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중관석론 제8권
9. 관선분위품(觀先分位品)
앞 품에서 말하는 작자(作者)와 작업(作業) 같은 그 능취(能取)와 소취(所取)의 두 법은 또한 서로 시설하여 성품이 있다고 한 것을 여의지 않는다. 승의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종파가 이러한 게송으로 말한다.
[論]
눈과 귀 등의 모든 감각기관과
감수 등의 심소법(心所法)에
그 취해지는 것이 만약 성립되면,
취하는 자가 있어 먼저 존재할 것이다.
[釋] 한 종파의 사람이 이와 같이 말하는데, 그는 원인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아래의 게송에서 말한다.
[論]
만약 그 먼저 존재하는 것이 없다면
어떻게 눈과 귀 등이 있겠는가?
[釋] 여기서의 의도는 먼저 물체가 있다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옷감을 짜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아래의 게송에서 말한다.
[論]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먼저 이미 법이 존재하고 있음을.
[釋] 만약 그 취해지는 보는 것 등의 법이 먼저 존재한다면, 이에 취해지는 바가 있을 것이니, 도구를 조작하여 사용하는 것과 같다.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論]
눈과 귀 등의 모든 감각기관과
감수 등의 심소법에
법이 먼저 존재하는 것이 있다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釋] 그 종파의 의도는, 마땅히 그 다른 법이 능히 취하여 곧 취해지는 것을 얻을 수 있음을 알라는 것이다.
[論]
그 눈 등의 감각기관과 별다르게 취해지는 것은 먼저 그 자체가 없어서, 이러한 의미는 성립되지 않는다. 이것은 법의 차별을 부정하는 것이다.
만약 혹시 취해지는 것이 있지 않다고 시설한다면, 곧 시설되는 물체의 성품에는 자체가 없다. 날실과 씨실이 없으면 모직물 등이 성립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것은 법의 자상을 부정하는 것이다.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論]
만약 눈 등의 감각기관을 여의고
법에 먼저 존재하는 자가 있다면
[釋] 보고 들음 및 감수의 이들 모든 법에 만약 먼저 존재하는 것이 있다면,
그러므로 아래의 게송에서 말한다.
응당 눈과 귀의 감각기관을 여의고
보는 것 등이 있음에 의심이 없으리.
[釋] 지금 이러한 것은 있지 않다. 그 눈의 감각기관 중에는 보는 법이 있어서 화합할 수 없다. 눈의 감각기관을 여의고 보는 법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한 것처럼 나머지 의미도 또한 그러하다.
눈 등의 감각기관을 여의고 어떠한 법이 있겠는가?
만약 취하거나 버리거나, 만약 눈의 감각기관과 다르다면, 어떻게 보고 들음이 있겠는가?
만약 취하는 바가 없이 혹은 보고 혹은 듣는다면, 어떻게 이것이 본 것이고 들은 것이며, 이것이 능히 보고 듣는 것임을 알 수 있겠는가?
또한 눈 등에 먼저 능히 보고 감수하는 자가 있음도 성립될 수 없다.
이것은 또 어떻게 차별되는가?
보는 성품에는 자체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만약 눈 등을 여의고 먼저 존재하여 능히 보고 들음을 이루는 자가 있다면, 이것은 곧 머무름이 없다.
만약 눈 등을 여의지 않고 법이 먼저 존재한다면, 이것은 이에 보는 것이 곧 듣는 것이라, 또한 도리에 맞지 않는다. 보는 상태가 소멸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혹은 이와 같이 능히 눈의 감각기관과 보이는 모습이 서로 여의지 않음을 본다면, 그 때문에 눈 등의 감각기관을 여의고는 또한 취해지는 것이 없으니 어떻게 능히 취함이 있겠는가?
만약 보거나 듣거나, 만약 취해지는 것을 여의고 또 어떻게 능히 취함이 있겠는가?
혹은 게송에서 말한다.
[論]
일체 눈 등의 감각기관에는
참으로 법이 먼저 존재함이 없다.
[釋] 어떻게 하나하나의 감각기관에 법이 먼저 존재함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아래의 게송에서 말한다.
[論]
눈 등의 감각기관이 취하는 바는
다른 모습이며 또한 다른 종류다.
[釋] 이것은 눈 등의 그 하나하나의 감각기관에 먼저 법이 존재함이 있지 않음을 말한다.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論]
만약 눈 등의 모든 감각기관에
법이 먼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눈 등의 모든 감각기관이 마땅히
어떻게 먼저 있겠는가?
[釋] 만약 하나하나의 감각기관에 결정적으로 법이 있어 먼저 존재한다면, 이것은 이에 먼저보다 또 먼저가 있음이다.
만약 그렇다면 즉(卽)하는 것인가, 여의는 것인가?
지금 이것은 이와 같이 또한 눈의 감각기관 이전에 먼저 그 나머지 귀 등의 여러 감각기관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성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 어찌하여 그러한가?
그러므로 아래의 게송에서 말한다.
[論]
만약 보는 자가 곧 듣는 자이고
듣는 자가 곧 감수자라서
하나하나에 먼저 존재하는 것이 있다면
이와 같은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釋] 보는 상태임을 여의고 그 듣는 자와 감수자가 화합할 수는 없으며, 또한 먼저 눈 등의 여러 감각기관이 있어서 보는 성품을 얻을 수도 없다. 눈 등과 서로 어긋나기 때문이다.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論]
만약 보고 들음이 각각 다르고
감수자도 또한 달라서
보는 때에 만약 능히 듣는다면
곧 많은 자아의 자체를 이루리라.
[釋] 만약 눈 등의 하나하나의 감각기관이 먼저 각각 다름이 있다면, 곧 보고 들음이 각각 다르고 감수자도 또한 다를 것이다.
만약 보는 것 등이 차례로 성립된다면, 만약 보는 것이 곧 능히 듣는 자라면, 이것은 보는 것으로 전하여 듣는 것이 있음이다.
이것은 또 어찌하여 그러한가?
각각 다르게 상속함으로써 많은 자아의 자체를 성립시키는 것이다.
만약 따로 취하는 자가 있다고 한다면 이것을 마땅히 관찰해 보라. 그 종파에서는 인용하여 말한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명색(名色)은 육처(六處)를 연하는데 그 색(色)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으로, 곧 능히 취함과 취해지는 바가 있다. 그러므로 참으로 취하는 자의 상태가 있으며, 눈 등의 감각기관이 육처와 차례로 화합함으로 말미암아 이에 감수하는 법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論]
눈과 귀 등의 모든 감각기관과
감수 등의 심소법
그것은 여러 대종(大種)으로부터 생기나
그 대종에는 먼저 존재함이 없다.
[釋] 그 능히 취하는 성품이 필경 있다고 말하는 자는, 어떻게 그 취해지는 바를 여의고 먼저 대종으로 성립된다고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곧 취해지는 바가 아니다. 능히 취하는 것은 취해지는 것으로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취해지는 것이 이와 같이 결정적으로 그 취해지는 성품이 있다면, 저울의 낮고 높음과 같이 곧 원인과 결과, 생함과 소멸이 취해지는 법을 여의고, 그 동시적인 성품이 이렇게 결정적으로 능히 차별을 취하면, 곧 많은 성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차별이 없다면 한 성품이 동시에 생할 수 없다. 취해지는 바를 여의고 성립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혹시 대종이 취하는 바를 따라서 생한다면, 곧 법이 먼저 존재함이 없다.
만약 그 대종에 먼저 존재함이 없다면, 어떻게 대종으로 성립된 눈 등의 모든 감각기관에 그 취해지는 것이 있겠는가?
또한 능히 취하는 것과 취해지는 중간에도 결정적으로 법을 얻을 수 없다.
또 다음에게 게송에서 말한다.
[論]
눈과 귀 등의 모든 감각기관과
감수 등의 심소법에
만약 먼저 존재하는 것이 없다면
눈 등도 또한 응당 없으리라.
[釋] 만약 눈 등의 모든 감각기관에 법이 먼저 존재함이 없다면, 곧 능히 취하거나 취해지는 법이 있지 않다.
어떻게 눈 등의 능히 취하는 것이 대상으로 인하는 성품이 있겠는가?
어떤 사람이 말한다.
마땅히 능히 취하는 것에서 성품을 얻을 수 없음을 알 것이니, 이것이 곧 바른 견해를 발생하여 삿된 견해를 버리는 것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만약 법에 성품이 있는 것이 모두 환화(幻化)와 같다면 이것은 곧 바른 견해이고,
만약 법에 성품이 없는 것이 환화와 같다면 이것은 곧 삿된 견해이다.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한다.
[論]
그 눈 등에는 먼저 존재하는 것이 없고
이후에도 역시 또한 없다
세 때[三時]에 없으므로
성품이 있다는 것은 모두 그쳐 소멸된다.
[釋] 모든 분별은 승의제에서 전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분별이 있다면 모두 세속에서 시설되어 얻는 것이다. 승의제에는 곧 분별이 없으니, 성품이 있음을 버렸기 때문이다. 세속제 중에는 얻는 법이 있으나 모두 환화와 같음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법이 먼저 존재함이 있다면, 곧 삿된 견해로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 서로 어긋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