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입제불경계지광명장엄경 제3권
2. 여래께서 증득하신 보리(1)
[여래께서 증득하신 보리]
묘길상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그렇다면 여래께서 증득하신 보리는 무엇입니까?”
[근본과 머루름이 없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묘길상이여, 여래는 근본이 없고 머무름이 없기 때문에 보리를 얻었느니라.”
묘길상이 아뢰었다.
“무엇을 근본이라 하며, 무엇을 머무름이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묘길상이여, 있는 몸을 근본이라 하고, 허망한 분별에 의지하는 것을 머무름이라 한다.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는 보리가 평등하기 때문에 그 지혜가 모든 법에 평등하나니, 그러므로 근본이 없다 하고 머무름이 없다고 한다.
여래께서는 그러하기 때문에 현재에 정각을 이루신 것이다.
[적정ㆍ근적]
묘길상이여, 알아야 한다.
모든 법은 적정(寂靜)하고 근적(近寂)하다.
어떤 것을 적정이라 하며, 어떤 것을 근적이라 하는가?
안을 적정이라 하고, 밖을 근적이라 한다.
왜냐하면 눈이 공이기 때문에 나[我]와 내 것[我所]의 자성도 공이니 이것을 적정이라 하며,
눈의 공임을 알고는 색을 취하지 않나니 이것을 근적이라 한다.
귀가 공이기 때문에 나와 내 것의 자성도 공이니 이것을 적정이라 하며,
귀의 공임을 알고는 소리를 취하지 않나니 이것을 근적이라 한다.
코가 공이기 때문에 나와 내 것의 자성도 공이니 이것을 적정이라 하고,
코의 공임을 알고는 냄새를 취하지 않나니 이것을 근적이라 한다.
혀가 공이기 때문에 나와 내 것의 자성도 공이니 이것을 적정이라 한다.
혀의 공임을 알고는 맛을 취하지 않나니 이것을 근적이라 한다.
몸이 공이기 때문에 나와 내 것의 자성도 공이니 이것을 적정이라 하고,
몸의 공임을 알고는 접촉을 취하지 않나니 이것을 근적이라 한다.
뜻이 공이기 때문에 나와 내 것의 자성도 공이니 이것을 적정이라 하고,
뜻의 공임을 알고는 법을 취하지 않나니 이것을 근적이라 하느니라.
[자성이 밝다]
묘길상이여, 보리의 자성도 밝으며, 마음의 자성도 밝다.
무엇 때문에 자성이 밝다 하는가?
이른바 자성은 오염이 없기 때문에 허공과 같으며,
허공의 자성은 다 두루하여 허공의 자성과 같나니, 필경 자성(自性)이 본래 밝기 때문이니라.
[들임도 없고 냄도 없다]
또 묘길상이여, 보리는 들임[入]도 없고 냄[出]도 없다.
무엇을 들임도 없고 냄도 없다 하는가?
이른바 섭취함이 없기 때문에 들임이 없다 하고, 버림이 없기 때문에 냄이 없다 한다.
여래는 들임도 없고 냄도 없음을 증득하고 그 증득함과 같이 곧 진여와 함께하여 피차가 없나니, 모든 법이 피차를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현재에 정각을 이루신 것이니라.
[상이 없고 반연이 없다]
또 묘길상이여, 보리는 상이 없고 반연이 없다.
어떤 것을 상이 없다 하며, 반연이 없다 하는가?
이른바 안식(眼識)은 얻는 바가 없나니 이것을 상이 없다 하고,
색은 보임이 없나니 이것을 반연이 없다 한다.
이식(耳識)은 얻음이 없나니 이것을 상이 없다 한다.
소리는 들림이 없나니 이것을 반연이 없다 한다.
비식(卑識)은 얻음이 없나니 이것을 상이 없다 하고,
냄새는 맡아짐이 없나니 이것을 반연이 없다 한다.
설식(舌識)은 얻음이 없나니 이것을 상이 없다 하고,
맛은 맛보임이 없나니 이것을 반연이 없다 한다.
신식(身識)은 얻음이 없나니 이것을 상이 없다 하고,
접촉은 깨달아짐이 없나니 이것을 반연이 없다 한다.
의식(意識)은 얻음이 없나니 이것을 상이 없다 하고,
법은 분별됨이 없나니 이것을 반연이 없는 것이라 한다.
묘길상이여, 이 평등은 모두 이 모든 성인의 경계요, 모든 삼계는 성인의 경계가 아니니, 그러므로 성인의 경계를 행해야 하느니라.
[3륜이 끊어졌다]
또 묘길상이여, 니 3세가 평등하기 때문이요, 3륜(輪)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3륜이란,
이른바 과거의 마음은 구르지 않고,
미래의 알음알이[識]는 취함이 없으며,
현재의 뜻은 움직임이 없다는 것이다.
저 마음과 뜻과 알음알이는 비록 머무르는 곳에 있으나,
분별이 없으면서 분별을 떠나지 않고,
헤아림[計度]이 없으면서 헤아림을 떠나지 않는다.
과거에 이미 지음이 없고, 미래의 받아들임이 없으며, 현재의 희론(戱論)이 없느니라.
[함이 없다]
또 묘길상이여, 보리는 몸으로 얻을 것이 아니니 함이 없기 때문이다.
몸으로 얻을 것이 아니란, 이른바 안식이 알지 못하고, 이식ㆍ비식ㆍ설식ㆍ신식ㆍ의식이 알지 못하나니, 마음과 뜻과 알음알이로 알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곧 이것이 함이 없음이다.
함이 없음이란, 이른바 남이 없고 머무름이 없으며 멸함이 없고 3륜이 청정한 것이니, 그것이 함이 없음과 같다.
유위도 그렇게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일체 법은 자성이 없기 때문이며, 법이 자성이 없으므로 곧 법은 둘이 없느니라.
[차별이 없는 구이다]
또 묘길상이여, 보리는 차별이 없는 구(句)이다.
어떤 것을 차별이 없다 하며, 어떤 것을 구(句)라 하는가?
이른바 생각 없음이 곧 차별 없음이요 진여가 곧 구이며,
머무름 없음이 곧 차별 없음이요 법계가 곧 구이며,
갖가지의 성품 없음이 곧 차별 없음이요 실제가 곧 구이며,
반연됨이 없음이 곧 차별 없음이요 움직임 없음이 곧 구이며,
공이 곧 차별 없음이요 상 없음이 곧 구이며,
심사(尋伺) 없음이 곧 차별 없음이요 생각 없음이 곧 구이며,
구원(求願) 없음이 곧 차별 없음이요 중생 없음이 곧 구이며,
중생이 자성 없음이 곧 차별 없음이요 허공이 곧 구이며,
소득 없음이 곧 차별 없음이요 무생(無生)이 곧 구이며,
멸함 없음이 곧 차별 없음이요 무위가 곧 구이며,
소행 없음이 곧 차별 없음이요 보리가 곧 구이며,
적지(寂止)가 곧 차별 없음이요 열반이 곧 구이며,
취함 없음이 곧 차별 없음이요 무생(無生)이 곧 구이니라.
[몸과 마음을 여실히 깨닫는 것이며, 말이 없다]
또 묘길상이여, 보리는 몸이 증득할 것이 아니니,
왜냐하면 몸은 비록 생김이 있으나 생각이 없고 움직임이 없어 초목이나 기왓장과 같으며,
그 마음은 허깨비처럼 공허하여 실답지 않고 지음이 없기 때문이다.
묘길상이여, 만일 몸과 마음을 여실히 깨달으면 그것이 곧 보리이며,
세속의 행은 승의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승의제 가운데에는 몸도 마음도 없으며,
법도 없으며 법 아닌 것도 없으며,
실도 없고 실 아닌 것도 없으며,
진(眞)도 없고 망(妄)도 없으며,
말도 없고 말 아닌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일체의 법이 다 보리이다.
왜냐하면 보리가 처소가 없고, 말로 표현할 것이 아니니,
허공이 처소가 없기 때문에 또한 지음도 없고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어서 말로 표현할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여래는 보리가 처소가 없고 지음이 없으며,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어서 말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실답고 이치답게 자세히 관찰할 때에는 저 일체 법은 다 말이 없다는 것이다.
보리도 그와 같아서 여실히 관찰할 때에는 말이 없다.
왜냐하면 말은 실이 없고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기 때문이다.
[취함이 없고 간직함이 없다]
또 묘길상이여, 보리는 취함이 없고 간직함이 없다.
어떤 것을 취함이 없다 하며, 어떤 것을 간직함이 없다 하는가?
눈을 잘 알기 때문에 취함이 없다하고, 빛깔에 얻음이 없음을 간직함이 없다 하며,
귀를 잘 알기 때문에 취함이 없다 한다. 소리에 얻음이 없음을 간직함이 없다 하며,
코를 잘 알기 때문에 취함이 없다 하고, 냄새에 얻음이 없음을 간직함이 없다 하며,
혀를 잘 알기 때문에 취함이 없다 하고, 맛에 얻음이 없음을 간직함이 없다 하며,
몸을 잘 알기 때문에 취함이 없다 하고, 감촉에 얻음이 없음을 간직함이 없다 하며,
뜻을 잘 알기 때문에 취함이 없다 하고, 법에 얻음이 없음을 간직함이 없다 한다.
여래는 이 취함이 없고 간직함이 없기 때문에 보리를 현재에 증득하고,
보리를 증득하고는 눈이 취함이 없고 색이 취함이 없으며 눈의 알음알이[眼識]에 머무름이 없다.
귀가 취함이 없고 소리에 얻음이 없으며 귀의 알음알이에 머무름이 없다.
코가 취함이 없고 냄새에 얻음이 없으며 코의 알음알이에 머무름이 없다.
혀가 취함이 없고 맛에 얻음이 없으며 혀의 알음알이에 머무름이 없다.
몸이 취함이 없고 접촉에 얻음이 없으며 몸의 알음알이에 머무름이 없다.
뜻이 취함이 없고 법에 얻음이 없으며 뜻의 알음알이에 머무름이 없고,
알음알이에 머무름이 없기 때문에 곧 여래ㆍ응공ㆍ정등정각이라 하는 것이다.
[공]
또 묘길상이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중생들은 네 가지 법을 그 마음에 둔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색(色)ㆍ수(受)ㆍ상(想)ㆍ행(行) 등을 일체 중생들은 그 마음에 둔다.
즉 중생들이 그 네 가지 법을 마음에 두기 때문에
여래께서는 불생불멸과 아는 바 없음을 말씀하시고,
보리를 건립하여 공이라 하셨으며,
보리가 공이기 때문에 일체 법이 공이요, 여래도 공이며, 이 공 때문에 정각을 이루신 것이다.
묘길상이여, 공이기 때문에 증득한 보리도 공이라는 것이 아니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법에는 한 이지(理智)가 있으니,
이른바 공성(空性)이며, 보리가 공이 아니기 때문에 보리는 둘이 없다.
그러므로 보리와 공은 다 종류가 없으니,
왜냐하면 저 모든 법은 본래 둘이 없기 때문에 형상이 없고 종류가 없으며,
이름이 없고 모양이 없으며, 마음과 뜻과 알음알이를 떠났고,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행이 없으면서 행하지 않음이 없고, 쌓임이 없으며 문자가 없고 망실(忘失)됨이 없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공이어서 취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승의제가 아니니, 이른바 승의제 가운데에는 얻을 수 있는 법이 없는 것을 공이라 하는 것이다.
묘길상이여, 비유하면 허공과 같기 때문이니,
허공이라 하는 것은 말이 없기 때문에 허공이라 하는 것과 같다.
묘길상이여, 공도 또한 그와 같아서
공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른바 말이 없기 때문에 공이라 한다.
만일 이렇게 알면 일체 법은 이름이 없는 것이니, 이름이 없기 때문에 저 일체 법을 임시로 이름을 시설한 것이다.
묘길상이여, 이름은 방위에 있지 않으면서 방위를 떠나지 않으며,
이름이 방위에 있지 않으면서 방위를 떠나지 않기 때문에 법의 이름을 말하지마는,
그 말하는 법도 방위에 있지 않으면서 방위를 떠나지 않는 것처럼,
저 일체 법도 또한 그와 같다.
여래는 본래 그와 같이,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일어남도 없고 상이 없으며,
마음과 뜻과 알음알이를 떠났고 문자도 없고 음성이 없음을 알며,
그 아는 대로 해탈도 그러하나니,
묘길상이여, 일체 법은 결박도 해탈도 없음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