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네임 F10, 6세대로 진화한 BMW 5시리즈는 이 시대 가장 앞서가는 프리미엄 중형 세단으로서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BMW의 캐치프레이즈인 \'진정한 드라이빙의 즐거움(Sheer Driving Pleasure)\' 으로 대변되는 다이내믹한 주행성능은 물론, \'이피션트다이내믹스(EfficientDynamics)\' 기술을 적용해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시켰으며 수많은 첨단 장비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뉴 5시리즈.
기자가 먼저 만나본 녀석은 535i로서 현 시점 국내 출시된 5시리즈 라인업 중 최상위 모델. 어째서 BMW 5시리즈가 프리미엄 중형 세단 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는지, 세대가 변해도 여전히 성공을 상징하는 오너용 세단으로 1순위에 꼽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러한 궁금증들을 녀석과 함께 달리며 풀어봤다.
외관 디자인은 크리스 뱅글이 창조했던 날카로운 인상의 5세대와 달리, 아드리안 반 후이동크 체제의 6세대는 근육질이 강조된 선이 굵은 이미지가 차체사이즈의 증가와 맞물려 우람하고 역동적인 모습을 자아낸다. 일각에선 리틀 7시리즈라 불릴 만큼 3시리즈보다는 플랫폼을 공유하는 7시리즈에 더 근접하지만 5시리즈의 개성 또한 잘 표현해내고 있다.
앞모습은 키드니그릴이 너무 커진 감이 있으나 헤드램프보다 살짝 아래로 위치해서 짧은 오버행과 함께 스포티함을 살려냈고, 하얀 눈썹이 강조된 헤드램프는 정형화되지 않은 형태로 다듬어져 인간적인 눈매를 연출한다. 보닛의 주름도 예전보다 역동적인 느낌.
측면에선 도어 손잡이와 일치하게 흘러가는 강인한 라인이 리어로 갈수록 굵은 주름의 굴곡을 만들어내며 5시리즈의 모습을 다각도로 다양하게 표출한다. 이러한 측면 라인은 기교만 조금씩 다를 뿐 다른 BMW 모델에도 공통적으로 가미되는 요소.
뒷모습은 풍만한 근육질 엉덩이에 BMW 특유의 L자형 리어램프가 적당한 크기로 자리를 잡았으며, 535i에는 싱글타입 듀얼 머플러가, 528i 이하에는 듀얼타입 싱글머플러가 귀엽게 꼬리를 내밀었다.
롱 노즈 숏 테크, 보닛이 길고 트렁크가 짧은 역동적인 라인과 전통적인 C필러, 끝이 올라가 다운포스를 도와주는 트렁크리드 등은 다른 메이커들도 많이 따라하고 있지만 원조는 역시 BMW로서, 이는 역동성을 강조하는 디자인뿐만 아니라 공기의 흐름을 최적화하는 에어로 다이내믹스 기술까지 적용된 결과물이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과학적인 에어로 다이내믹 테스트 센터를 보유한 BMW의 모든 모델은 차체의 미세한 부분까지도 가장 앞서가는 에어로 다이내믹스 기술이 적용되어 있다. 이는 주행 시 공기저항을 최대한 억제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유도함으로서 고속 주행과 연비 효율 등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대충 살짝 닫아도 상관없는 소프트 클로징 오토매틱 도어를 여닫고 실내로 들어서면 기함인 7시리즈의 화려하고 다채로운 인테리어가 5시리즈에 그대로 옮겨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유사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휠베이스를 비롯한 차체 사이즈가 늘어나 실내 공간 또한 보다 넉넉해졌기 때문에 7시리즈와 비슷한 인테리어 조합이 가능해진 것인지도.
사용된 재질과 조립품질 등은 프리미엄급 중에서도 수준급으로 탄탄한 실력이 엿보여 만족스럽고, BMW 특유의 디테일들이 살아있으면서 첨단의 이미지가 녹아들어있다. 535i에 적용된 BMW 컴포트 시트는 역시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며 완벽한 자세를 잡아준다.
붉은 톤 조명과 심플한 레이아웃은 여전하나 구형 대비 훨씬 세련되게 변모한 계기판에는 타코미터 하단에 이피션트다이내믹스 기술의 일부분을 보여주는 그래프가 표시된다. 가속페달을 밟는 정도에 따라, 그리고 브레이크 에너지 재생 시스템이 적용된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 정도에 따라 배터리 전압을 소모하고 보충하는 등의 일련의 작업을 운전자가 인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다채로운 장비가 적용되었음을 보여주는 기어변속레버 주변 각종 조작부는 주행 중에도 간결한 사용이 용이하도록 정리가 되어 있다. 대충 살펴봐도 iDrive 시스템, 다이내믹 드라이브 컨트롤,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와 오토 홀드 시스템, 카메라 뷰 전환 등의 다양한 장비들을 손쉽게 제어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그 외 여러가지 다양한 장비들도 iDrive 컨트롤을 사용해 조작이 가능하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이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속도를 비롯한 각종 정보를 전면 유리에 표시한다. 이럴 필요까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시승기에 다 언급하지 못하는 수많은 장비들이 5시리즈를 감싸고 있기 때문에 실제 오너라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즐거움도 쏠쏠하지 않을까.
뒷좌석은 차체 크기 대비로 넓어보이진 않지만 중형 세단으로서의 충분한 공간을 확보했으며 시트 자체가 큼직하기 때문에 주행 시 편안함이 배가되었다. 최근의 경쟁 모델들도 그러하듯 뒷좌석 공조장치 조작부뿐만 아니라 B필러에도 송풍구가 눈에 띈다. 트렁크 공간도 충분한 여유를 갖는다.
535i의 엔진 커버에 새겨진 \'TwinPower Turbo\'는 트윈터보와 같은 힘을 내는 싱글터보라는 의미다. 아직까지 일부 전문가들도 트윈터보라며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신형 5시리즈를 필두로 이후 새로 출시된 BMW 차종들에 얹히는 3리터 터보엔진은 모두 싱글터보다. 모델명 뒤에 35i가 붙는 경우 이에 해당되며 국내 시판 모델 중 335i 컨버터블, X5 XDrive35i 등이 535i의 뒤를 이어 같은 심장을 달았다. 3.0리터 엔진이지만 3.5리터급의 출력을 발휘한다 해서 모델명은 30i가 아니라 35i가 되는 것은 기존과 동일하다.
참고로 현행 7시리즈 740i에도 같은 3리터 배기량의 터보엔진이 장착되지만 덩치를 감안해 싱글터보가 아닌 트윈터보가 적용되기 때문에 싱글터보 유닛보다 출력이 더 높아 4리터 급의 힘을 발휘하니 모델명은 40i가 되는 것이다. (326마력/45.9kg.m)
여하튼 터보 유닛을 두 개에서 하나로 줄여 연비개선 등 효율성을 높이면서도 출력은 기존과 동일하게 유지해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 진일보한 엔진은 최고출력 306마력(5800rpm), 최대토크 40.8kg.m(1200rpm~5000rpm)를 발휘한다.
엔진보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새롭게 매칭 된 ZF제 스텝트로닉 8단 자동변속기. 이 미션 역시 BMW 신형 모델들에 순차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단순히 기어단수가 늘어나 연비만 개선된 것이 아니라 더 매끄럽고 빠른 변속감을 자랑하는 것이 특징. 따라서 여러 부분의 경량화를 통해 경쟁모델들보다 가벼운 5시리즈의 차체가 매섭게 내달릴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
기자는 최근 오른쪽 무릎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있기 때문에 시승할 때도 어느 정도 주행특성을 파악하고 나면 우리 팀 기자님들과 자주 교대하며 스티어링휠을 잡곤 한다. 대부분의 촬영을 마치고 다른 기자님이 535i의 운전석에 앉았을 무렵, 신호대기 맨 앞 정지선에 멈춰 서있는데 신형 535i를 의식한 듯 옆 차선으로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기며 P사의 C모델이 멈춰 선다.
눈앞에 펼쳐진 도로는 길고 긴 뻥 뚫린 터널, 이럴 땐 서로 쳐다보지 않아도 녹색 신호등이 점멸되면 풀 스로틀로 치고 나가주는 것이 예의인 상황. 기자는 조수석에 앉아 곧 펼쳐질 두 차량의 질주를 제대로 감상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출발 신호를 알리는 녹색등이 점멸되자마자 옆에 있던 차량은 바로 튀어나가기 시작했는데 운전석에 앉은 우리의 기자님은 평소 시내주행 하듯 가속페달을 서서히 밟으며 느리게 출발하는 것이 아닌가. 옆 차량을 못 봤나? 순간 기자는 소리쳤다. 뭐하십니까~ 어서 밟지 않고~!
그 소리를 듣고 벌써 저 만치 앞서가는 차량을 이제야 의식한 듯 우리의 기자님은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기 시작했다. 그러자 의도를 알았다는 듯 걱정 말라며 쏜살같이 내달리기 시작하는 535i, 평소엔 너무나 조용해서 독일 차 맞나 싶지만 지금은 속도를 높이고 있음을 알려주듯 고음으로 높아지는 엔진음과 듀얼머플러에서 아득히 들려오는 배기음이 아련하게 귓가를 자극한다. 앞서가는 차량이 무겁긴 해도 100마력 더 높은 고출력인지라 이미 초반에 너무 멀리 벌어진 거리를 쉽게 좁히긴 힘든 상황, 하지만 535i는 전혀 딜레이 없는 매끄럽고 힘찬 가속력을 바탕으로 그 거리를 서서히 줄여나가기 시작한다.
순간 기자는 시선을 기어변속레버로 돌렸고, 익숙지 않은 왼손으로 S모드에 밀어 넣은 후 여전히 전방 멀리까지 다른 차량이 없음을 확인하면서 다시 기자님에게 외쳐댔다. 더 더 더 더 더 더 더~! 음주단속하는 경관의 그 톤으로, 다만 이 외침은 더 불으라는 것이 아니라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지 말라는 압박의 용도랄까. 이후 200km/h를 넘어갈 무렵 535i는 결국 꼬리를 따라 잡은 후에 마치 400m 달리기 결승점 직전 추월에 성공한 육상선수처럼 터널이 끝나기 전에 기어코 앞서나가 상대 차량을 사이드미러에 가두는데 성공했고, 기자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의사를 전달했다. 이제 그만~
초반 그렇게 벌어졌던 차이를 극복하며 결국엔 앞서버린 535i에게 자존심이 상했는지 속도를 줄여 정속주행모드에 돌입했는데도 불구하고 상대차량은 다시 마구 내달리며 앞으로 나가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결과는 이미 535i의 드라마틱한 승리. 초반 동일하게 출발했다면 상대는 535i의 사이드미러에 계속 갇혀있었을 것이다. 더 없이 매끄러운 엔진과 변속기의 짜릿하고 치밀한 가속감은 탄성을 자아낼 정도.
사실 평소 시승을 하면서 성능이 된다 싶은 녀석과 함께 달리는 중에는 여타 빠르다는 차량들이 다가와 함께 달려보자며 신호를 보내도 절대 응하지 않고 일부러 정속주행을 한다. 공도에서의 그런 질주는 도로 상황을 봐가면서 해야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시도하는 운전자 분들은 부디 절제하시길 당부 드린다.
이번 경우엔 전방의 도로가 워낙 시원하게 뚫려 있어서인 이유도 있었지만, BMW 엠블럼이 달린 녀석들은 저마다 특유의 다이내믹한 성능과 안정감으로 오른발을 쉽게 부추기는 것도 사실인지라 지금껏 경험한 BMW의 DNA에 대한 믿음으로 테스트를 겸해 초고속 역영까지 시원스런 질주를 즐겼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기자는 관절염이고 뭐고 몸이 근질거려 다시 스티어링휠을 잡은 후에 신형 5시리즈의 코너링 실력을 점검해보기로 했다. 컴포트, 노멀,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의 4단계 주행모드는 서스펜션 감쇄력과 ESP의 적용 유무 등으로 각기 다른 주행 반응을 선보인다.
컴포트 모드에서는 그야말로 BMW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울 정도의 소프트한 감각으로 느긋하고 편안한 주행을 이끌어내며, 노멀 모드에서는 부드럽지만 잘 조율된 느낌을 준다. 스포츠 모드로 전환한 후 달라지는 하체를 느끼며 고속 코너링과 급격한 코너링을 시도하면 단단하고 치밀한 거동과 재미를 함께 선사한다.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서는 ESP가 작동을 멈추기 때문에 노면이 고르고 뽀송뽀송한 도로에서만 리어가 흐르는 짜릿한 코너링을 만끽해야겠다.
예의주시하며, 또는 무의식중이라도 스티어링휠을 조향해 나갈 때의 반응은 눈앞의 도로를 원하는 만큼 재단한다는 BMW 특유의 코너링 감성 그대로, 역시 5시리즈는 온갖 풍문을 뿌려댔음에도 불구하고 기본 이상으로 갖춰야 할 뛰어난 밸런스와 코너링 실력을 뽐내고 있다. 브레이킹도 출력 대비 전혀 부족함 없는 반응과 퍼포먼스로 흡족함을 안겨준다.
에필로그 이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또 이러고 말았다. 가끔 시승기로 시작해서 배틀기 비슷하게 진행되는 기자의 습성이 나와버렸는데, 글을 쓰는 입장에서도 초지일관 너무 진지하게만 가다보면 재미없고 축 쳐지는지라 독자 여러분께서도 감안해 주시리라 믿는다. 현행 5시리즈에 대한 또 다른 방향의 시승기는 얼마 전 촬영을 마친 주력모델 528i를 통해 다시 소개해 드릴 예정이다.
현행 5시리즈는 온갖 첨단 장비들로 가득한 컴퓨터 세단 같은 이미지를 풍긴다. 하지만 그 안에는 BMW의 디자인 철학과 인테리어 감성이 녹아들어 있으며, 무엇보다 이피션트다이내믹스 기술로 고효율을 표방하면서도 특유의 다이내믹함을 잃지 않는 익숙하지만 진일보한 주행감성으로 운전자를 만족시켜준다.
BMW가 더 이상 BMW 답지 않다는 섣부른 판단은 아직 미뤄두시라. 언제나 최고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대의 흐름과 유행의 변화를 한 발 앞서가는 트렌드 세터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 오너와 혼연일체가 되어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함께 느끼는 교감은 원하는 그 이상으로 충분히 나눌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