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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꼭 수정할 사항 청원 세 번째!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건국되었다.'고 하면서 고조선 건국(서기전 2333년)이 청동기 시대 시작(서기전 20~15세기) 먼저라고 상호 모순되게 기술하고 있다. 고조선의 세력범위인 홍산문화지역과 북한에서 서기전 40~25세기 유물과 유적이 발굴되었고, 한반도에서도 ㅣ서기전 25~24세기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왜 이를 무시하고 청동기 시대를 고조선보다 늦게 시작되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을까? |
한국NGO신문 2월 22일자에 실린 아래 기사를 보시고 보완할 것이 있으면 연락주세요. 마지막으로 다듬어 곧 교육부에 청원을 하고자 합니다.
<기사 원문 파일>
[국사교과서, 올해 이것만은 꼭 바꿔라!] 〈3〉
청동기 시대의 시작을 고조선 건국 이전으로 편년하라!
박정학/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청동기 시대에 고대국가가 시작된다는 것은 동ㆍ서양 역사학계의 일반적 인식이다. 따라서 국사에서 청동기 시대 편년은 매우 중요하다. 교육부의 지침인 교육과정과 교과서 집필기준에서 “우리 겨레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건국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지침에 따라 편찬된 초ㆍ중ㆍ고 모든 교과서에서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는 서기전 20~15세기에 시작되었고, 고조선은 그보다 앞선 서기전 2333년에 건국되었다’고 하는 모순된 내용을 싣고 있다. 정부와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우롱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것이 조선총독부의 ‘단군신화론’과 중국의 동북공정을 도와주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심각한 문제이므로 서둘러 바로잡아야 한다.
<그림①> 초등학교 사회 5-1(6쪽)에 나와 있는 연표의 일부
청동기 시대 편년과 고조선 건국연대의 모순
부의 지침은 ‘고조선의 성립은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설명하고’, ‘청동기 문화의 상한선은 최근 학계에서 검증된 연구 성과를 반영하라’고 했다. 이에 따라 국정교과서인 ‘초등학교 사회 5-1’ 6쪽에는 <그림①>과 같은 연표를 그려놓고 있으며, 초ㆍ중ㆍ고 모든 교과서에서 “서기전 2000년~서기전 1500년경 청동기 시대가 시작되었다”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족장이 다스리는 부족들이 나타고 세력이 강한 부족이 주변 부족을 통합하여 세력을 넓혀나갔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은 단군이 이러한 부족들을 통합하여 건국하였다” “고조선은 서기전 2333년에 건국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모든 교과서가 고조선이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건국되었다고 하면서 건국연대는 오히려 그보다 앞섰다는 상호 모순되는 내용을 싣고 있는 것이다.
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교육부와 교과서 집필진
2014년 1월 국민신문고를 통해 교육부에 “청동기 시대 편년과 고조선 건국 시기가 모순되는데, 어느 것이 맞는가?”라고 질의를 했더니, “삼국유사에는 서기전 2333년에 단군이 고조선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서기전 2000년 이전 청동기 시대 유물이 발굴되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답했다. 그래서 “교과서의 고조선 세력범위 내에 있는 요하문명 지역에서 서기전 24~25세기 청동기 유물이 나왔는데 확인한 것이냐?”고 재차 질의했더니 “현재의 고고학적 성과와 문헌을 함께 기술하다 보니 모순이 발생하게 된 것”이라 했다. “한반도 안과 만주지역에서 모두 서기전 24~25세기의 청동기 시대 유물이 나왔으며, 대동강유역과 츠펑(赤峰)지역에서는 더 오래된 유적과 유물이 나왔지 않느냐? 서기전 2000년 이전 청동기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근거냐?”고 추가 질의했으나 지금까지 답이 없다.
중ㆍ고 교과서에 대해서는 한국교과서연구재단에 질문을 했더니 “교과서는 학계의 통설에 따라 쓰여진다. 기록과 유물의 연대가 다르므로 역사 교과서에서 고조선의 건국 연대를 기술하여 소개하되, 역사적 사실로 단정하지는 않는 태도를 보이는 전략을 쓴다. 현재 연구 과정에 있어 잘 알 수 없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학생들에게 역사기록을 기술해주면서 상상력을 자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라는 답이 왔다.
『삼국유사』가 전하는 고조선 건국 기록은 무시할 수 없지만, 서기전 20세기 이전의 청동기 유물이 없어서 믿을 수도 없으므로 ‘모순되는 내용의 기술을 통해 학생들에게 상상력을 자극했다’는 선생으로서 할 수 없는 궁핍한 자기합리화 논리다.
청동기 시대 편년을 조정할 수 있는 자료는 많다
학계의 통설이라면서 ‘서기전 2000년 이전의 유물은 없다’고 했지만, 고조선 세력범위 안인 홍산문화 지역에서 서기전 26~25세기 청동기 유물, 특히 오한기 서태 지역과 뉴허량 13지구에서 서기전 30세기 이전의 청동기 거푸집이 나왔다. 북한에서 서기전 40세기 초의 청동기 유물이 발굴되었다는 보고도 있다. 남한 지역에서도 1974년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의 고인돌 유적에서 서기전 2325년대 유물이 나왔고, 1986년 목포대 박물관이 발굴 보고한 전남 영암군 장천리 주거지유적에서는 서기전 2630, 2365년대 유물이 나왔다.
이러한 발굴결과는 사마천의 『사기』를 포함한 30여권의 중국 사서에 기록된 “구려(단군조선 이전)의 임금인 치우(현 국가대표 서포터즈 ‘붉은악마’의 상징)가 금속무기를 제작하였다.”는 내용을 뒷받침한다. 신용하, 윤내현 등은 30여 년 전에 이를 근거로 서기전 40c~25c 사이에 우리 민족의 청동기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와 교과서 집필자들은 왜 이런 발굴 성과와 중국 25사의 기록, 그리고 이미 30여 년 전 국내외 학자들의 연구 실적들을 배제하고 있을까?
일제의 ‘단군신화론’과 중국의 동북공정 돕기 위해?
과거 조선총독부는 단군의 건국을 ‘신화’로 만들기 위해 우리나라에는 청동기 시대 자체가 없었다고 했고, 우리 교과서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시작을 1998년까지는 서기전 10세기, 2002년부터 지금처럼 서기전 20~15세기로 기술했다. 단군의 고조선 건국이 역사적 사실이 아닌 ‘신화’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또한, 북한지역의 서기전 20c 이전 청동기 유적이 우리 것이 아니라고 하여 이 지역을 중국의 역사에 편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반면, 중국에서는 동북공정을 추진하면서 현재 우리 교과서의 고조선 세력범위에 포함된 홍산문화 등이 자기들의 유적이라는 ‘요하문명론’을 만들어, 뉴허량(牛河粱) 제2지점의 제단 설명문에 “약 5500년 전에 국가가 되기 위한 모든 조건들(all conditions to be state, 國家雛形)을 갖추고 있는 뉴허량 홍산문화 유적지”라는 내용의 안내판을 걸어놓고 있으며, 산동성 거야현에는 치우광장을 만들고 치우상을 만들어놓았다. 우리 정부가 교과서를 통해서 버린 서기전 20c 이전의 유물들을 주워서 자기들 역사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와 학자들은 무엇을 위해, 왜 이런 교과서를 만들고 있는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어떤 배경이나 흑막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국정 국사교과서가 만들어지는 올해에는 반드시 이런 교과서의 모순된 내용을 바로잡아야 한다.
<보도 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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