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보살경 제3권
[살인자가 수기를 받다]
이때 원한을 다스리기 어려워서 전에 사람을 해친 자는 부처님의 수기(授記)를 듣고서 뛸 듯이 기뻐하여 허공에 날아 머물렀는데, 그 높이는 7다라수(多羅樹)며, 게송을 설하여 말하였다.
만약 정토(淨土)에 머물기를 바란다면
마땅히 도사(導師)가 말하는 것과 같이 되어야 한다.
마땅히 모든 부처님의
최상의 큰 신통을 믿어야 한다.
부처님의 신통을 깨달아 마쳐야
분별이 없는 곳을 안다.
세간에 존재[有]가 없고
얻기 어려운 자,
만약 무소유가 묻는
경(經)의 법을 듣고서
능히 믿고 깨달으면
곧 모든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것이다.
만약 이 경 배우기를 마치어
능히 온갖 존재에 대한 생각을 없애고
이미 지은 악을 버릴 수 있다면
마땅히 모든 도사를 보리라.
만약 이 경을 배우면
이는 곧 모든 부처님을 보고
모든 여래를 친히 모시는 것으로
이 경에서 널리 말하는 것과 같다.
이는 곧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로서
맑은 계율이 의지하여 머무는 곳이다.
인욕과 정진,
그리고 지혜 등의 본처(本處)다.
만약 소유하는 바가 없어서
이곳을 말하여 집착하지 않으면
세존의 말씀하신 바와 같이
다스리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만약 이 경을 듣고서
온갖 뜻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온갖 공양을 나타나게 한다면
힘이 다하여도 능히 보답은 없을 것이며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겁에
어둠을 당하여 보이는 것은 없으리라.
만약 이 경을 들으면
모든 부처님의 땅에 이를 수 있어
그는 어리석음을 깨닫고
이로써 무명(無明)의 어둠을 깨뜨리고
이로써 일체공(一切空)을 얻게 되는 것은
이 경을 듣는 까닭이다.
수많은 온갖 번뇌를 다 하였어도
아직 다하지 못한 작은 것이 있음은
마치 큰 바다에서
한 방울의 물을 취하는 것과 같다.
중생을 성숙시키는 까닭에
번뇌의 물방울을 다하지 않는다.
중생을 슬퍼하고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그는 번뇌를 다하지 않는다.
부처님 나라를 청정(淸淨)하게 하지 않고
일체를 채우지 아니하며,
그는 중생을 성숙시키어
그는 그곳에서 멸하지 아니하며
또 그가 가득 채울 때
보리를 수기(授記)함과 같다.
이런 까닭으로 모든 물방울은
병 안에서 다하지 않는다.
만약 일체를 개현(開現)하면
그는 마땅히 부처님 나라에 있다.
그는 곧 마땅히 만족하고
남은 훈습(熏習)이 없다.
이와 같이 이 같은 곳에
이와 같은 경이 있어 듣고
능히 잘 해설하면
모든 공덕을 두루 갖추게 된다.
이때 원한을 다스리기 어려워하는 자는 이 게송을 다 말하고 하늘에서 내려와 부처님 앞에 머물러 부처님의 발에 정례(頂禮)하고 합장하고 머물렀다.
이때 세존께서는 그를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그대 선남자여, 이 게송을 잘 말하여 의리에 합하고 허망함이 없고 분별이 없구나.
이렇게 여래의 신통과 위력을 일체의 보살은 마땅히 배워야 한다. 이렇게 배우기를 마쳐야 중생은 공(空)함을 얻는다.’
이때 원한을 다스리기 어려워하는 선남자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지금, 세존께서는 나를 칭찬하여 훌륭하다고 하셨다.
나는 지금 칭찬받은 기쁨으로 마땅히 무슨 일이든 간에 세존을 공양해야겠다.’
그는 곧 공중에서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대는 몸으로서 세존을 공양하라’
그는 곧 하늘을 향하여 물었다.
‘어떠한 것이 공양입니까?’
다시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
‘그대 선남자여, 그대는 지금, 허공에 날아올라 이 대중으로 하여금 모두가 알아보게 하고, 허공에 머물러 이와 같이 게송으로 말하여라.’
소유한 모든 인색함과 집착은
모두가 자신으로 인하여 머무는 것이다.
나 이미 일체를 버려서
지금 도사(導師)를 공양하리라.
이때 선남자는 게송을 다 듣고 환희심이 일어나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으로 1다라수 만큼 허공에 날아올랐다. 그리하여 이 게송을 말하고 바로 스스로 몸을 버려 여래에게 공양하였다.
허공 가운데서 스스로 몸을 버린 다음, 수천의 꽃이 있는데 부드럽고 향내는 깨끗하기가 일찍이 없었던 것이며 아직 보고 듣지 못한 것이었다. 광명과 향기는 1유순(由旬)에 가득 차고 더욱 햇빛과 같았다. 혹은 한 시간이 지나고, 혹은 반 시간이 지나도록 그 꽃들은 부처님을 둘러싸고 세 번 돌았다. 그리하여 공양하기를 마치고는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허공 가운데서 꽃 덮개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이렇게 게송을 말하였다.
나 이미 스스로 몸을 버려
모든 스승께 공양하였노라.
나도 자신(自身)을 모르고
또 세존도 모르노라.
그는 그때 일체처(一切處)에서 몸과 마음을 모르고 여래를 모르며 중생을 모르고 머무를 곳도 몰랐다. 그는 그때 열반평등(涅槃平等)하였다. 또 ‘나는 이미 증득(證得)하였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때 한 분의 화불(化佛)이 있어 자연히 몸을 나타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 선남자여, 그대는 이미 부처님 나라의 종자를 성숙시켜 일체를 개현(開現)하였다.’
그는 부처님 앞에 합장하고 머물렀다. 마음에 기쁨이 생겨 용약(踊躍)함이 한량없었다. 그는 부처님을 예경(禮敬)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부처님의 큰 신통을 예경하여 마쳤고, 온갖 상(相)으로 선근(善根) 낳기를 마쳤다. 열반의 평등한 법 가운데 두루 머물러 죄와 복의 덕을 떠나 이렇게 머물지 않고 선근에 가까워졌다.’
모든 부처님의 법 가운데 그는 능히 친근하여 모자람이 없고 부지런히 부탁하여 보리 가운데 머물렀다.
그리고 게송을 설하여 말하였다.
중생이 깨달음이 이와 같으니
마땅히 커다란 괴로움과
생사의 커다란 험도(險道)를 벗어나네.
괴로움을 가진 중생은
그도 또한 성취를 이루지 못하며
온갖 괴로움을 말하는 사람
그도 또한 괴로움을 받지.
이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는 까닭이로다.
이 게송을 다 말하고 묵연(黙然)히 머물렀다.
이때 무명(無名)보살이 그 선남자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그대는 지금 이미 능히 일체의 보시를 행하였다. 만약 자신(自身)을 지니고 부처님을 공양한다면, 선남자여 그대는 아직 자신이 자재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대는 이 몸으로서 이미 부처님께 공양하였다.
선남자여, 비유하건대 사람이 남에게 재물을 보시한 다음 다시 이것은 내 물건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 그가 그의 재물에 있어서 자재함을 얻지 못한 것이다. 이와 같이 선남자여, 그대는 지금 몸으로서 이미 부처님께 보시하였다.
그대는 지금 이미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장차 오는 세상에서 마땅히 부처님을 짓고 수기(授記)의 이름을 얻으리라.’
선남자여, 그대는 지금 무엇을 하고자 바라는가?”
그는 이 말을 듣자마자 의심이 생겼다.
‘나는 지금 어떠한가? 나는 지금 어떠한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때 그는 또 무소유보살의 소리를 들었다.
‘선남자여, 그대는 지금 하지 말라.
선남자여, 그대는 도리어 모든 부처님의 신통을 생각하라.
그대가 믿고 이해하는 것처럼 참으로 무명보살의 물음에 대하여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라.’
이 말소리를 듣자마자 변재(辯才)가 생기고, 밝게 앞날을 보며, 몸과 마음이 없었다.
무언(無言) 무설(無說)하고, 보시함도 없고, 지계[戒]도 없으며, 참음도 없고, 정진도 없고, 선정도 없고, 지혜도 없고, 단상(斷常)도 없고, 성문(聲聞)도 없으며, 머무는 바가 없고, 얻는 바도 없으며, 말하는 바가 없으며, 얽매임과 집착함도 없고, 듣는 바도 없으며, 듣는 사람도 없으며, 소유(所有)함도 없고 소유하는 자도 없으며, 이어받을 바도 없고 희망하는 것도 없었다.
일체의 뛰어난 상(相)을 남김없이 모두 갖추어 중생을 교화하고, 부처님 나라와 열반을 개현하여 두루 갖추어 성취하였으며, 평등하고 평등하여 둘이 없어 이름과 설함도 없었다.
설할 것이 없음과 같이, 또한 생하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 말없는 가운데 여여(如如)하고, 이에 머무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은 여여(如如)는 또한 행하는 바도 없다. 그는 모든 부처님의 큰 신통 가운데서 다시는 의혹이 없었다.
이때 무명보살은 선남자를 칭찬하며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선남자여, 그대는 지금 부처님의 큰 신통에 잘 머물렀고, 그대는 지금 이와 같이 변재를 성취하여 변설(辨說)함이 이와 같구나.’
그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선남자여, 나 또한 부처님의 신통 가운데 머물지 않습니다. 그 부처님의 신통은 능히 짓는 자가 없으며 일체의 모든 법의 진체(眞體)는 이름이 없어 불가득(不可得)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들어감[入]이 없고 나올 곳도 없으며 알아야 할 곳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이미 믿어서 머무는 곳도 없습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신통에 머무는 곳이 없는 까닭입니다.
그에게는 사람의 이름을 말하는 일이 없습니다. 다만 이름이 없는 가운데 나는 지금 그대에게 묻습니다.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지혜 있는 자는 잘 받들어 모시는 일이 어렵습니다.’
그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선남자여, 그대는 지금 다만 물어라. 내가 아는 바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해석하리라.’
그 다스리기 어려운 자가 말하였다.
‘마하살타(摩訶薩埵)여, 그대는 지금 무슨 까닭으로 이름을 무명(無名)이라 합니까?’
그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나는 이곳에 있어서 말로 설할 수가 없었다. 역시 그대가 이름[名字]을 나타내 보이는 것과 같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선남자여, 그대는 지금 부처님의 큰 신통을 헤아림에 있어서 이름을 떠났소이다.’
무명보살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평등 가운데 법은 떠날 것도 없고, 끊을 것도 없으며, 세울 것도 없고, 가고 옴이 없으며, 평등의 상(相)도 없다.
선남자여, 만약 일체의 법이 그에게서 평등하면 헤어짐도 없다. 그 평등이 소속하는 곳도 없다.
어떤 것이 끊고 떠나는 것인가?
만약 평등한 법이면서도 분별이 있다면 바로 끊고 떠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