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 나열한 정신 활동에는 순전히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지는 것도 여러개다.
자기 언어로 된 간단한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갑자기 큰 소리가 났는데 어느 쪽에서 났는지를 모를 수는 없다.
2+2=4를 모르거나 프랑스의 수도라고 했을 때 파리를 생각하지 않기도 어렵다.
이 외에 이를테면 음식을 씹는 행위는 자발적으로 조절할 수도 있지만 보통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주의 집중 조절은 두 시스템이 공동으로 담당한다.
소리가 난 방향에 주목하는 것은 보통 시스템1이 부지불식간에 작동한 결과이며,
그 결과로 시스템 2가 자발적으로 주의를 집중한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파티에서 큰 소리나 험악한 말이 들린 쪽으로 애써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는 있지만,
잠간이라도 그쪽으로 신경이 쓰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곧바로 다른 대상으로 주의를 돌려, 원치 않는 대상에서 신경을 끊을 수 있다.
시스템 2의 대단힌 다양한 활동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주의를 집중해야하고, 산만해지면 일을 그르친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보자,
ㅇ 달리기에서 출발 신호에 대비한다.
ㅇ 서커스에서 광대에 주목한다.
ㅇ 백발 여성을 찾아 두리번 거린다.
ㅇ 깜짝 놀랄 소리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기억을 더듬는다.
ㅇ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계속 걷는다.
ㅇ 내 행동이 사회적으로 적절한지 점검한다.
ㅇ 책에서 한 페이지 안에 '다'가 몇 번 나오는지 센다.
ㅇ 상대에게 내 전화번호를 말한다.
ㅇ (주차장 직원이 아닌 대다수 사람이) 비좁은 공간에 주차한다.
ㅇ 세탁기 두 대를 놓고 전반적 가치를 비교한다.
ㅇ 세금 신고서를 작성한다.
ㅇ 복잡한 논리적 주장의 타당성을 점검한다.
이상의 상황은 모두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며,
산만해지거나 엉뚱한 곳에 집중하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
시스템 2는 대개 즉흥적으로 일어나는 주의 집중과 기억을 조정해,
시스템1이 작동하는 방식을 바꾸는 능력이 있다.
이를테면 번잡한 기차역에서 친척을 기다릴 때
백발의 여자나 수염을 기른 남자를 알아보도록 정신을 조율해, 멀리서도 친척을 찾아낼 가능성을 높인다.
또 기억을 조율해 N으로 시작하는 수도 이름을 찾기도 하고,
프랑스 실존주의 소설을 찾기도 한다.
런던 히스로공항에서 차를 빌리 때,
관리원은 분명 "여기서는 도로 왼쪽으로 주행합니다"라고 알려주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경우에 평소와는 다르게 행동해야 하고,
그런 상태를 꾸준히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는 계속 신경을 써야 한다.
'주목하다'라는 뜻으로 흔히 사용하는 영어 'pay attention'은
원래 주목이나 관심을 지불한다는 의미로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말 그대로 사람들은 '관심'이라는 제한된 예산을 여러 활동에 적절히 배분하는데,
배분된 예산을 넘겨 지출하면 파산하게 마련이다.
신경을 써야 하는 어러 일이 서로 충돌할 때,
그 일들을 동시에 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17x24를 계산하면서 동시에 꼭 막힌 도로에서 죄회전을 하기는 불가능하니 아예 시도도 하지 말아야 한다.
여러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경우는 힘들이지 않아도 되는 쉬운 일을 할 때뿐이다.
이를테면 텅 빈 도로에서는 차를 몰면서 옆 사람과 이야기를 해도 안전에 문제가 없고,
부모가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딴 생각을 해도 양심의 가책을 느낄지언정 아무 문제가 없다.
집중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은 다들 인정하는 사실이라서
사회적 행동에도 이런 인식이 반영된다.
예를 들어 운전자가 좁은 길에서 트럭을 추월할 때면
동승자는 어린애가 아니라면 하던 말을 잠깐 멈춘다.
운전자를 산만하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고,
어떤 말을 건네도 운전자는 일시적으로 못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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