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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께서 수행자의 수행이 무르익었다고 판단될 때, 동문서답[東問西答] 형식으로 선문
답을 던지거나, 할[喝]이나 방[棒]을 사용하여, 수행자로 하여금 전도[顚倒]되고 경직된
의식[意識]을 한순간에 타파[打破]하기 위해서 강력한 의문을 가지도록 유도함으로써, 깨
달음을 얻도록 지도합니다.
이것을 격식[格式]과 정해진 틀을 초월[超越]했다 하여 격외선[格外禪]이라고 합니다.
☞ 중국 당나라 시대 임제(?-867) 스님은 학인들을 맞이하여 그들의 공부를 점검할 때 큰 소리를
내지르는 ‘할(喝)’을 많이 쓰고,덕산(780-865) 스님은 주장자로 후려치는 ‘방(棒)’을 많이 사
용 하였다.
그러나 작금[昨今]의 수행정도(수행력과 근기)와 수행풍토를 볼때는 할[喝]이나 방[棒]
보다는 화두[話頭]를 점검하는 방법도 적절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정법[正法]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다 보면 반드시 경계[境界]가 바뀌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도[道]란 닦을것도 얻을것도 없고 경계는 물론 없고 길이 어디있느냐고 말
하지만 그것은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즉 무상정득각[無上正得覺]의
경지[境地]를 말하는것이지, 道에는 반드시 길(로정路程)이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조사선[祖師禪]과 간화선[看話禪]으로 구분됩니다.
부처님께서 선지식은 수행의 전부라고 말씀하셨으며, 자신이 현재 선지식을 만나지 못했더
라도 항상 선지식을 만나게 해주십사고 간절히 발원[發願]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때
가 되어 인연이 닿으면, 선지식을 만나게 된다고 합니다.
원덕스님께서 수행자들에게 지도하시고자 하는 정법참선[正法 參禪]의 큰 줄기는,줄탁동
기[啐啄同機]의 개념입니다.
☞ 줄탁동기[啐啄同機]
알 속에서 자란 병아리는 부리로 껍질 안쪽을 쪼아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오려고 하는데, '줄'은 바
로 병아리가 알껍질을 깨기 위하여 쪼는 것을 가리킨다. 어미닭은 품고 있는 알 속의 병아리가 부
리로 쪼는 것을 알고 밖에서 알을 쪼아 새끼가 알을 깨는 행위를 도와주는데, '탁'은 어미닭이 알을
쪼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알껍질을 쪼아 깨려는 병아리는 깨달음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수행자요,어미닭은 수
행자에게 깨우침의 방법을 일러주는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병아리와 어미닭이 동시에 알을 쪼기는 하지만, 어미닭이 병아리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
는 것은 아니다.
어미닭은 다만 알을 깨고 나오는 데 작은 도움만 줄 뿐, 결국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병아리 자신이
다.
이는 스승은 깨우침의 계기만 제시할 뿐이고, 나머지는 제자가 스스로 노력하여 깨달음에
이르러야 함을 의미한다.
또 깨달음에도 때가 있어 깨달아야 할 때 깨닫지 못하면 기약없이 다음때 까지 열심히 노력
해야 된다는 뜻도 담겨있다. <출처: 두산백과>
깨달음을 구하고자 한다면 정견[正見]과, 대신심[大信心], 강력한 발심[發心]을 가진 상태
에서 선지식으로부터 자신의 근기와 여건에 적합한 화두[話頭]를 받아 참구[參究]하게 되
며, 자신의 공부 상태에 대해서는 선지식께 상담하고 중간 중간 점검을 받는 등의 올바른
지도가 있어야 엉뚱한 길(삿된 길. 삿된 수행)로 빠지지 않게 됩니다.
수행자는 화두를 받아 간화선의 삼요[三要]인 대신심[大信心]. 대분심[大憤心]. 대의심
[大疑心]으로 수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 간화선의 삼요[三要]
고봉 원묘 선사는 <<선요>>에서 화두 공부인은,
대신심(大信心), 대분심(大憤心), 대의심(大疑心)’의 세 가지 요소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요>>의 말씀을 보자.
만일 진실로 참선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세 가지 중요한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첫째, 크게 믿는 마음(大信心)이 있어야 하니, 이 말은 수미산을 의지한 것과 같이 흔들림이 없어
야 함을 알아야 한다.
둘째, 크게 분한 생각(大憤心)이 있어야 하니, 마치 부모를 죽인 원수를 만났을 때 그 원수를 당장
한 칼에 두 동강을 내려는 것과 같다.
셋째, 커다란 의심(大疑心)이 있어야 되니, 마치 어두운 곳에서 한 가지 중요한 일을 하고 곧 드러
내고자하나 드러나지 않은 때와 같이 하는 것이다.
온종일 이 세가지 요소를 갖출 수 있다면, 반드시 하루가 다하기 전에 공을 이루는 것이 독 속에
있는 자라가 달아까 두려워하지 않겠지만, 만일 이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마치 다리 부러진 솥
이 마침내 못 쓰는 그릇이 되는 것과 같다.
그러면, 어떻게 선지식께서 수행자 개개인의 공부상태를 판단하고 그 상태에 적절한 공부
지도를 해 나가는 것인가? 에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정법으로 오랜기간 수행을 통해 깊은 경계를 체득[體得]하고 증득[
식[善知識]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깊은 수행을 통해 득력[得力]과, 오매일여[寤寐一如]의 경지에서 요중공부[擾中工夫]를
하고 계신(成佛하기 전의 수행 과정) 원덕스님 이시기에 참선을 배우고자 하는 많은 이들에
게 정법으로 지도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 득력[得力]
화두 참구에 생명을 걸고 용맹정진을 해서 화두 의심 들기를 쉬지 말고 밀고 또 밀어붙이게 되면
마침내 화두가 순일해지고 의정이 생겨나 구태여 화두를 들지 않아도 화두가 자동적으로 들어
져 그야 말로 순풍에 돛단 배처럼 화두일념이 잘 되어 저절로 화두가 들리게 되는 경지 / 가
슴이 숯처럼 새까맣게 타 들어가도 온몸이 부서져도 젖 먹던 힘까지 모두 다하여 온정신과 온몸의
뼈와 살이 그리고 피부의 모공(毛孔)까지 화두가 일여(一如)되어 의정(疑精)이 돈독하게 하여야
득력할 수 있다.
득력을 제대로 하자면 일생에 기회가 딱 한번 밖에 없다고 한다 / 처음 공부를 시작하여 득력
하기 위해서 공부하는 시절인연과 도량(道場)과 도반(道伴) 문제 등이 맞아 떨어져야 되는데 그
문제는 본인의 과거에 지어 놓은 인연들이겠지만 불보살님이 도와 줘야 된다고 생각된다 / 일단
이렇게 득력(得力)하게 되면 어떠한 경우에도 다시는 뒤로 후퇴하지 않는 [불퇴전不退轉]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 오매일여[寤寐一如]
수행을 하여 잠을 잘 때나 깨어 있을 때나 정신이 항상 여일하여 꿈이 없는 경계
☞ 요중공부[搖中工夫]
정중에서 고요한 정진을 마치고 더 깊고 살아있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 직접 경계에 부딪히면서
일상생활 하듯이 생활 하면서 정중(靜中)과 동중(動中)을 초월한 고차원적인 수행의 한 방법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반드시 요중공부를 거쳐야 성불할 수 있다고 합니다.
원덕스님께서 전하고자 하시는 정법참선[正法參禪]은 줄탁동기[啐啄同機]의 개념으로,
법우님들에게 체계적이고, 단계적으로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할 것입니다.
많은 법우님들께서 원덕스님과 인연이 닿아, 정법참선 수행을 통해 나날이 발전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성불하십시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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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원덕스님의 가르침이 널리 퍼져나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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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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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지장보살
가능하다면 많은 법우님들과 함께 갈 수 있기를 부처님전에 엎드려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모두 행복 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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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