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일표님의 동화 관련 게시글에도 댓글을 달았지만 나는 요즘도 동화책을 즐겨 읽는 '어른이'다.
동화책을 쌓아놓고 정독하면 근사한 시나 공감되는 소설을 읽을 때와는 또 다른 재미가 느껴진다.
특히 최근에 읽은 마가렛 섀넌의 '빨간 늑대'와 같은 동화는
내게 능력이 있다면 공연으로 구성해보고 싶을 정도로 훌륭했다.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머릿속 깊이 남아있는 동화가 여러권 있지만
지금도 '동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꼬마 검둥이 삼보가 어느 날 호랑이를 만나 자신이 가진 것을 하나씩 건네주게 되는데
그 물건을 두고 호랑이들이 빙빙 돌면서 싸우다가 녹아서
버터가 되어 버린다는 이야기의 [꼬마 검둥이 삼보]다.
동화 속 삼보는 덕분에 물건을 되찾고,
호랑이가 녹아서 생긴 버터로 팬케이크를 구워서 100개도 넘게 먹어 치운다.
어린 기린씨는 그 때부터 대체 호랑이가 녹아서 만들어졌다는 버터는
어떻게 생긴, 어디에 쓰이는 물건이며
삼보가 169개나 먹은 팬케이크는 대체 얼마나 맛있는 음식일지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느슨하게 묶고 동생과 내복을 입고 앉아 맛있는 빵을 갈라 먹을때는
늘 삼보의 팬케이크를 떠올리며 "누나가 팬케이크 만들어 줄께."란 말을 잊지 않았다.
모양은 보름달빵 같고, 카스타드의 부드러움을 지닌 그런 케이크는 아닐까,
아니 어쩌면 더더더더더더욱 부드러워서 입속에 들어가면 녹아 없어져 버릴지도 모른다.
삼보가 100개도 넘게 먹었을 때는 이유가 있을텐데...
어느새 나는 팬케이크를 거의 숭배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땐가,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이름을 바꾸고
기린씨는 버터가 뭔지도 알게 되고 더이상 호랑이가 녹아 버터가 되었다는 동화를
진짜로 믿지도 않게 되었지만 팬케이크는 여전히 꿈의 음식이라 여기고 있을 즈음
학교에서 실과 과목의 가사 실습으로 팬케이크를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 조원들이 선생님의 설명대로 지져낸(?) 팬케이크는
동화에서처럼 향긋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은 팬기름 냄새가 풀풀 풍기는 호떡 모양새의 빵이었다.
나는 생에서 내가 기억하는 몇 안되는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ㅠㅠ
지금 생각해보면 굽기를 잘못 구웠던 것 같은데...
실과 시간에 사용했던 '핫케이크믹스'에 대한 불신은 아주 오랫동안 계속 되었다.
삼보가 먹었던 팬케이크가 실제로 어떤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요즘은 팬케이크를 구으며 착한 삼보가 먹었던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버터 대신 식용유를 넣어 구워도 충분히 부드럽고 폭신폭신, 향기로운 팬케이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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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의 딸기 팬케이크
(지름 약 9cm의 팬케이크 7개 분량, 3명 정도 충분히 먹습니다.)
재료 박력분 120g, 베이킹파우더 1작은술, 설탕 20g, 소금 1g, 달걀 1개, 우유 140g,
바닐라오일 2-3방울, 식용유 1큰술
토핑 딸기 컴포트와 생딸기 약간, 슈가파우더 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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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용유 대신 버터를 넣어도 풍미가 좋아집니다.
카놀라유, 포도씨유 등 식용유 종류 모두 사용 가능해요.
단, 올리브유는 특유의 향이 강하니 피해주세요.
+ 생크림이나 아이스크림 등을 곁들이면 더욱 풍성해지겠지요. ^^
+ 반죽은 빠른 시간 안에 섞어 주세요. 그래야 포슬포슬 부드러운 팬케이크가 됩니다~
딸기 컴포트 만들러 가기 =>
바나나 스프레드와 바나나 팬케이크 만들러 가기 =>
밀가루, 베이킹파우더, 설탕, 소금을 섞어놓고 여기에 달걀과 우유를 넣어 거품기로 저어준다.
반죽에 식용유와 바닐라 오일을 넣고 매끈하게 섞어주면 된다.
코팅된 후라이팬에 식용유를 떨어뜨려 닦아내고 반죽을 한 국자씩 떠서...
주르륵 부어준다. 중약불로 굽다보면 기포가 올라오는데
우측 사진과 같은 모양이 되었을 때 한번에 뒤집으면 매끈하게 구워진다.
약간씩 어긋나게 쌓아놓고 컴포트를 듬뿍 올린 다음 생딸기도 하나 썰어 올리면 완성..^^
이렇게 슈가파우더를 살짝 뿌려 장식해도 좋고, 아이스크림이나 생크림을 사용해도 좋다.
폭신하고 부드럽게 구워진 팬케이크를 딸기컴포트 듬뿍 적서 입에 넣으면
그 순간만큼은 세상 근심 하나 없는 사람이 되고
우아하게 먹으려던 팬케이크는 금새 접시를 바닥내며 꿀꺽 되어버린다.
물론 삼보처럼 169개나 되는 팬케이크를 한꺼번에 먹지는 못하겠다.
삼보의 팬케이크는 착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맛이 있을텐데 기린씨는 그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고 보니 동생에게 "누나가 팬케이크 구워줄께."라고 했던 약속은 아직 지키질 못했다.
늘 입만 앞서가는 것 같다.^^;
첫댓글 맛있게 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