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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세품경 제3권
보현이 말하였다.
[밤을 밝히는 광명과 같은 열 가지]
“보살이 마치 밤을 밝히는 광명과 같은 데에 열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그의 뜻이 수없는 부처님 세계에 넓고 두루하되 마음이 마치 허공과 같으면서 모든 여래를 뵙고 머리 조아려 귀명하니,
보살은 그때 내딛는 걸음마다 초저녁과 같아 반드시 정각(正覺)을 이룹니다.
또 그 보살은 한량없는 부처님으로부터 경전을 얻어 듣고 받아 지녀 읽고 외며 전일한 마음으로 사유하여 이해하는 바가 확 트이며 더욱더 증가하면서 그 뜻은 시방의 끝없는 데까지 넓고 두루합니다.
또 그 보살은 이 부처님의 국토에서 아직 목숨을 마치기 전에 다른 지방에 태어나서 그 몸을 나타내되 언제나 부처님 법을 알면서 일찍이 잊는 일이 없습니다.
또 그 보살은 하나의 법의 행[一法行]으로써 온갖 법을 이해하고 점차로 뭇 사람들을 위하여 경과 도를 널리 펴며 온갖 뜻으로써 하나의 뜻에 들어갑니다.
또 그 보살은 진로(塵勞)를 제거하고 또한 능히 알면서 뭇 애욕(愛欲)을 없애며
또 애욕의 왕성함과 욕심이 제거됨을 능히 알고 짓는 일이 견고하며
보살행을 닦으면서 본제(本際)에서 삿된 증득[邪證]을 짓지 않고 모든 도무극(度無極:波羅密)을 가장 첫 번째로 삼으며
본제에 있으면서 이치[諦]와 배움[學]과 선권방편(善權方便)을 깨달아 알고 본래의 원[本願]을 두루 갖추어 구경(究竟)에 이르도록 행하되 몸이 고달파하지 않습니다.
또 그 보살은 마음이 모든 생각[想]에 들어가서 도리에 계합하고 도리에 계합하지 않는[處非處] 것이 없으면서도
다시 도리에 계합하고 도리에 계합하지 않는 일을 강설(講說)하고 또한 짓는 바도 없으며,
그 행하는 일에서도 또한 생각한 바가 없으면서 중생을 깨우치고 교화합니다.
또 그 보살은 있는 그대로의 하나[一自然]로 모든 법을 알고,
있는 그대로의 것 없이는 약간의 것도 없으며,
또 적지도 않고 헤아리지도 못하며,
빛깔도 없고 모양도 없어서 오히려 하나조차도 얻지 못하는데 하물며 많은 것이겠는가?
보살은 이 모든 부처님 법과, 보살ㆍ연각의 법과, 성문의 법과, 범부의 법과, 선악의 법과, 세간을 위하는 법과, 세간을 제도하는 법과, 죄의 법과, 죄가 없는 법과, 유루와 무루와, 유위와 무위를 환히 깨달아 압니다.
또 그 보살은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도 도(道)를 얻은 중생이든 도를 얻지 못한 중생이든 중생이라는 법(法)이 없으며,
서원[願]을 버리지 않고 중생을 깨우쳐 교화하면서 모든 법을 환히 깨달아 압니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과 중생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짓는 인연을 다 알기 때문이며,
분명히 알면서 가르쳐 주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멸도(滅度)에 이르게 하고 서원이 완전히 갖추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 보살은 중생의 마음속을 환히 알면서 보고 그 귀취(歸趣)한 바를 알아 선권방편(善權方便)으로 때에 따라 나타내며 설법으로 율(律)을 보이면서 참되고 바른 이를 여의지 않고 뒤바뀐 것을 좇지도 않으며,
보살은 모든 법이 다 3세의 평등한 데에 머무르고 본래부터 없어서 동요하지 않음을 환히 알며 본제(本際)에 서 있으면서
중생으로 교화해야 할 바도 보지 않고 교화와 교화하지 않음도 없으며
율의 가르침을 좇지도 않고 또한 행하는 것도 없으며
귀취를 분별하면서 법에는 생겨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그 서원한 바는 끝내 허망하지 않으며 온갖 법에 대해 영원히 집착하지 않습니다.
또 그 보살은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부처님 세존을 뵙고 여래께서 말씀하신 낱낱의 경전을 들으면 곧 받아 지니며
여러 가지의 행과 그 이름이 각각 다르고 생각한 바가 동일하지 않은 것도 그 여러 겁에서 낱낱이 분별하고,
모든 겁의 본말(本末)과 수없는 겁에 이르도록 들었던 것은 모두 다 기억하면서 잊지 않고 또한 미혹되지도 않으며
모든 여래 등의 불가사의한 것도 들으면 모두 받아 지녀 둘이 없고,
자기 몸으로 행한 것의 힘과 원이 다른 것임을 뛰어넘어 중생을 교화하여 모두 위없이 바르고 참된 최정각의 도를 이루어서 서원한 것을 이루게 하여 법계(法界)를 환히 깨달아 알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보살이 마치 밤을 밝히는 광명과 같이 따르고 닦으면서 노닐고 행하는 열 가지입니다.
[마음이 금강과 같고 대승의 갑옷을 입는 열 가지]
보살의 마음이 마치 금강(金剛)과 같고 뜻이 대승의 갑옷[大乘鎧]과 같은 데에 열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보살은 여기에 머무르지도 않고 또한 끝 가는 데[邊際] 없이 마음을 일으키되 온갖 법을 알아 3세의 일에 대해 통달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것이 바로 마음이 금강과 같고 대덕(大德)의 갑옷을 입는 것과 같다고 하는 것으로,
헤아릴 수 없는 낱낱의 털구멍을 두루 장엄하는데 하물며 중생과 모든 법계에 있는 보살의 덕의 갑옷이겠습니까?
입으로 ‘나는 반드시 온갖 중생을 멸도(滅度)하게 하여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에 이르게 하리라’하고 말합니다.
또 부처님의 세계는 밑도 없고 끝도 없고 헤아릴 수 없으므로 모든 보살들은 똑같이 이러한 서원을 세우는데, ‘나는 위없고 바르고 참되게 모든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다스려야 하니, 이 때문에 모든 부처님 국토가 청정하게 되리라’ 합니다.
또 모든 중생은 밑도 없고 끝도 없고 제한도 없으므로
만일 어떤 보살이 이같이 광대하게 모든 덕의 근본을 권하여 모든 중생에게 위없는 대승(大乘)을 비추면
모든 부처님 세존도 제한이 없고 모든 보살들이 심은 덕의 근본도 역시 그와 같아서
중생에게 보시하기를 권하면서 항상 부처님을 뵙고 또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체득하여 최정각이 되게 합니다.
만일 어떤 보살이 모든 부처님을 뵙거나 말씀하신 경전을 듣고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나[吾我]에 의지하지 않고 여래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여래를 가까이 하지도 않고 몸도 멀리하지 않으며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존재한다고 헤아리지 않고 또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헤아리지 않으며,
몸이 있다거나 색상(色相)과 종호(種好)가 없다고도 헤아리지 않으며,
여래의 체(體)를 알아 일어나지 않게 하고 또 일어남이 없게 하지도 않으며,
모양이 있지 않고 모양이 있지 않은 것도 아니며,
처소가 있지 않고 또 처소가 없지도 않으며,
여래의 몸을 일어나게 하지도 않고 무너뜨림도 없으며,
여래의 몸으로 존재함이 없는 데로 들어가고, 행함에 대하여 행함이 없습니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모두 온갖 있는 그대로[自然] 헤아려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또 모든 보살은 언제나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데,
중생의 부류가 보살의 머리를 베고 손발을 끊으며 귀와 코를 자르고 두 눈을 후벼내며
욕설을 퍼붓고 헐뜯고 기와나 돌로 때리고 던지며 찌르고 밟고 뽑고 침 뱉고 조롱한다 하여도
능히 참아내며 성을 내지 않고 또한 원한을 품지도 않으며 얼굴빛도 변하지 않으니,
헤아릴 수 없는 겁 동안 보살행을 닦아 마음을 내어 모든 중생을 거스르게 하거나 버리지 않습니다.
또 보살은 모든 법은 둘이 아님을 배우고 이것을 배움으로써 성내거나 원한이 있지 않으며,
부지런히 중생을 보호하면서 온갖 괴로움과 뭇 괴롭히는 우환을 참고 몸이 혹독한 고통을 만날지라도 또한 모두 참으며,
장차 오는 세상의 모든 사물에 대해서도 맨 끝이 없고 또한 가려 막는 것이 없으며 믿고 좋아하는 데에 머무릅니다.
이러한 데에 빗대어 보살의 뜻을 일으켜 미래와 현재에서 구경에는 법계의 허공계에 머무르며,
낱낱의 모든 부처님 세계에서 보살의 도를 행하고 중생을 교화하되 마치 하나의 세계에서 짓고 행하는 것처럼 시방의 부처님 국토에서도 역시 그와 같이 하며,
법계를 제도하고 허공계를 다하여 존재함이 없이 공하며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으며 또한 부끄러워하지도 않으며 3세에 있어서 이와 같이 짓고 행하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보살대사가 거처할 수 있도록 온갖 것을 이용하기 때문이니,
보살의 행을 받들고 보살의 마음에 의지하며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믿고 뜻과 성품이 청정하여 뭇 덕의 근본을 쌓으며,
서원을 두루 갖추면서 부처님 도에 대하여 자재함을 얻고
자유를 얻고 나서 서원에 의해 정각을 이루고 싶으면 곧 뜻대로 얻게 되고 한량없이 행하여 구경을 얻으며,
온갖 5음(陰)과 모든 느낌[受]을 하나도 남김없이 끊어 없애고 그 행하는 곳마다 모든 부처님에 의지하여 정각을 이루지 않습니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서원을 구족하고 보살행을 갖추며 중생을 깨우쳐 교화하면서 모든 부처님 국토를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 보살은 모든 부처님을 얻지 않고 모든 처소를 얻지 않으며,
또한 모든 보살의 처소와 온갖 중생의 처소도 얻지 않고
또한 마음과 뜻과 모든 행동을 얻지 않으며,
또한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중생의 유위와 무위도 얻지 않으니,
보살의 행이 이와 같이 담박(澹泊)하고 깊고 묘하여 높이 뛰어나고 고요하며 안정되고 한적하여 얻는 바가 없으면서
그 행은 둘이 아니며 다툼이 없이 그와 같이 있는 그대로이며
청정하고 해탈하여 이와 같이 멸도(滅度)하되 본제(本際)와 같이 닦으니,
마음은 실로 허망함이 없고 그 서원을 세우는 데에 있어 게으르거나 버리지 않습니다.
일체지(一切智)의 마음과 모든 보살의 행으로 중생을 교화하고 모든 도무극(度無極)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되
율(律)에 따르면서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공경하도록 법을 설하고 뜻을 강설하여 세계를 장엄하고 이렇게 정진하는 데에 게으르지 않으니,
그 까닭은 서원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비유한 것들과 모든 법의 법상(法相)을 알고 가엾이 여기는 생각을 끊임없이 키워 한량없는 공훈으로 지혜의 뜻을 분명하게 알고 중생을 가엾이 여기면서 언제나 모든 법의 명칭[法號字]을 이해합니다.
이와 같은데도 어리석은 범부는 이런 것을 깨달아 알지 못하고 모든 법은 있는 그대로[自然]임을 알지 못하는지라
‘나는 반드시 깨치고 통달하고 알게 하리라.
그 까닭은 모든 중생에게는 적연한 행[寂然行]이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모든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경전을 연설하고 중생을 교화하면서 끝없이 가엾이 여기는 생각을 일으키며 큰 사랑[大慈]을 버리지 않으셨는데
우리들이 어떻게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싫다 하며 중생을 버리겠는가?
설령 부처님이 되지 못하고 경전을 갖추지 못하며 큰 서원을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중생에게 위없는 법의 보시[法施]를 베풀리라’라고 합니다.
본래 처음에 마음을 낸 것은 모든 중생을 청정하게 하고 지성스런 서원을 세운 것이므로
만일 큰 원[大願]의 바른 요목과 발심한 도의 문[道門]을 배우지 못하면 그것은 곧 모든 부처님을 속인 것이니,
모든 중생을 위하여 도의 마음을 내고 뭇 덕의 근본을 심어 그들에게 권하고 도와주며
깊고 오묘한 지혜에 들어가서 두루 얻어 중생의 모양이 있는 곳마다 그 마음이 평등하게 되기 때문에 큰 서원을 두루 갖추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이 금강과 같고 대승의 갑옷을 입는 열 가지의 일이니,
보살이 여기에 머무르면 마치 금강과 같이 강한 여래의 끝없는 신통을 속히 이루게 됩니다.
[크게 힘써 닦는 열 가지]
보살이 크게 힘쓰는[大勤] 데에 열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나는 반드시 모두 부처님을 받들어 공경하면서 공양함으로 스스로 귀의함을 쌓고 모아 모든 보살의 뭇 덕의 근본을 닦을 것이며,
모든 여래께서 반열반[般泥洹]하신 뒤에는 절[寺]을 신묘하게 장엄하고 여러 가지 꽃과 이름 있는 향으로서 가루향[擣香]ㆍ섞은 향[雜香]ㆍ바르는 향[塗香]과 의복과 깃발ㆍ일산을 공양하며,
바른 법을 지녀 돕고 가르쳐 주면서 온갖 중생 세계를 깨우쳐 교화하고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일으키고 청아한 계율을 어기지 않도록 권유하며,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청정하게 장엄하여 위없는 세계에 안온하게 있게 하리라’라고 합니다.
또 보살은 ‘장차 오는 세상의 겁 동안 낱낱의 세계 가운데에 어느 한 사람이라도 아직 제도되지 못한 이가 있다면 모든 사람에 이르기까지 빠뜨리거나 잊어버리지 않고 그들을 위하여 보살행을 닦겠으며,
또한 그와 같이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 모든 중생들을 부처님의 바른 도에 서게 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다 하여도 잠깐이라도 고달파하거나 게으른 마음을 내지 않고 언제나 부처님의 법을 닦으리라’하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헤아릴 수 없는 겁 동안 출현하시면 사람들마다 여래께 공양하는 것이 마치 한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처럼 하여 어떤 여래를 특별히 대함이 없이 다 똑같이 받듭니다.
이 모든 여래께서 멸도(滅度)하신 후에는 헤아릴 수 없는 겁 동안 사리(舍利)와 온갖 보배 일산과 모든 방울ㆍ당기ㆍ번기로 공양하며 한 분 한 분의 부처님을 위하여 수없는 국토에다 큰 사찰을 일으키고
도화(圖畵)와 형상(形像)이나 입상(立像)을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라에 두루하게 하고서 밤낮으로 부지런히 힘쓰며 잠깐 동안이라도 버리는 일이 없습니다.
부처님의 법장(法藏)을 위하고 모든 부처님을 받든 뒤에는 중생을 깨우치고 교화하면서[開化] 법의 가르침을 받들어 펴며
바른 법을 닦은 뒤에는 점차로 큰 도[大道]를 가까이하고 이 덕의 근본으로써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게 되어 으뜸가는 정각을 이룹니다.
한결같이 평등하게 모든 여래를 따르면서 모든 부처님의 국토로 돌아가고
정각을 이룬 뒤에는 헤아릴 수 없는 겁 동안 경과 도를 널리 펴면서 모든 부처님의 세계에 두루하며
모든 부처님의 변화로 신족(神足)의 불가사의함을 나타내 보이면서 게으르지 않습니다.
그 몸과 입과 마음에 있어서도 수고롭다고 헤아리지 않고
그 마음이 일어나면 그때마다 바로 법문(法門)을 향하여 부처님을 받들며 큰 뜻과 원을 닦으면서 중생을 유인하고 교화합니다.
대자(大慈)를 우두머리로 삼아 대애(大哀)로 돌아가고 모양이 없는 법[無相法]에 예배하면서 성실한 마음으로서의 가르침에 머무르며 모든 법을 두루 갖추어 그로써 증득[證]을 짓습니다.
모든 것에 거스름이 없으면서 짓는 일마다 다툼이 없고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부처님께서 하나인 이치[一義]에 들어가서 법계(法界)로 나아가되 허공과 통하여 같게 되며, 모양이 없는 법을 초월하여 이루어지되 이루어지지 않음도 없습니다.
구경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처님의 법에 대하여 근심하거나 싫증내지 않게 하며 끝없는 원(願)에 이르도록 부처님의 본래 일[本事]을 지으면서 중생들을 권유합니다.
이것이 바로 보살이 크게 힘써 닦는 열 가지 일이니, 보살이 여기에 머무르면 여래의 위없이 큰 지혜를 이룹니다.
[크게 정진을 펴는 열 가지]
보살이 큰 정진[大精進]을 능히 펴는 데에 열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모든 여래ㆍ지진을 받들어 공경하면서 스스로 귀명(歸命)하고,
모든 중생들을 청해 때에 따라 돕고 수호하며,
부처님 법을 보호하려고 크게 힘쓰고,
뭇 덕의 근본을 쌓으면서 고달파하지 않으며,
성스러운 경전을 크게 일으켜서 널리 유포시키고,
온갖 끝없는 도(道)와 원(願)을 두루 갖추며,
은근히 모든 보살행에 뜻을 두고 따르며,
언제나 착한 벗을 만나 그에게서 여쭙고 받으며,
널리 시방에 나아가 모든 여래를 뵙고,
말씀하신 경전을 들으려고 부처님의 도량에 들어가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크게 정진을 펴는 열 가지의 일입니다.
[믿음이 파괴되지 않는 열 가지]
보살의 믿음이 파괴될 수 없는[信不可壞] 데에 열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시방의 부처님을 믿으면서 다른 마음이 없고,
모든 부처님 법을 좋아하여 일찍이 어기거나 버리지 않고 성인 대중[聖衆]을 좋아하면서 딴 마음을 내지 않으며,
보살을 좋아하면서 의심[疑結]을 품지 않고,
여러 좋은 벗들과 같이하면서 언제나 함께 어울리며,
중생을 가엾이 여기면서 뭇 사람들을 버리지 않고,
모든 보살의 서원을 받들어 행하며,
개사(開士:보살)를 받들어 행하면서 뭇 행을 빠짐없이 갖추고,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공경하면서 머리 조아려 귀명하며,
중생을 깨우쳐 교화하여 모두 제도하여 해탈하게 하고,
보살의 선권방편을 닦으면서 돈독한 믿음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보살의 믿음이 파괴되지 않는 열 가지의 일입니다.
[보살의 수결하는 열 가지]
보살의 수결(受決)에 열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돈독한 믿음과 행을 좋아하고 기뻐하고,
자기의 성행(性行)에 수결을 받으며,
도의 마음을 닦아 익히면서 덕의 근본을 품고,
그 행이 넓고 넓어서 방등(方等)의 수결을 받으며,
눈앞에서 수결을 받거나 혹은 은밀하게 수결을 받고,
마음에 자재(自在)를 얻으며,
평등한 깨달음에 이르러 결정코 법인(法忍)을 체득하고,
그러한 뒤에는 수결을 받고 중생을 교화하며,
본말(本末)의 수결로 모든 허망한 생각을 영원히 다 없애고,
모든 보살이 행한 공훈(功勳)을 능히 나타내 보이고 나서 수결을 받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보살의 수결하는 열 가지 일입니다.
[덕의 근본을 권하고 돕는 열 가지]
보살이 덕의 근본을 권하고 돕는[勸助德本] 데에 열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이 덕의 근본으로 뜻하는 서원이 동일하고 태어나는 곳마다 착한 벗과 함께 하면서 언제나 그와 같게 하여 변하거나 다름이 없게 합니다.
이 덕의 근본으로 모든 착한 벗과 똑같아 다름이 없는 마음을 내게 합니다.
태어나는 곳마다 평등한 서원을 두루 갖추어서 착한 스승[善師]과 함께 합니다.
이 선(善)의 근본으로 태어나는 곳마다 모든 보살들과 도(道)가 계합되고 뜻이 동일하게 됩니다.
이 복행(福行)으로 인하여 있게 되는 세상마다 지혜가 밝은 이와 함께 하게 됩니다.
태어나는 곳마다 오로지 한마음을 사유하면서 성스러운 통달[聖達]을 여의지 않습니다.
노닐고 거처하는 데마다 언제나 평등하고 청정하면서 지혜로운 이와 마음을 같이하게 됩니다.
태어나는 세상마다 모든 착한 벗들의 덕행(德行)과 부합하게 됩니다.
장차 오는 세상에서는 한결같이 평등한 데에 들어가서 밝은 스승을 만나 함께 하게 됩니다.
이 덕의 근본으로 착한 스승과 함께 하면서 뜻을 일으키되 파괴됨이 없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덕의 근본을 권하고 돕는 열 가지 일입니다.
[성인의 마음에 들어가는 열 가지]
보살이 성인의 마음[聖心]에 들어가는 데에 또 열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널리 보시를 행하면서 지혜에 들어가게 되고,
모든 부처님의 도법(道法)을 좋아하면서 모든 여래께서 한량없는 중간(中間)의 뜻에 든 데에서 노닐며,
모두 문혜(問慧)로써 뭇 의심[疑結]을 끊고 이치를 환히 알면서 성인의 지혜[聖慧]에 능히 들어가고,
온갖 여래ㆍ지진께서 입으로 널리 펴신 가르침을 분별하면서 부처님의 법을 돈독하게 믿으며,
현재 가지고 있는 힘이 미약하더라도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심으로써 덕의 근본이 한량없게 되고,
여래를 좋아하고 기뻐하면서 모두가 경전의 깨끗한[淸白] 뜻을 갖추며,
모든 보살의 행과 지혜의 불가사의함을 두루 갖추고,
마음을 일으킨 한없이 넓은 부처님의 국토에 들어가는 데에 장애가 없으며,
한 찰나의 지혜를 깨달아 모든 부처님의 도(道)와 일을 분명히 알면서 법계(法界)에 들어가고,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모두가 받들어 지니면서 모든 여래의 여러 가지 음성에 들어가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지혜에 들어가는 열 가지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