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너머 단종의 울먹임 들려온다
부석사 방향에서 바라본 소백산의 형제봉과 자개봉. 저 두 봉우리 사이로 고치재가 나아 있다.
소백산은 경북 영주와 충북 단양을 품에 안고 강원도 영월을 굽어본다. 산 북쪽엔 마구령과 고치재(古峙嶺)가 있어 옛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 중 고치재는 단종애사의 슬픔이 금성대군으로 인해 더욱 깊이 새겨진 고개다. 영주시 순흥면 소수서원을 거쳐 소백산 고치재를 넘어, 단양군 의풍과 영월 와석의 김삿갓 묘를 지나, 하동면 옥동리에 이르는 길을 따라가며 단종의 흔적과 산골의 정취를 찾아본다.
단종과 금성대군의 슬픈 역사
소수서원이 있는 영주시 순흥 땅. 이 곳에 이르면, 땅에 스민 역사의 내음을 맡고 고개를 들어 북녘을 병풍으로 둘러친 소백산을 바라보아야 한다. 쓸쓸하게 사라져 간 역사의 아픔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옛날 순흥은 경북의 행정·문화의 중심지 가운데 한 곳이었던 순흥도호부가 있었다. 소수서원 학예연구원 박석홍 씨는 그 아픔을 이렇게 말한다.
“옛 순흥도호부는 관할 지역만도 현재의 충북 단양군 영춘, 강원도 영월군 상동·하동과 태백시의 황지·철암·장성, 경북의 예천과 울진군의 일부를 포함할 만큼 광대했습니다. 그러나 이 곳에 유배되었던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를 위한 거사가 세조 3년(1457)에 발각되면서 순흥 고을은 불바다와 피바다가 되었습니다. 도호부는 폐부가 되었고….”
금성대군과 뜻을 같이 했던 수많은 선비들이 죽임을 당해 소수서원 앞을 흐르는 죽계천에 수장되었다고 전해진다. 서원 동북쪽 200m쯤에는 그 선비들과 금성대군 그리고 순흥부사 이보흠의 넋을 기리는 금성단(錦城壇)이 있다. 200여 년이 흐른 뒤인 숙종 45년(1719)에야 역사를 들추어 단을 설치했다.
서원에서 931번 지방도를 따라 부석사 방향으로 6㎞쯤 가면 고치령 초입인 단산면 옥대리다. ‘마락 청소년 야영장’ 표지판이 서 있는 길로 들어서야 한다. 시작은 포장 도로다. 길 옆엔 인삼 밭이 있고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드문드문 지나간다. 3㎞를 가면 좌석리로, 덜컹대는 황토길이 시작된다.
고치재의 맑은 계곡 물이 흐르는 개울가엔 하얀 찔레꽃이 뒤덮고 있다. 계곡에는 너럭바위가 종종 나타나 쉬어 가기에 좋다. 가는 봄비가 뿌려 산줄기는 뿌옇게 흐리다. 어느새 길은 산자락을 타고 올라 길 저 아래로 계곡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산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소나무와 낙엽송과 신갈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찼다.
차를 세우고 귀를 기울이면 나뭇잎에 빗방울 돋는 소리가 청량하게 들려온다. 그리고 뚜루루루, 뚜루루룩 하며 온산을 두드리는 딱따구리 소리와 개개-개개개 하는 떠드는 개개비새 소리가 적막의 산을 깨운다.
비포장 길에 들어서 6㎞ 쯤이면 해발 800m의 고치재다. 길 오른쪽에 단종과 금성대군을 함께 모시는 산령각(山靈閣)이 있다. 정녕 산 아래 마을에 떠도는 전설처럼 단종은 이 산줄기 동쪽 태백산의 산신령이 되었고 금성대군은 소백산의 산신령이 되었을까? 금줄을 치고 적막 속에 묻힌 성황당에는 그 전설이 떠도는 것만 같다. 무시로 불어대는 바람이 재를 넘는다. 때로는 충청도에서 경상도로, 때로는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바람이 재를 넘을 때마다 성황당 주변에 피어난 붓꽃이 후르르 후르르 대궁을 떨어댄다. 뜨락에는 놀러 왔다 가는 다람쥐의 발걸음이 바쁘다.
고치재는 높은 고개라는 뜻의 곶적령(串赤嶺)과 건의령(建義嶺)이라는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건의령은 단종 복위와 연관이 있다. 이 재를 넘어 영월 청령포에 계신 단종을 찾아 뵙고 돌아오는 길이면 금성대군은 이 잿마루에서 땀을 식혔다.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순흥부사 이보흠과 기필코 복위를 성사시키겠다는 다짐을 하며 뜻을 세웠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궐터 재를 넘어서면 사철 마르지 않는 샘물이 있다. 산 저 아래로 길과 마을이 아스라이 보인다. 잿마루에서 2.5㎞쯤 내려가면 윗새목이다. 길가 집은 비었고, 서까래가 허물어졌다. 길 왼쪽으로 뻗은 또 다른 길을 거슬러 오르니 외딴집이 나온다. 개가 짖고, 할머니 한 분이 문을 연다. 겨울에는 영주의 아들네 집으로 갔다가 봄이면 이 곳으로 돌아와 밭일을 한다는 김위남(77세) 할머니다.
“가만 앉아 놀믄 더 해루워요. 아파트는 답답해요. 심심하믄 녹음기를 틀어 천수경도 듣고 해요. 안즉꺼정은 감기두 모르니더.”
윗새목을 지나면서부터 골짜기가 널찍해지면서 밭이 자주 보인다. 곧 경상도의 끝마을 마락(馬落)이다. 마락은 고려 때 말을 키워 나라에 바치던 종마장 같은 곳이었다 하고, 조선 시대에는 비운의 임금 단종의 대궐 터가 들어섰다고 한다. 순흥과 영월의 중간 지점에 해당하는 이 곳에서 금성대군은 단종을 모시고 위로하며 복위를 도모했다는 것이다. 마락에서는 매년 정월 열나흗날과 시월 초정일, 일 년에 두 번 고치재 산령각에서 제사를 올린다.
삼도(道)에 갈려 사는 이웃이
만나는 노루목
외톨박이 길은 경상도를 지나 충청도 땅으로 들어선다. 단양군 영춘면 의풍이다. 남대천 물길을 따라 3㎞쯤 올라가면 다시 경북 땅으로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다. 남대리라는 지명은 단종의 행궁터가 있어 남대궐로 불리다가 일제 시대 때 남대리로 바뀌었다 한다. 경상도에서 백두대간을 넘어온 외톨박이 남대리를 적시며 의풍을 지나 영월로 흘러가는 남대천은 경상도에서 유일하게 한강으로 흘러드는 물길이다. 의풍을 지나면서 물길은 산자락을 휘휘 에돌아 가며 흐른다. 길도 심하게 패 있는 오르막이 있어 고치재를 넘을 때 보다 힘겹다. 의풍에서 3.5㎞쯤 물길과 함께 달리면 강원도 땅인 노루목이다. 다리를 건너면 음식점과 민박을 치는 마을이고 곧바로 100m쯤 가면 김삿갓 묘가 나타난다. 묘 앞에는 장승과 솟대가 줄줄이 서 있다.
“김삿갓의 묘자리는 버드나무 끝에 꾀고리가 집을 지은 형국에 들어 앉았어요.”
노루목상회 김성규 씨(65세)가 분석하는 풍수였다. 노루목에 가끔 강원, 충청, 경북의 접경 지역 사람들이 모이면 곧잘, “우리덜은 강원도도 못 믿구, 충청도도 못 믿구, 경상도도 못 믿구 그래요” 하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비가 오다 말다 하는 날씨가 계속되는 날이면 남대리(경북)에서도 노루목까지 나들이를 온다. 깨끗하게 빨아 놓았던 치마 꺼내 입고 구두 내려 신은 남대리 할머니들이 나라에서 무상으로 내어준 지프차를 타고 노루목 상회를 찾아와 막걸리 술잔을 치며 하루를 보내곤 한다. 경상도 사람인 그들은 충청도를 지나 강원도까지 길을 나서는 셈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나들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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