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그리움에 든다면, 그대 삶도 영원하리
남진원
도덕경 33장에 ‘知人者智, 自知者明’이라는 구절이 있다.「사람을 알게 됨은 지혜로움으로 다가서는 길이지만 자신을 알게 됨은 밝아지는 길이다. 」이런 뜻이다.
좀 더 부연해 보자. 배우고 익히는 것은 즐거움이면서 사람을 통해, 세상을 통해 지혜로움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공부는 스스로 밝게 깨어나는 일이다. 인간은 하나의 작은 우주이다. 자신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작은 우주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혜를 넘어 밝음의 경지에 들어서는 것일 것이다. 불가에서 깨우치려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말이 있다. ‘不失其所者久, 死而不亡者壽’ 란 말이다.
사람이 그 지위나 자리를 잘 지키면 오래갈 수는 있어도 영원하지는 못하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는 삶을 산 자는 몸은 죽어도 영원한 삶을 사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그리움’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사람을 녹일 정도로 맹렬한 폭염이 다가오더니 웬일인가. 얼마 못 가서 일색을 이룬 단풍. 내가 사는 칠성산의 산 굽이굽이 그득히 물을 들이고 말았으니….
인간사의 아름다움보다 더 대단한 미적 존재인,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물들여놓은 방터골. 백두대간의 한 허리인 금수강산 한 줄기가 오늘은 내 마음 한 켠에 떡하니 자리 잡았겠다. 아픔도 미움도 사랑도 다 녹여서 버무려놓았나 보다. 불에 덴 듯한 단풍을 보고 있으려니 사랑의 환희로움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애절함인가. 어찌 되었든 가을의 불길이 내 그리움마저 붉게 태우고 있으니 말이다.
단풍
남진원
봄여름 그 기백, 푸르게 일렁이더니
이유 있는 말 있었네, 굽이굽이 불붙는 산
뉘 있어 뜨거운 사랑 저리 맑아 혼절했나.
인생사, 사랑에 물들지 않은 삶이 있으랴. 고려 조선을 이어오는 시의 거장들인 홍랑, 정지상, 원천석을 중심으로 글을 열어보기로 하겠다.
조선 최고 지성의 미인 홍랑이 최경창에게 보낸 시조에는 사랑의 정이 올올이 감겨 있다. 시조를 통해 연모하는 정을 전했을 뿐인데도 그것은 신선한 충격, 그 자체이다.
묏버들 갈아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에
자시는(주무시는) 창밧긔 심거두고 보쇼셔
밤비예 새닙곳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쇼셔.
- 홍랑 -
그리움이 절절히 배인 조선 시대 기녀 홍랑의 작품이다. 실하고 좋은 산버들의 가지를 골라 꺾어서 님이 계신 곳에 보내니 주무시는 창 밖에 심어두고 보아 달란다. 혹시 밤에 비가 내려서 심어둔 버드나무 가지에 새잎이 돋아나거든 자신인 줄로 알아달라는 것이다.
삼당시인, 최경창에 대한 연모의 정을 그린 작품이다. 최경창이 북도평사라는 벼슬을 받고 북쪽 지방인 경성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홍원의 관기였던 홍랑은 따라가서 시중을 들었다. 그때 최경창을 사랑한 홍랑은 최경창이 서울로 돌아가자, 쌍성까지 가며 배웅하였다는데 돌아가는 길에 함관령에 이르렀다고 한다.
때마침, 날이 저물고 마침 비가 내렸다. 그때 버들을 보고 최경창에 대한 그리움을 시조로 써서 보냈는데 그 시조가 ‘묏버들…’이란 시조이다. 그 후 최경창이 병으로 사망하자, 홍랑은 다른 사내들이 자신을 넘볼까 우려하여 얼굴을 못 쓰게 만들고 그의 무덤을 지키며 일생을 보냈다.
홍랑이 죽자, 최씨 문중에서는 그녀의 사랑을 고귀하게 여겨, 최경창의 무덤 아래에 그녀의 무덤을 썼다고 한다.
한 생을 이어가는 삶에는 누구에게나 함부로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홍랑은 미천한 기생의 신분이었음에도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존귀함이 어려 있다. 홍랑의 시조가 가녀린 여인의 속삭임처럼 들려오는 것 같으나 시의 구절마다 스민 뜨겁고 아린 사랑의 정조는 아무나 할 수 없는 비범하고도 연연한 가락이다. 그러하기에, 홍랑의 사랑은 싱그러움과 약동하는 봄의 활기처럼 날렵하면서도 무게가 있다.
원래 버들은 물이 있는 곳에서 잘 자란다. 버들을 보낸다는 것은 사랑의 생명을 흘러 보낸다는 뜻이다. 간절한 마음의 표징을 버들잎으로 대신한 것이다.
고려시대 저 유명한 정지상의 한시 ‘송인(送人)’ 역시 사랑의 아픔이 묻어나는 한시이다. 봄빛의 싱그러움 속에 이별의 아픔을 극대화하였다.
雨歇長提草色多 (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 (송군남포동비가)
大洞江水何時盡 (대동강수하시진)
別漏年年添綠波 (별루년년첨록파)
- 정지상 ‘送人’ -
비 개인 긴 강둑에 풀색 무진 짙푸르건만
임 보내는 남포에는, 슬픈 노래만 떠다니네
대동강 물은 언제 마를 것인가?
해마다 이별 눈물 보태는 것을.
평양의 대동강 언덕에는 푸른 생명감으로 봄빛이 가득하다. 그러나 사랑하는 임을 떠나보내야 하니, 이별의 슬픔을 노래할 수밖에 없다. 대동강 강물이 마를라야 마를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해마다 연인들의 이별로 강물에 눈물이 더해지기 때문이란다.
허황된 과장이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전해오는 것은 그만큼 이별의 정서를 극대화한 데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홍랑의 시조에서처럼, 슬프고도 이별의 정한이 배어 있는 7언 절구 한시이다.
홍랑과 정지상은 한 시대를 뛰어넘는 인물이다. 작품 역시 한 사람은 민족 고유의 시조 작품이고 다른 사람은 한시 작품이다. 두 사람의 작품에 흐르는 공통적인 한의 정서는 비슷하다. 홍랑은 버들잎을 통해, 정지상은 눈물을 통해 한의 정서를 나타내었다.
홍랑에게 점수를 후하게 주고 싶은 점은, 홍랑은 작품에서 은근과 끈기의 민족 고유 정서가 배어있다. 뿐만아니라 희망의 끈을 연결시켜 놓은 점이 정지상의 작품과는 다르다. 정지상은 희망보다는 한을 고조 시키는데 더 강조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움에 대한 색다른 이야기를 또 하려고 한다. 늘 가까이하던 사람들과의 이별이 아픈 것은 왜일까. 만화방창의 봄날이면 화원에는 나비와 벌이 쉼 없이 날아들지만 입추가 지나 입동과 동지에 접어들면 적막과 쓸쓸함이 감돈다. 계절이 지나가면 옛 추억에 대한 따뜻함은 그리움으로 전해온다. 그리움은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지만 마음을 허전하게 하는 것을 어찌하랴.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로다
오백년 왕업이 牧笛에 부쳤으니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 겨워하노라.
- 원천석 -
조선 태종 임금의 스승이었던 원천석의 시조이다. 원천석은 고려 임금을 모시던 사람으로 조선이 개국하자, 강원도 원주의 치악산에 은거하였다.
어느 가을날, 원천석은 고려의 수도인 개성을 찾아가 보니 화려하던 고려의 왕궁은 간 곳 없고 그 자리에 풀만 우거진 것을 보고 시절의 변화와 왕조의 덧없음을 노래하였다. 오백 년 왕조도 운수가 다해 왕궁터엔 풀만 무성하고 목동의 피리소리만 스치고 있는 것이다.
삶과 죽음, 가고 오는 것, 기쁨과 슬픔 모두가 인간사의 일들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세월 속에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것이다. 원천석이 고려 궁터를 찾은 것은 옛것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음이 아니겠는가. 세월이 무상하게 변해도, 한 번 맺은 인연의 고삐를 놓지 않는 작자의 아름다운 심지를 읽을 수 있다. 그렇다. 세월이 변해도 곧은 지조를 마음에 새기면서 살았던 사람들은 오늘 우리들의 마음에서도 새롭게 살아나고 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을 마음의 뼈에 새기지만 아름답지 않은 것들은 바람결에 티끌처럼 흘려보낸다. 무수하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뼈에 새길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은 몇이 되지 않는다. 아름다운 사람은 빛과 그림자처럼 남아 그리움을 불러들인다.
세월 속에서 늙어가는 사람들. 늙어가면서 그리움이야말로 삶을 의미 있게 만든다. 사람들은 정을 준 사물에 대해 그리워하고 정든 사람에 대해 그리움을 안고 살아간다. 노자의 도덕경 33장에 나오는 말처럼 말이다. 또한 다른 이에게 그리움의 대상이 된 사람은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늘 살고 있으니 부러운 대상이다. 이제야, 원천석이 고려 개경을 다시 돌아보는 깊은 뜻을 나도 조금은 알 것 같다.
누군가의 그리움에 든다면, 그대 삶도 영원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