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주인공(마 1:21-25)
1. 여러분! 크리스마스의 주인공(主人公)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1) 크리스마스 캐럴[Christmas Carol]이 아닙니다.
(2) 성탄 트리(Tree)가 아닙니다.
(3) 성탄 카드(Card)가 아닙니다.
(4) 성탄 선물도 아닙니다.
(5) 산타클로스[Santa Claus] 할아버지도 아닙니다.
(6) 구세군 자선냄비도 아닙니다.
(7) 마리아와 요셉도 아닙니다.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성탄절(聖誕節)의 주인공입니다. 크리스마스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위에 찾아오신 날입니다. 크리스마스(Christmas)는, Christ(그리스도)와 Mass(미사)의 합성어입니다. 이 땅위에 찾아오신 예수님을 축하하고, 예수님을 잔치하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페르시아의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일성(一聲)이 무엇이었습니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고 예수님을 경배했던 것처럼, 여러분들은 오늘, 크리스마스의 주인공 예수님을, 경배하러 오셨습니다. 참 잘 오셨습니다.
2.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주인공이십니까?
(1) 예수님은, 역사(歷史)의 주인공입니다.
BC와 AD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으로, BC는 Before Christ, 예수님 탄생 전이라는 뜻입니다. AD는 라틴어 아노 도미니(Anno Domimi)의 약자입니다. 영어로는 In the Year of our Lord, 곧 ‘예수님께서 다스리는 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알고 사용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개인의 생사화복(生死禍福)과, 국가와 민족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주관하시는 주인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1939년부터 1945년까지 유럽, 아시아, 북아프리카, 태평양 등지에서 독일, 이탈리아, 일본을 중심으로 한 추축국과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등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 사이에 벌어진 세계 규모의 전쟁)이 한창일 때입니다.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는 독려했습니다. “여러분!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는 총알 하나라도 더 만들어야 하고, 대포 한 발이라도 더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독일 국민들은 전쟁준비에 여염이 없었고, 주일마다 독일교회 예배당은 텅텅 비었습니다. 그 순간 연합군을 지휘하던 영국의 처칠[Winston Leonard Spencer Churchill, 1874~1965, 제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지도자]은 호소했습니다. “여러분! 지금이야말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입니다.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 손안에 달려있습니다.” 주일마다 예배시간마다 영국교회 예배당은, 기도하는 교인들로 꽉꽉 찼습니다. 그 결과 이 전쟁은, 기도하는 편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여러분! 누가 역사를 주관하는 것입니까?
“각하! 이번 전투(戰鬪)가 아무래도 마지막 전투일 것 같습니다.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출전(出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부하의 진언(眞言)에 프랑스의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 1769~1821]은 대답했습니다. “전쟁은 하나님이 하는 것 아니야. 전쟁은 목사가 하는 것이 아니야. 전쟁은 내가 하는 거야” 하고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했습니다. 바로 그 때, 영국의 웰링턴 제독은 배 갑판위에서“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시편 127편을 암송하다가, 군목(軍牧)을 찾아갔습니다. “군목님!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하나님의 장중에 달려 있습니다. 연합군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하고 무릎을 꿇고 군목의 간절한 기도를 받고 출전했습니다.
그래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폴레옹은 이 워터루(Wsterloo) 전투에서 패배하였습니다. 수많은 부하들의 피를 흘리며, 목숨을 잃게 했고, 자신도 남대서양 세인트 헬레나섬에 유배되어, 폭풍우가 몰아치는 1821년 5월 5일 새벽 5시, 비참한 최후를 마쳤습니다.
여러분! 세상 일이 내 맘대로만 되는 것입니까? 개인과 국가의 역사를 주관하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역사의 주인공입니다.
(2) 예수님은, 구원(救援)의 주인공입니다.
예수님은 33년을 보내시고, 제자 가롯 유다의 배신으로,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산상까지 넘어지고 쓰러지면서 올라가십니다. 말가죽, 태장에 맞고, 기절을 하십니다.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 두 손에 못을 박고, 두 발은 포개서 30Cm가 넘는 징을 박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물과 피를 쏟으십니다. 해가 지기 전에 죽여, 장사 지내려고,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습니다. 예수님은 결국 운명하십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서른세 살 나이에, 나 이 십자가 못 진다고 딱 거절했으면, 끝났을 텐데, 부끄럽고 저주스러운 십자가를, 왜 지신 것입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 인류의 죄 값을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죄 값은 사망이라는,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키고, 죄인이 의인처럼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전쟁 중에 입대 했다가 부상을 당해, 눈을 잃고, 실명(失明)하게 된 청년이 있었습니다. 수술대 앞에서 의사는 말했습니다. “수술은 최선을 다하겠지만, 자네는 두 눈을 잃었기 때문에, 앞으로 아무래도 볼 수는 없을 거야. 그리 알게” 청년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의사 선생님! 장님으로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났습니다. 차라리 죽여주세요.” 의사 선생님은 수술을 거듭 했습니다. 얼마 후, 두 눈을 감고 있던 붕대를 풀 때 의사는 말했습니다. “자네는, 두 눈을 잃었기에 장님이 될 뻔 했는데, 고맙게도 눈 하나를 기증(寄贈)해 준 사람이 있었어. 그래서 한 쪽 눈 시력은 회복하게 되었네.” 그러자 청년은 발악했습니다. “한 눈, 애꾸로 살면 뭘 합니까? 불구자, 병신 아닙니까?” “청년!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가? 고마운 줄이나 알아야지!” 그런데 붕대를 풀고 나니, 사람이 기둥처럼, 눈 사람처럼 보이더니 제대로 보였습니다. 시력을 되찾고 보니, 옆에 두 눈을 수술 해준 의사 선생님, 간호사가 있었습니다. 그 옆에 어머니가 서 계십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 입니까? 어머니 얼굴을 보니 눈 하나가 없었습니다. 그제야 청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한 눈, 애꾸라도 좋습니다. 장님, 불구자, 병신이면 어떻습니까? 이렇게 나를 위해 희생하고, 사랑해 주신 분이 계시다니, 이대로 만족합니다. 이대로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왜 한마디 변명도 없이 죽어야 했습니까? 내가 치러야 할 죄 값을 대신 치루시고, 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새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구원을 주시는, 구원의 주인공이십니다.
(3) 예수님은, 축복(祝福)의 주인공입니다.
엘리너 루즈벨트 교수는, “세상을 끌어 앉으라.”는 책에서, 사람이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 세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⓵ “정직하게 살았다고 하는 느낌이 있을 때 행복합니다.” 여러분! 속이고 들통 나서 도망 다니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안하고, 비겁하게 뒷걸음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에게는 존경, 만족, 행복은 없습니다. 정직하게 살아야 행복한 것입니다.
⓶ “최선을 다 했다는 느낌이 있을 때 행복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 때 내가 좀 참았어야 하는데, 왜 못 참았을까? 그 때 내가 좀 잘할 수 있었는데, 왜 그렇게 못 했을까? 하고 후회하고 있는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최선을 다할 때 행복한 것입니다.
⓷ “사랑을 베풀었다는 느낌이 있을 때 행복합니다.” 여러분! 금년에도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바쁘게 살았습니까? 그런데 사랑을 베풀고 살았다는 느낌이 드십니까? 그래야 행복합니다. 좀 도와 달라고 나에게 손 내밀 때, 그 때 내가 도와줬어야 하는데, 왜 못 도와주었을까? 그런 생각이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이러한 깨우침, 이런 교훈을 주신 이가 누구십니까? 이렇게 살아 가도록 감화 감동을 주신이가 누구십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을 끌어 앉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베너 (David G. Benner) 교수는 “교회 사랑에 항복하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받기 원하는가? 예수님 사랑을 받아들이라.
변화되기 원하는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경배하라.
성숙하기 원하는가?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가까이 할 때, 예수님은 나의 생명, 나의 운명, 나의 장래를 그리스도의 세계로, 생각지도 못한 축복의 세계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축복의 주인공입니다.
빨래비누 공장 주인이, 목사님께 시비(是非)를 걸었습니다. “목사님! 예수님이 그렇게 좋다고, 목사님이 그렇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시고, 교회도 이렇게 많은데, 세상은 왜 점점 더 죄악이 늘어나고, 죄짓는 사람이 늘어나는지 설명 한번 해 보세요.” 그렇다면 나도 질문하나 하겠습니다. “빨래비누 공장에서 날마다 산더미 같은 비누를 만들어 내는 데도, 왜 거리에는 아직도 더러운 옷을 입고 다닌 자들이 그렇게 많습니까?” 그러자 주인은 당연하다는 듯,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그거야 그 사람들이 빨래비누를 사다 쓰지 않기 때문이지요. 빨래비누를 사다 쓰지 않는데, 더러운 옷이 어떻게 깨끗해지겠습니까?” 그 때 목사님은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분명한 복음인데, 사람들이 믿고 받아들이지 않으니 어찌하겠습니까? 빨래비누 공장 주인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이 모양 아니겠습니까? 복음을 복음으로 받아 들여야 역사가 일어나고, 구원을 받고, 하늘과 땅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성탄의 주인공되신 예수님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만족하고,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첫댓글 귀한말씀 감사합니다.
목사님! 올해도 설교를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16)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