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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정론 제5권
4. 석이사자편(釋李師資篇)
[유정, 도교는 크고 부처는 작은 것이다]
그 유생이 물었다.
“대당(大唐)의 운수가 일어났으니 대개 태상노군 주사(太上老君 周師) 이담(李聃)의 성스러운 자손입니다. 무위(無爲)의 교화를 열어서 도덕의 편(篇)을 키웠습니다. 주자(胄子)를 상고하여 6경(經)을 업으로 삼게 하였으며 사도(司徒)에게 명령하여 오교(五敎)를 폈습니다.
도덕이 예와 가지런하니 어짊을 9구(區)에 펴고 악함을 징계하여 착함을 권고하니 위엄이 사해에 더합니다. 하늘이 이루어지고 땅이 평정되니 멀리까지 편안하고 가까운 데가 엄숙하여져서 집을 천하에 빛내기 이에 8년입니다. 협흡(協洽)의 해에 있어서 협종(夾鍾)의 달을 맞이하여 천자께서 몸소 벽옹(辟雍)에 행차하시고 석전(釋奠)에 친히 임하시어 사문과 도사들이 모두 예의 자리에 참예하여 말로써 직접 내리는 칙령(勅令)을 받들게 하니,
도사 번탄(潘誕)이
‘실달(悉達) 태자는 부처됨을 얻지 못하였다가 6년 동안 도를 구하고서야 부처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는 도가 부처를 내고 부처는 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도는 부처의 아버지요 스승이며, 부처는 도의 아들이요 아우입니다.
그러기에 불경에
≺더 위가 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구한다≻고 하였고, 또
≺큰 도를 체달(體達)하여 알아서 더 위가 없는 뜻을 발한다≻고 하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외국어로 아뇩보리(阿耨菩提)라 함은 중국말로 번역하면 더 위가 없는 큰 도라는 것입니다.
만일 이로써 징험하면 도교는 크고 부처는 작은 것임을 일에 있어서 알 만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당신은 부질없이 불교와 도교가 무엇이 먼저이고 뒤인가와 어느 것이 스승이고 제자인가를 판단하여 말합니까?”
[보살, 헛된 주장이다]
보살이 그를 꾸짖어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요임금과 순임금의 전적(典籍)은 오패(五伯)들이 즐겨보지 아니하며 유교와 묵교[墨]의 서적들은 계맹(季孟)이 능히 읽지 아니한다고 한다. 대저 여름의 벌레와 얼음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 것은 시절에 독실하기 때문이요, 바르지 못한 선비들과 도를 의론할 수 없는 것은 교리에 국한하여 고집하기 때문이다.
이제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간략히 이러한 취지를 밝히겠다.
대저 묘한 색상(色相)은 형체가 없어서 이치는 진제(眞際)에 융합하고 큰 음성은 말이 없어서 체가 허종(虛宗)에 고요하니 이를 언상(言象)으로는 가히 헤아리지 못하고 시청(視聽)으로는 찾을 수 없어서 3제(際)에 추구하여도 얻을 수가 없고, 2제(諦)로 궁구하여도 알지 못한다.
깊은 성품은 옮길 수가 없으니 뉘라서 있다고 하겠으며 지극한 공(功)은 떨어지지 아니하니 뉘라서 없다고 하겠는가?
그러한즉 안과 밖이 백비(百非)에 맑아지지만 칭술(稱述)하면 네 구(句)에 빠지게 된다.
더구나 형체가 없는 형체에 미쳐서는 응함이 법계(法界)에 두루하고 말이 없는 말에 미쳐서는 교화가 정원(情源)에 흡족하다. 그러기에 큰 자비를 운반하여 고동(鼓動)시키고 큰 자비를 열어서 포섭함이겠습니까?
이에 떨어지고 더러운 옷을 입으며 5탁(濁)의 세상에 생을 나타내며 진실한 지혜를 숨기고 방편으로 3거(車)를 탐이겠습니까?
고찰하여 보니, 쌀 한 톨로 몸을 지탱한 것은 본래 외도를 꺾어 항복시키기 위함이었으며 6년 동안 보리수 아래에서 수행한 것은 다만 삿된 스승을 물리치려는 것이었다.
[『본행경(本行經)』의 「고행품(苦行品)」에
‘여러 외도들이 혹은 하루만 먹거나 혹은 이레만 먹거나, 혹은 하루에 한 끼를 먹거나 혹은 7일에 한 끼를 먹으며, 혹은 소와 염소의 똥을 먹고, 혹은 연 뿌리와 풀뿌리들을 먹으며, 혹은 한 발을 발돋움하고 있거나, 혹은 항상 두 팔을 들며, 혹은 사지를 거꾸로 해서 서고, 혹은 5열(熱)로 몸을 지지거나, 혹은 스스로 무덤 사이에 떨어지고, 혹은 잿더미 흙에 드러눕거나 혹은 모든 천신(天神)을 섬겨서 해탈을 구하였다.
호명보살이 그들이 삿되게 구함을 보고 곧 두려울 만한 극히 괴로운 행을 행하고 적정(寂靜)한 마음에 머물러서 한번 앉으매 움직이지 아니 하여 이와 같이 6년 동안 하루에 한 알의 검은 삼씨를 먹거나 혹은 멥쌀과 팥과 콩과 녹두와 붉은 팥과 보리와 밀들을 하루에 오직 한 알만 먹음으로써 몸을 버티어서 살아나가니 몸이 파리하고 숨차며 매우 쇠약하여져서 전적으로 기력이 없고 손과 발이 말을 안 듣는 것이 마치 80이나 90살의 늙은이 같이 되었다.
부처님께서 그때에 게송을 읊조리셨다. 호명보살이 이미 니련선하(尼連禪河)에 이르러서 청정한 마음으로써 언덕 가에 앉으셨으니, 그것은 도를 구함이 참답지 못한 이를 위하여서 스스로 큰 괴로움을 행함을 보여서 저들의 삿됨을 교화하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고행이 한갓 수고로움을 불쌍하게 여기고 스스로 굶음이 이익이 없음을 민망하게 여겨서
[외도들의 이익이 없는 고행과 헛되이 스스로 굶음을 슬프게 생각한 것이다.]
그러한 뒤에
[경과 역사책에
‘이때에 선생촌주(善生村主)의 두 딸이 하늘의 고함을 듣고 곧 1천 마리의 소를 모아서 좋은 젖을 취하여 점점 서로 마시면서 열다섯 번째의 소에 이르니 그 젖이 1분(分) 깨끗하고 좋은 멥쌀에 붙었다. 이에 보살에게 최상의 유미죽(乳糜粥)을 끓여 올렸다.
유미죽을 끓일 때에 보살이 가지가지의 모양을 나타냈으니 혹은 만(卍)자의 모양을 나타내었고 혹은 제석천왕(帝釋天王)과 범천왕(梵天王)의 모양을 나타냈고, 그 유미죽이 끓어올라서 위로 다라수(多羅樹)의 반이나 끝까지 끓어올랐다가 아래로 내려왔는데 한 방울도 그 그릇을 떠나서 다른 곳에 떨어지지 않았다.
보살이 2월 23일 새벽에 소치는 두 딸에게서 한 발우의 유미죽을 받아서 잡숫고서는 신체가 회복되어 본래와 같아졌다. 보살이 길상초(吉祥草)를 받아 깔고서는 보리수 아래에 앉으셨다’고 한다.]
아홉 번 전(轉)한 우유를 잡수시고서 3보리(菩提)를 증득하였다.
이때에 6사(師)의 권속들이 정수리에 주라(周羅)를 꾸몄으며,
[정수리에 있는 태발(胎髮)이다.]
1천 아들과 마왕(魔王)도 모두 마음을 돌려 항복하여서
[그때에 욕계(欲界)의 마왕이 그의 1천 아들과 3사(邪)의 여자 귀신과 군사 무리 8억을 거느려 왔으니, 그 군사들은 혹은 배꼽 가운데 1천 개의 눈을 가졌고 혹은 정수리 뒤에 8비(臂)를 가졌으며 혹은 입 속에서 벼락을 쳤고 혹은 손으로 번개를 쳤으며 혹은 뱀이 왼쪽 허리를 감았고 혹은 용이 오른쪽 옆구리를 감았으며 가지가지의 신변(神變)으로 와서 보살을 괴롭혔다. 그때 보살이 큰 광명을 놓으며 아주 드문 모습을 나타내니 마왕의 권속들이 모두 착한 마음을 내서 일시에 머리를 조아렸다.]
삿된 칼날이 삽연(颯然)하게 부러지고 지혜의 날이 빛나게 광채를 폈다. 그가 끌어 당기고 이끈 것이 이와 같고 그의 위신(威神)이 저와 같았다.
그런데 그대가 말하는 도[95종(種)의 도]는 저것을 도라 하는 것인가?
[이것이 95종의 도인가 아닌가를 묻는 것이다.]
저와 다른 것인가?
[95종이 아닌가?]
만일 저와 한가지라면 곧 두 하늘과 세 신선의 무리들과
[부처님께서 아직 세상에 출현하시기 전에 마혜수라(摩醯首羅)와 위뉴바(韋紐婆) 등의 두 하늘이 있었고, 가비라(迦毘羅)와 우루가(優樓迦)와 늑사바(勒沙婆) 등의 세 신선이 있어서 삿된 삼보로 행하여 세간을 교화하였는데, 여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자 모두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나머지 자들은 제바(提婆)보살이 뒤에 깨뜨렸으니 『지도론(智度論)』과 『백론(百論)』에 보인다.]
95종류의 후예들인 부란나(富蘭那) 등이 모두 그대의 스승일 것이어서 저 스승들이 떨어지는 곳에 그대도 따라 떨어질 것이다.
만일 저들과 다르다면 곧 부처의 제자들일 것인데,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나의 도를 구하는 까닭에 바야흐로 부처가 된다고 하였겠는가?
번탄(潘誕)의 말은 죄가 그보다 큼이 없다. 망령되게 천자에게 아뢰어서 경솔하게 하늘의 위엄을 저촉하였다.
이치로 합당하게 법률에 미루었으니 그 죄가 하나요,
조정의 안목을 그르쳐서 믿는 마음을 호도해서 바른 것을 바꾸어 삿됨을 만들었으니 그 죄가 둘이요,
더 위가 없는 큰 스승으로써 역중(域中)의 작은 도를 구하게 하여 저 경의 가르침에 어긋났으니 그 죄가 셋이요,
미래의 비방을 길게 하고 현재의 삿된 벗을 무리하였으니 자기를 그르치고 남을 그르치는 그 죄가 넷이며,
이미 성인을 속이는 죄를 짊어졌으니 반드시 무간지옥에 들어가서 미진수겁(微塵數劫)의 고통을 받을 것이니 그 죄가 다섯이고,
또 진단(震旦)과 천축국(天竺國)과는 마치 환해(環海)와 인주(麟洲)를 비교하는 격이다.
노담은 주나라 말기에 비로소 일어났고 부처님은 주나라 초기에 앞서 나왔으니 그 서로의 거리를 따지면 30여 분의 임금을 겪었고 그 지나온 것을 따지면 3백여 년이다.
그러니 어찌 주나라 소왕(昭王) 때에 나신 부처님께서 물러나서 주나라 경왕(敬王) 때의 도교를 배우겠는가?
헛된 글귀를 가지고 사실을 증험했음을 알 수 있다.”
[『연기(年紀)』에
‘노자가 주나라 경왕 32년 계축의 해에 함곡관(函谷關)을 지나서 서쪽으로 진(秦)나라 땅에 들어갔다’ 하였으며,
『위서(魏書)』에
‘노담이 윤희(尹喜)와 더불어 주나라 경왕 때에 함께 산관(散關)을 나갔다’고 하였으니,
개황(開皇) 5년 을사의 해까지는 1천37년의 간격이 있다.]
[유생, 태상은 부처의 스승으로서 능히 부처를 낸 것이다]
그 유생이 청하여 말하였다.
“『영보경(靈寶經)』 등에 의하면
‘태상(太上)의 큰 도는 하늘과 땅보다 먼저 나서 통허(洞虛)한 가운데 왕성하였고 옥청(玉淸)의 위에서 빛난다’ 하였으니,
이는 부처의 스승으로서 능히 부처를 낸 것이니 주나라 경왕 때의 노담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옳다고 인정합니까? 그 대답의 말을 듣기를 원합니다.”
[보살, 도는 어디에서 왔는가]
보살이 깨닫도록 말하였다.
“5제(帝) 이전에는 도라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며, 3황(皇)의 끝에 비로소 노담의 이름이 있었고 한나라 경제(景帝) 이래로 바야흐로 도학(道學)을 일으켰으니, 현재를 궁구하고 옛 것을 검토함에 도라는 것이 무엇인가?
[단양(丹陽)의 여구흥(余玖興)이 지은 『명진론(明眞論)』 19편에 도교를 반박하여
‘대저 지극히 밝은 것은 어두움에 대한 밝음이 아니기 때문에 말할 수가 없다.
지극히 고요한 것은 움직임에 대한 고요함이 아니기 때문에 말할 수가 없다.
우러러보고 구부려서 도경(道經)을 먼저 부르짖은 자를 찾아 구해보니, 말한 자의 성씨가 누구인가? 또 도는 누구의 말인가?
도가 만일 입이 있다면 곧 5음(陰)을 갖추어 이룬 것이어서 3재(才)의 안에 있을 것이니, 무상(無常)함을 면치 못하여서 마침내 분단(分段)에 얽매일 것이니 도리어 선도(仙道)에 포섭된다’ 하였다.]
6서(書)와 7적(籍)과 3전(傳)과 9류(流)를 조사하여 보니, 비록 나라를 경륜하는 전모(典謨)가 되나 『주역(周易)』을 스승으로 삼아 받들지 아니함이 없다.
『역(易)』에서
‘5운(運)이 서로 생겨나서 점차 맑고 흐림을 나누고 양의(兩儀)가 이미 개벽됨에 이에 음과 양으로 갈라졌다’ 하였으니,
[「예운(禮運)」에
‘태일(太一)이 나뉘어서 하늘과 땅이 되고 전(轉)하여 음과 양이 되며 변하여 4시(時)가 된다’고 하였다.]
그 때문에 건원(乾元)이 처음을 의뢰하고 곤도(坤道)가 생을 의뢰하였다.
그래서 3광(光)이 하늘에 형상을 나타내는 것은 건(乾)의 도이고, 만물이 땅에서 형상을 품(稟)하는 것은 곤(坤)의 도이다.
[『건착도(乾鑿度)』에
‘건(乾)은 하늘을 모양으로 삼고 곤(坤)은 땅을 법한다’ 하였으며,
이괘(離卦)의 단전(彖傳)에
‘해와 달은 하늘에 빛나고 백곡(百穀)은 땅에서 나타난다’ 하였다.]
그러기에 ‘한 번 음(陰)하고 한 번 양(陽)하는 것을 도라 한다’ 하였고,
[설괘(說卦)에
‘하늘의 도를 세우는 것을 음과 양이라 하고, 땅의 도를 세우는 것을 유(柔)와 강(剛)이라 하고, 사람의 도를 세우는 것을 인(仁)과 의(義)라 한다. 3재(才)를 겸하여 둘로 하였다. 그러기에 3획(劃)으로서 괘(卦)를 이루었다’ 하였다.]
음과 양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을 신(神)이라 한다.
도라 함은 이치이고 통함이고 화함이고 동일함이니 말하자면 음과 양의 운수가 통하여야 3재의 위치가 서고, 위와 아래가 서로 통하여야 만물이 생한다.
음과 양의 도가 있어서 이치가 능히 통해야 사람과 사물이 생겨나며, 하늘과 땅과 조화를 이루어 하나로 되어야 여럿이 싹터서 유(類)로 움직인다.
[『예기』 「월령편(月令篇)」에
“하늘 기운이 아래로 내려오고 땅의 기운이 위로 올라가서 하늘과 땅이 조화되고 한가지로 되어야 만물이 싹터서 움직인다” 하였다.]
격렬한 천둥으로써 고동(鼓動)하는 것은 양이 움직임이요, 바람과 비로써 윤택하게 하는 것은 음의 따름이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이 있지 아니하면 도가 어디로부터 생기며, 음과 양이 있지 아니하면 도가 무엇으로 말미암아 신령스럽겠는가?
그러니 어찌 조화의 전에 도가 이미 먼저 나겠는가?
가령 도가 있다 하여도 하늘과 땅과 음과 양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수신계(搜神契)』에 ‘성스러움도 하늘과 땅에 지나침이 없고, 신령스러움도 음과 양에 지나침이 없다’ 하였다.]
대저 하늘과 땅은 일에 있어서 밝힐 수 있고, 음과 양은 생에 있어서 증험할 수 있으니 이수(理數)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도가 있어 하늘과 땅보다 먼저 났다고 말하지 아니하였다.
도를 이미 좇을 수 없거늘 어찌 능히 부처를 내겠는가?
옛날 차윤(車胤)이 『도덕』을 풀이하여
‘사람에 있어서는 덕(德)이 되고 사물에 미쳐서는 도(道)가 된다’ 하였다.
은중문(殷仲文)은
‘덕이라 함은 얻는 것이요 도라 함은 말미암는 것이니, 말하자면 효(孝)를 얻어 마음에 두면 이를 덕이라 이르고, 그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면 도라고 이른다. 그 때문에 효는 덕을 행하는 근본이다’라고 하였다.
성(成)은
‘도는 공이요 덕은 빛남이니 스스로 섬[自立]을 이름이요, 도는 겸제(兼濟)의 공이 있다.
안으로는 덕으로 인하여 행이 나가고 밖으로는 도로 말미암아 교화가 이루어진다. 생하고 기르는 것이 도의 요긴함이요, 이루어지고 익음이 덕의 지극함이다’ 하였다.
그러기에 『논형(論衡)』에서
‘몸을 세우는 것을 덕이라 이르고 이름을 이루는 것을 도라 이른다’고 한 것이다.
도덕이라는 것이 이와 같다. 그러니 그대가 말하는 도는 이와 다른가?
이와 다르다면 족히 귀의하여 믿을 것이 못되는데, 어찌 머리에 금관(金冠)을 이고 몸에 누런 바지를 입고 머리털에는 흰 털을 드리우고 손에는 옥장(玉璋)을 잡으면서 특별히 천존(天尊)이라 일러서 대라(大羅)의 위에 살고 홀로 큰 도라고 일러서 옥경(玉京)의 가운데를 다스리겠는가?
『산해경(山海經)』에서 아직 자세히 밝히지 않은 것이요 경과 역사서에서 싣지 아니한 것이다.
대라(大羅)라 함은 이미 오유(烏有)의 말이요, 옥경이라 함은 본래 없으니, 이것은 허망한 이야기일 뿐이다.
[『산해경』을 조사하여 보니,
“천하에 이름 있는 산이 5천3백70개가 있다. 5만4천5백 리를 지나 곤륜산(崑崙山)이 있는데, 가장 높고 크다. 그 위에 현묘한 나라가 있으니 대개 신선이 사는 곳이어서 금성(金城)과 석곽(石槨)과 경지(瓊枝)와 옥수(玉樹)와 보엽(寶葉)과 금화(金花)가 있으며, 해와 달과 별의 3광(光)이 그 아래에 벌려 있고, 운거(雲車)와 우패(羽旆)와 봉가(鳳駕)와 용헌(龍軒)과 옥녀(玉女)와 선동(仙童)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고 하였다.
다음에는
“바다 가운데 3산이니 봉래(蓬萊)와 방장(方丈)과 영주(瀛州)이다”라고 하였다.
손흥공(孫興公)의 「명산부(名山賦)」에
“바다를 건너가면 방호(方壺)와 봉래가 있고 봉우리에 오르면 사명산(四明山)과 천태산(天台山)이 있다”고 하였다.
『이아(爾雅)』에서는 다만 5악(嶽)만을 말하였다. 옥경은 이미 상상(上上)의 명산이다.
또 “천존이 다스리는 부(府)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어찌하여 『산해경』에 실리지 아니하고 『이아』에는 그러한 글이 없는가?]
또 그대가 말한 태상(太上)이 부처의 스승이 된다는 것은, 조사하여 보니, 지난 시대의 선유(先儒)들과 양(梁)나라 승성(承聖:元帝의 연호)의 『해오천문(解五千文)』에 옛날부터 명쾌한 해석이 있었던 것이다.
태상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아래에 그것이 있음을 아는 것이니 3황(皇)으로부터 5룡(龍)에 이르기까지가 이것이요,
둘째는 그 다음으로 친히 기리는 것이니 복희씨와 신농씨가 이것이요,
셋째는 그 다음으로 두려워하는 것이니 헌원씨와 제곡씨(帝嚳氏)가 이것이요,
넷째는 그 다음으로 업신여기는 것이니 요임금과 순임금의 아래가 이것이다.
『예기』에
‘태상은 덕을 귀중하게 여기고 그 다음은 베풀어서 갚기에 힘쓰는 것이니, 이른바 천황씨로부터 사람의 제왕이 태상이 된다’고 하였으니, 별도로 도가 없었다.
『신통론(神統論)』에서는 그 가르침에 다만 임금과 백성을 훈도(訓導)하여서 뜬 풍속을 끌어당기고 이끄는 데 그쳤고, 처음부터 만행(萬行)을 닦아 열반에 나아가며 4류(流)를 운반하여 나고 죽음을 초월한다 함을 듣지 못하였다.
도경(道經)의 『원황력(元皇曆)』을 조사하여 보니,
‘내가 들으니 큰 도는 태상(太上)이어서 바르고 참됨이 자연에서 나왔다’고 하였으니,
이는 부처가 무위(無爲)의 임금이 됨을 이른 것이다.
도경 속을 검사하여 보니, 부처를 부르기를 큰 도[大道]라 하고, 태상(太上)이라 하고, 자연이라 하고 바르고 참되다 하고 태극(太極)이라 하고 더 위가 없다[無上]고 하였으니, 이것은 다 부처를 말한 것이다.
또 ‘천축국에 고황(古皇) 선생이 있었는데[부처가 태고의 원황(元皇) 선생임을 말한 것이다.] 열반에 잘 들어갔다. 고황 선생은 곧 나의 스승이다. 천축국을 노닐며 교화하다가 이제 장차 신(神)으로 돌아가 무명(無名)에 환원되어 몸을 끊고 유(有)를 멸하여 죽지 아니하고 마치지 아니하며 면면(綿綿)히 항상 있으면서 내가 이제 간다’고 하였다.
[노군(老君)은 부처의 열반을 알았기 때문에 교화와 인연의 일을 마친 것을 진술하였다. 그래서 환원되었다고 일러 주었으나 문인(門人)들이 알지 못하였기에 이제 자술(自述)하여 이르기를 ‘나의 스승은 본래 서방에 있었다. 이 때문에 서방으로 승천한 것이다’ 하였다. 그것은 연모(戀慕)의 뜻을 편 것으로서 글에 논지(論指)가 있었고 증거를 취함이 분명하였다.]
『삼통경(三洞經)』에서는
‘부처는 도의 아버지이다’ 하였고,
『서승경(西昇經)』에서는 또
‘천하의 큰 술법(術法)은 부처가 가장 제일이다’ 하였다.
[부처의 신통변화가 다함없음을 말한 것이다.]
『화호경(化胡經)』에서는
‘노자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고자 하셨으나 다시 돌려서 세상에 계시면서 가섭(迦葉)이라 함을 알았다. 사라쌍수(娑羅雙樹) 사이에서 대중을 위하여 질문하셨다’ 하였으며,
『전신입정경(轉神入定經)』에서는
‘일체를 생각한다’ 하였으며,
「관령전(關令傳)」에서는
‘노자가 말하기를
≺나의 스승은 부처라 부르니 모든 백성들을 깨닫게 하시는 분이다. 내가 나물밥을 먹고 경을 외우며 더 위가 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일컬으며 부처의 위신(威神)을 받든다고 하여 부처님을 부르기를 세존(世尊)이라 하였으며, 형체가 신과 더불어 놀아서 높고 위대하고 큰 성인이며 시방의 지극히 참됨을 받아야 부처의 도를 얻는다≻’고 하였다.
도경을 검사하여 보니, 곳곳에서 부처를 다 스승으로 일컬었다.
내가 이제 그대를 위하여 이를 해석함이 여기에 있으니 그대가 마땅히 이를 생각하고 여기에 있어서 정수(頂受)하여 받들어 행하여라.
부처라 함은 대개 절칭(絶稱)의 큰 종(宗)이요 지극히 묘한 그윽한 집이다. 무(無)로써 취할 수도 없고 유(有)로써 구할 수도 없다. 과연 유가 아닌 까닭이 있기에 유라고 할 수도 없고 무가 아닌 까닭이 있기에 무라고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만일 유의 경계를 근본으로 하면 큰 근심이 길이 멸할 것이요, 무의 마을로 추구하면 큰 자비가 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항상된 이치는 원(原)할 수 없음이 자연의 체이고, 무심으로 교화를 이룸이 큰 도의 종(宗)이다.
3황과 5제가 시작하지 못할 것이니 고황(古皇)보다 앞에 있기 때문이요,
엄하지 아니하면서 풍속을 바로잡으니 무위(無爲)의 임금이요,
혼돈(渾沌)하여 헤아릴 수 없으니 무명(無名)의 주인이며,
면면(綿綿)하여 있는 것 같으니 여러 묘함의 근본이다.
그가 신령함을 내림에 큰 도의 스승이 되고 그가 교화를 염에 태상의 아버지가 된다. 그러니 어떻게 눈을 감고서 하늘과 땅을 볼 수 있으며 귀를 막고서 격렬한 천둥소리를 듣겠는가?
부처님을 법왕(法王)이라 부르고 세상의 조어(調御)라고 하는 까닭은 아래의 범부와 위의 성인들이 귀의하지 아니함이 없기 때문이다.
어찌 5로(老)의 신이라 일컫고 3황(皇)의 부록을 차고서 능히 부처의 스승이 되었다 하겠는가?
[『출관의(出官儀)』를 조사하여 보니, “무상삼천(無上三天)ㆍ현원시기(玄元始氣)ㆍ태상노군(太上老君)ㆍ태상장인(太上丈人)ㆍ무상현로(無上玄老)’라 하였고,
『조석예의(朝夕禮儀)』에서는
‘태상현원오령노군(太上玄元五靈老君)은 공조사자(功曹使者)ㆍ좌우의 용호군(龍虎君)ㆍ역룡기리(驛龍騎吏)ㆍ시향옥동(侍香玉童)ㆍ시향옥녀(侍香玉女)ㆍ옥제의 직부(直符)를 부르라”고 하였다.
그런데 늙은이라 함은 어른長이라 함이요, 높다 함이다. 5로(老)의 군(君)이라 한 것은 여러 신선의 높은 데 있고 1만 신선의 어른이라는 뜻이요, 5령(靈)이라 함은 5제(帝)니, 곧 신령하고 위엄스러워서 신으로 받드는 것이다. 3황(皇)이라 함은 천황과 지황과 인황이다.
정준(頂峻)의 『시학편(始學篇)』에서
‘하늘과 땅이 처음 섬에 천황씨가 있었으니 열세 명의 우두머리이다. 1만 8천 년을 다스렸다’ 하였으며,
『괄지상(括地象)』에서는
‘천황씨는 아홉 개의 날개로 날아서 왕래하였다’ 하였다.
그런데 노자가 섬기는 3황과 5악(嶽)과 6갑(甲)의 부도(符圖)는 모두 황령(皇靈)이 만든 것인데 노자가 그것을 차고 다니면서 그것으로 몸을 방지한 것이다.
그러나 3황의 부록과 5로(老)의 진문(眞文)은 다 단록(丹綠)으로 다섯 가지의 채색을 썼으며 천문(天文)의 화(火)자는 차고 다니면 장생불사(長生不死)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미 신선에 이르렀으면서 거기에서 말한 관직과 장군과 이병(吏兵)은 세속과 더불어 다름이 없다.
안광록(顔光祿)과 왕빈(王斌) 등은 ‘도교라는 것은 형체를 단련하는 법이니 선화(仙化)에 있고, 불교는 마음 가지는 법이니 중생을 제도하는 데 있다’ 하였다. 도교의 종(宗)으로 하는 것은 3황과 5룡이다.]
그러기에 『열반경(涅槃經)』에서
‘모든 부처의 스승은 이른바 법이니 법이 항상하기 때문에 모든 부처도 항상하다’고 하였다.
내가 다시 그대를 위하여 거듭 이 뜻을 밝히겠다.
조사하여 보니, 『불설공적소문경(佛說空寂所問經)』과 『천지경(天地經)』에서
‘내가 가섭(迦葉)보살로 하여금 저곳에 있어서 노자가 되어 무상도(無上道)라고 이르고, 유동(儒童)보살은 저곳에 있어서 공구(孔丘)라고 이른다. 점점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효순(孝順)하게 한다’고 하였다.
『수나경(須那經)』에서는
‘내가 열반한 뒤 1천 년에 부처의 법이 마땅히 동쪽으로 유전하여 임금과 인민들이 계를 받들고 착함을 닦으리라’ 하였다.
[옛 기록에
‘주나라 혜왕(惠王) 때에 이미 부처의 가르침이 펴졌으며 1백여 년 뒤에 노자가 바야흐로 5천여의 글을 말하였다’고 하였다.
유향(劉向)의 서문에서는
‘내가 장서(藏書)를 검사할 적에 매양 불경을 보았다’ 하였으니,
마땅히 알겠다. 부처님의 교화가 이 땅에 유전된 지 오래였다.]
가만히 생각하여 보니, 3대(代)가 장차 말기가 되면서 6국(國)이 일어나서 유세하는 무리들이 마음을 구차스럽게 얻는 데 두고 과장되고 허탈함을 근심하지 아니하여 육신을 피폐하게 하고 혀를 날름거리면서 기이한 꾀를 내고 입술을 흔들어서 학리(虐利)를 말하였다.
조귀(曹劌)가 싸움을 청하여 땅을 되찾고 이에 여사(如師)는 피발(被髮)의 통곡을 느끼고 이천(伊川)은 궁거(窮車)의 메움을 통곡하여서 3하(河)의 물을 건너고 4이(夷)를 진갈(震竭)하며 서로 침탈해서 천명이 어두워짐에 모기가 극성해지고 토끼가 춤추니, 팽생(彭生)이 시제(豕啼)의 괴이함을 하였고 두백(杜伯)이 절척(折脊)의 징조를 보였다.
가령 아형(阿衡)에 위임되어 처하였으며 몸이 태보(台輔)에 있더라도 나부끼는 바람과 어는 비의 난폭함을 선(扇)하지 못하고 하늘을 돌리고 해를 굴리는 위엄을 열(烈)하지 아니함이 없을 것이오. 그러기에 포(褒)의 여자를 임금에게 바침에 봉화(烽火)의 도적을 맞이하게 되었고, 초(楚)나라 사람이 9정(鼎)의 가볍고 무거움을 물음에 하늘을 업신여기는 거슬림이 점점 일어났다.
요사이 하늘과 땅이 반탕(叛蕩)하고 예의와 음악이 붕괴(崩壞)되어 이름이 욕되고 몸이 쇠잔하여도 일찍 돌아보아 부끄러움이 없으니 집을 전복(顚覆)하고 나라를 전복한들 어찌 차마 돌아감을 잊으리오. 그가 어찌 세계가 무슨 죄임을 알겠으며 창생(蒼生)들이 도탄(塗炭)에 듦을 생각지 아니하겠는가?
그 때문에 부처님께서 세 분의 성인을 보내서 방편으로 한 지방을 교화하게 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의식을 펴고 몸을 닦는 술법을 펴게 하여서 그로 하여금 삿됨을 대신하여 예의를 쓰게 하고 얄팍한 것을 변하여 순수한 데 돌아오게 함으로써 다 중생들의 본뜻을 누르게 하였으니 이는 출요(出要)의 큰 도가 아니겠는가?
만일 마음을 세 가지 통달하는 경계에 놓아두고 생각을 네 가지 덕의 장소에 고요하게 하여서 공을 생령(生靈)들에게 입히고 은택을 저와 이것에 골고루 입게 하면 다른 지방의 보살들이 움직이는 것이 항하(恒河)의 모래같이 많을 것이고, 이 땅에서 발심한 이 또한 미진(微塵)과 같이 많을 것이다. 이는 문자로 일컬어 전할 것이 아니지만 대략 여섯 사람을 들어서 사모하여 우러름을 열고자 한다.
문수(文殊)보살은 당세에 자취를 굽히셨고, 미륵(彌勒)보살은 보처(補處)로 미래를 살피시며, 관세음(觀世音)보살은 색신(色身)을 널리 나타내어 구원 겁 이래로 은혜가 깊었고, 지장(地藏)보살은 진단(震旦)을 보호하여 가져서 교화가 다함없는데 흡족하였으며, 마명(馬鳴)보살은 3방(方)을 동하(東夏)에 겸하였으니 마치 아침 햇빛이 새벽의 밝음을 열어서 6합(合)으로 하여금 함께 비추는 것과 같으며, 용수(龍樹)보살은 신주(神州)에서 만 리에 걸터앉으니 마치 밝은 달이 어두운 밤을 비추는 것과 같아서 능히 8표(表)로 하여금 한가지로 빛나게 함과 같다.
이로부터 이외로는 혹은 노인이 되도록 도를 크게 하고 혹은 어려서부터 부처의 법을 폈다. 남자와 여자가 형체를 다르게 하고 오랑캐와 중국 사람이 부류는 달라도 인연을 따라 교화를 펴고 장소를 따라 범부들을 유인하니, 현묘한 공은 1백 임금에게 이로웠고 지극한 가르침은 9유(有:九州)에 유전되어서 이를 일러 이를 말하고 이에 있으며 진실로 여기서 나와 여기에 있다 하겠다. 그러니 자하(子夏)로써 공자[仲尼]의 이름을 도적질하지 말며, 달팽이 뿔로써 곤륜산(崑崙山)의 큰 것을 겨루지 말 것이니라.”
[유생의 말]
그 유생이 어깨를 드러내놓고 머리를 두드리고 손을 비비고 발을 핥으며 말하였다.
“제가 죄를 청합니다. 제가 죄를 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