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법집경 제5권
[오로지 전심전력으로 추구하는 법]
이때에 혜명 라후라(羅睺羅)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법집을 말하고자 하면 반드시 수지법(受持法)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수지함을 따라야 법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반드시 추구해야 하며, 오로지 전심전력으로 법을 추구해야 최상이 됩니다. 왜냐하면 중요한 법을 말미암아야 법을 얻기 때문입니다.
중식(重食)을 말미암지 않고 얻은 바른 법의 이익은 목숨을 버려도 반드시 오는 과보가 있는 것을 압니다.
관(觀)할 것은 아니지만 그 과보를 얻어 항상 조용한 곳을 구하고 마음을 어지럽힐 정도로 시끄러운 것을 싫어합니다.
안온함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계율을 잘 지키는 사람이고,
공경함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교만하지 않은 사람이며,
즐거운 실천을 가까이하는 사람은억세거나 사납지 않은 사람이고,
유연한 마음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단단한 채찍을 쓰지 않는 사람입니다.
적정한 마음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마음에 염착하지 않는 사람이고,
죄를 드러내는 사람은 악을 덮거나 숨기지 않는 사람이며,
모든 보시를 즐기는 것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아끼거나 질투하지 않는 사람이고,
계율 지키는 것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계율을 범하지 않는 사람이며,
인욕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성내거나 원한을 품지 않는 사람이고,
정진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게으르지 않는 사람이며,
선정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마음이 산란하지 않은 사람이고,
지혜를 가까이하는 사람은 어리석지 않은 사람이며,
다문(多聞)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들은 것이 적은 사람이 아니고,
바른 생각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그릇된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며,
선업을 닦는 것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나쁜 업을 행하지 않는 사람이고,
불법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세간의 법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며,
공(空)함을 좋아하는 것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그릇된 견해로 물러나거나 빠져들지 않는 사람이고, 계율 지키는 것을 가까이하는 이는 스스로 돌아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계율을 지키는 법]
또 세존이시여, 만약 사람이 계율을 지키면 이러한 사람에게는 곧 법이 있습니다.
무엇이 계율입니까?
세존이시여, 일체계(一切戒)는 모두 세 가지 계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세 가지입니까?
증상계(增上戒)와 증상정(增上定)과 증상혜(增上慧)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이 이 세 가지 계에서 배운다면 이 사람은 이미 모든 대승계(大乘戒) 가운데서 배우는 줄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이 보살마하살의 증상계입니까?
세존이시여, 보살은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의 계율을 지키지만 바라제목차의 계율로써 맑고 깨끗해지는 것은 아니며 보살계(菩薩戒)에 의지해 닦고 지킴으로써 보살의 모든 위의와 경계를 성취합니다.
그러나 위의로써 맑고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고 보살의 위의의 경계에 머물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작은 허물과 마음에 두려움을 품고 보살의 지혜에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보살의 지혜입니까?
보살이 여실하게 일체법을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그 모든 업의 번뇌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보살의 지혜라고 이름합니다.
무엇이보살의 경계입니까?
공하여 여러 가지로 분별되지 않는 경계를 말합니다.
평등한 계율을 알면 계율을 배우며, 공하여 평등함을 알면 계율을 배웁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공하여 평등함을 알면 계율을 배운다고 말합니다.
무상(無相)이 평등한 것을 알고, 무원(無願)이 평등한 것을 알며, 무행(無行)이 평등한 것을 알고, 나고 죽음 없는 것이 평등한 줄 알면 계율을 배우는 것이니, 이러한 까닭으로 평등함을 알면 계율을 배운다고 말합니다.
또 세존이시여, 보살은
‘내가 지금 바라제목차의 계율로써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받아 지니게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보살의 증상계학이라고 이름합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이 보살의 증상정학입니까?
네 가지 선(禪)과 네 가지 공과 삼마발제를 말합니다.
보살은 또
‘나는 지금 증상정학으로써 모든 중생을 성취하게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보살의 증상정학이라고 이름합니다.
무엇을 보살의 증상혜학이라고 합니까?
보살의 18공(空)을 말합니다.
보살은 또
‘나는 지금 이 18공법으로써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알고 보게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보살의 증상혜학이라고 이름합니다.
세존이시여, 보살의 이 세 가지 배움은 모두 모든 배움을 포함합니다.
또 세존이시여, 만약 어떤 보살이 중생을 보호하면 이 보살은 맑고 깨끗한 계율을 지키는 것이며,
만약 맑고 깨끗한 계율을 지키면서 계율을 지키는 데 집착하지 않으면 이 보살은 계율 지키는 일에 의지하여 모든 중생의 마음을 만족시킬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출가하여 계율을 지키는 보살은 모든 사물에 사랑하거나 집착하지 않습니다.
적정한 곳에서 계율을 지키는 보살은 모든 언어에서 즐거운 마음을 내지 않으며,
편안하게 앉아 계율을 지키는 보살은 모든 말하는 음성에 즐거운 마음을 내지 않습니다.
선정(禪定)에서 계율을 지키는 보살은 모든 경계에 즐거운 마음을 내지 않습니다.
해탈에서 계율을 지키는 보살은 모든 태어나는 처소에 즐거운 마음을 내지 않습니다.
법을 듣고서 계율을 지키는 보살은 세간에서 하는 말에 즐거운 마음을 내지 않습니다.
설법하면서 계율을 지키는 보살은 백천만억 유순(由旬)에 나아가 설법하나 피로해하거나 게으르지 않습니다.
법을 보호하면서 계율을 지키는 보살은 모든 고뇌와 해롭힘과 박해와 절단되는 일에서도 피로해하거나 게으르지 않습니다.
보리심(菩提心)에서 계율을 지키는 보살은 모든 수행이 모두 모든 중생을 안락하게 하지 자신을 위하지 않습니다.
깊은 마음으로 계율을 지키는 보살은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먼저 보리를 얻게 하고 자신의 증득은 구하지 않습니다.
증상심(增上心)으로 계율을 지키는 보살은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로 많은 환희를 내지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기쁜 마음을 내지 않습니다.
수행하면서 계율을 지키는 보살은 낱낱의 보리분법을 위하여 헤아릴 수 없는 겁 동안 부지런히 수행하여 저 법을 성취했지만 피로해하거나 게으르지 않습니다.
보시하면서 계율을 지키는 보살은 더 나아가 머리ㆍ눈ㆍ골수ㆍ뇌를 버려 중생을 이롭게 합니다.
시라(尸羅)로 계율을 지키는 보살은 계율을 어긴 중생을 버리지 않습니다.
인욕하면서 계율을 지키는 보살은 모든 마군의 요란(擾亂)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정진하면서 계율을 지키는 보살은 모든 중생을 위하여 보리를 닦고 익히나 게으르거나 피곤해 하지 않습니다.
선정에서 계율을 지키는 보살은 모든 음성과 모든 짓는 일에 물들거나 집착함을 내지 않습니다.
반야로 계율을 지키는 보살은 모든 법의 성품이 평등하여 보리의 상(相)과 같은 줄로 봅니다.
공행(空行)에서 계율을 지키는 보살은 세간의 실천을 행하지 않습니다. 대비(大悲)로 계율을 지키는 보살은 열반에 들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계율을 지키는 것을 이름하여 법집(法集)이라고 합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말씀드린 법집이여래께서 말씀하신 법집에 수순합니까, 수순하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라후라야, 네가 말한 법집은 내 뜻에 수순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