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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궁에 대하여
류근원(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청주 우암정)
서장: 글을 시작하며
각궁에 대한 공부도 활쏘는 공부만큼이나 끝없는 공부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배울 수밖에 없으므로 사법보다도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각궁을 배우는 과정에서 두루 많은 고수들이 활 올리는 것을 살펴보고, 본인이 정성들여 활 올려보며 때로 묻기도 하고 때로 고수의 가르침을 듣는 행운도 얻어야할 것 같습니다. 각궁을 잘 쏘려면 자신에게 맞도록 각궁을 잘 다룰 수 있어야합니다. 활쏘는 것도 즐겁지만 각궁을 한적하게 다룰 수 있다면 그것도 좋습니다.
제가 처음 각궁을 접한 것은 우암정의 김연문 사범을 통해서이지만, 이태호․정진명․장창민 선배 접장님들과 같이 활 공부하면서 그분들에게 각궁의 여러 가지 특성을 배웠고, 온깍지궁사회 모임을 통해 가끔 만나는 이석희(부산 사직정) 행수와 이자윤(경남 진해정) 교장의 가르침이 가뭄에 단비 같았습니다. 그분들의 가르침에 감사하며 제가 듣고 경험으로 이해한 것을 정리합니다.
이 글은 각궁을 처음부터 배우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체계적인 글이 아닙니다. 처음 각궁을 배우는 것은 주변의 훌륭한 구사를 찾아가서 배우는 것을 권하며, 체계적으로 정리된 글을 원하시는 분은 정진명 접장의 『한국의 활쏘기』 책을 권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한국의 활쏘기』에서 다룬 내용은 중복해서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아주 깊은 이론적인 것을 다루는 것도 아닙니다. 각궁다루기도 활쏘기처럼 몸으로 체득해나가는 것이기에 각궁을 쏘면서 점차 터득해가는 것들 중에서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생각대로 정리한 것이니, 부족한대로 도움이 되신다면 좋겠습니다.
각궁은 말로써 배울 수는 없습니다. 때로 한 마디의 말이 크게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조목조목 필요한 것들은 주변의 훌륭한 구사에게서 배울 수밖에 없는듯합니다. 사람마다 사법이 다르니, 원하는 각궁의 모양도 다르고, 또 각궁 올리는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저의 글을 이것만이 유일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글로서가 아니라, 한 궁사가 자신의 일관된 사법을 갖추고 그에 적합한 각궁모양을 정리한 글로써 읽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제1장. 각궁과 개량궁
1. 왜 각궁인가
각궁이 우리나라가 가진 본래의 전통 활이다. 개량궁은 80년대에 각궁을 모방하여 화학적 재질을 사용하여 만든 것이다. 개량궁이 다루기 편리한 점은 있으나 일반적으로 ‘우리 활’이라고 할 때는 ‘각궁’을 말하는 것이라고 봐야 하고, 더욱이 ‘전통 활쏘기’라고 할 때에는 ‘각궁 활쏘기’를 말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우리 활을 배우려는 사람은 언젠가는 각궁을 배워야할 것이다.
각궁과 개량궁은 성질이 미묘하게 달라서 그 사법에도 영향을 준다. 개량궁으로 시작해서 아주 오랜 시간 개량궁만을 쏘게 되면 그 사법이 개량궁에만 적용되는 특이한 사법으로 변하기 쉽다. 그 기간이 오래되면 각궁을 쏘아도 각궁 본래의 성질에 맞게 내기가 어려워진다.
개량궁은 인조 화학적 제품을 주로 써서 재질이 딱딱하다. 딱딱한 재질의 활이 지속적으로 사람의 몸에 충격을 줄 때에는 사람이 본능적으로 두 가지 반응을 하게 된다. 하나는 본인도 모르게 그 충격을 피하기 위해서 마지막 발시 순간에 힘을 흩어버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몸에 힘을 주어 딱딱하게 만들어 충격을 대비하여 마주쳐가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본능적으로 제 몸이 하는 것이라서 본인이 그런 동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기가 어렵다. 나중에 각궁을 한참 쏘고 나서야 전에 자신이 개량궁을 쏠 때 그런 동작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기 쉽다. 이 두 가지 동작 중에 어느 것이든, 활쏘기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인 마지막 순간을 회피하거나 건너뛰게 만들어버린다. 이로써 활을 내 몸에 밀착되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고, 활과 몸이 일체가 되어 이루어지는 발시의 맛을 모르게 된다.
각궁은 인간 친화적이다. 전에 선배궁사들이 표현한대로 각궁은 쏘는 사람을 닮았다. 각궁의 뿔은 사람의 뼈요, 소심줄은 사람의 힘줄이요, 대나무는 사람의 몸통과 비슷하다. 각궁은 인간과 유사하여 각궁이 사람의 신체에 더 잘 맞고 조화를 이룬다. 만약 기계로 활을 낸다면 개량궁이 더 잘 맞겠지만, 사람이 활을 쏘기에는 각궁이 사람의 힘을 더 잘 받아들이고 더 잘 반응한다.
2. 각궁의 장점
- ‘개량궁은 약하지만 뻣뻣하고 각궁은 세지만 부드럽다.’ 이런 표현은 역설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각궁의 성질을 나타낸다. 각궁은 대개 개량궁보다 힘을 많이 필요로 하지만 그것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각궁의 소재가 탄성이 뛰어나면서도 상대적으로 유연한 재질이기 때문이다. 이 유연함 때문에 각궁을 오래 쏜 사람은 개량궁보다 각궁이 편안하다고 느낀다. 전에 함께 활 쏘던 선배궁사가 이런 표현을 한 적이 있다.
‘각궁은 내 몸에 편안히 안기는 것 같고, 개량궁은 내 몸에서 달아나려하는 것 같다’.
또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
‘개량궁은 가볍고 쏘고, 각궁은 묵직하게 쏜다.’
그래야 서로 궁합이 맞는다.
'개량궁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대금 같고, 각궁은 대나무로 만든 대금 같아서 그 울림이 다르다.’
- 그 외에도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지만, 인간은 천연소재로 만든 것에서 마음이 편안함을 느낀다. 그래서 쇠로 만든 것보다는 나무의자나 목재로 만든 가구가 고급이고 편안함을 준다. 이런 심리적 편안함뿐만 아니라 각궁의 성질 자체가 인간과 잘 조화를 이루고, 따라서 활쏘기의 표면적 잔재주보다는 깊숙한 내면의 원리를 체득해나가기가 쉽다.
- 개량궁의 딱딱함은 만작에 이르렀을 때 심하게 느껴진다. 힘을 써보면 활이 사람의 힘에 져버려서 쑤욱 활이 딸려 들어오거나, 반대로 활이 셀 때는 사람의 힘을 튕겨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일본의 활쏘기가 발시 직후 줌손이 홱 젖혀지는데, 그것은 일본 활의 소재가 나무만을 사용한 것이라서 개량궁처럼 딱딱하고 유연성이 부족하기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 각궁에는 나뭇결처럼 결이 있다. 뿔에도 결이 있고 대나무에도 결이 있고 심에도 결이 있다. 결이 있는 것이 서로 결합되었을 때 그렇지 않은 것보다 특정 방향으로 일정함과 유연성이 있고 질기다.
- 각궁은 개량궁과 달리 사람의 힘을 받아들인다. 김삼석(이천 설봉정) 옹의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각궁은 사람의 힘은 쑤욱 빨아들이는 묘한 게 있다’고.
- ‘그래도 각궁!’이라는 표현을 때로 한다. 우스워보여도 각궁이라는 뜻이다. 당겨보면 분명 연한 활인데도 계속 쏘아보면 만만치 않은 힘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만큼 각궁은 사람의 힘을 수용하는 능력이 있다. 사람의 힘을 활에다 축적한다. 당길수록 더 쑤욱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당겨도 더 잘 안 들어오는데 그 당기는 힘을 활이 받아서 활에 축적시킨다는 뜻이다. 이런 순간이 되면 유연하던 각궁이 빳빳해지며 흔들림이 없이 서게 된다. 이런 순간을 ‘줌이 맺힌다’라고도 하고 ‘동이 찬다’(이자윤)라고도 하는데, 이 순간을 얻게 되면 쏘기도 전에 화살이 어떻게 날아갈지 느낌이 온다. 그러니 이렇게 잔뜩 힘을 머금은 활이 열려서 화살을 보내면 훨씬 힘차게 살아나가는 화살을 만든다.
- 개량궁의 딱딱함은 발시 순간을 무서워 피하게 만들고 (이를 조금이나마 완화시키는 방법이 연궁에 중시를 쓰는 것이다.), 각궁의 유연함은 두려움에서 벗어나 발시 순간에 더 마음껏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3. 각궁과 정중동
이상적인 발시 순간을 표현하는 ‘정중동 동중정 (靜中動 動中靜)’이라는 말이 있다.
‘정중동 동중정 (靜中動 動中靜)’이라는 말은 춤이나, 무술이나 여러 분야에서 쓰이지만 활쏘기에서는 만작에서 발시로 넘어가는 순간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정중동’이란 고요함 속에 움직임이 있다는 뜻인데, 이때는 겉에는 고요함 있고 움직임은 그 속에 있다. 겉보기에 만작 상태는 굳건하여 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화살촉이 더 이상 잘 안 들어와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나, 내면에서는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거나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동중정’은 움직임 속에 고요함이 있다는 것인데, 이때는 겉에는 움직임이 있고 고요함이 그 속에 있다. 주변은 움직이나 중심은 흔들림이 없다. 어깨와 팔과 손이 가볍고 빠르게 터져나가고 몸이 회전해도 몸의 한 중심은 안정이 되어 움직임이 없다. 이것은 힘의 순서 또는 질서를 잘 이해하고 그에 맞게 움직임이 한 중심에서부터 시작될 때 이루어진다.
‘정중동’은 이상적인 발시 직전의 상태이고, ‘동중정’은 발시 직후의 움직임이다. 정중동은 ‘힘이 가득한 고요함’이고, 동중정은 ‘흔들림 없는 움직임’이다. 기운이 충만해야 정중동을 이룰 수 있고, 온몸을 부릴 수 있어야 동중정을 이룬다.
발시를 잘 하려면 먼저 만작을 충실히 해야 한다. 발시 후에 이루어지는 동작은 모두 발시 전에 축적된 기운이 터져나가는 것이므로 발시 동작 자체를 통제하고 조절하는 것이 아니다. 발시 직후의 동작을 보고 발시 직전의 상태를 미루어 짐작하는 잣대로 보면 된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발시 전의 만작이라고 할 수 있다.
만작은 표현하자면 겉으로는 다 당겨서 움직임이 없는데 속으로는 계속 힘을 써서 가득 채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계속 힘을 써서 가득 채우는 것이 활이 너무 약해도 어렵고 활이 너무 세어도 어렵게 된다. 활이 너무 약하면 몸이 팽팽해지는 것이 아니라 활만 쑤욱 들어오게 되고, 반대로 활이 너무 강하면 활을 당기는 데에만 집중하게 되고 몸은 오히려 부실해질 수 있다. 자기에게 적당한 세기의 활을 쏘아야하는 이유이다.
각궁은 강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래서 각궁은 만작에서 더 힘을 쓰고 자신의 힘을 활에 가득 채워 쏘기에 좋다. 각궁은 소위 정중동의 만작을 이루기에 카본활보다 더 나은 활인 것 같다.
제2장 각궁 다루기
1. 남의 각궁 함부로 당겨서는 안 된다.
‘막만타궁’이라고 활터에 돌비석에 새겨 넣은 글귀가 있지만, 개량궁을 주로 쓰는 요즘에는 실감이 잘 안 난다. 하지만 각궁의 경우는 정말 함부로 당겨보아서는 안 된다. 각궁 소재가 유연하고, 활 올린 모양이 사법마다 다르기 때문에 남을 활을 함부로 당겨보다간 활을 뒤집기 십상이고, 뒤집지 않더라도 사법이 다르면 활 모양을 변형시켜 놓기 쉽다. 남의 활 함부로 당기지 말라는 것은 단순한 예의 차원의 문제를 넘는다.
2. 각궁은 주인을 닮는다.
잘 길들여진 각궁의 모양과 줌통 모양을 보면 대개 그 사람의 사법을 헤아릴 수 있다. 개량궁은 소재가 뻣뻣하여 제조된 대로 쏘게 되지만, 각궁은 유연하여 활을 길들일 때 자기 방식대로 활 모양을 잡아나가게 된다.
활의 힘에 주로 의지하면서 발시의 연삽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활이 태평궁으로 줌통과 삼삼이가 가라앉아있게 된다. 맹렬한 쏘임을 추구하는 사람은 활도 사나워서 줌통과 삼삼이가 살아있게 된다. 줌손이 굳건한 사람은 줌통이 충분히 올라와 있다. 손이 특별히 두툼하거나, 줌손에서 뻗어나가는 힘이 많아서 걱정하는 사람은 줌통을 평평하고 줌통부분을 낮춘다. 줌손의 힘이 끝까지 살아나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줌통이 둥글다.
엄지를 펴는 사람은 줌통이 길고 활의 상하장의 세기를 거의 같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줌손을 막줌으로 쥐는 사람은 줌통이 크고 굵으며 오래 쏘다보면 활채가 비틀릴 수 있다. 활이 세거나 줌손을 들여쥐는 사람의 활은 활시위가 거의 줌통 한가운데로 오고, 줌손을 많이 내어 쥐는 사람의 활은 활시위가 줌통의 오른편(우궁의 경우)에 걸리게 된다.
활이 강궁이냐 연궁이냐에 따라서, 또는 그 사람의 쏘임에 따라서 모양은 천양지차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쏘임을 알고 이에 알맞게 활을 올리고 길들여야한다.
3. 각궁이 비싸다고?
각궁은 그 만드는 정성과 노고에 비하여 싼 편이다. 대개 활을 만드는 궁장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5년 내지 10년은 되어야 활을 제대로 만들 수 있다. 그것도 제대로 된 궁장에게 전수를 받을 때 그렇다.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평생을 만들어도 활다운 활을 못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다. 궁사가 자신의 새 활 하나 길들이는 데에도 무척 고심하며 길들이게 된다. 이런 활을 수십 장 씩 만드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수년간에 걸쳐 터득하게 되는 전문적 기술과 정성과 공력을 생각한다면, 전통적인 각궁에 들어가는 요즘의 활 값은 절대 비싸다고 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전통 악기 수공예품과 비교해보시라. 다른 스포츠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공장에서 만든 공산품과 비교해볼 때에도 그렇다. 각궁이 비싸다고 말하기보다는 각궁의 가치를 모르겠노라는 말이 더 솔직하다.
4. 각궁 배우는 법
정진명 접장이 우스갯소리처럼 한 말이 있다.
‘활 그렇게 열심히 가르칠 거 없어. 활 한 열장 부러뜨려보면 다 알게 돼.’
맞는 말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면 어찌 배우겠는가? 남들이 보기에 어설프고 무모하게 보일지라도 본인이 열심히 곁눈질하면서 배우고 실험하다 보면 얻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5. 보는 게 반이다.
먼저 각궁이 올려진 모습을 많이 보아 눈에 익숙하게 해야 한다. 활이 올라간 모습이 활 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나름대로 자신의 궁력과 사법에 따라 본인에게 맞는 이상적인 활의 모양을 머릿속에 그려야한다.

첫댓글 이렿게 다방면으로 공부하신후(준비단계) 각궁에 접하시면 ㅎㅎㅎ돈이 많이 안듭니다. 4번이 우스겟소리가 아님니다 진실입니다. 지가 그렇게 공부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