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배호 화백 |
불과 삼사일 전에 자기 옆에 우두커니 앉았다가 간 장만식,
그 사람이 아내를 죽이고 자살을 기도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나 같은 사람도 살고 있는데 그 영감이 그런 일을 저지르다니…
얼마 안 되는 퇴직금을 은행에 맡겨 두고 있던 때에는
삼일이 멀다고 들락거리던 아들놈이나 딸년들도,
투자한 증권이 깡통주가 되고부터는 원수를 대하는 듯 했다.
장만식 노인이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 죽으려다가 미수에 거치고 병원에 실려 갔다는 이야기를 전한 사람은 장 노인의 옆집에 사는 천기출 노인이었다. 천 노인은 그 이야기를 하면서 입에 거품을 물었다.
장 영감 그 사람, 37년 몇 개월을 동서기로 일하다 퇴직한 사람이 아닌가. 퇴직을 한 것이 벌써 십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 나이에 아내를 죽이다니, 허참, 사람 일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하긴 그래, 다들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영감 공원에 나와도 별로 말도 없이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어. 혼자 쭈그리고 앉아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곤 하던 것을 보면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만, 그렇다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 나이에 지 마누라를 죽이다니, 참 모를 일이야.
천 노인은 말을 하면서 혀를 찼다. 그의 말에 박대서 영감이 말을 거들고 나섰다. 젊을 때 대서소 일을 했다고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불렀다.
내가 듣기로는 그 영감 동사무소에서 퇴직하면서 받은 퇴직금을 저축은행인가 어딘가에 맡겼다가 많이 날렸다더군. 돈을 날리고 나서부터 아내의 구박에 시달린다더니, 일이 그렇게 된 모양이야. 은행에 넣어 두고 이자을 받아서 밥이라도 먹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인데, 은행이 문을 닫는 바람에 절반도 더 되는 돈을 날리고, 남은 돈마저 사업하는 사위에게 맡겼다가 다 날렸으니 어느 마누라가 가만히 있겠어. 가정 파탄이 나지 않는다면 그게 도리어 이상한 일이지.
자신도 늘그막에 목돈을 날린 적 있는 박대서 영감의 말에 자조가 섞여 있었다.
그래서 마누라가 날마다 들볶으며 악다구니를 해대니 홧김에 일을 저지른 것이겠지.
그 여편네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 카더구먼. 영감 밥 굶기기를 예사로 아는 이미 소문이 난 여자래. 영감이 엉덩이라도 좀 붙이고 앉아 있으면 가만히 앉아 있다고 잔소리고, 어디 밖에라도 좀 나가려고 하면 할 일 없이 돌아다닌다고 바가지를 긁어댔다고 하더구먼. 집에 키우는 개는 그래도 대접 받으면 제때에 밥 얻어먹고 물 얻어먹고 하였지만, 그 영감은 개보다도 더 못한 취급을 받았던 모양이야. 평생 동안 밥해 먹였는데 이 나이가 되어서도 밥 해먹여야 되느냐며 날마다 구박을 해댔다고 하더구먼.
천 노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대서가 끼어들어 말이 섞였다.
그래, 그날도 그랬다지 않던가, 거실에 앉아 있는 것이 눈꼴셔 못 보겠으니 어디 나가서 죽든지, 길바닥에 나앉았든지 하라면서 설거지 하던 물을 바가지에 담아 와서 퍼부었다고 하더구먼. 그러니 그 영감이 순간적으로 격분해서, 베란다 한 켠에 세워져 있던 빨래대로 여편네 목덜미를 쳐 실신시키고 목을 졸랐다지 않던가. 숨이 막히자 여편네가 살려 달라고 발버둥을 쳤지만 영감은 이미 눈이 뒤집혀 일을 저지르고 말았던 모양이야. 그리고는 자신도 창밖으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는데, 희안하게도 나무 가지에 걸려 죽지는 않고 허리뼈가 부러져 병원에 실려 갔다고 하더구먼.
천기출 노인의 말에 옆에 있던 노인들은 놀라워하면서도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남의 일 같지 않다는 표정으로 천 노인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시선을 떨구어 땅바닥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분위기는 숙연했다. 가정에서 천대받던 조천태 영감이 살기 싫다면 거실 베란다에 목을 매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나서 불과 두 달 만에 다시 일어난 일이라서 듣는 사람들의 표정이 더 어두워 보였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 밝은 노후 보내기 운동을 한다면 해피 시니어 클럽인가 뭔가 하는 단체에까지 가입하여 쫓아다니던 조천대 영감이 죽었을 땐 말이 많았다. 남의 노후를 즐겁게 해주겠다고 쫓아다니던 그가 스스로 목을 맸으니 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그들 주변에서 연이어 일어난 불행한 일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인지 크게 입은 여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산다는 것이 다 그렇고 그런 것 아닌가, 여느 마누라라고 별다른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 생각들을 하는지 이야기를 다 듣고도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공원의 이 시간은 사람들이 모여들 시간이다. 줄잡아도 백 수십 명의 노인들이 이 공원에 와서 하루를 보낸다. 적게는 오륙 명씩, 많게는 십여 명씩 끼리끼리 모여 하루를 보낸다. 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다. 천기출 노인처럼 한 평생 기름공장에서 일하다 퇴직한 사람도 있고, 우체국 집배원으로 일하다 물러난 사람, 철강 공장에 경비원으로 있다가 퇴직한 사람도 있었다. 조선소에 다니다 몸을 다쳐 나온 장팔대 노인도 있었다. 장팔대 노인은 그래도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몸은 다쳐 반신 불구가 되었지만, 그는 산업재해 보상으로 회사에서 목돈을 받았고 지금도 꼬박꼬박 재해 연금을 받고 있어서 돈에는 크게 걱정이 없는 듯 해보였다. 그 나이에 자기 수중에 그런 돈이 들어온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부러워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시선을 의식해서 인지 그는 늙을수록 몸이 성해야지 그까짓 것 돈이 대수냐고 말하곤 하지만, 그래도 수중에 자기 돈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든든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눈치였다.
박봉술 노인은 천 노인의 말을 듣는 순간 어디에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천 노인의 말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불과 삼사일 전에 자기 옆에 우두커니 앉았다가 간 장만식 그 사람이 아내를 죽이고 자살을 기도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살고 있는데 그 영감이 그런 일을 저지르다니……
박봉술 노인은 자신도 모르게 길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어떤 일이 있어도 참아야지, 대체 왜 그런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박 노인은 놀란 가슴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답답했다. 한나절은 좋게 지나도 장 노인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지금 가서 눈으로 확인이라도 해보아야지, 이렇게 있을 수 있나. 글쎄, 경찰에 잡혀 있는 그 사람, 면회나 되겠는가? 아차 그 생각은 못했군. 어디 경찰병원이라고 하긴 했는데…
빗방울이 비쳤다. 집을 나올 때부터 하늘이 무겁더니만 기어이 빗방울이었다. 박 노인의 목덜미에도 빗방울이 떨어졌다.
젠장, 올핸 웬 비가 이리 잦은가. 바람까지 불고 말이야.
가을은 이렇게 쓸쓸하다. 빛바랜 나뭇잎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눈물처럼 번진다. 빗방울을 피해 노인들이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모습에 주변이 더 횅해 보였다. 순식간에 비워지는 자리에 흩어진 종이 조각들이 빗방울에 젖었다.
그래, 저 사람들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때도 저렇게 황망히 떠나겠구나. 저 빗방울에 밀려 황망히 저 자리를 떠나가듯이 말이다.
빗방울 때문이 아니라 이제 정말 이 세상을 떠나야 할 때가 되어서 떠나야 할 시간이 올 것 같아서 박 노인의 눈엔 그 빈자리가 더 크게 다가왔다. 장만식의 일 때문에 그 자리가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박봉술 노인과 장 노인 사이에는 인연이라면 인연이랄 수 있는 세월이 있었다.
박봉술이 초등학교 선생으로 있을 때 장만식을 만났다. 서른셋 살인가 되는 해였다. 그가 음성 나환자촌 마을에 있는 분교장에서 아이를 가르치고 있을 때 그곳 보건지소 직원으로서 학교 보건을 담당하고 있던 사람이 바로 장만식이었다.
박봉술이 초등학교 분교장인 그 학교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을 때 그의 아내는 울면서 학교를 그만 두라고 했다. 혹시나 그 병이 감염되면 어떻게 하느냐며 울었다. 사실 그도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학교에 첫 출근을 했을 때 그에게 그곳에서의 보건 위생에 대한 수칙들을 일러 주었던 사람이 바로 장만식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환자라는 말을 쓰던 때였다. 한센병 환자란 용어는 얼마 지나고 사용된 말이었다.
그 마을의 미감아들을 가르치며 겁에 질려 우울한 얼굴로 있는 박봉술 선생을 수시로 위로해 주고 안심시켜준 사람이 바로 장만식이었다.
나환자가 두렵지 않느냐고 했을 때 장만식은 말했다.
하나님이 그를 보호해 준다고 헸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래서 일까, 그는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휴일이면 그 마을 교회의 목사를 도와 나환자들의 손발이 되어 일했다. 나환자가 숨을 거두면 직접 염을 하여 장례를 치러 주기도 했다. 뭉툭한 손으로 그의 손을 잡고 세상을 떠난 나환자가 오십 명은 족히 된다고 했다.
돌이켜 보면 그의 삶은 불꽃 같았다. 그가 목사를 도와 일을 할 때 ‘죽음의 설계’란 책을 즐겨 읽곤 했다. 언제나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두려워 말고 미리 준비하라는 내용의 책이라고 했다. 그 책은 내일이 투명하지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열심히 읽는다고 그는 말했다.
박봉술의 아내도 그 교회에 다녔다. 장만식이 그의 아내를 어떻게 설득했는지 나환자촌 학교에 나가느니 학교를 그만두라고 했던 그의 아내를 끌어들여 그곳에 봉사활동을 하도록 만들었다. 박봉술은 말리지 않았지만 아내의 갑작스런 변화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두렵기까지 했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은 그곳에서 삼년을 보내고 묘하게도 같은 해에 읍내로 전근했다. 그런 인연으로 해서 읍네 초등학교와 동사무소에 근무하면서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박봉술이 다시 시골학교로 전근하면서 아내는 교회를 옮겼고 장만식과의 만남도 드물어졌다. 그러나 그는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연락을 했다. 그렇게 이어온 관계가 30년이 넘었다.
박봉술 노인은 장 노인의 아내를 생각하니 자기 아내가 생각난다. 그의 아내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지만 아내와 결혼 생활은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여느 집 사정이 다르겠는가만 박 노인의 결혼생활은 요약하면 냉탕과 온탕을 오고간 연속이었다.
그는 아내의 행동에 간섭하지 않았고 스스로의 일을 알아서 하기를 바랐다. 교회에 가서 어떤 일을 하던 그것은 아내의 자유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는 달랐다. 아내는 그를 통제하려고 했다. 아내의 교회와 교회 밖에서의 이중성에 그는 치를 떨기도 했다.
그의 아내는 기타를 잘 쳤다. 성가대에 나갔기 때문이다. 아내가 성가를 연습할 땐 기타로 음을 맞추곤 했다. 그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풍금 이외에 기타 정도는 다룰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한 때 아내가 기타를 들고 있는 모습이 가증스럽게 보인 적이 있었다. 기타를 부셔버리고 싶었다. 아내가 성가를 연습한다고 기타를 만지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얄밉게 보일 수가 없었다. 직장에서 물러나고 정신적 공황에 시달리는 때였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 어디에서도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없다는 생각이 시도 때도 없이 마음을 억누르던 때였다. 학교 경비를 유용한 교장의 죄를 평교사인 그가 대신 뒤집어쓰고 조기 퇴직당하고 집에 있던 때였기에, 만나고 싶은 사람도 가고 싶은 곳도 없었다. 아내도 그를 죄인 취급했다. 아내조차 그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았다. 억울하고 외로운 그의 마음을 이해해 주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면 차들이 쏜살같이 달려가고 사람들은 종종 걸음으로 어디론가 가고왔다. 그 무리에 섞여 그대로 발걸음을 옮겨 보았다. 마치 자기 자신도 어디론가 바쁜 일로 가고 있는 것처럼 걸어갔다. 그리고 젊을 때 자신이 근무했던 학교 앞에까지 가서 그 주변에 서성거리다 다시 발길을 돌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떤 것도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밖으로 나갈 때마다 그의 존재가 더 늙고 초라해 보였다.
직장에서 물러나면서 받은 얼마 안 되는 퇴직금을 은행에 맡겨 두고 있던 때에는 삼일이 멀다고 들락거리던 아들놈이나 딸년들도, 그가 은행돈을 찾아 투자한 증권들이 깡통주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그를 무슨 원수를 대하는 듯 했다. 아내의 앙탈은 도를 넘었다.
아, 내가 단지 돈이었구나. 돈과 무관해진 나란 인간은 이미 이들에게 인간이 아니구나.
그가 투자한 주식이 깡통주가 된 것보다 이들의 멸시와 박대가 더 고통스러웠다.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도저히 입이 열리지 않았다. 걸어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그저 어디론가 가서 쓰러져 이 세상을 하직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누군가 그를 죽여준다면 그대로 눈을 감을 것 같았다. 온종일 짓누르는 우울함과 무력감에 비틀거리는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내가 죽으면 이 세상에 남을 것은 무엇일까?
그는 죽고 싶었다. 아내에게 죽여 달라고 말했다. 그가 수면제를 먹고 잠들면 무거운 이불을 덮어 그를 잠들게 해 달라고 말했다. 아내는 미친개 쳐다보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그때 아내가 했던 말을 그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호스피스 교육을 받으면서 자살 예방협회 전문요원으로부터 들었다며 했던 말이다.
그래, 자살하려는 사람은 눈부터 달라. 행동에서도 드러나. 뜬금없이 작별의 인사를 한다거나, 어느 날 갑자기 서랍을 정리하는 등의 행동을 하는 사람은 그 뒷모습을 잘 보면 그 사람이 이 세상을 하직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 감지돼.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모든 사람이 자살하는 것은 아니야. 자살은 심리적 도피일 수도 있고 모방일 수도 있어. 그러나 당신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사람이 아니야. 죽겠다는 말을 한다고 내가 겁낼 것 같아?
그의 태도나 모습에서 스스로 죽고 싶은 기색은 없어 보인다고 생각했는지 아내는 그렇게 말을 퍼붓고는 밖으로 나갔다.
|
|
|
▲ 배호 화백 |
아내의 이중성에 치를 떨며 차오르는 울분을 억눌러야 했다.
아내가 찬송가 음을 맞춰 보다 밀쳐두고 간 기타가 보였다.
아내의 기타는 악기가 아니라 흉물처럼 보였다.
그가 흘러간 멜로디를 치면 아내의 표정이 밝아졌다.
기타로 아내를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매 증세를 완화시키는 데는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나에게 그런 행동을 하고도 그 입으로 찬송가를 부른다 말인가.
그는 아내의 이중성에 치를 떨면서 차오르는 울분을 억눌러야 했다. 그의 아내가 교회 행사를 준비한다며 찬송가 음을 맞추어 보다가 밀쳐두고 간 기타가 보였다. 아내가 미우니 악기도 미웠다. 아내의 기타는 악기가 아니라 흉물처럼 보였다.
그는 집을 나갔다. 그리고 거리를 헤매다 반노숙자가 되었다. 그때 그에게 다가와서 손을 잡은 사람이 김치기라는 노숙자였다. 그는 노숙생활에 이골이 난 사람이었다.
박씨, 너무 심각하게 살지 말아요. 까짓것 그냥 그렇게 살아요. 오늘 기분도 그런데 야순 아지매에게 한 번 가 봐요. 그 아지매 아직 몰라요? 이곳에 오면 그 아지매에게 인사부터 해야지.
박봉술은 그 말이 무슨 말인가 이해하지 못했다.
표정을 보니 아직 모르시는 모양이군. 저 아래 탑공원 있잖아요. 그 공원 민주시민 기념탑 그 뒤쪽으로 가면 박카스 통을 들고 다니는 그 아지매들 말이오. 어떤 땐 커피 통을 들고 다니기도 하지만 그게 말이오, 사실은 그게 아니오. 그 아지매들이 팔고 다니는 게 무언지 몰라요? 비아그라에 그것까지 세트로 팔아요.
그거라뇨?
이런 숙맥, 그것도 몰라. 여자의 그것 말이오. 단돈 팔천이면 돼요. 비아그라 한 알 값까지 합쳐서 만 오천 원이면 충분해요.
박 노인의 표정이 어색하게 보였는지 그는 말을 계속했다.
아직 쓸 만해요. 우리보다 한참이나 젊어요. 꽃띠라면 꽃띠지. 아직 엉덩이 살이 통통한 게. 저 계단 밑에서 잠자는 조판래라는 그 영감, 요즘 싱글벙글이야. 그래, 그 여자들에게 한번 가더니, 그를 어디로 데려가 어떻게 했는지, 요즘 그 영감 표정이 달라.
박 노인은 갑자기 숨이 가빠졌다.
아하 가관이군. 늙은 주제에 이게 무슨……
그가 말이 없으니 김치기가 일어서서 그의 손을 잡아 당겼다.
그래, 생각난 김에 가봐. 오늘 내가 한번 쓸게. 겸사겸사 나도 기분 좀 바꾸고 말이야.
김치기의 말대로 과연 그곳에는 여자들이 있었다. 김치기가 여자 하나를 데려왔는데 밉지 않은 얼굴이었다. 오십 중반이 채 안돼 보이는 여자였다. 김치기가 귀에 대고 뭐라고 말했는지 그 여자가 그에게 다가와서 웃으며 손을 잡았다. 엉거주춤 서 있는 그의 모습이 우스웠던지 김치기가 웃었다. 그가 움직이지 않자 여자가 뒤에서 그의 허리를 껴안았다. 향긋한 분 냄새가 났다. 이게 무슨 냄샌가. 그는 잠시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 같았다. 애써 정색을 하고 손을 뿌리쳤지만 그 냄새가 그의 몸속에 퍼져오는 것 같았다.
그 여자가 손으로 가리키며 길 건너 여관으로 가자고 했지만 그는 차마 발이 옮겨지지 않아서 돌아섰다. 그러나 그 여자의 얼굴이 눈에 아롱거리고 향긋한 체취가 오래 동안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죽어가던 사람도 여자의 몸을 보면 눈을 뜬다더니 참 이상도 한 일이었다. 그가 지하도 한 구석으로 돌아와서 라면 박스를 펴서 덮고 자는데 자꾸 그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수소문했는지 그의 아내의 여동생 남편인 구서방이, 어머니가 많이 아프다는 기별을 가지고 지하도 한 구석으로 그를 찾아왔다.
아차, 내가 어머니를 잊고 있었구나.
그는 가슴이 덜컹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앙상한 몸을 바닥에 뉘고 있던 노모가 그를 보더니 눈물을 흘렸다.
날이 갈수록 어머니의 상태는 더 나빠졌다. 어머니는 뚜렷한 병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노환이었다. 팔십이 넘어설 때까지 정정하던 어머니가 90을 넘어서고 나서 갑자기 몸이 쇠약해지고 스스로 몸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그때 그의 아내는 새로 옮긴 교회의 일을 맡아 보면서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나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전부터 해오던 일을 그만 둘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그 일을 그만 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자신이 하는 봉사활동에 대한 아내의 말에는 그럴 듯한 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죽음에 동참해야 된다. 언제나 혼자 가야 하는 죽음의 길, 누구나 혼자 갈 수 없는 죽음의 길이란 알듯 말듯 한 말들을 했다. 그러면서 그의 아내는 봉사활동을 그만 두고 노시모를 돌볼 수는 없다고 했다. 다른 사람은 돌볼 수 있지만 식구는, 그것도 시부모는 돌볼 수는 없다고 했다. 더구나 봉사활동은 교회에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만 둘 수 없다고 했다.
그 얼마나 모순인가, 당신이 사회봉사를 한다며 어찌 노시모를 돌볼 수 없다는 말인가
그는 따졌지만 아내는 요지부동이었다. 반년을 넘게 기 싸움을 했다. 타일러도 보고 고함을 질러 보기도 했지만 아내는 노모를 집안에서는 돌볼 수 없다고 했다. 아내의 주장에 의해서 노모를 홀로 요양병원에 보냈다. 겨우 뼈만 앙상한 노모를 요양병원에 맡기도 돌아오는 길은 길고 외로웠다. 발이 잘 옮겨지지 않았다. 노모를 버렸다는 자책감이 무겁게 그를 짓눌렀다.
요양원에서 3년을 보낸 그의 노모는 세상을 떠났다. 새벽에 연락을 받고 그가 달려갔을 때 어머니의 몸은 흰 천으로 덮여 있었다. 숨을 거두기 얼마 전 신음처럼 그의 이름을 두 차례나 불렀다는 간호사의 말을 들을 때 오열이 목을 밀고 올라왔다. 이별의 슬픔보다 미안함, 자식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자책감이 그의 가슴을 헤집었다. 자신의 편함을 위해서 노모를 집밖에 보내 외롭게 죽음을 기다리게 했다는 죄책감이 그를 옥죄었다.
손에 똥오줌이 묻고 그 냄새가 집을 가득 채운들 어떻다고 어머니를 집 밖에 내팽개쳤단 말인가.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어머니는 한 줌의 재로 변했다. 그는 어머니의 재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어머니를 보내고 무료했다. 긴장감이 풀렸기 때문인지 온몸에 힘이 빠지고 무력감이 그를 짓눌렀다.
한 달은 좋게 지나고 어떻게 하다가 그 공원에 나갔다. 탑공원은 여전히 노인들이 많았다. 이제 거의 노인들의 전용 공원처럼 되어 있었다. 분내가 향기롭던 그 박카스 아지매는 보이지 않았지만 아직도 박카스 통을 들고 있는 여자들은 여러 명이나 있었다. 아는 사람이라곤 없었다. 지하도 입구로 김치기 그 사람을 찾아가 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공원에 모인 사람들은 다 개성이 다르고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달랐다. 성격이 괴팍한 사람도 있었고, 온종일 화투장을 돌리며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노인들에게서 나는 늙은 냄세. 며칠째 목욕도 하지 않았는지 쉰내가 나는 사람, 연거푸 기침을 하고 아무 데나 가래를 뱉어대는 사람도 있었다. 그곳에서도 자신의 힘자랑을 하며 군림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갈 곳도 없고 해서 적응해 보려고 애를 썼으나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며칠 만에 그는 다시 칩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기타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기타를 보니 그가 학교에서 쫓겨날 때, 제자들이 찾아와서, 노후를 즐겁게 보내라며 사주었던 손풍금이 생각났다. 아내는 죄 없는 그 손풍금에 분풀이를 하며 산산 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것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는 그 손풍금을 생각하며 아내의 기타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마치 손대서는 안 될 물건처럼 떨리는 손으로 기타를 잡았다. 딩-딩- 소리가 났다. 감미로웠다. 잠시 눈을 감았다. 그때가 사범학교 때였든가. 학생 발표회를 한다면 오르간을 연주하던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 그때 좋았지.
젊은 날 그 화려했던 추억이 달려와서 손을 잡는 것 같았다. 일어나라. 일어나라, 박봉술 하면서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사람들이 어디에서 하나씩 달려와서 그를 일으켜 세우는 것 같기도 했다.
높은 도가 어디더라? 미 파 사이는 반음이었지. 디 마이너, 아 그래 이렇게 잡는 거였지.
그렇게 해서 기타는 며칠이 되지 않아서 그의 손에 들어왔다. 학교에서 풍금을 치던 가락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다시 손에 익힐 수 있었다.
그래, 사람들이 흘러간 노래를 즐겨 부르거나 연주하는 것은 그 노래를 익히고 부르던 그 시절을 추억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맞아, 내가 즐겨 부르던 그 노래 ‘추억의 소야곡’을 연주해 볼까. 남인수의 목소리도 좋지만 멜로디가 듣기 좋잖아.
이제 기타는 그의 유일한 위로가 되었다. 이렇게 기타를 만지며 몇 년을 보냈다. 그 몇 년의 세월은 평온했다. 그런데 아내가 다쳤다.
교회 행사에 갔다가 빙판길에 넘어져서 허리를 다쳤다. 그가 일흔둘이 되고 아내가 일흔이 되는 해였다. 아내와 그는 나이가 두 살 차이였다. 아내는 병원 치료를 받고 나서 몸이 극도로 쇠약해졌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사고가 있고 나서 2년 쯤 지나면서 치매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의사는 유전적 치매일 것 같다고 했다. 그 원인이 부모에게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아내의 아버지가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다. 장인이 돌아가시기 전 그가 처가에 들르면 장인은 그에게, ‘어디에서 오셨습니까?’라고 묻곤 했다. 아내는 장인의 이 세상 나이보다 지금 다섯 살이나 더 많으니 치매가 왔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우왕좌왕하며 안절부절 못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아내를 돌보는 일이 그의 일이 되었다. 힘 드는 일이었다. 그 일은 날이 갈수록 더 힘들어졌다. 정신없는 아내의 행동에 지치고 화가 치밀 때면 그는 짜증을 냈다.
그것 보아라, 시어머니에게 그렇게 불효하여 천벌을 받은 거야.
그는 분풀이라도 하듯 말하곤 했지만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아내의 치매는 날이 갈수록 심했다. 대소변을 벽에 바르고 찾아온 아들이나 며느리가 보는 앞에서 옷을 벗고 똥을 주무르기 일쑤였다. 아들은 제 식구들 앞에서 자존심이 상하고 민망했던지 발길이 뜸해졌다. 그리고는 다니던 신발 공장이 베트남으로 이전했다며 가족을 데리고 베트남으로 가버렸다. 개 눈에 똥밖에 안 보인다더니, 지친 몸으로 텔레비전을 켜면 치매 관련 사건소식밖에 들리지 않았다.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던 80대 남편이 아내의 입에 테이프를 붙여 숨지게 한 뒤 자신도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했다는 뉴스가 나오더니 또 며칠이 지난 뒤 이번에는 치매 아내를 돌보던 남편이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길 옆 벼랑에 떨어져 죽었다는 사건이 뉴스를 탔다. 저런 일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떠들어 대느냐, 염병할 것들.
그는 서둘러 텔레비전을 껐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오죽했으면 죽였겠나. 아니지, 그래도 그렇지, 사람을 죽이다니……
생각이 오락가락하며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다시 아내의 기타가 눈에 들어왔다. 아내가 치매 증세가 있고나서 마음의 여유가 없어 한번도 쳐다보지 않았던 기타가 다시 그의 눈에 들어왔다. 기타는 아내의 방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이십 년도 더 된 어느 겨울 교회에서 선물로 아내에게 준 것이었다. 아내가 새로운 찬송가를 익히거나, 크리스마스를 전후에 교회에서 찬송가 대회를 할 때면 어설프게 치곤하던 기타였다. 호스피스 봉사를 나가면서 가끔씩 들고 가서 환자들이 좋아하는 곡을 쳐 주곤 하던 기타이기도 했다. 그는 아내가 병들기 전에 즐겨 치던 그 곡을 아내에게 쳐 주고 싶었다.
아내는 좋아했다. 정신이 오락가락 하면서도 그가 흘러간 멜로디를 치면 아내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는 더 열심히 기타를 쳤다. 기타로 아내를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증세를 완화시키는 데는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는 아내가 좋아하던 곡을 골라서 하루에도 몇 시간씩 쳐 주었다. 이제 기타는 그를 도와주는 유일한 벗이었다. 음을 조절하고 기타 줄을 튕기면 젊은 날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젊은 시절의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흘러간 노래 가락 하나하나에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내의 이름 금순이. 그 금순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범학교 시절 교내 연주회에서 그가 오르간을 연주하던 날 줄 잡은 스커트 자락을 하늘하늘 날리며 저 만큼 서서 기다리던 꿈 많은 처녀 금순이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때 금순이는 싱싱했었지. 감자꽃처럼 아름답던 금순이의 얼굴엔 언제나 향기로운 냄새가 났지.
그 금순이가 웃음을 머금으며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아직도 들리는 금순이의 숨소리, 너무나 싱그럽게 코를 간질이는 금순이의 향기로움. 첫 입맞춤은 얼마나 감미로웠던가. 봄바람에 하늘하늘 치마 자락을 날리며 걸어오던 금순이의 모습이 아직 그대로인데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러버렸다니… 아 그래, 내가 ‘애수의 소야곡’을 처음 익혔던 때는 갓 스물을 넘겼을 때였지. 마을 앞 개울가에 커다란 바위가 있던 그곳에서 여름 초저녁 그 곡을 치고 있으면 춘식이가 달려오고, 그 다음엔 동호가 오고, 순분이는 삶은 옥수수를 들고 왔지. 그래, 춘식이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 삼군사관학교를 간다고 마을을 떠나고 만나지 못했으니, 그렇지, 춘식이가 임관을 하고 그 후 무궁화를 두 개나 달았다는 것까지는 소문을 들어 알고 있는데 그 뒤로는 알 수가 없어. 그가 모시던 상관이 헬기를 타고가다 사고를 당해 순직을 하고 그때 그도 군을 떠났을까,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직은 살아 있겠지.
|
|
|
▲ 배호 화백 |
아내의 장례를 치르고도 아내에 대한 생각은 계속 되었다.
힘들 때면 아내를 죽이고 나도 죽고 싶었던 그 감정들.
몸속에 숨겨져 있던 나의 악마적인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박 노인은 기타 줄을 풀었다. 1번 선이 쉽게 허물어지듯 풀려나왔다.
그는 소리를 잃어버린 그 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숨을 깊이 쉬고는 줄을 목에 걸었다.
아내의 기척에 그는 잠시 눈을 떴다 다시 감았다.
순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얼굴에 주근깨가 있었지만 마음이 순했던 순분이, 봉긋한 젖가슴을 코앞에 들이대며 달려들던 순분이. 그래, 그랬었지. 그 순분이의 냄새가 하도 좋아서 나도 모르게 덥석 안고 말았는데, 순분이가 울음을 터트리는 바람에 덜컥 겁이 나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두 손 모아 빌고 달래던 그날 밤을 순분이는 기억하고 있을까. 기억할 리가 없겠지. 내 이름이라도 기억하고 있을까. 아마 그 순분이도 이가 빠지고 허리가 굽어 있겠지. 아니면 죽어서 이 세상 사람이 아니거나……
그 시절의 그 곡들을 기타 줄에 올리니 하나씩 그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머리에 들어와서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아내가 죽었다. 현관으로 나가는 문고리를 잡고 죽었다. 불과 1시간 만이었다. 그가 동사무소에서 주는 복지비를 찾으려 나갔다 오는 사이에 아내는 현관문에 목이 끼어 숨져 있었다. 그의 아내가 문틈에 끼워놓은 전단지처럼 문에 목이 끼인 채 숨이 멎어 있었다. 마치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누군가를 확인하려는 자세 같았다.
그러나 아내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무거운 철문이 목을 눌러 숨을 거두었다면 그 고통이 컸을 것 같은데 아내는 그 고통을 못 느낀 것일까. 아니면 그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지 못했을까. 치매는 절명의 고통조차 잊어버리게 했을까. 어쩌면 고통과 환희의 감정이 도치되기라도 한 것일까. 아내는 죽은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아내를 방안으로 안고 와서 눕히고 다시 한 번 몸을 흔들어 보았다. 아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크게 한 번 숨을 내쉬고 거실로 나왔다.
그래, 정말 죽은 걸까. 아내가 살아 있는 것이나 죽은 것이나 무엇이 다른가? 이미 아내는 살아 있어도 삶을 의식하지 못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 아내의 의식이 죽어 있다 하더라도 살아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의식이 없는 것은 다 마찬가지가 아닌가. 아내는 치매로 이미 기억을 잃어버렸기에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몸이 아니었던가.
그는 살아 있는 아내의 죽음을 수없이 보아왔다. 한파가 몰아치는 한겨울 아내는 발가벗고 물을 뒤집어 쓴 채 파르르 입술을 떨면서도 그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있었다. 자신의 배설물을 뒤집어쓰고 그 냄새를 컹컹 코로 맡으며 즐기기도 했다. 앙상한 몰골로 쪼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에 그의 머리에 피가 멈춰 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곤 했다. 겨울 처마에 달려 있는 벌집처럼 시들어 말라붙은 아내의 생식기가 처참해 보였다. 그가 손으로 변을 닦아 내고 손을 씻길 때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래, 내가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겠지.
그는 얼굴을 찡그리다가 다시 생각하니 아내가 측은했다. 그가 아내와 반대 입장이 되었더라면 아내가 그의 변을 닦아내고 그의 사타구니에 기저귀를 채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도리어 그는 아내에게 미안해 지기도 했다.
그래, 젊을 때는 이 사람의 아랫도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하룻밤이 멀다고 어루만지고 입맞춤을 하곤 하지 않았던가. 그래, 아름다웠던 금순이. 그런데 나는 한 때 사랑했던 그 아내를 마음속에서 몇 번이나 죽였던가. 그리고도 지금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는 나의 이 뻔뻔스러움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내가 죽었다는 슬픔보다는 아, 이제 고통이 끝났구나. 아내의 병수발을 들던 그 고통에서 이제 벗어나게 되었구나. 슬픔보다는 먼저 해방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지금의 내 마음의 모습이 아닌가? 그것은 내 자신의 생존 본능일까? 아니면 이기적인 나의 본 모습일까? 당연히 돌보아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이 없었다면, 그리고 남의 눈이 없었다면 나는 아내를 외면했을까?
아내의 장례를 치르고도 아내에 대한 생각은 계속 되었다.
나는 수없이 살인을 하면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힘들 때면 아내를 죽이고 나도 죽고 싶었던 그 감정들. 그 순간 내가 아내의 목을 조르지 않았을 뿐이지 사람을 죽인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자신의 배설물을 뒤집어쓰고, 때로는 화분에 꽃을 꺾어 머리에 꽂고 웃던 아내를 죽이고 나도 죽고 싶었던 것은 이미 아내를 수없이 죽인 것이나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마음의 분노를 타당한 것으로, 인간이 억제할 수 없는 것을 인간의 본능으로 생각하며 아내를 죽이고 나를 죽인 것이다. 아내를 죽이고 나도 죽음으로써 나의 행동은 정당화 하려 했던 것은 나의 몸속에 숨겨져 있던 나의 악마적인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는 아내가 생각나서 더 이상 기타를 칠 수 없었다. 며칠 동안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날씨도 따뜻하고 거리엔 수많은 차들이 오고 갔건만 그가 갈 곳은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냥 방향도 없이 걸었는데 그의 발걸음이 그 공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도 그 공원으로 갔다. 그러다 그 공원에서 장만식 영감을 만났다. 그것도 공원의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나오다가 그를 만났다. 이마가 유난히 넓고 숯검정 같았던 그의 눈썹을 보고 그는 장만식을 알아볼 수 있었다. 실로 삼십 몇 년 만의 재회였다.
그런데, 지금 바로 그 장만식 영감이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 목숨을 끊으려는 시도했다니, 이 무슨 일인가. 다시 만나 지 일 년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그를 다시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왔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밤새 장만식 영감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서 그는 장만식 영감의 일이 궁금하여 다시 공원으로 나갔다. 열시가 넘어서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다들 초라한 몰골들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금은당 옆집 김 노인이 죽었다고 한다. 김 노인이 죽었다는 말에 다들 표정이 어두워졌다. 다음은 누구의 차례일까. 죽음이 그들을 하나씩 데려가고 있다는 생각에서 다들 김 노인의 죽음이 단지 남의 일처럼 들리지는 않는 거 같았다. 언젠가 자신에게도 다가오고야 말 것 같은 죽음의 그림자가 눈앞에 어른거리는지 다들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김 노인의 죽음을 두고도 말이 많았다. 김 노인이 그 사람이 새로 온 젊은 박카스 아지매에게 홀려 모텔에 갔다 온 뒤에 갑자기 기력을 잃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 젊은 여자에게 홀려 돈 잃고 병까지 얻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김영감이 비아그라를 쥐고 박카스 아지매를 따라가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 것은 조만도 영감이었다.
저 영감이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자기가 박카스 아지매를 끼고 다녀놓고 저런 말을 하다니……
박 노인은 다시는 공원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김 노인에 대한 흉흉한 말이 떠돌아다니는 공원이 흉물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죽으면 나에 대한 말들도 살아 있는 저 사람들의 입에서 이리저리 씹히겠구나.
그는 갑자기 그들의 말이 혐오스러워졌다.
며칠 동안 다시 외로워졌다. 해가 떠도 아침이 아침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박 노인은 가까이 있는 동산으로 가보았다. 그러나 산은 그의 기력으로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이제 살아 있으면서도 살아 있지 못한다면 죽음과 무엇이 다르랴. 아, 그래, 산다는 것은 힘이고 욕망이었어. 욕망은 내 삶을 이어온 원동력이었구나. 욕망이 있어서 얼마나 삶이 즐거웠던가.
그의 몸에 욕망이 없었다면 삶은 이어져 오지 못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 욕망이 시들어버린 그의 몸은 껍질과 같아 보였다. 젊은 날 아름답고 부드러운 아내를 더 안고 싶은 욕망 때문에 힘든 일도 즐거웠다. 땀투성이가 되어서 하는 일도 즐거웠다. 아내의 품속에서 다시 살아나던 삶의 의욕들, 더 맛있는 음식을 아내와 새끼들에게 사 먹이고, 그리고 그 새끼들을 잘 키워야겠다는 욕망으로 인해서 힘든 일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들이 행복하다면 그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이든 즐겁게 느껴졌던 것 같았다.
하물며 노모를 요양 병원에 모시고도 박 노인은 어머니라는 그 구속 속에서도 그가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의 아내의 그 오랜 치매의 수발을 들면서도, 그가 그렇게 지겨워했던 그 순간들, 하루 빨리 벗어버리고 싶었던 그 순간에도 그가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그는 비로소 알았다. 그가 존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와 연결된 사람들의 삶으로 인해서 그가 살아야 하는 의무가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벗어나고 싶었던 그 순간이 그에겐 가장 치열했던 삶의 순간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는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힘을 바쳐야 할 대상이 없는 이 세상은 한없이 자유롭다. 바람이 불어도 걱정이 없다. 비가와도 염려되지 않는다. 멀리서 어두운 밤길을 걸어서 올 사람이 없으니 태풍이 온들, 오늘 밤에 하늘이 내려앉은들 무슨 걱정인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순간에도 박 노인은 마음이 자유로웠다. 그러나 아내를 생각할 때면 마음이 자유롭지 못했다. 기타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미워할 사람도 사랑할 사람도 없으니 몸이 나른하기만 했다. 어쩌다 기타 줄을 튕겨 보아도 음이 전과 같게 들리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기타를 손에 들지 않았다.
살아 있어도 내일에 대한 기대나 희망이 없다면 죽음과 무엇이 다른가. 결국 사람은 혼자 죽게 되는 것이구나. 이제 죽어야 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면 어떻게 죽어야 할까? 어떻게 죽는 것이 나의 죽음의 선택일까? 죽음은 누구에게나 똑 같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다 다른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나의 죽음을 어떻게 설계하고 죽음을 어떻게 맞아해야 할까? 죽음도 존엄할 수 있는가? 아니야, 죽음은 어떤 식으로든 존엄할 수 없는 것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처참할 뿐이다. 죽음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 꽃은 소리 없이 떨어지고 나뭇잎은 소리 없이 시들 듯, 소리 없이 가는 것도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다……
내가 죽음의 준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더라도 의식이 없는 나의 삶을 단지 연명시키기 위해서라면 나를 연명시키지 마라. 의식이 없는 삶이 무슨 삶인가. 이미 죽는다는 것은 알면서도 생명을 연명하려는 것은 자연에 거역하는 것이나 무엇이 다른가. 그래, 이런 말들을 내가 메모라도 해 두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박 노인의 생각은 이제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는 날이 많아졌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그의 자유로움은 무료함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무료함은 무기력으로 바뀌었다. 길거리에 나가서도 오고 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그 무료함에 그는 아무런 것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오늘의 이 무료함이 내일에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그를 더 절망적으로 만들었다.
이제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그러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배부른 선택이 아닌가. 내가 참으로 절박했을 때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 아닌가. 어쩌면 그것은 여유에서 오는 또 하나의 일탈은 아닐까. 진정 내가 죽으려 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진정 나에게 내일이 없다는 생각 때문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또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인가?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었다. 박 노인은 이제 밤이 무서웠다. 밤이 되면 울음이 나왔다. 이 세상에 혼자 있다는 생각에 창 밖에 나무들이 음침하게 느껴졌다. 가끔 들리는 새 소리도 왠지 가슴의 밑바닥을 긁어대는 것 같았다.
이 외로움 속에서 언젠가 홀로 죽음을 맞아야 한다면, 그 죽음을 어떻게 맞느냐가 문제일 것이다. 만약 내가 스스로 죽어야 할 때가 온다면, 그 방법을 익혀 두자. 연습으로라도 한번 죽어보자. 반쯤만 죽어보자. 그것은 내 삶의 의미를 다시 찾아줄지도 모른다. 죽음의 과정과 그 고통을 느껴봄으로써 살아야겠다는 의욕을 찾거나 아니면 죽음에 더 가까이 갈지도 모른다…… 그러려면 이 지상에 몇 자의 말은 남겨야겠지. 그리고 이렇게 모든 물건은 정리해 두고 버릴 것은 버리고. 시간은 몇 시가 좋을까? 그래, 그리고는 이렇게 비스듬히 소파에 몸을 기대고 편안하게 앉아서 이 줄을 목에 거는 거야. 그리고 그 줄을 서서히 당겨서 매는 거야…… 생과 사의 반쯤에서 나의 선택은 무엇일까. 진정 내가 죽기를 원한다면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살기를 원한다면 죽음이 두려울 것이다. 이 리허설은 내가 다시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 될까, 아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길이 될까?
박 노인은 기타 줄을 풀었다. 1번 선이 쉽게 허물어지듯 제 자리에서 풀려나왔다. 그의 손끝에서 자신을 대신해서 감정을 소리로 내 주던 기타 줄은 이제 소리를 잃어버린 단지 하나의 줄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소리를 잃어버린 그 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줄을 들어 올렸다. 눈을 감고 숨을 깊이 쉬고는 줄을 목에 걸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한 번, 그리고 두 번 줄을 돌렸다. 가슴은 두근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서서히 줄을 당겼다. 그리고 좀 더 힘을 주어 당겼다. 숨이 찼다. 가슴에 힘을 주고 참았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더 참았다. 의식이 흐릿해지는 것 같더니 졸리는 것 같았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기타 선율이 들렸다.
장만식 영감의 얼굴이 보이는가 싶더니 어릴 적 순분이의 얼굴도 보였다. 그리고 그 위로 아내의 얼굴이 보였다. 꽃 같이 아름답던 젊은 시절 금순이의 얼굴이었다.
아니, 저게 누구야? 금순이, 금순이!
박봉술 노인은 자신도 모르게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번쩍 눈을 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