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교계 전문인력의 양성배출
동국의 모든 활동과 노력 그리고 그 성과는 당연히 한국불교로 회향되고, 그것은 곧 불교발전의 동력으로서 작용한다. 동국대학교는 이처럼 지난 한세기동안 한국불교와 함께하면서 지속적으로 그 발전에 기여해온 것이다.
불교의 발전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함께 요청된다. 그 가운데서도 ① 불교 근본 영역으로서의 교리ㆍ사상 또는 정신과 이념 ② 역사와 인간 현실 속에서의 그 적용과 실천성 ③ 불교사상과 실천성을 구현해내는 전문인력은 불가결한 요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동국은 이처럼 불교발전에 필요한 제 요소들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고, 그런 역할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①의 경우, 동국이 기본적으로 수행해오고 있는 불교학 연구활동이 그것에 해당한다. 불교학과를 비롯하여 각 불교연구기관 및 불교관련 학회의 모든 활동은 곧 불교의 교리ㆍ사상을 연구 구명하고 이를 통해 불교정신과 이념을 도출 정립해오고 있는 것이다. ②의 경우는 불교의 교학과 사상을 현실 속에서 적용하고 실천하기 위한 노력들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응용 및 실천불교 분야의 연구개척 및 노력이 곧 그것이다. ③은 교계 내외의 각 분야에서 실질적인 임무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전문 인력을 말함이다. 동국은 불교계가 필요로 하는 각 분야 전문인의 양성 배출에 있어서 가장 중심적이며 최고의 기관이 되어오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불교 전문인력 가운데서도 특히 종단이 그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종비생(宗費生)승려와 군종법사 및 교법사는 그 기대와 역할로 교계 내에서 각기 뚜렷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 불교학과를 중심으로 한 동국대학교의 또 다른 임무로서, 이들 불교계 전문인력의 양성 배출 상황과 그 활동상을 간추려본다.
1) 종비생 승려 교육
일찍이 종단은 역경ㆍ포교ㆍ도제양성을 종단의 3대과업으로 정하고 그 실천에 주력해왔다. 이 과정에서 1960년대 초 당시 조계종 정화종단이 불교계의 백년대계를 위한 도제양성의 일환으로 마련한 것이 곧 종비생 제도이다. 1964년부터 실시된 이 제도는 종단의 경비로 젊은 승려들을 대학에 보내 불교를 비롯한 고등교육을 받게하려는 것으로, 시대에 부응하는 엘리뜨 승려를 양성하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1964년 제1기 종비생 11명 (비구10, 비구니1)을 선발하여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에 입학시킨 것이다.
전불교계의 큰 관심과 기대를 모으며 출발한 이 제도는 이후 끊이지 않고 이어져 2005년 현재 제42기 종비생에 이르고 있다. 매년 종비생 선발 인원은 제2기 5명(비구3, 비구니2), 제3기 1명(비구), 제4기 11명(비구9, 비구니2)의 현황이 말해주듯이 일정하지 않고 그 숫자도 많지 않은 편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초창기를 거쳐 1995년 이후로는 그 인원이 대폭 확대되어 해마다 40여명의 종비생이 입학하고 있으며, 서울ㆍ경주 양 캠퍼스에는 평균 150~160명의 승려 학인이 항상 재학중이다.
한국불교 미래의 동량이 될 인재양성을 위한 종비생 교육은 종단과 동국대학교가 함께 각별한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 오고 있는 사업이다. 따라서 종단과 학교는 이들의 교육은 물론 생활편의를 위해서도 공동노력을 다해왔다. 종비생을 위한 기숙사 마련도 그 중에 하나이다. 종비생들은 1965년부터 서울 수유리 화계사의 큰 방을 임시 기숙사로 사용하다가 행원스님ㆍ경산스님 등의 도움으로 이내 화계사 입구의 목조건물 1동을 기숙사로 삼아 종비생만의 합동생활을 시작하였다. ‘백상원(白象院)’으로 명명된 이 낡은 목조건물은 그러나 노후가 심하여 1989년 신축공사를 시작, 1991년 10월 준공식을 갖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법당ㆍ도서관ㆍ대중방을 비롯하여 24개 방사및 부대시설을 갖춘 이 백상원에는 평균 30~50명의 종비생이 거주하며 수행과 학문에 정진하는 규범있는 도량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이에 비해 경주캠퍼스의 경우는 불교학과가 신설된 1985년부터 종비생 입학이 시작되었다. 경주캠퍼스의 종비생 기숙사는 종단 및 재학생ㆍ동문 종비생들의 자체 기금마련과 학교측의 지원으로, 캠퍼스 내에 법당ㆍ대중방ㆍ개인방을 비롯하여 기타편의시설을 갖춘 2층 양옥의 ‘석림원(釋林院)’이 1999년 12월 준공되었다. 현재 이곳 석림원에는 평균 45~50명의 학인승려들이 기거하며 학업에 열중하고 있다.
한편 비구니 학승 기숙사는 서울ㆍ경주 공히 여러 가지 어려움 끝에 뒤늦게야 마련되었다. 비구니 학승의 기숙사가 아예 없었던 서울은 종로구 평창동 소재의 각진선원을 혜광사로 명명하고 종단의 종무회의 결의에 따라 1994년 11월부터 비구니 기숙사로 영구사용하고 있다. 학교 인근의 비구니 사찰인 금련선원의 일부 방사를 빌려 생활해오던 경주 비구니 학승들은 2004년 5월부터 교내 학생기숙사인 금장생활관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다. 학교측의 배려로 여학생 기숙사인 연화동의 4층 전부를 비구니 전용 기숙사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종비생들의 대학생활은 석림회(釋林會)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종비제도 시작 이듬해부터 이들은 종비생 전원의 공동체인 석림회를 결성, 서로 학문과 수행을 격려하며 정진하는 외에 교내외에 걸쳐 다양한 활동들을 펼쳐오고 있는 것이다. 석림회에서는 1967년부터 회지석림을 간행하기 시작하여 2005년 현재 제39집을 내놓았다. 초기에 종비생들의 단순한 회지성격으로 시작된석림은 현재 이들의 수행생활 및 학업성취를 반영하는 학술논문을 중점 게재함으로써 전문지로서 성격을 강화해가고 있다.
젊은 수행자들이자 대학에서 학구에 전념하는 학인들이기도 한 이들 석림회원 종비생들의 활동과 역할은 그들의 위상만큼이나 독특한 편이다. 종비생들은 자체 법사단을 구성, 동국대를 포함한 각 대학 학생신행단체에서 지도법사로서 활동하는가하면 대학부속병원 환자방문 등 현장포교와 지역사회의 포교에도 앞장서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국대 종비생들은 전국 승가학인 연합회의 활동을 주도하고 종단의 현안이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참여ㆍ발언하기도 한다. 1994년 3월 종단개혁을 위한 구종(救宗)법회에 참여하여 가두행진을 벌인 일이나 불교개혁기원 및 종교탄압규탄대회에 동참하여 내무부 청사를 항의 방문한 일, 또 법난규탄과 종단개혁을 위한 범불교도대회에서 젊은 승려들의 의견을 천명했던 일 등이 모두 그런 사례들이다. 이처럼 대학 내에서나 종단에 있어서 석림회 종비생들은 항상 한국불교의 주체ㆍ주인의식을 확고하게 지니고 수행ㆍ학문ㆍ참여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오고 있다.
1964년 종비생 1기 11명으로 출발한 석림회는 2005년 현재 제42기에 이르고 있으며, 그동안 배출된 석림동문은 9백여명에 달한다. 종비생의 역사가 이미 40여년이 되는만큼 그동안 석림회 출신들은 종단의 총무원ㆍ각 본말사ㆍ선원ㆍ강원 등 교계내의 지도자적 위치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 밖에 동국대를 포함한 대학 및 학계, 육해공 군종활동, 불교사회복지, 국내외 포교등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숫자 또한 적지않다. 이는 종단의 인재양성제도가 그만큼 성과를 거두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며, 동시에 종립동국대의 기여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종비생 승려교육 이외에, 동국의 또 다른 역할로서 출가자의 배출에 관해서도 잠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불교대학, 특히 불교학과에 거의 국한되는 사례이기는 하지만 일반학생들 가운데 결코 적지않은 숫자가 출가하여 승려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학과 학생으로서 졸업후 혹은 재학중에도 크게 발심(發心)하여 출가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출가동기와 사정이 무엇이든 중요한 것은 이들이 불교학을 접하고 공부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새로운 삶의 가치와 인생관을 세우고 출가를 지망한다는 점이다. 혹은 처음부터 출가의 뜻을 굳히고 불교학을 공부한 것일수도 있겠다. 어쨌든 매년 평균 5~6명의 졸업생 혹은 재학생이 출가의 길을 선택하고 있으며, 군종법사 입대를 위한 출가자까지 포함하면 년 평균 10~15명의 출가자가 나오고 있다.
출가란 결코 누구나 쉽게 결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일반학생들이 불교를 공부하고 출가승려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비범한 의지의 결단임에 틀림없다. 그것이 불교교육을 통해 이루어진 결과라고 볼 때, 동국대학교는 고귀한 출가자의 배출에도 분명 일정부분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