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사 창건주 법전 대종사의 수행력과 복력
(2010년 6월 포천 법왕사 주지 재직시 하신 법문)
원덕스님 / 함양 문수사 http://cafe.daum.net/munsusaham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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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훌륭한 일도 많고 존경받을 일도 많지만 여러 사람이 부처님 법을 배우고 함께 수행할 수 있는 가람을 세워서 부처님
법과 인연을 맺게 해 준 공덕보다 더 큰 공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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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 명의 굶주린 사람에게 밥을 주는 공덕보다도 한 사람이라도 부처님 정법을 만나 수행을
하여 해탈에 이르게 한다면 그 공덕이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밥 한끼 굶는다고 죽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어두운 무명 속에서 생사고해를 헤매다가 취
생몽사 醉生夢死(술 취한 사람처럼 정신없이 태어났다가 꿈속에서 꿈을 꾸듯이 자신이 죽는 줄도
모르고 죽는 것)한다면 축생 몸을 받을지 지옥으로 직행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사람이라도 이 가람에서 눈 밝은 사람이 나온다면 그 사람이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전 대종사께서 젊었을 때 한참 용맹정진 하실 적에는 생각보다 공부의 진척이 되지 않을 때에
는 울기도 많이 우셨습니다. 공부를 마치지 못하고 이대로 죽으면 차후에 축생으로 태어날지 지옥
으로 떨어질지 다시 사람 몸을 받는다 해도 불법을 만날 수 있을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차신불향금생도 此身不向今生度 갱대하생도차신 更待何生度此身(금생에 이 몸을 제도하지 못한
다면 어느 생에 다시 이 몸을 제도 할 것인가)이러한 절박한 마음으로 오로지 참선수행 정진만 하
신 것입니다.
나 역시 참선 하는 사람이지만 참선을 제대로 하려면 생명을 걸어놓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
는 것이 참선인 것입니다.
참선을 제대로 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릅니다. 어떻게 참선을 하는데 생명을 걸지 않으면 안 되
는지 실감實感이 나지 않을 겁니다.
생사를 떼어놓고 하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것이 참선인 것입니다.
큰스님께서 묘적암에서 용맹정진 하실 적에는 방안에 시계가 걸려 있었는데 시계 촛침 소리가
째깍째깍 가는 소리가 마치 죽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는 그야말로 일초일초가 지나가는 것
이 너무나 아까운 마음이 들어 시계를 밖에 내다 놓고 정진을 하기도 했습니다.
밥해먹는 시간이 아까워서 밥을 한 번에 잔뜩 해놓고 가끔 밥을 물에 말아먹거나 굶기가 일쑤였고
세수는 물론 양치도 않고 입던 옷 그대로 몇 달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과거 경허스님 같은 분은 정진할 때 수마睡魔를 쫓기 위해서 턱밑에다 죽창竹槍을 날카롭게 깎아
서 세워놓고 정진을 했으며 사철을 누더기 하나로만 지냈으니 옷을 벗으면 이와 석회가 온몸을 덮
어서 하얗게 횟가루를 뿌려 놓은 듯 했다하니 수행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가히 짐작이 갈만합니다.
지난날 젊었을 때 법전대종사께서 묘적암에서 두문불출杜門不出 정진만을 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윤필암 비구니 스님들이 순두부를 가져왔는데 순두부를 한 그릇 먹고는 삼매에 들었는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다시 순두부를 먹으려고 뚜껑을 열어보니 곰팡이가 새까맣게 피었더랍니
다. 한순간에 며칠이 흘러 가버린 것입니다.
나 역시 태백산 도솔암에서 정진할 때 그러한 경험이 몇 번 있었습니다.
도솔암에서는 공양을 이식二食을 했는데 아침공양은 오전10시에 하고 저녁공양은 오후4시에 했는
데 어느 날인가 오후3시쯤 밖으로 나가 수각에 가서 물 한모금 마시고 방안에 들어와 잠시 정진하
다가 오후4시쯤 됐나 싶어서 저녁을 먹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니 방안이 깜깜하게 어두워진
것입니다.
밖에 나가보니 하늘에는 별이 총총히 떠있고 온천지가 칠흑같이 깜깜하여 사방을 분간할 수가 없
어서 다시 방안에 들어와 불을 밝히고 시계를 보니 새벽 한시가 넘은 것입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10시간 이상이 지나간 것입니다.
그 시간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순수절대純粹絶對한 “아뇩다라 샴막삼보리”의 순간인 것입
니다.
열길 우물 속에 촛불 하나 켜놓은 것처럼 성성적적惺惺 寂寂(어둡지 않고 밝게 깨어있으면서
고요하고 오롯한 정신)한 무아정적無我靜寂의 순간인 것입니다.
그러니 어느 천상세계의 하루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바세계의 천년세월과 같다는 말이 사실인
것입니다.
큰스님께서 해인총림 방장 그리고 한국불교계에서는 가장 어른인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으
로 추대되신 것에는 피나는 수행력修行力과 두 가지의 복력福力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생부터 다겁생으로 수행하시면서 복을 지어 놓으셨겠지만 첫째는 김천 수도암 중건불사重
建佛事를 하신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큰스님께서 처음 수도암에 가보니 6·25전란으로 법당지붕이 무너져있고 법당바닥에는 잡초가 무
성하여 쥐와 뱀들이 살고 있었으니 얼마나 수도암이 낙후됐는가를 짐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큰스님께서는 부처님을 뵈려면 신발을 신고 법당에 들어가는 것이 부처님께 너무나 죄송스러워서
불사를 시작하시게 되신 것이라고 말하십니다.
그 당시 만 해도 수도암은 물론이고 동네에도 전화가 없어서 전화 한번 쓰려면 증산면사무소까지
가야했으니 불사하는데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같은 세상이야 통신과 도로
가 발달하여 전화 한통화만 하면 절마당까지 모든 물자가 공급되지만 그 당시로서는 물건이 필요
할 때마다 전화 한 통화를 쓰기 위해서 왕복 5십리 길을 하루에도 두세 번씩을 갔다 올 때도 허다
했습니다. 그렇게 하시면서도 지게질을 쉬지 않고 하니 결국에는 다리에 이상이 와서 한때는 걸음
도 제대로 걷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요즘도 노장님께서는 어깨가 쑤시고 욱신댄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고생하면서 큰 법당을 중수重
修하고 한국에서는 참선 선방으로는 세손가락 안으로 꼽을만한 기운이 넘치는 김천 수도암
선원을 개설하여 많은 눈 푸른 납자들을 배출하였기 때문에 지금의 법전대종사가 계시지
않나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는 태백산 사자암과 홍제사에서 사실 때인데 특히 홍제사는 너무나 가난한 절이라서 비
어 있을 때가 많았는데 그런 절에 들어가서 당귀 등 약초를 재배하여 춘양장에 갖다 팔아서 절
살림을 하면서 다른 절까지 도와주고 객스님이 오면 그 돈으로 꼬박 꼬박 객비를 줬다하니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입니다.
이 두가지 복력福力과 생사를 떼어놓고 정진한 수행력修行力 이 지금의 법전 대종사를 존
재하게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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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늘 그립고 감사한
법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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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살 길 없으면
밖으로 나가 빌어먹고 살지언정
저 천추만고의
거룩한 부처님을 팔아서야 되겠냐?"
그 가르침을 늘 일깨우며
삽니다.
태백산 산기슭에서
당귀농사를 지으셔서 산림을 꾸리셨다는 말씀이 늘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법전스님의 손을 보면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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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입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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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씀 매일 듣고 살고 있다면 좋으련만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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