)가 된다.
몸과 뜻을 지녀 뜻이 달아나지 않음이 지님[持]이 되니,
제(諦)를 좇아 자재하여 뜻이 행할 바에 있으면 이른바 4제(諦)를 얻은 것이며,
또한 4의지(意止)와 4의단(意斷)과 4신족(神足)과 5근(根)과 5력(力)과 7각의(覺意)와 8행(行)을 생각할 수 있으니,
이것이 자재한 뜻이 행하는 데 있어 제를 좇음이 된다.
관(觀)은 『37품경』의 요체(要體)를 관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수의(守意)가 되고,
각(覺)은 이른바 제(諦)를 깨달아 다시는 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8행(行)에 안과 밖이 있으니,
몸은 살생(殺生)ㆍ투도(偸盜)ㆍ사음(邪婬)이 되고,
소리는 양설(兩舌)ㆍ악구(惡口)ㆍ망언(妄言)ㆍ기어(綺語)가 되고,
뜻은 질투(嫉妬)ㆍ진에(瞋恚)ㆍ우치(愚癡)가 되니,
이것은 앞머리의 3법(法)으로 열 가지 일이 되며 밖에 있는 것이고,
5직(直)은 안에 있다.
제(諦)를 좇아 제(諦)가 따름을 지키는 것은 신(神)이 되고,
지키는 것은 호(護)가 되니,
이른바 법(法)이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제(諦)는 도(道)가 된다.
무상(無常)과 고(苦)와 공(空)과 비신(非身)과 부정(不淨)을 아는 것은 바른 소견이 된다.
무상을 사람이 상(常)으로 계교하며, 고를 생각하여 낙(樂)으로 삼고, 공을 헤아려 유(有)로 삼으며, 비신으로써 몸을 짓고, 부정을 계교하여 정(淨)으로 삼는 것은, 바로 바르지 못한 소견이 된다.
[8정도]
무엇이 바른 소견인가?
본래의 인연을 믿으며, 숙명(宿命)을 좇아 있음을 아는 것이, 바로 바른 소견이다.
무엇이 바른 대치(對治)인가?
분별하고 사유하여 능히 선한 뜻을 이루는 것이, 바로 바른 대치가 된다.
무엇이 바른 말인가?
선한 말을 지키고 법을 범하지 않아서 응하는 대로 말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바른 말이다.
무엇이 바른 업(業)인가?
몸소 행에 응하여 행을 범하지 않는 것을 바른 업이라고 한다.
무엇이 바른 치행(治行)인가?
도를 얻은 이를 따라 계행(戒行)을 가르치는 것을 바른 치행이라고 한다.
무엇이 바른 정진인가?
행하고 행하되 한다고 하는 생각이 없으며, 밤낮을 가리지 않아 중단하지 않고, 방편을 버리지 않는 것을 바른 정진의 방편이라고 한다.
무엇이 바른 생각인가?
늘 경(經)과 계(戒)를 향하는 것을 바른 생각이라고 한다.
무엇이 바른 정(定)인가?
뜻이 미혹되지 않고 또한 행을 버리지 않는 것을 바른 정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행으로 현자(賢者)로 하여금 8업행(業行)을 구족하게 하니, 이미 구족하였다면 곧바로 도를 행한다.
여덟 가지 바름[直]은 대치(對治)가 있고 행(行)이 있으니,
여덟 가지 바름을 행하여 마침내 뛰어난 요체(要體)를 얻어서 몸이 계(戒)를 범하지 않음이 바로 바른 대치가 된다.
혜(慧)와 신(信)과 인욕(忍辱)은 행하는 몸이 된다.
뜻을 지님을 바른 대치라고 하니,
이른바 생각하는 바가 없음이 바름[直]이 되고,
생각하는 바가 있음이 바르지 않음[不直]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