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는 그 높이에서 뿐만 아니라 등반에 있어서도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산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 봉우리가 세계 두 번째 고봉으로 알려진 것은 1858년의 일이다. 에베레스트와 같은 방식으로 이 산을 측량한 결과 8,611미터 라는 숫자가 나온 것이다. 이때까지 이 산은 K2(카라코람 제2봉이란 뜻)란 기호로 쓰여왔던 것인데 우연하게도 세계 2위의 고봉으로 밝혀지자 그대로 '케이투'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후 이 산에 최초로 다가간 사람은 영국인 고드윈 오스틴이었다. 그는 1861년 카라코룸에서 탐험을 하다가 K2에 이르는 발토로빙하를 발견해 냈다. 그후 1888년 영국 왕립지질학회에서는 그의 공적을 찬양하여 K2에 그의 이름을 붙일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실제 아주 오래된 지도 중에는 이 산의 이름이 K2 대신에 '마운트 고드윈 오스틴(Mt. Godwin-Austin)'이라고 표기된 것들이 있다. 후에 이 산은 원주민들이 초고리hogori)라고 부르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이미 K2라는 이름이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초코'는 크다라는 뜻이고 '리'는 산을 뜻한다. 발토로 빙하 깊숙히 위치한 콩코르디아 북쪽 끝에 우뚝 솟은 K2는 크게 나눠 북릉, 북서릉, 서릉, 남릉, 남동릉, 남서릉, 북동릉의 7개 능선으로 이루어진 삼각뿔형 독립봉이다. 이 산을 오르겠다고 생각한 최초의 사람은 영국인 엑켄스타인이었다. 그는 서구인들이 히말라야에 본격적으로 원정을 시작하기 훨씬 전인 1902년에 5명의 대원을 이끌고 이 산에 들어와 총 11개의 캠프를 전진시키며 등반했다. 결국 북동릉 6812미터에 도달하는 것으로 그쳤으나 이 원정으로 K2가 그렇게 만만한 산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K2의 등반에 관심을 가진 두번째 사람은 1909년 당시 이태리 왕의 사촌형이 되는 아브루찌公이었다. 아브루찌는 비록 등정에 실패했지만 그가 발견한 남동릉은 '아브루찌 릉'으로 명명되었고 그의 뜻을 이어받아 44년 뒤인 1954년에 이 루트로 초등정하게 된다. A. 데지오가 이끄는 이탈리아의 대규모 원정대가 7월 31일 아브루찌 릉을 통하여 L. 라체델리와 A. 콤파뇨니를 정상에 올리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것은 1858년 이 산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으로 판명된 지 96년 만의 일이었다. 아브루찌가 택한 대규모 캬라반과 조직적인 등반방식은 후에 히말라야 8천미터급 고산원정의 패턴으로 자리잡았다. 우리나라는 1986년 8월 3일 대한산악연맹 원정대(대장 김병준)의 장봉완, 김창선, 장병호대원이 아브루찌 릉을 통해 정상등정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