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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Maya)문명의 발상지 멕시코(Mexico)
멕시코 전도(全圖) / 멕시코 국기(國旗) / 멕시코 휘장(徽章/國章)
1. 멕시코의 자연환경과 고난의 역사
<1> 멕시코 개관(槪觀)
멕시코는 면적이 197만 ㎢로 우리나라 남한 면적의 약 20배나 되고 인구도 약 1억 3천만 명이나 되는 엄청난 대국이다. 인종을 보면 원주민인 인디오가 30%, 인디오와 백인의 혼혈인 메스티소(Mestizo)가 60% 및 기타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도(首都)는 멕시코시티(Mexico City)이다.
백인과 인디오 혼혈은 메스티소(Mestizo), 백인과 흑인의 혼혈은 물라토(Mulato), 인디오와 흑인의 혼혈은 잠보(Zambo)라는 호칭으로 부른다.
멕시코의 언어는 스페인어가 공용어지만 약 68개 언어를 공식 인정한다고 한다. 그런데 각 언어의 방언까지 포함하면 360여 가지의 언어가 있다고 한다. 1인당 국민소득은 약 10,000 달러(USD)로 가난한 나라에 속하며, 종교는 로마 가톨릭이 90%, 기독교(개신교)가 6%, 기타 4%는 토속 신앙이다.
<2> 멕시코 지형(地形)
멕시코는 북쪽으로 리오그란데(Rio Grande)강을 경계로 미국과 2.000km의 국경선을 맞대고 있고 남쪽으로 벨리즈, 과테말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약 1.250km에 달하는 가늘고 긴 바하캘리포니아(Baja California) 반도를 비롯하여 서쪽으로는 태평양과 면하여 있고 동쪽으로는 반원형의 멕시코만과 캄페체만, 그리고 쿠바 쪽으로 튀어나온 유카탄반도로 설명할 수 있겠다.
중북부 지방은 거대한 고원 산악지대, 북서 지방은 반사막 건조지대, 남쪽으로는 열대 우림 등으로 구분되며, 고도차에 따라 다양한 식생을 보여 열대 저지의 광활한 선인장지대와 밀림지역, 온대고원, 침엽수림, 만년설의 고산지대 등 다양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멕시코이다.
<3> 멕시코 고대문명(古代文明)
BC 12세기경 나타나는 올멕(Olmec)족으로부터 시작하는 멕시코의 고대문명은 동남부 지역의 마야문명(Maya: BC 500), 멕시코시티 북부의 떼오띠와칸(Teotihuacan), 와하카(Oaxaca) 지역의 사포텍(Zapotec), 그 후에 나타나는 뚤라(Tula) 지역의 똘텍(Toltec), 13세기 멕시코 중부에 나타나는 아즈텍(Aztec), 그 밖에도 군소 문명으로 호치칼코(Xochicalco), 따라스코(Tarasco), 또또낙(Totonac), 믹스텍(Mixtec) 등 다양한 문명들이 성쇠(盛衰)를 거듭한다.
이러한 다양한 문명들이 나타나는 것은 워낙 광대한 국토에다 험준한 산악지형과 불모의 사막 등이 가로막고 있어 상호 교류가 어려웠던 것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올멕(Olmec)족은 BC 1150년경 멕시코의 베라크루즈(Veracruz)와 타바스코(Tabasco) 지역에 번성하였던 고대문명으로, 바퀴를 발명하고 공놀이를 즐겼으며 상형문자를 창안하여 역사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들 문화의 특이한 점은 엄청나게 큰 석조 인두상(人頭像)을 제작하였다는 것이다.
두상의 크기는 높이가 1.17m에서 3.4m에 이르기까지 어마어마한 크기인데 큰 것은 무게가 30톤이나 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올멕족의 거대 석조 인두상(人頭像)
이러한 거대 두상(頭像)이 모두 17개나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신기하게도 얼굴 모습이 마야인들보다는 두툼한 입술 등 아프리카 흑인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라고 한다.
<4> 멕시코의 수난(受難)
멕시코는 1521년 스페인의 정복자 코르테스(Cortez)에 정복당하여 숱한 고난을 감수해야 하는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데 끈질긴 독립투쟁으로 스페인 식민통치 300년 만인 1821년에 독립을 쟁취한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이후, 1823년 공화제를 시작으로 1845년 미국과의 국경전쟁에서 패배하여 광대한 뉴멕시코, 애리조나 일부를 빼앗기고 텍사스는 강제 매각형식으로 미국에 양도할 수밖에 없는 등 역사의 흥망성쇠가 특히 극심하였으며 1911년부터 1920년까지 10년간 혼란의 혁명기(멕시코 혁명)를 거쳐 오늘의 멕시코가 탄생하게 된다.
♤ 멕시코 여행계획
2010년 2월, 대망의 멕시코 여행이 구체화 되었다.
딸이 미국 텍사스주 러벅(Lubbock/사위가 텍사스공대 교수)에 살고 있어 다니러 갔다가 멕시코를 여행하는 계획을 세웠다. 사위의 대학 동료인 멕시코 후아레스(Juares) 출신인 텍사스공대(Texas Tech) 암전문의(癌專門醫) 코버스 박사(Dr. Covers)의 조언을 듣기로 약속을 하고 집으로 찾아갔는데 예상외의 친절과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자세한 안내를 해 주어 무척 고마웠는데, 조언을 해주며 나의 배낭여행을 무척 부러워한다.
나의 계획은 텍사스 남부의 소도시 엘 파소(El Paso)에서 멕시코 후아레스(Juares)로 입국하여 치와와(Chihuahua)에서부터 기차로 여행할 계획이었는데 국경 부근의 치안이 불안하다고 극구 만류한다.
가급적, 기차는 타지 말 것, 별 5개인 아도(ADO) 버스가 가장 안전하며, 지하철, 택시, 시내버스 등 대중교통은 피하라는 등 나보다 훨씬 더 걱정이 많다. 할 수 없이 그 충고를 받아들여 계획을 대폭 수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북부 국경지대와 산악지역은 포기하고 비행기로 멕시코시티로 가서 거기서부터 칸쿤(Cancun)까지 여행하기로 결정을 바꾸었다.
주한(駐韓) 미군 군의관으로 우리나라에서 5년간 근무했고, 한국인 부인과 장성한 아들 셋을 둔 50대 중반의 코버스 박사는 한국어는 못했지만, 한국을 매우 좋아한다며 내 여행일정을 꼼꼼히 체크하고 멕시코 여행안내 책자(Frommer's Mexico 2005/英文版)까지 준다.
이번 내 여행을 위하여 방문을 허락하고 귀한 시간과 따뜻한 조언, 또 차와 과일까지 대접해 주어 무척 고마웠다. 여행 후 작은 선물로 감사를 표시하였지만, 지면을 통하여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린다.
여행안내 책자는 여행 내내 들고 다니며 큰 도움이 되었는데 단지 5년 전 출판 된 책이라 조금 문제가 되었다. 안내 책자는 최신 것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
♤ 후아레스(Juares)와 치와와(Chihuahua)
멕시코의 후아레스(Juares)는 미국 엘파소(El Paso)와 국경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도시인데 중남미인들이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주요 루트 중의 하나이며, 미국으로 밀수입되는 마약의 주요통로라고 한다.
특히 마약은 폭력조직들이 다툼을 벌여 항상 폭력이 난무하는데 이 지역은 개인 총기(銃器) 소지가 허락된 지역으로 수시로 총격전이 벌어지고 어떤 때는 하루에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단다.
치와와(Chihuahua)는 멕시코 북부 산간지대에 있는 도시로 멕시코의 31개 주(州) 중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주인 치와와주의 주도(州都)이다. 치와와주의 면적은 24만 ㎢가 넘으니 우리나라 남북한을 합친 면적보다 더 넓은데 산간지역이다 보니 인구는 340만 명 정도라고 한다.
견종(犬種) 중에서 가장 체구가 작은 애완견 ‘치와와’가 있는데 바로 이곳 멕시코 북부지역이 고향이다.
원래 야생이던 꼬마 개를 AD 10~12세기, 이 지역에 번성하던 톨텍(Toltec)족이 애완용으로 기르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크기는 성견이 되어도 체중이 1~3kg 정도이며 새끼일 때는 와인잔에 들어갈 정도로 작다.
치와와는 체구는 작지만, 무척 재빠르고 영리하며 사람을 잘 따라서 사랑을 받는 개다. 워낙 체구가 작으니 주인이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도 한다.
2. 거대한 수도(首都) 멕시코 시티(Mexico City)
<1> 소깔로(Zocalo) 광장
멕시코시티 소깔로 광장 / 우리 교민들 / 고풍스런 건물들
해발 2.200m의 고원지대에 있는 수도(首都) 멕시코시티는 인구가 2.300만여 명으로 엄청난 대도시며, 넘쳐나는 자동차와 사람들로 활기차고 혼잡하였다. 스페인 식민시대의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역사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세계에서 러시아의 크렘린 광장 다음으로 크다는 멕시코시티 중심부 소깔로 광장은 아스텍(Aztec) 시대, 호수 가운데에 둘레 10km의 장방형 인공섬을 만들고 난공불락의 아스텍 수도로 건설하였던 테노치티틀란(Tenochititlan)의 중심부였던 곳이다.
테노치티틀란이란 마야어로 ‘선인장의 땅’이란 뜻이라는데 ‘독수리가 선인장 위에 앉아있는 땅에 나라를 세울 것’이라는 부족의 전설에 따라 세워진 도시라고 한다. 현재 멕시코의 휘장(徽章/國章)도 선인장 위에 독수리가 앉아있는 모습이다. 그 이후 호수의 물이 마르고, 또 지반도 4~5m 내려앉아 당시의 흔적은 없지만 소깔로는 당시 대 피라미드와 왕궁이 있던 자리에 대성당(Catedral Metropolitana)이 들어서 있다.
또 멕시코 역사를 그린 수많은 벽화로 유명한 왕궁(Palacio Nacional), 멕시코 혁명 당시, 혁명군에게 무상으로 식사를 제공하였다는 초호화 마헤스틱 호텔(Hotel Majestic) 등이 에워싸고 있으며 엄청난 유물이 발견된 대신전 터(址)와 그 유물전시관(Templo Mayor & Museo del Templo Mayor)이 바로 옆에 있다.
그 밖에도 17~8세기에 지어진 바로크, 클래식, 세미클래식 건물들이 도심 전체를 메우고 있으며 골목마다 수많은 가게와 노점상들, 가난한 원색 인디오 복장의 사람들로 붐비고 있어 복잡하고 활기가 넘쳐 보인다.
멕시코시티는 워낙 넓어서 구분하기 곤란하지만 도심을 중심으로 보면 소깔로 중심의 다운타운, 대통령궁과 각종 위락시설이 잘 갖추어진 뽈랑코(Polanco), 차풀떼펙(Chapultepec), 아름다운 앙헬탑으로 유명한 소나로사(Zona Rosa) 지역이 서로 인접해 있다. 멕시코시티는 워낙 많은 관광명소(성당, 박물관, 유적유물 등)가 있어 모두 둘러보기는 어렵고 계획을 잘 세워 관광일정을 짤 필요가 있다.
<2> 시내 관광(City Tour)
미국에서 출발하기 전 인터넷으로 36달러에 예약한 5시간짜리 시티투어는 내가 있는 호텔이 도심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다시 36불을 더 내야 한단다. 울며 겨자 먹기로 결국 72불을 내고 시내 관광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 보면 별 필요도 없는 것을....
작은 시티투어 미니버스에 코스타리카인 중년부부, 나카라과인 가족 3명, 페루인 가족 4명 그리고 나를 포함하여 10명이 탔는데 가이드는 자신을 피카소라 불러 달라는 52세의 유쾌한 멕시코인이었다.
모두 스페인어를 사용하는데 나만 유일하게 영어로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 가이드는 스페인어와 영어로 동시에 설명을 하느라 고역을 치르는 모양이다. 또 연신 내 이름을 부르는데 발음이 이상하여 내 성당 본명인 ‘아우구스띠노(Augustino)’로 불러 달랬더니 다른 이들도 친근감을 느끼는 듯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졌다. 제일 먼저 들른 곳은 소깔로 광장의 대성당(Catedral Metropolitana)이다.
<3> 대성당(Catedral Metropolitana)
1567년에 짓기 시작하여 1788년에야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는 대성당은 바로크양식, 클래식, 네오클래식 등 다양한 건축양식이 총 망라된 대건축물인데 5개의 본당과 14개의 부속 교회로 이루어진 어마어마한 규모의 건축물이다.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심혈을 기울였다는 건물로, 우선 그 웅장한 규모에서부터 다양한 조각들로 가득 채워진 외관은 물론 내부의 그림이나 장식들까지 보는 이들이 넋을 빼앗기게 한다. 성당 입구 바닥에는 아스텍 신전(神殿)을 허물고 지었던 흔적을 볼 수 있도록 투명한 플라스틱을 몇 군데 설치하였는데 당시 신전의 기초 부분은 물론, 당시에 묻힌 해골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검은 십자고상(十字苦像) / 으리으리한 성당 내부 1,2
성당 내부 한가운데에는 첨탑 꼭대기에서부터 긴 줄을 내려뜨린 황금빛 진자(振子)가 바닥에 닿을 듯 드리워져 있다. 지반 침하와 화산, 지진으로 인한 건물의 기울어지는 정도를 알 수 있도록 진자끝의 움직임을 기록한 것이 1.500년대부터 기록되어 있었는데 한쪽으로 기울어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기이한 현상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곳에는 무수한 예술품 외에도 검은 십자고상(十字苦像)이 모셔져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4> 대 왕궁(Palacio Nacional)
광장의 다른 한쪽 면에는 웅장한 대 왕궁(Palacio Nacional)이 들어서 있는데 이 건물은 스페인 침공 후인 1563년 정복자 코르테스의 관저로 처음 건축되었다고 한다.
1659년 이후 2차례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재건축되었는데 1821년 독립이후 오늘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엄청난 길이의 거대한 이 건물은 4층 정도로 높지는 않지만 수많은 방과 아름다운 석조 계단, 넓은 안뜰이 있으며 특히 멕시코 독립투쟁 당시 이곳 발코니에서 이달고(Hidalgo) 신부님이 소깔로 광장에 모인 민중들에게 민중봉기를 촉구하는 연설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대 왕궁 / 건물 복도의 벽화
2층 3층 복도에는 19세기 멕시코 최고의 화가라는 디에고 리베라(Diego Livera)의 벽화로 유명한데 멕시코 신화시대부터 멕시코 혁명까지 수십 개의 거대한 벽화로 벽면이 채워져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이 왕궁은 현재 군사학교로 일부가 사용되고 있어 군인들이 출입을 제한하고 있었고 입장료는 무료이지만 들어갈 때 철저한 몸수색을 받아야 한다.
소깔로 광장의 다른 한쪽 면(대성당 건너편)은 정부 청사가, 부근에는 아름답고 고색창연한 건축물들로 가득 들어있다. 대성당의 바로 옆쪽에는 건물을 지으려고 터를 고르다 발견하였다는 아스텍 시대의 수도 테노치티틀란(Tenochititlan)의 주 신전이었던 대 피라미드 터가 발견되었는데 정복자 코르테스에 의하여 철저히 파괴되었고 피라미드에 사용되었던 석조물들은 해체되어 성당과 건물들을 건축하는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수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하는 현장은 현재 지표면 약간 아래쪽에 발굴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옆 건물에는 이곳의 출토 유물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있다.
<5> 문화의 거리 소나로사(Zona Rosa)
소나로사(Zona Rosa) 거리 한국식당 / 레포르마 거리(콜럼버스 동상) / 앙헤르 탑
핑크빛 건물들과 망고 가로수가 아름다운 소나로사(Zona Rosa)는 일명 핑크 존(Pink Zone)이라고도 부르는데 수많은 가게와 식당들, 또 역사적 상징물들이 많아 쇼핑과 먹거리의 명소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은 지역이다.
이곳에는 몇 군데 한국식당도 있어 한국 교민들과 관광객들이 꼭 찾는 장소라고 한다. 내가 점심을 먹었던 ‘민속촌(한글간판)’은 가장 음식이 맛깔스럽다는데 이곳에 서 만났던 전라남도(全羅南道) 광주(光州)가 고향이라는 40대의 한국교포는 멕시코 여행에서 주의할 점들을 귀가 아프게 들려준다.
내가 택시기사한테 사기(바가지요금과 가짜 거스름돈)를 당했다고 얘기했더니 이곳에서는 범행 대상으로 여행객이 표적이라며 택시조심, 전철조심, 밤길조심, 거스름돈 조심, 날치기 조심.... 등 한이 없다.
특히 택시는 종류가 다양한데 꼭 문 옆에 기사의 사진이 붙어있고 허가번호가 붙어있는 택시가 안전하고 양심적이며 나머지 택시들은 언제 기사가 강도로 변할지 모르고, 바가지요금은 기본이라고 한다. 자신은 멕시코에서 20년을 살았지만 절대로 대중교통은 이용하지 않고 밤길도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고마웠던 것은 100페소(만원)짜리 내 순두부찌개 식사비를 대신 지불해 주었고 향후의 여행일정을 살펴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는데 멕시코인 일행과 함께 서둘러 먼저 식당을 나가는 바람에 이름도 물어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식사를 마치고 1시간 정도 소나로사 지역을 걸어 다녔는데 엄청나게 높은 현대식 건물도 많고 건국의 아버지라는 후아레스 대통령, 이달고 신부, 잉카 마지막 황제 몬테수마(Monte Zuma) 등 역사적 인물들의 동상과 거리 이름들이 곳곳에서 눈에 보인다.
<6> 레포르마 거리(Paseo de la Reforma)
소나로사와 연이어 레포르마 도로가 있는데 따라 걷다보면 로터리 한가운데 멕시코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웠다는 유명한 앙헬탑이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높이가 45m나 된다는 오벨리스크 꼭대기에는 황금빛 날개를 편 천사가 있어 천사탑(Angel Tower/앙헬탑)이라 부르는데 이 탑의 아랫부분은 멕시코 독립투사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실물 크기로 설치되어있고 그 아래 안쪽에는 좁기는 하지만 공간이 있어 들어갈 수도 있다.
원래의 이름은 독립기념탑(Monumento a las Heroes de la Independencia)이고, 로타리 한가운데 있어 건너가는 보도가 없어 무단횡단해야 한다.
차가 드물 때 눈치껏 재빨리 건너야 하는데 경찰들이 빨리 건너가라고 알려주기도 한다. 이 탑은 멀리서 보면 날개를 편 황금빛 천사상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7> 차풀테펙(Chapultepec) 공원과 인류학(人類學) 박물관
피라미드 구조(인류학박물관) / 마야의 돌 달력 / 차풀테펙 공원
차풀테펙(Chapultepec) 지역은 멕시코시티 최대의 공원지역으로 멕시코의 대통령궁, 각국의 대사관들이 밀집해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각종 미술관과 박물관, 놀이터, 산책로, 동물원 등이 들어서 있어 휴식공간을 겸하고 있다. 또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인류학박물관(Museo Nacional de Antropoligia)도 이곳에 있는데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사와 유물들을 살필 수 있는 박물관이다.
<8> 멕시코시티 지하철(Metro)
레포르마 거리(가장행렬) / 지하철 / 지하철 노선도
내가 4일간 머물었던 호텔(Casa de la Condesa)이 지하철역 센트로 메디코(Centro Medico)역 부근이기도 했고, 서너 번 택시를 탔다가 바가지를 쓴 경험이 있어 사람들의 경고를 무릅쓰고 주로 지하철(Metro)을 많이 이용하였다. 9개의 노선이 그물처럼 얽혀있는 멕시코시티의 지하철은 항상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잡상인들이 득실거리는 등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이다.
맹인(盲人)이나 장애인들의 구걸이 끊일 새가 없는데 한번은 한 남성이 상처투성이의 윗몸을 벗은 채 바닥에다 천을 깔더니 승객들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메고 온 유리조각 자루를 천위에 쏟아붓더니 그 위에 맨몸으로 뒹굴고 난 후 구걸을 해서 몹시 놀란 적도 있다.
지하철 요금은 일률적으로 들어갈 때 2페소(200원 정도)짜리 표를 사서 출입구 구멍에 집어넣으면 쏙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데 언제, 어디서나 나올 때는 아무런 체크도 하지 않으니 그냥 나오면 된다.
여행 전 사람들이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항상 카메라는 가슴에 안고, 여권과 지갑이 든 어깨에 메고 다니는 가방은 옆구리에 꼭 낀 채, 항상 등 뒤를 경계해야 했다.
환승로(換乘路)도 미로 같아서 몇 번을 헤맸는지 모른다. 그러나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내가 만난 멕시코 인들은 모두 친절하고 상냥하였으며 길을 물으면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순박한 사람들이었다.
호텔에서 식사하면, 보통 80~120페소 정도인데 길거리나 시장 구석에서 골라 주문하면 2~30페소 정도로 특유의 멕시코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어 나는 주로 길거리 음식을 먹었다. 조금 냄새가 이상하긴 했지만 옥수수가루로 반죽을 하고 옥수수껍질로 싸서 찜통에 넣고 찐 ‘타마리스(Tamaris)’ 1개에 뜨거운 우유나 시원한 과일 음료수 한 잔을 곁들인 것이 훌륭한 한 끼가 되었다.
시티투어가 오후 4시에야 끝나 배가 고프다고 불평을 했더니 멕시코에서는 보통 오후 4시경에 점심을 먹는다고 한다. 진짜일까? 인류학박물관(유료) 관람을 포함한 시티투어 가격이 36불이면 괜찮은 편으로,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3. 성모발현 과달루페 성당(Basilica de Nuestra Senora de Guadalupe)
옛 성당 건물(Old Basilica) / 새 성당 건물(New Basilica)
다운타운(Downtown)에서 미니버스로 1시간 정도 북쪽으로 가면 시 경계선 부근에 ‘과달루페의 성모’로 유명한 과달루페(Guadalupe) 성당이 있는데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성당이라고 한다.
1531년 12월 9일, 미사를 보러 가던 원주민 인디오 ‘후안 디에고(Juan Diego/57세)’는 테페약 언덕에서 청록색 망토를 걸친 성모님을 만난다.
성모님은 인디언 부족어로 나는 ‘과달루페 성모’라 불리기를 원한다고 하시며
‘어려울 때 정성을 다해 나를 찾는 이들에게 나의 사랑, 자비, 도움과 보호를 드러내도록 내가 지금 있는 이 자리 테페약 언덕에 성당을 짓도록 하여라.’라고 말씀하신다.
과달루페(Guadalupe)는 아스텍(Aztec) 인디오 언어의 한 가지인 나후탈(Nahuatl)어로 ‘뱀의 머리를 짓밟는 분’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테 콰틀라소페우(Te Coatlaxopeuh)’가 ‘테 과틀라소페우(Te Quatlaxopeuh)’로 되었다가 영어로 번역하면서 ‘과달루페(Guadalupe)’가 되었다고 한다.
마야인들이 신성(神聖)하게 여기고 섬기던 뱀 신으로 깃털 달린 뱀 신인 케찰코와틀(Quetzalcohuātl)이 있는데 1세기 전후 융성하였던 멕시코시티 인근의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에서 처음 발견되고, 유카탄반도 중부 치첸잇사(Chichen Itza)에서 발견되는 쿠쿨칸(Kukulkan)도 뱀 신이다. 영어로는 Feathered Serpent(날개 달린 뱀).
당시 멕시코 인디오들은 세 가지 모양의 뱀의 형상과 조각들을 숭배하고 그 밖에도 온갖 잡신들을 섬겼으며 그 신들에게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을 꺼내 제물로 바치고 있었다.
사실 성모님은 마야인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그 뱀의 머리를 짓밟으러 오신 것이다. 디에고는 주교관으로 달려가 성모님을 만난 이야기를 전하지만 스페인 주교 ‘후안 데 수마라가((Juan de Zumarraga)’는 믿지 않고 미심쩍어하며 증거를 가지고 오라고 한다. 다시 테페약 언덕으로 간 디에고는 성모님을 만나 그 말을 전했고, 성모님은 언덕 위에 가서 피어있는 장미꽃을 주워오라고 한다. 바위투성이의 산일뿐더러 겨울철로 장미가 피는 계절이 아니었지만 언덕 위에는 장미꽃이 만발하여 있었다. 장미꽃을 주워 내려오자 성모님은 디에고가 펼쳐놓은 틸마(Tilma/멕시코인들의 망토:/거친 선인장 줄기로 짠 천) 위에 가지런히 장미를 놓아주며 가는 도중에 절대로 펼쳐보지 말라고 한다.
디에고가 주교님 앞에 가서 틸마를 펼치자 멕시코에서는 자라지 않는 주교의 고향인 스페인 카스티야(Castilla)산 장미 꽃송이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며 꽃을 쌌던 디에고의 틸마에 성모님의 모습이 새겨져 나타나는 기적이 일어난다.
성모발현 조형물 / 쏟아지는 장미꽃 / 과달루페 성모님
틸마에 새겨진 성모님은 1m 45cm의 자그마한 키에 피부색은 인디오처럼 거무스름한 황갈색이고 머리카락은 검은색이며 머리에서 발아래까지 길게 내려온 청록색 밝은 망토를 입은 모습이었다.
1754년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과달루페의 성모(Our Lady of Guadalupe 혹은 Virgin of Guadalupe)를 북아메리카 수호성인으로 선포하면서 화해의 모후, 희망의 모후, 위로의 모후, 토착화의 모후, 사랑과 자비의 모후로 선포하였다.
잔인한 토속신앙(土俗信仰)과 스페인 식민통치의 고통에서 구원해 주시려고 발현하신 성모님은 수많은 멕시코 인디오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켜 토속신앙과 식민통치의 고통을 위로받았는데 다른 면으로 생각해 보면 스페인이 식민통치의 한 수단으로 이용하였을지도 모르겠다.
멕시코인들의 ‘과달루페 성모’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가톨릭 신앙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전국 어디를 가나 성당마다 과달루페 성모님을 모시고 있고 성당 이름도 과달루페를 딴 성당이 수도 없이 많다.
내가 방문했을 때도 신도들이 굉장히 먼 성당 정문 바깥부터 성모님을 모신 제단까지 묵주기도를 바치며 무릎걸음으로 가는 행렬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스페인이 멕시코 식민통치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을지도 모를 ‘과달루페 성모’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멕시코 독립운동은 물론, 멕시코 혁명 때에도 성모님이 새겨진 휘장을 높이 받들고 성모님이 새겨진 모자를 쓰고 독립투쟁과 혁명에 나서서 민중의 커다란 구심점과 힘이 되었다고 한다.
매년 수십만 명의 성지 순례자들이 찾아오는 이곳은 성모님이 발현하셨던 테페약 언덕 위에 자그마하고 아름다운 성당이, 그 아래 광장에는 1709년 다시 세워진 아름답고 웅장한 바로크식 옛날 성당건물(Old Basilica)이 있다. 그런데 옛 성당 건물은 지반침하(地盤沈下)로 붕괴의 위험이 있어 현재는 박물관과 공연장 등으로 사용되고 바로 옆에 조개껍질을 엎어놓은 형상의 엄청난 규모의 새 성당(New Basilica)을 지어 미사를 봉헌한다. 디에고의 틸마에 새겨진 성모화(聖母畵) 원본도 이곳에 모셔져 있다.
테페약 언덕을 오르는 아름다운 석조계단은 꽃과 장미로 뒤덮인 언덕 모습과 어울려 환상적이었고 옆쪽 절벽 아래에는 디에고가 성모님을 만나는 모습의 조각이, 또 조금 떨어져 디에고가 주교님 앞에서 틸마를 펼치는 모습이 동상으로 세워져 있다. 테페약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성당의 모습은 정말 그림 같이 아름다워 가슴 가득 감동을 주었다. 친지들에게 선물 할 묵주와 목걸이를 비롯한 성물 몇 점을 산 뒤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 틸마에 그려진 성화(聖畫)
1979년, 미국의 과학자들은 적외선을 이용하여 틸마(Tilma)에 새겨진 성모님 모습을 면밀히 조사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 성모님의 눈을 우주광학 기술로 2.500배 확대하여 보았더니 성모님 눈의 홍채(紅彩)와 동공(瞳孔)에 장미꽃을 쌌던 틸마를 펼치는 순간과 거기에 함께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나타나 보였다고 한다.
케찰코와틀(뱀) 피라미드 / 성모님 눈동자 홍채에 나타난 사람들 1,2
과학자들은 더욱더 신중한 조사를 하고 내린 결론은
“인간의 손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다. 성모의 눈은 즉석카메라처럼 눈앞에 비친 순간의 형상을 그대로 포착하였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조사를 중단했다고 한다.
또, 이 그림은 붓질을 한 흔적이 전혀 없으며 사용된 물감도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염료로 밝혀졌고, 선인장 줄기로 짠 거친 천임에도 안으로 전혀 배어들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색이 바래거나 변질도 없었으며 식물성도, 동물성도 아닌 전혀 새로운 물질로 현대 과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不可能)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