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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의 설교 요약
「팀 켈러의 설교」. 팀 켈러. 두란노
PART 1. 말씀을 섬기는 설교
설교자는 성경본문의 진리를 향한 책임이 있다.
PART 2.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설교
설교자는 청중의 삶을 향한 책임이 있다.
PART 3. 성령을 덧입은 설교
설교자는 삶과 인격에 성령이 오셔야 한다.
PART 1. 말씀을 섬기는 설교
설교자는 성경본문의 진리를 향한 책임이 있다.
Chapter 1. 성경말씀을 설교하라
전체 성경의 맥락 안에서 강해설교를 하라
Chapter 2. 매번 복음을 설교하라
복음을 설교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이다.
Chapter 3. 모든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라
본문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설교하는 여섯 가지 실천법
PART 2.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설교
설교자는 청중의 삶을 향한 책임이 있다.
Chapter 4. 몸담고 있는 문활르 향해 그리스도를 설교하라
주위 문화와 공명하면서 저항하라
Chapter 5. 시대정신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예수님때부터 현대의 저변을 흐르는 문화 내러티브 검증하기
Chapter 6. 마음에 닿게 그리스도를 설교하라
설교의 상황화가 이뤄지면 청중이 변한다.
PART 3. 성령을 덧입은 설교
설교자는 삶과 인격에 성령이 오셔야 한다.
Chapter 7. 설교가 들이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설교보다 설교자로서의 삶을 더욱 힘써 준비하라
PART 1. 말씀을 섬기는 설교
설교자는 성경본문의 진리를 향한 책임이 있다.
Chapter 1. 성경말씀을 설교하라
전체 성경의 맥락 안에서 강해설교를 하라
나쁜 설교문-좋은 설교문: 설교자의 책임
좋은 설교-위대한 설교: 설교자와 더불어 청중의 마음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달려있다(살전 1:5).
위대한 설교의 비결은 성령께 있으므로 “위대한 전달”은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건강한 설교는 사랑에서 나온다.
설교가 염두해 두어야 할 두 가지 근본대상은 ‘성경말씀’과 ‘듣는 사람’이다.
설교준비: 밀을 추수하는 것과 같다.
설교전달: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형태로 준비해야 한다-양분과 기쁨이 된다.
두 가지 사랑: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사랑
사람들을 향한 사랑
그리스도를 설교하라(고전 1:18-2:5)
설교자는 예수에게 ‘스스로를 제한시켜야’한다.
바울에게 그리스도는, 모든 설경본문을 이해하는 열쇠(좋은 설교의 첫 번째 면모)요, 또한 말씀을 듣는 이의 마음과 삶에 설득력있게 새기는 열쇠(두번째 면모)였다.
설교는 단지 그리스도에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을 ‘보여주고’ 그 분의 위대함을 ‘증명하고’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으로 ‘그 분을 계시하는’ 것이다.
문화의 심장부를 향해 설교하라(고전 1:21-24)
각 문화의 핵심 열망을 분석하고 거기에 메시지를 조율한다.
성경본문을 풀이하는 과정에서 기독교 설교자는 성경 메시지와 그 문화의 근본 신념들(그 안에 속한 사람들 눈에는 잘 안보인다)을 비교하고 대좀함으로써 그들이 자신을 보다 더 정확히 이해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지연스레 사람들이 ‘오 그래서 내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느낀 거였구나“하고 깨닫게 된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에 이르는 여정에서 이 순간이 가장 해방적이고 촉매적인 단계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바울처럼 우리도 그들의 문화적 열망을 매개로 사람들을 초대하고 사로잡음으로써, 마침내 그들이 진정한 지혜와 의로움, 또한 참된 능력과 아름다움이신 그리스도께 오도록 초청해야만 한다.
설교의 과업들
설교자는 본문의 의미를 그 문맥 안에서 선명하게 전해야 한다.
역사적인 배경과 전체 성경의 맥락안엣 말씀을 섬기는 이 과업이 ‘강해’다.
단락의 메시지를 이끌어내되 나머지 성경 전체의 가르침이 조망 안에서 신실하고 또 통찰력있게 도출하여 “성경 한 부분을 설명할 때 다른 부분과 괴리되지 않도록”하는 것이다.
마음을 향한 설교와 문화를 향한 설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설교에서의 문화참여는 ‘타당하게’ 보이기 위한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삶의 근본을 발가벗기기 위함이어야 한다.
설교-강해설교와 주제설교 모두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가 본문 주제의 궁극적인 성취가 되는 지를 보여준다.
성경이 성경 자체에 대하여 무엇이라 말하는가?
시 119편을 읽고 역할과 활용에 대하여 말하는 바를 모두 추출하라
성령을 통해 계속되는 하나님의 역동적인 행동은 성경의 언어와 의미에 최우선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설득과 예화, 여타 방법을 무시하는 것은 설교의 효력을 훼손한다.
스펄젼은, 성경은 사자와 같아서 그것을 설명하고, 방어하고, 혹은 그것을 믿어야 하는지 증명하기 위해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대신 그는 권면하기를 그저 그것을 설교하라고 했다.
“누군가의 순종이 동기가 복음에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율법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게 하나님의 선함이 아니라 그 분의 권세와 공의 때문이라면, 하나님을 자애로운 친구와 아버지가 아니라 응징하는 심판자로 여긴다면, 하나님을 생각할 때 무한의 은혜와 자비보다 소름끼치는 위세부터 떠오른 다면 그는 아직도 율법의 영의 지배하에 있거나 최소한 거기에 매여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존 코훈-
Chapter 2. 매번 복음을 설교하라
복음을 설교하는 건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이다.
구약: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다.
구원은 오직 여호와께만 속했다.
신약: 그 구원이 ‘어떻게’ 주님으로부터 나오는지 발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 분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러 오셨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하나님의 구원도 성경 자체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복음의 두 적-율법주의: 내 선한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다라는 의식적인 믿음보다 훨씬 크다.
반율법주의; 그 분의 말씀과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도 하나님과 관계를 믿을 수 있다는 입장
율법적인 정신: 비판에 대해 너그럽지 못하고 거칠고, 지나체게 예민하며, 깊은 불안감과 다른 이들을 향한 시기심으로 이끈다.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감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무조건적인 은혜에 뿌리박고 기초하는 게 아니라 자기 행위와 평가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 율법주의 정신: 하나님이 내 공로와 상관없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가 도덕적으로 살든 비도덕적으로 살든 하나님은 상관하지 않으신다는 사상
‘하나님은 나를 있는 그대로 용납하시기 때문에, 그것이 원하는 것은 그저 내가 나답게 되는 것이다’라는 태도이다.
반율법주의에 대한 말씀(롬 1:18-32)
율법주의에 대한 말씀(롬 2“1-3, 20)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의 문제
방식만 다를 뿐 둘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거부하며, 결국 바울이 신랄하게 평가하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롬 3:10-11)의 결과를 낳고 있다.
「설교의 기술과 목사의 소명」 부흥과 개혁사)에서 윌리엄 퍼긴수는 “설교자들은 율법과 복음의 진정한 연계성을 알 필요가 있다”라고 언급한다.
율법은 우리에게 복음의 필요성을 보여줄 수 있고,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품은 후에는 우리를 구원하신 분을 닮아가는 길을 알게 하고 그렇게 되도록 도와주며 자라게 하는 매개가 된다.
요 14: 21-23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계 3:20-21)를 그와 함께 하리라”(23절)
복음이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을 ‘구원을 쟁취하는 율법적 수단’에서 ‘이미 받은 구원에 대한 사랑의 반응’으로 변혁시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은 복음의 은혜에서 흘러나오는 것으로 스스로 무한 비용을 감당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분을 알고 닮아가며 기뻐하고 사랑하는 통로가 된다.
율법주의자 반 율법주의자 모두에게, 율법에 대한 순종은 단순히 하나님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는 길이지, 그 분을 닮아가고, 그 분을 알고, 기뻐하고, 그 분 자체로 인해(선하시며, 인자하시며,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 그 분을 사랑하는 길이 아니다.
율법주의자와 반율법주의자에 대한 처방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해하고 맛보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율법을 향한 새로운 사랑과 순종으로 이끈다.
매번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은 성경이 어떻게 서로 맞아 들어가는 지를 보여주는 길이다.
어떤 설교든,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만 보여주고 그 원리를 복음의 맥락 안에서 연계시키지 않는 것은, 자칫 열심히만 하면 스스로 감당할 만큼 충분히 완벽해질 수 있다는 인상을 주게된다.
마가복음 5장의 두 설교 비교: 군대귀신들린 자를 쫓아내신 예수 그리스도
첫 번째 설교: 예수님을 해반자로 소개
“고통에 있던 이 사람은 벗은 상태였습니다. 사슬에 묶여 있었고 모든 인간 공동체에서 소외되어 있었으며, 분노 가운데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사슬에 매인 이 사람을 붙들고는 해방시켜주십니다. 그 분은 이 소외된 사람을 붙잡고 다시 인간 공동체와 조화될 수 잇게 하셨습니다. 그의 분노의 울부짖음을 잠재우고 고요함으로 그를 채우십니다. 이제 이 사람은 온전한 정신이 됩니다.”
이 설교는 우리가 무슨 문제를 갖고 있든 예수님께 나오면 그 분이 우리 삶에 들어오셔서 문제를 바로 잡아 주신다는 메시지다, 그분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그 무엇도 치유하실 수 있다.
두 번째 설교: 설교자의 말미에 던진 중요한 질문
“이 사람이 벌거벗음과 사슬과 소외, 그의 발광과 울부짖음은 우리 모두의 초상입니다. 우리는 죄인이고 성경은 우리 모두가 영적으로 죄와 우상, ‘공중의 권세잡은 자’의 노예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어둠의 나라에서 빛의 나라로 옮겨와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형편에 처해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를 해방시켜 주십니다.”
여기서의 질문 ‘예수님이 그를 용서하고 회복시킬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발가벗겨진 예수님, 감옥에 갇힌 예수님, 성문 밖에 소외되어 십자가에 달라신 예수님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고 울부짖는 예수님을 만난다.
예수님이 귀신들린 자를 고치실 수 있었던 그 이유는, 그 사람은 비록 죄인인었지만 예수님이 그 사람과 자리를 바꾸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이 사람의 사람에 들어오셔서 그를 고칠 수 있었던 것도 예수님이 그를 위해 죽으셨고, 죗값을 치르시고 본질상 이 모든 것을 담당하셨기 때문이다. 그 분이 발가벗겨 짐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옷을 걸칠 수 있다. 그 분이 가장 깊은 좌절과 고뇌에 던져짐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알고 내적인 고요함을 누릴 수가 있다.
그리스도를 설교한다는 것은 복음을 설교하는 것을 의미한다. 복음을 설교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그 분의 구원사역과 은혜를 설교하는 것을 의미하며, 성경 어느 대목에서도 우리는 이 과업에 실패할 수가 있다.
균형
본문을 설교하지 않은채 급하게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고 반대로 그리스도를 설교하지 않은 채 본문만 설교하지도 말아야 한다.
성경의 모든 주제로 그리스도를 설교하기
1. 왕국: 우리를 속박과 노예됨에서 해방시틸 강력한 왕은 누구일까?
2. 언약: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 지음받았다.
언약의 완전하고 온전한 성취는 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다.
3. 집과 추방: 세상은 우리의 집(샬롬과 충족의 장소인 에덴)이다.
이집에서 쫓겨난 우리를 데려가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돕분: 새 하늘과 새 땅(계 21-22장)
4. 임재와 예배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진 죄인이 어떻게 생명을 주시는 그 분의 임재앞에 서소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까? 하나님의 불타는 검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내리쳐졌고, 그때 비로소 생명의 길이 활짝 열렸다(히 10:19-20)
5. 쉼과 안식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쉼과 하나님의 무조건 용납
6. 공의의 심판
손에 칼이 아니라 손바닥에 못을 품고 오신 분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을 당한 심판자이시다. 그래서 그 분을 믿는 자가 담대하게 미래의 심판의 날을 맞이 할 수 있다. 그 날 우리는 용서받은 자로써 우리 자신을 끝장내는 일없이 모든 악을 끝장 내실 수 있을 것이다.
7. 의로움과 벌거벗음
우리는 원래 의를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몸을 가려 다른 이들의 눈 앞에 스스로를 감춰야만 했다(창 2:24-3:24)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수치와 죄책을 덮으면 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벌거벗겨 지셨기에 우리는 의의 겉옷을 입을 수 있다(사 61:10)
성경의 모든 주요 인물로 그리스도를 설교하기
구리뱀, 생수, 제단, 정결예식, 제사, 성전, 안식일, 희년, 율법
떡, 빛, 할례의 완성, 유월절, 어린 양
노동, 생명나무: 성경은 생명나무로 시작하여 생명나무로 끝난다.
모든 구원이야기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기
에스더나 룻
다윗(예수님)과 골리앗(죄악과 죽음, 고통, 좌절, 실패, 비난)
우리의 진짜 다윗이신 예수 그리스도
본능을 통해 그리스도를 설교하기
(아마도 가장) 탁월한 성경(그리고 성경 모든 부분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설교자의 탁월성은 본능에서 나온다.
모든 이야기의 모든 맥락이, 모든 주제의 모든 절경이 그리스도께로 수렴된다는 걸 안다면, 당신은 모든 성경 본문이 궁극적으로 예수님에 관한 것임을 보지 않을 수 없다.
PART 2.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설교
설교자는 청중의 삶을 향한 책임이 있다.
Chapter 4. 몸담고 있는 문화를 향해 그리스도를 설교하라
주위 문화와 공명하면서 저항하라
많은 이가 말하기를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의 전달방식의 변화라고 지적한다. 기독교 설교자나 교사들은 문화에 맞춰야 변화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것에 도전해야 하는가?
상황화는 불가피하지만 동시에 위험성이 존재한다. 과도한 상황화를 통해 복음의 실제 내용을 타협한다면 군중은 모을 수 있을지 모르나 아무도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설교자의 직무를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
우리의 문제는, 굴수록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특히 기독교 신앙에 대해 적대적이고 세속화된 시대에 어떻게 신앙을 전달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문화를 향해 설교하기, 그리고 문화에 다가가기에 관한 여섯가지 건강한 실천원리
1. 이해하기 쉽거나 익히 알려진 어휘를 사용하라
2. 권위있는 사람들의 말을 인용해 논지에 힘을 실으라
3. 의구심과 반대의견을 잘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라
반대의견을 다루는 기본적인 방법은 청중의 믿음을 어떤 부분에서는 진진하게 동의해 주는 것이다.
4. 기본적인 문화 내러티브(모두가 아는 것들)에 도전하기 위해 먼저 긍정하라
5. 복음을 제시할 때 문화의 압점들을 누르라
우리 설교에서 이 과정을 완성하려면 그 특정 내러티브의 바로 그 지점에서 어떻게 기독교가 훨씬 더 강력한 자산을 제공하는 지를 보여줘야 한다. 어떤 문화적 이야기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행복한 결말이 된다.
6. 복음이라는 동기로 초대하라
복음은 우리가 구원받는 방편일 뿐 아니라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요 그리스도인 삶의 모든 단계의 진보를 이루는 방편이다.
우리가 복음으로 그리스도인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세속적인 사람들은 매번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복음을 듣게 될 것이다. 또한 이로써 복음에 대한 보다 싶은 이해가 생길 뿐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실제로 어떻게 기능하고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지를 볼 것이다. 이걸 보는게 핵심이다. 이로써 그들은 피상적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복음화된다. 동시에 이미 믿는 그리스도인도 굳건하게 세워진다.
Chapter 5. 시대정신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예수님때부터 현대의 저변을 흐르는 문화 내러티브 검증하기
어떤 순간에도 결코 낡지 않는 유일한 설교는, 영원에 대한 설교다. 오직 성경에서만 우리 앞에 문을 여는 영원 말이다. 거룩한 사랑의 영원함, 은혜와 구원의 영원함, 지울 수 없는 우리 죄를 위한 영원한 구원의 은혜, 그리고 변치 않는 구원의 도덕.......
(설교자여) 사람의 문제를 거침없이 들추어내라. 그리고 그리스도가 남기신 궁극의 답으로 대답을 하라. 그분이야말로 사람들이 간절히 찾고 있는 해답이다. -P.T. 포사이스-
포사이스는 현대성의 근본은 자아 바깥에 잇는 모든 권위에 대한 전복이라고 말하고 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특징은 합리적이고 통제가능한 질서의 성취나 어떤 확실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상실한 것이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진리는 개인의 의지에 따라 구축될 수 있다”고 믿는다.
세속적인 사람들에게 설교하기 위해서, 우리는 세속주의의 자기 이해에 저항해야 한다. 세속주의는 단지 신앙의 부재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중에는 섣불리 이런 생각을 수용하고 자신이 가진 증거와 합리적인 진실성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에게 다가가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무턱대고 그렇게 덤비지 말라고 조언한다.
우리가 노예 신분에서 풀려나게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우리 이름을 부르셔서 우리가 그분을 섬길 때다. 그분은 우리의 성취가 아니라 예수님의 성취에 기초해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신다. 그 분이 우리의 이름을 부를 때, 그렇게 우리가 그 분의 것이 될 때, 마침내 우리는 그분의 자녀라는 정체성 안에서 안식을 누릴 수가 있다.
상대방을 섬기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희생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사랑의 관계도 자라날 수 없다. 이 제한들이 상호적으로 받아들여질 때, 다름 아닌 그 제안이 우리를 사랑이 빚어내는 마음과 정신의 다양한 해방으로 인도할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참된 사랑을 받고 전할 때, 가장 자기답게 느낀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자기 결정의 자유를 어느 정도 포기하는게 요구된다.
기독교 설교자가 창중에게 보여 줘야할 또 하나의 중요한 사항이 있는데 아가페의 경험, 즉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조건없는 사랑의 경험이 필연적으로 우리를 의롭고 자비로운 삶으로 인도한다는 사실이다.
Chapter 6. 마음에 닿게 그리스도를 설교하라
설교의 상황화가 이뤄지면 청중이 변한다.
마음이 무엇을 사랑하는 지가 가장 중요하다.
성경에서 마음은 정신과 의지와 감정, 이 모든 것이 거하는 좌소다. 마음은 인격 중심의 중심으로서, 거기서 의지와 생각이 나온다. 그러므로 마음이 무언가를 가장 사랑한다는 건, 그것을 가장 신뢰하고 그것을 향해 헌신한다는 의미이다. 마태복음 6장 21절은 이 대목의 열쇠가된다.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그러므로 마음은 관심과 헌신의 중심이다.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움직여서 하나님보다 다른 무언가를 더 신뢰하거나 사랑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따라서 설교의 목적은 단지 진리를 선명하게 전해서 정신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그칠 수 없다. 더 나아가 마음을 사로잡아 실재가 되도록 해야 한다. 변화는 단지 정신에 새로운 주장을 던짐으로써 일어나는 게 아니라 듣는 이의 상상력에 새 아름다움을 공급함으로써 일어난다.
‘안다고 하는 것’과 ‘진짜 아는 것’ 사이의 괴리
조나단 에드워즈는 지성과 정감(어떤 대상의 아름다움과 탁월함을 감지했을 때 전인으로부터 나오는 성향(우리가 인지한 것을 좋아한다거나, 싫어한다거나, 사랑하거나, 거절하는 것))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입장에 거부감을 표한다. 다른 말로 어떤 사람이 “나는 하나님이 나를 돌보신다는 것 알아요.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두려움으로 떨고 있어요”하고 말한다면 에드워즈는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그건 당신이 아직도 하나님이 당신을 돌보신다는 것 진정한 의미에서는 ‘알지’ 못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정말로 안다면 확신과 희망의 정감이 당신 안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마음의 정감의 뿌리에는 ”탁월성“이 있다. 그 자체로 가치를 인정받고 신뢰를 확보하는 탁월성 말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물질적으로 인색하다면 그건 그들이 아직도 예수님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부유한 분으로서, 그들을 위해 가난하게 되셨다는 것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모든 부요함과 보배를 얻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를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하나의 교리로서는 이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그들 마음의 정감은 여전히 물질적인 것에 얽매인 나머지 예수님보다 그런 것들이 더 탁월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영적인 부요함에 대한 피상적인 지식은 품고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는 그 진리를 품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설교에서 우리는 그들 앞에 그리스도를 다시 드러냄으로써 그들의 정감 안에 그리스도가 물질적인 것을 대체하도록 해야 한다.
말씀이 제대로 들려지면 청중은 그 자리에서 변한다.
진리가 청중의 마음에 실재가 되게 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설교해야 할까?
첫째, 그것의 진실성을 믿는 것
둘째, 그것에 대한 감각적인 생각이나 견해를 가지는 것
구체적인 설명
첫째 그것의 진실성을 믿는 것에는 확신에 찬 설득력을 요구한다. 로이드죤스가 말하는 불타는 논리가 되어야 한다.
둘째 그것에 대한 감각적인 생각이나 견해를 가지는 것은 청중의 추상적인 개념이 실재적인 감각 경험과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지성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상상을 사로잡아야 한다. 다시 말해 청중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겨야한다.
마음에 닿게 설교하기 위한 훈련
마음에 닿게 설교하기 위해서는 일단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문화적인 배경까지 나아가야 한다. 다시말해 설교의 상황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좋은 상황화 설교란 한편으로는 문화 내러티브와 규범들을 긍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들을 도전하는 설교다.
마음에 닿게 설교하기 위해서는 보다 인격적이고 목회적인 측면을 포괄하는데 정감있게 설교하기, 상상되게 설교하기, 놀라게 설교하기, 기억하기 쉽게 설교하기,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설교하기, 적용가능하게 설교하기 등을 포함한다.
정감있는 설교가 아닌 세 가지
첫째, 영혼없는 설교
둘째, 단순 흥분성 설교: 스스로 흥분, 혹은 잘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설교 하는 것
셋째, 의식적인 연기 설교: 장엄하면서도 신령한 어투와 어조를 사용-의도적으로 즐겁게, 겸손하게 보이려고 들거나, 인위적으로 사랑에 충만한 듯이 보이려고 애쓴다.
어떻게 하면 정감있는 설교가 나올까?
첫째, 설교내용을 잘 숙지하는 것이다. 다음에 이어질 대지를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설교내용을 완전히 소화하는 것이다.
둘째, 깊고도 풍성한 개인 기도생활이다. 우리 마음이 정기적으로 찬양과 회개에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홀로 하나님의 은혜의 경이 앞에 서는 거룩한 고독의 시간이 없다면 공적인 자리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우리가 설교할 때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가 기도할 때 일어나는 일들과 거의 같다.
상상이 되게 하라
마음을 사로잡는 건 곧 상상력을 사로잡는 것이며, 상상력은 명제보다 이미지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설교는 사람들을 깨워서 그들이 정신적으로는 동의를 표했지만 마음으로는 아직 붙잡지 않은 실재를 향해 사람들을 이끌어 가는 장이다. 그렇게 하는 방법은 영적인 진리를 청중이 겪은 생상한 감각 경험의 기억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영적인 것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처럼 가능한 한 구체적인 언어(그림언어와 확장된 은유)로 재현함으로써”말이다.
놀라게 하라
마음에 닿게 설교하고자 한다면 설교에서 놀라움을 불러 일으킬 필요도 있다.
인물의 예
시간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난 인물
죽음에서 벗어난 인물
인간이 아닌 존재와 연결된 인물
완전한 사랑을 발견하고는 결코 고기서 떠나지 않는 인물
결국에는 악을 무찌르고 승리하는 인물
설교할 때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을 개방하여 그 놀라움이 충분히 우리 안에 스며들도록 해야한다.
기억하기 쉽게하라
기억하기 쉬운 설교를 만드는 한 가지 요소는 통찰이다. 기억하기 쉬운 연설이 되려면 청중이 이미 아는 것을 그들이 아는 용어로 들려주기보다 신선한 통찰이 묻어나는 방식으로 개념을 전당해야 한다. 그 개념에 대해 창중이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움과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전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청중에게서 ‘난 저걸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어’하는 반응이 나오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그 대답은 결국 독서량이다.
통찰 가득한 설교는 깊은 연구, 독서와 탐구의 깊이에서 나온다.
기억하기 쉬운 설교를 만드는 두 번째 요소는 구술성이다. 많은 설교자가 글을 쓰듯이 말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입말로 하는 소통은 문자로 하는 소통과는 다르다. 말 전달에는 너무 많은 생각이 담겨선 안된다.
말을 전달하는 사람들은 보다 쉬운 어휘를 사용해야 한다.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하라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은 한 성경 본문을 충분히 이해하는 궁극적인 길뿐 아니라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에게 동시에 다가가는 최고의 길이고, 우리가 설교가 메마른 강의를 넘어 마음을 어루만지는 실재라는 진리의 선포로 나아가는 길이다.
설교가 예수님께 이르지 않는 한 그건 설교라기보다 단지 좋은 강의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 언약, 죄의 구속과 같은 성경적 주제들이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에 이른다는 것을 우리가 보여주기 전까지는 그런 주제들은 근본적으로 하나의 추상적 명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설교의 마지막을 ‘이렇게 살라’라는 문장으로 끝내지 마라. 대신 “우리는 이렇게 살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신 분이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을 믿음으로 우리도 이런 삶을 시적할 수 있습니다‘로 마무리 하라.
적용가능하게 하라
마음 닿게 설교한다는 것은 적용가능하게 설교하는 것이다.
설교자의 두 책임
첫째, 성경 본문의 진리를 향한 책임
둘째, 청중의 삶을 향한 책임
적용해서 실천적인 변화를 이루도록 돕는 방법
대화상대를 다양화하라: 의도적으로 우리의 관계망을 다양화하는 것이다.
설교를 준비할 때 떠올리는 사람을 다양화하라: 영적인 상황이 다양한 사람들(비신자, 새신자, 연약한 기신자, 굳건한 기신자), 괴롭히는 죄가 다양한 사람들(교만, 정욕, 염려, 탐욕, 편견, 강한 자의식, 분노, 우울, 두려움, 죄책감), 처한 환경이 다양한 사람들(외로움, 핍박, 권태, 고뇌, 질병, 실패, 우유부단, 혼란, 물리적 장애, 노화, 환멸, 따분함)을 떠올리라
“이 본문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에게 어떻게 적용될까?”를 질문하라
설교전체에 적용을 직조하라
설교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더 직접적이로 구체적인 적용으로 나아가야 한다. 설교가 막바지에 이르면 적용들을 모아서 다시 정리해 주는 동시에 한층 더 구체적으로 마음에 새겨주는 게 좋다. 할 수 있는대로 최대한 생생하고 구체적인 메시지를 선포하라
다양성을 활용하라
‘직접질문’을 사용하라: 마음의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들
자기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라
다양한 형태의 적용을 균형있게 활용하라
1)경고와 훈계
2)격려와 새 힘 주기
3)위로와 다독거리기
4)설득과 애원
5)부추기기
감정적으로 깨어 있으라
1)말랑말랑한 순간을 그냥 지나치지 말라
2)강력하면서도 정감있게 하라
PART 3. 성령을 덧입은 설교
설교자는 삶과 인격에 성령이 오셔야 한다.
Chapter 7. 설교가 들이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설교보다 설교자로서의 삶을 더욱 힘써 준비하라
우리 설교안에 성령의 역사를 어떻게 초청할 수 있을까?
조지 휫필드가 처음 그의 설교를 출판하자는 제의를 받았을 때 그는 일단 동의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고 한다. “천둥과 번개를 지면에 담아낼 수는 없을텐데요”
휫필드는 종종 그리 썩 좋지 못한 설교문을 가지고도 위대한 설교를 했다. 이 사람은 휫필드의 연설 능력을 말한 것이 아니라 성령이 어떻게 그의 설교에 임재했는 지를 말하고 있다.
흿필드와 바울 두 사람이 설교에서 성령이 그들을 통해 일하시도록 초대한 비결은?
첫째, 그들의 행위: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해 말한게 아니라 그분을 높였고 그 분의 영광을 드러냈고, 그렇게 하는 중에 그분을 향한 그들 자신의 경이와 기쁨을 발산했다.
둘째, 그들의 인격이었다: 그들의 영적인 은혜와 성품으로써 이는 성령의 열매를 말한다. “성령의 나타나심”을 위해서 재능과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바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같은 우리의 영적 열매다.
설교자에게 나타나는 은사와 재능은 설교자가 영적으로 미성숙할때도 심지어 그의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을 때도 발휘가 가능하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고린도 전서 13장 설교에서 이렇게 말한다.
“악한 자들 중에서도 이(설교와 사역을 위한) 은사를 가진 이들이 많습니다. 많은 이가 마지막 날에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마 7:22). 이렇게 ....... 성령의 은사는 있지만 성령의 특별한 구원의 (역사)는 없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탁월성은 있지만 ......진실한 은혜와 거룩함 같은 사람의 마름, 성품과는 동떨어져 있습니다. ...... 특출한 성령의 은사는 말 그대로 그 사람이 달고 다니는 소중한 보석이나, 마음의 진실한 은혜는 말 그대로 보배로운 마음으로써........그 영혼 자체를 소중한 보석으로 빚어갑니다. 하나님의 영은 그분이 직접 참여라지 않은 상황에서도 효력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했지만, 그 물에 하나님 자신이 참여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이 보편적인 영행으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실 때, 그분은 바로 그 영혼에 직접 참여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은혜는 말 그대로 그 영혼에 참여하신 하나님의 영의 거룩한 성품입니다”.
반대로 대중 연설의 은사가 부족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경건하다면 그의 지혜와 사랑과 용기가 그를 매력적인 설교자로 만들어 줄 것이다.
성령을 통해 따스함과 힘이 하나가 된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면서 하나님의 사자인 예수 그리스도.
겸손하지만 권능의 사람, 의롭지만 은혜의 사람, 권위 있으면서 동시에 긍휼이 넘치는 사람: 이것이 모든 위대한 설교자의 능력의 비밀이다. 사람들은 그들 안에서 사랑, 겸손, 온유함이 능력, 권세, 용기가 절묘하게 조화되는 놀라운 연합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려 들지 않고 연약함도 있엇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려 들지 않고 기꺼이 이야기하고, 그들이 섬기는 사람들을 향한 관심과 사랑과 염려까지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일단 설교단에 올라서면 그들은 치솟아 오르는 권위를 품고 천둥소리를 발했다.
자신의 숨은 마음을 살펴보라
요컨대 설교단이 우리를 말씀으로 인도하려는 유혹이 있지만 정작 우리가 해야할 일은 말씀이 우리를 설교단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설교를 준비하기보다 설교자로서의 삶을 더욱 준비하라.
마음으로부터 설교한다는 것
마음으로부터 설교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한 몇 가지 단상들을 정리하겠다.
힘을 다해 설교하라: 침착함과 자신감(메시지에 대한 확신)으로
경이를 품고 설교하라: 그 분의 위대함 앞에 놀라움과 경이로
정감을 담아 설교하라: 투명성(진리인 복음으로 치유받은 상한 심령으로부터 나온다)
진정성 있게 설교하라
그리스도를 흠모함으로 설교하라: 예수 그리스도를 생생하게 보여주라
생명을 전하는 소리로 살자
침례 요한이 가졌던 마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라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내가 섬기는 그 분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시다”
침례 요한의 자신감은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았기 때문이다.
팀 켈러의 설교작성법
1. 도입
문제가 무엇인가?
우리 시대의 문화적 맥락;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2. 초기 대지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원독자의 문화적 맥락: 이것이 우리가 행해야 하는 것이다.
3. 중간 대지
우리가 막아서는 것은 무엇인가?
현대 청중의 내면의 맥락: 왜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는가?
4. 말미 대지
예수님은 어떻게 성경 주제를 완성하고 이 핵심 문제를 해결하시는가?
예수님은 어떻게 그것을 행하셨는가?
5. 적용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강해설교 예시(창 22장의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우리는 아브라함이 그랬듯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께 우선 순위를 드려야 한다.
2. 그러나 우리는 행할 수 없다.
우리는 할 수 없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
3. 그러나 행하신 분이 한 분 계신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우선 순위를 드리셨다.
4. 이제야 비로소 우리는 변화할 수 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아브라함처럼 순종하셨음을 볼 때 오직 그때 비로소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살기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