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 문을 가만히 밀고 살그머니 고개를 뺀 채 거실의 동정을 살핀다. 어머니는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계신 것 같다. 대야에 담긴 빨래를 들고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간다. 빨래를 하는 날이면 어머니에게 들킬까보아 여간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다.
나는 외아들로 삼남매의 맏이다. 어머니에게서 남자들은 부엌에 드나드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어머니가 출타하셨을 때에는 여동생들이 밥상을 차려 내왔다. 부엌에 들어가지 못했던 내가 군대생활을 하면서 익힌 라면 끓이는 것이 유일한 요리법이다. 그 대신 나는 청소를 담당해야 했다. 겨울방학이어도 따끈한 아랫목에 누워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었다. 이불을 개고 방청소를 마친 뒤에 세수를 해야만 어머니께 아침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라서인지 결혼을 한 뒤에도 전업주부인 아내를 제쳐두고 방과 마루를 비로 쓴 뒤에 걸레질을 하는 것은 내 몫이었다.
텔레비전에서 ‘먹방’에 이어 ‘쿡방’이 유행한지도 꽤 오래 되었다. ‘먹방’은 ‘먹는 방송’의 줄임말이고, ‘쿡방’은 ‘쿡(cook)’과 ‘방송’의 합성어이다. 이런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자들이 요리사와 함께 음식을 만들고 시식하면서 토크 쇼를 진행한다. 음식 관련 프로그램이 메인 코너로 자리 잡고 ‘세프테이너’라는 용어까지 등장하면서 요리가 인기 있는 방송소재로 부상했다. 세프는 주름지고 높은 흰 색깔의 모자에 눈같이 하얀 위생복을 입고 맛깔스런 요리와 함께 재미있는 이야기로 우리들의 눈과 귀를 모으고 입맛을 다시게 만든다. 그런 영향인지 요즈음은 요리학원에 등록하는 남자들도 많다고 한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밥상을 차리거나 세탁기를 돌리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일요일이면 결혼해 나간 아이들이 예배를 마치고 가끔씩 집에 들러서 점심을 먹고 가곤 한다. 그런 날이면 전날 저녁부터 아내가 부엌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아이들 양손에 국거리나 반찬을 가득 싸서 들려 보내기 위해서다. 잠자리에 들어서는 아내가 끙끙거리며 앓는 소리를 내도 그만두지 않는 것을 보면, 힘이 들기는 하지만 보람을 느끼는가 보다. 어느 날 늦도록 부엌을 벗어나지 못하는 아내를 보면서 욕실에 들어갔다. 샤워를 마친 뒤에 보니 아내가 빨래하고 미처 널지 못한 세탁물이 놓여있었다. 나는 벗은 속옷과 양말을 던져 놓기가 미안했다. 모처럼 큰마음 먹고 욕실에 있는 깔방석에 앉아서 속옷과 양말을 빨기 시작했다. 비누칠을 하고 두 손으로 비비자 하얀 거품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면서 보드랍게 손끝을 간질인다. 아내가 애쓰는 것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평소에 빨래하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물도 엄청나게 사용하는 것을 못 마땅하게 생각하던 차였다. 세탁물을 세면기에 담아 옥상으로 올라가 빨랫줄에 널었다. 시원한 밤바람에 나부끼는 것을 보니 내 마음도 날아갈 듯 가벼웠다. 욕실에 있던 시간이 길어진 것을 보고 아내가 왜 이렇게 늦었냐고 묻기에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금새 아내의 낯빛이 바뀌면서 누가 당신보고 빨래를 해달라고 했느냐면서 목소리가 커졌다.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을 줄 알았는데 아내가 정색을 하는 바람에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했다.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것은 기술을 요하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작은 손빨래는 숙련을 필요로 하는 일도 아니다. 다음 날에도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마치고 내가 벗은 속옷과 양말을 빨기 시작했다. 아내가 욕실 문을 노크하더니 어머니가 아시면 어쩌려고 그러느냐면서 그냥 놔두라고 성화를 한다. 알았다고 대답을 하고는 빨래를 마치고 건조대에 널고 내려오자 아내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다음부터는 절대 빨래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속옷과 양말을 빠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이야기해도 나중에 자기가 먼저 죽으면 그 때 하란다. 아마 남편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어머니에게 들킬까보아 걱정하는 마음이 큰 것 같았다. 그래서 며칠 동안 빨래를 하지 않다가 다시 속옷과 양말을 빨아 널었다. 이튿날 어머니께서 요즈음 네가 빨래를 해다 너는구나 하시는 말씀을 듣고는 더듬거리면서 대답을 얼버무리고 말았다. 빨래를 왼쪽으로 짜는 사람은 우리 집에서 너 밖에 없으니까 네가 빨래를 하는 줄 알았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어머니 모르게 하려던 일을 그만 들키고 말았으니 난감했다. 그 뒤로 아내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나는 빨래거리의 가짓수와 양을 조금씩 늘려 나갔다. 어느 날인가는 입다가 더러워진 반바지와 티셔츠까지 빨았는데도 아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어머니가 눈치 채신 것을 아내가 알았는지 아니면 더 이상 말릴 수가 없다고 생각해서 포기했는지 모를 일이다. 그 뒤로도 아내의 만류나 창백하게 변하는 얼굴빛은 볼 수 없었다. 그 뒤로 샤워를 마치면 자연스럽게 내가 벗은 옷을 빨아서 건조대에 널고 있다.
이제는 남자가 요리나 빨래를 하는 것도 어색하지 않고, 여자도 남자들만 하던 일에 거리낌 없이 도전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일을 보면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첫댓글 요리도 그렇고, 빨래도 그렇고, 저 역시 남자가 하는 일이 아니라는 인식을 가지고 살아 온 사람으로서 박 선생님의 글을 긴장하면서 읽었습니다. 하고 싶어도 바쁜 직장 생활하는 사람은 할 수도 없었지만요. 결국 남자도 그런 일을 해야 하는 시대로 풍토가 변했다는 결론인데요. 사실 빨래는 어렵더라고요. 아내가 과거 병원에 입원했을 때 가장 어려웠던 게 저는 빨래였거든요. 은퇴 후 노년의 삶은 이래저래 고달프게 생겼다는 생각입니다. 새삼 아내의 손길이 소중함을 일깨워줍니다.
아드님의 빨래를 눈감아 주신 어머님께 감사드립니다. 질서있는 그 댁에도 새 바람이 더 불것으로 기대됩니다ㅎㅎㅎ
제 소원은 남편이 요리를 좀 배워서 주말이면 별식도 좀 만들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마트 가는 것도 인심쓰는 것처럼 생각하는 이에게 이 글을 소개하고 싶네요^^*.
넘 멋지십니다~^^
하나밖에 없는 딸조차 입시도 끝났겠다 일 좀 시키려면 왜 엄마의 '업무'를 나에게 부당하게 전가하는가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큰일입니다. 입시 위주의 사회 탓을 해야 하나.
우람한 근육의 상남자가 아니라, 사려깊게 빨래를 도와주시는 선생님같은 분들이 멋진 시대입니다.
세상살이에 일찍 터득하신 분의 모습입니다.
참 멋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