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차 없는 현실에 뒤채다 포말처럼 부서지기 직전이면 나는 무작정 배낭을 꾸려 공항으로 향한다. 제주에 내려서는 망설임 없이 버스와 배를 갈아타고 작은 부속 섬으로 가는 것이다. 제주에 달린 섬은 여러 개이지만 그 섬은 전부터 내게 특별했다. ‘섬’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아이 때문이다.
내가 그곳에 발을 들이기 시작한 때는 스물 서넛쯤 먹었을 무렵 겨울이었다. 처음 그곳에 갔던 이유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니다, 거짓말이다, 그 아이의 선명한 눈만큼이나 분명하게 기억한다. 취직자리가 결정된 상태에서 임신한 것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 모른 척 출근을 해도 되는지 등등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포구는 아주 작았다. 섬은 나에게 매우 낯선 공간이지만, 멀리서 보이는 포구의 검은색이 썩 마음에 들었다. 배에 앉아 있다가 승객들이 빠져나가고 맨 마지막으로 일어섰는데 눈동자가 새까만 소년이 동상처럼 서서 배 쪽을 주시하고 있는 게 보였다. 나로 하여금, 아이의 동공으로 모든 사물이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아이 눈빛은 강렬했다. 검은 물이끼로 뒤덮인 포구와 부지런히 어딘가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뒷모습, 그리고 아이의 작은 체구가 한 장의 흑백사진으로 뇌리에 박혔다.
사람들의 얼굴을 꼼꼼하게 짚어 나가던 아이의 시선이 내 얼굴에 머물렀다. 나는 왠지 뜨끔했다. 아이의 얼굴에 잠깐 실망의 표정이 어른거리더니 이내 사라졌다. 아이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두리번거리며 더는 내리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아이가 내게로 왔다. 포구에서 어정거리던 나는 민박집 있는 곳을 가르쳐 달라고 말했다.
“아주방 구판장 가실 거우다.”
제주 사투리를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다시 물었다.
“민박집 말야. 민박집 뭔지 모르니? 표준말 할 줄 알면 표준말로 말해 줄래?”
“임치비 댁에 가민 공짤 거우다. 거기로 갈까마심?”
나는 민박집만 자꾸 되풀이 말했고 아이는 답답하다는 듯 내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아이가 데려간 집 벽에 붉은 페인트로 ‘민박’이라고 큼직하게 쓰여 있었지만 안에 대고 아무리 사람을 불러도 대꾸가 없었다. 처음에 아이가 말했던 것은 주인이 구판장에 일하러 갔으니 가 봐야 허탕이라는 뜻이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이를 졸라 구판장에 갔더니, 민박집 주인은 쭈그려 앉아 성게를 손질하다 말고 나를 올려다보며 비수기라 장사를 안 한다고 말했다. 외지인을 많이 상대해서인지 민박집 주인의 이야기는 알아들을 만했다. 아이는 옆에서 그것 보라는 듯이 기세등등한 자세로 서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집에 안 가도 되면 바닷가까지 데려다 주지 않겠냐고 물었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 등에서 학교 가방이 달랑거렸다. 나는 아이의 가방 손잡이를 붙들었다 놨다 하면서 졸졸 따라갔다. 동네 어귀에서 키가 크고 오종종하게 생긴 남자애가 아이에게 말을 걸어왔다.
“섬아, 나영 따조치기 허잰? 나 왕거니 한 장 있쪄. 경헌디(그런데) 그 사람 누구꽝?”
“친구가 같이 놀자고 하는 것 같은데?”
아이는 들은 체도 않고 묵묵히 땅만 보고 걷다가 느닷없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 이름은예, 김. 섬. 난 쟤랑 안 놀아마심. 누나영 노는 게 더 재미있수다. 근데 나도 장난감 하나 이시문 좋키여.”
섬이는 스스럼없이 나를 누나라고 부르고 있었고, 시간이 갈수록 아이의 사투리도 점점 귀에 익숙해졌다. 들판에서 바람이 거세게 소용돌이치면서 검불을 날렸다. 바람은 잘 벼린 칼날처럼 갈비뼈를 숭숭 저미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검은 돌투성이 황량하기 그지없는 해변에 도착했다. 바다에는 하얀 구덕이 군데군데 떠다녔다. 거꾸로 자맥질하는 해녀의 검은 갈퀴도 보였다. 섬이는 해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구덕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할망 할마앙…….”
물속에 있는 할머니가 섬이의 부름을 들었으면 싶어 함께 외쳤다.
“할망 할마앙…….”
할머니는 좀체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누나, 우리 동네서예. 우리 집이 이 등으로 불쌍한 집이우다.”
나 배고파, 나 오줌 마려워, 하듯이 섬이가 아무렇지 않은 어투로 말했다.
“그래? 그럼 일 등으로 불쌍한 집은 누구네 집인데?”
“저기 언덕 너머예. 할망 혼자 사는 집이 이신디예, 동네 사람들이 그 집이 제일 불쌍한 집이옌 햄수다. 그래도 우리 집은 둘이 살아마심. 그리고 할망이 아직 물질 햄수게…….”
나는 섬이에게 엄마 아빤 어디 갔는지 물었다.
“돈 벌젠 외국에 가수다. 할망은 늙엉예, 물질을 보든(얕은) 데서밖에 못해마심. 겅허난 장난감도 못 사 줘수게.”
섬이는 배가 들 때마다, 엄마, 아빠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따개비를 따고 섬이의 비밀 장소에서 사금파리 따위를 가지고 노는 게 뜻밖에 재미있었다. 해가 기울어 사위가 어둑어둑해졌다. 숙소를 구하지 않고 온종일 아이와 놀아서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섬이는 한사코 자기네 집에서 자야 한다고 억지를 부렸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녀석의 고집이 대단했다.
섬이네 마당 빨랫줄에 널린 검은 잠수복에서 마당으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정신없이 노는 동안 할머니가 돌아오신 모양이었다. 따개비로 불룩해진 내 스웨터 주머니에서도 물이 뚝뚝 흘렀다.
할머니는 마당 한가운데 엉거주춤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섬이에게 눈짓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물었다.
“이 누나, 오늘 잘 디 없댄행쪄. 우리 집에서 하루만 재워 주면 안 되마심?”
할머니의 표정에 탐탁찮아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 예상했기에 그저 애를 데려다 주러 왔노라 둘러댔다.
“방이 막 차우다. 애 아범 객지 나가 그네예, 불을 넣지 못해수다. 경해도 되마심?”
방이 냉골이어서 미안하지만, 그래도 괜찮겠느냔 뜻이었다. 민박값은 쳐드리겠다고 말했다.
“돈 냉 자젠허면, 민박집에 갑서! 내 집에 온 손님한테 돈 받고 먹이고 재울 순 어수다.”
돈을 받고 손님을 재울 수 없다는 뜻이었다.
저녁을 먹고 할머니는 한 주먹이나 되는 약을 드셨다. 그러고는 여러 장의 고지서와 편지 한 장을 내 앞에 내놓았다. 할머니는 문맹이었고 섬이도 아직은 한글을 깨치지 못한 1학년이었다. 반찬 국물이며 손때가 꼬질꼬질하게 묻어 있는 편지는 섬이 부모님에게서 온 것이었고 날짜는 이미 이 년이 넘어 있었다. 분명 누군가가 읽어 주었을 그 편지를 할머니는 내게 다시 꺼내 놓은 것이었다. 내용은 별다른 것이 없는 안부 편지였으나 할머니는 내가 편지를 읽는 동안 눈물을 줄줄 흘렸다. 섬이는 짐짓 관심 없는 척 외로 꼬고 앉아 밥상 치운 자리에서 색칠 공부에 열중해 있었다. 섬이 부모님은 편지를 보낼 형편이 안 되는 것일 뿐이라고, 목표한 돈이 모이면 갑작스럽게 돌아올 거라고, 나는 할머니를 안심시키려 애썼다. 내 입에서 왜 그런 소리가 줄줄 나왔는지 나도 잘 알 수 없었다. 할머니는 연신, 경허겠지?(그렇겠지?) 하면서 거듭 확인하려고 했다.
할머니는 건넌방이 냉골이니 불편하지 않으면 한방에서 같이 자자고 말했다. 할머니는 눕자마자 잠시 끙끙 앓더니 바로 휘파람 같은 소리를 내면서 잠이 들었다. 해녀들이 내는 고음의 숨빗소리인가 보았다. 밖에서 예사롭지 않은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괘종시계의 뚝딱거리는 소리까지도 귀에 거슬려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낮에 봐 두었던 등대까지 산책을 가기로 마음먹고 살며시 이불을 들추고 일어나 앉았다.
“누나, 똥 마려우꽝?”
섬이도 잠이 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갔다가 금방 올 거야. 자고 있어.”
섬이가 응석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나, 가지 맙서. 거기 등댄예, 밤에 가민 안 되마심. 할망당에서 귀신 나왕 바당에 빠뜨린댄 헙디다. 작년에도예. 암밭네 아주망이 거기서 죽어수게.”
섬이가 말리는데도 굳이 운동화를 꿰어 신고 나왔다. 섬이도 히잉거리며 따라 나와, 내 웃옷자락을 붙들면서 자꾸 엉덩이를 뒤로 뺐다. 떼어 놓기는 어렵겠다 싶어서 섬이를 업고 걸었다. 섬이는 정말로 무서운지 내 등에 얼굴을 깊이 묻었다. 등대까지의 길은 어두컴컴했고, 파도는 심상치 않았으며 섬이가 가리키는 할망당이라는 곳은 정말 음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내쳐 등대까지 갔다.
막상 가 보니 파도가 너무 세서 바다에서 튄 물방울이 얼굴을 따끔하게 때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와, 나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섬이만 있을 뿐,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무서워하는 아이를 데리고 이곳까지 온 것이 비로소 후회가 되었다.
섬이를 업은 채 천천히 집으로 걸음을 돌렸다. 아이는 졸린 듯 연신 하품을 하면서 내 등에 얼굴을 비볐다.
“엄마 엄마아…….”
나는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섬이는 잠결에 계속해서 등을 파고들며 내게 엄마라고 말했다. 파도 소리는 검은 하늘에서 나는 것인지 저 아래 바다에서 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가슴속에서 울리는 것인지 방향을 가늠할 수 없었다. 밤하늘처럼 먹먹해져 버린 나는 그만 그 자리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짐짓 뜨거운 것이 목구멍을 울컥 메웠다. 나도 모르게 씀벅거리는 눈가를 옷소매로 쓱 훔쳤다. 깍지 낀 손에 다시 한번 힘을 주어 섬이를 추켜 업었다.
밤새 할머니는 관절이 쑤신 듯 뒤척이며 신음했다. 할머니는 물질하고 있는 꿈을 꾸고 있을까? 할머니의 꿈속에서는 가까운 바다에 전복이 수없이 널려 있기를 바랐다. 잠든 섬이를 눕히고 나도 곧 잠이 들었다. 실로 오랜만에 달게 잘 수 있었다.
섬이는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서면서 두 번씩이나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누나, 할망헌티 돈 주멘 안 되우다. 진짜 돈 냉 안 되마심.”
나는 알았다는 뜻으로 손을 몇 번 흔들어 준 다음, 아이의 등에 붙어 달랑거리는 책가방이 안 보일 때까지 한참동안 돌담 앞에 서 있었다. 새벽부터 꿉꿉하던 날씨는 아침이 되자 금방이라도 폭풍이 칠 것처럼 모지락스럽게 변했다. 보라색이 감도는 짙은 먹장구름이 수평선까지 켜켜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조그만 포구에는 사람들 대신, 누군가 내다 붙인 종이만 아슬아슬하게 펄럭였다. 〈금일 해상에 파랑주의보 발효, 배 없슴〉
우왕좌왕하고 있는 나를 보고 어떤 사람이 급하면 고깃배라도 타라며, 본섬으로 나가는 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배는 금방이라도 선착장을 벗어날 것처럼 잔기침을 컹컹거리며 검은 연기를 쏟아 놓았다. 고맙다고 인사할 새도 없이 급한 마음에 그 사람이 알려 준 대로 황망히 뛰어가다가, 그만 물기에 젖은 콘크리트 부두 위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 손가락으로부터 손목까지 시큰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대로 일어나 갑판 위로 뛰어올랐다.
“타도 돼요?”
선장으로 보이는 중늙은이 남자가, 배에는 벌써 탔지 않았느냐면서 사람 좋게 웃었다.
바다는, 바람과 더불어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갑자기 알이 굵은 눈송이가 뭉텅뭉텅 쏟아지기 시작했다. 눈 녹은 물은 눈물인가 누운물인가…… 내가 중얼거리는 동안에도 볼에 선뜩하게 부딪친 눈송이들은 이내 녹아 버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