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
(사진설명)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146.(P.304)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이 책에서 (출판사 편집부 의도이겠지만) 한 페이지 전면을 차지하는 철학자로서는 데카르트(63), 칸트, 존 스튜어트 밀(176), 소크라테스(267-268) 등이 있다. 나로서는 플라톤, 스피노자, 맑스, 베르그송을 전면 사진으로 넣을 것이다.(44LMH)]
[나도 13년이 지난 이제, 생각이 바뀌었네, 소크라테스, 플라톤, 플로티노스, 브루노, 루소, 맑스, 벩송, 들뢰즈를 표지에 올릴 것이다. (57VKF)
칸트 Immanuel Kant, 1724-1804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147.(P.304)
독일 철학자. 비판철학의 창시자이다.
칸트는 1724년 프러시아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에서 태어나 1804년(80살) 그곳에서 죽었다. 그는 삶은 전적으로 연구와 교육과 성찰에만 전념하여 다른 이야기 없이 지냈다. 그는 자기 태어난 도시를 결코 떠난 적이 없다. 그의 초기 저작들은 철학적이라기보다 서정적이었는데 물질의 본성과 세계의 형성에 관한 것이었다.
57살(1781)에서야 그는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1781; Critique de la raison pure) 속에서 소위 말하는 자신의 철학을 전개하였다. 이 비판적 방법의 천재는 철학의 목적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깊이 파고드는 것이라 것을 찾았다. 우리가 인간정신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사실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정신의 깊은[심층의] 가능성들을 분석하면서 이다. 그것은 인간 정신이 무엇을 아는가, 그 정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 정신은 무엇을 바라는가 이다. 그 순수이성비판은 우선 우리의 인식 가능성을 비판하는 것이다. 칸트는 거기에서 수학적 인식의 형식들과 뉴턴(Isaac Newton 1642-1727) 물리학의 근본적 원리들 정확하게 연역하였다. 게다가 그는 형이상학에게 내용을 부여할 수 있는 실재적 대상이 없다는 이유로, 형이상학적 과학의 불가능성을 증명하였다.
1788(64세)에 실천이성 비판(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1788; Critique de la raison partique)은 도덕법칙은 우리 존재의 가장 심오한 가능이라는 것을 제시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정언명법”(kategorische Imperativ)은 우리 자유와 우리의 진솔한 운명의 절대적 실현이다. 사람들은 도덕 형이상학기초(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1785; Fondements de la métaphysieue des moeurs)을 유익하게 읽을 수있다. 이 책은 도덕적 행위의 개요와 동시에 현존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하고 엄격한 개요를 구성한다.
1790(66세)에 판단력 비판(Kritik der Urteilskraft, 1790; Critique du jugement)에는 유예술 작품의 철학과 유기적 삶의 이론이 들어있다. 칸트는 이 책에서 이론 철학과 실천 철학을 통일 하고자 애쓴다. 인간의 여러 측면들(인식, 행동, 감정들처럼)의 통합의 기획은 “후기칸트주의자들”(postkantiens)이, 즉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 셸링(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 1775-1854),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이 응답할 것이다.
게다가 칸트는 학으로 성립할 수 있는 모든 미래의 형이상학에 대한 입문(Prolegomena zu einer jeden künftigen Metaphysik die als Wissenschaft wird auftreten können, 1783; Prolégomènes à toute métaphysique future qui voudra se présenter comme science), 자연 과학의 형이상학적 근거(Metaphysische Anfangsgründe der Naturwissenschaft, 1786; Premiers Principes métaphysiques de la science de la nature), 단순 이성의 한계에서 종교(Die Religion innerhalb der Grenzen der blossen Vernunft, 1793 La Religion dans les limites de la simple raison), 실용적 관점의 인류학(Anthropologie in pragmatischer Hinsicht, 1798; Anthropologie d'un point de vue pragmatique 1798), 논리학(Logik, 1800; Logique)을 썼다.
크뤼거(Gerhard Krüger 1902-1972)는 칸트가 “독단론의 철학자들 중의 마지막 철학자이며 자신의 철학을 신학 위에 세운 마지막 철학자이며, 또한 인간 자유의 절대적 특성을 깨달은 최초의 철학자이라”고 썼다. 칸트가 말하기를 “나는 신앙에 자리를 마련하기 위하여, 지식에 한계를 그었다”고 한다. (44MLH)
칸트주의 (le) kantism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147.(P.304)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와 그 제자들의 학설.
사람들은 특히 세 가지로 구별한다.
1. 칸트주의자들(les kantiens). 이들은 제자들이거나 바이힝거(Hans Vaihinger 1852-1933)같은 고전적 주석가들이며 슈미트(Chr. E. Schmit)와 벡(Beck) 등이 있고, 비판자로서 라인홀드(Reinhold 1758-1823), 마이몬(Salomon Maimon 1754-1800), 슐쩨(Gottlob Ernst Schulze, 1761-1833) 등이 있다. (주로 18세기 말이다)
2. 후기칸트주의자들(les postkantiens). 이들은 절대의 이론을 향하여 인식의 분석을 넘어서려 한다. 이들은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 셸링(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 1775-1854),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 들이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3. 신칸트주의자들(les néokantiens). 이들은 인식이론과 논리학에서 규준화하려 한다. 리프만(Otto Liebmann, 1840-1912)이 있고, 마르부르크(Marburg)에서 논리학파로 바덴(Baden)의 공리(axiologique)학파의 철학자들이 있다. (44LMH)
카이제를린크 Hermann von Keyserling 1880-1946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147-148.(P.304)
독일 철학자이다.
카이제를링크는 1880년에 [현 에스토니아(Estonia)] 리보니아(Livonia)지방의 쾨노(Könno)에서 태어나 1946년(66살)에 오스트리아 인스브뤼크(Innsbrück)에서 죽었다. .
그는 자연학자에서 짐멜(Georg Simmel, 1858-1918)과 베르그송(Bergson 1859-1941)의 영향으로 철학자가 되었다. 그는 두 전쟁 사이에 다름슈타트(Darmstadt)에서 “현자의 학파”를 창설했다. 그는 서양인간을 그 뿌리부터 잘라내는 협의의 합리주의와 싸웠다. 그는 세계의 구조(Das Gefüge der Welt, 1906; La Structure du monde), Das Reisetagebuch eines Philosophen, 1919: Le Journal de voyage d'un philosophe)를 썼으며, 불어로 쓴 작품으로는 La Vie Intime: Essais Proximistes, 1933, La Révolution Mondiale et la Responsabilité de l'Esprit, 1934)이 있다. (44LMH)
키에르케고르 Søren Kierkegaard, 1813-1855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148.(P.304)
덴마크 철학자이자 작가이다. 그는 1813년 덴마크의 코펜하겐(Kopenhagen)에서 태어나 [독일을 유학 다녀와서] 코펜하겐에 살다가 그곳에서 1855년(42살)에 죽었다. [42년을 살았다. - 수학자로서는 늙은 나이일 수 있지만, 철학자로서는 매우 젊은 나이로 마감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를 실존주의(existentialisme)의 창시자라 생각한다. 그가 주장한 가치의 비조건성과 개인적 삶의 불가 환원성은, 그 기원에서 보면, 탁월한 철학체계에 대한 즉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 철학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왔다.
그의 철학적 반성은 자기 삶의 성쇠(vicissitude 부침)에 깊이 매여있다. 올센(Régine Olsen)이라는 그의 약혼녀의 모습은 그의 작품 곳곳에 등장한다.
불안(angoisse), 고독(solitude), 운수(destinée, [운명 destin]) 등에 대한 그의 분석은 신 앞에선 인간의 철학이나 영원과 접촉하는 시간의 철학에 이른다.
그가 “삶의 길에서 단계들”이라고 규정한 것[세 가지 단계], 즉 미학적 또는 감성적 단계, 윤리적 또는 반성적 단계, 종교적 단계들이라고 규정한 개념은 이제 고전이 되었다.
그이 사상은 현대철학에, 즉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 바르트(Karl Barth 1886-1968, 스위스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의 작품들로 불안의 개념(Concept d'angoiss)(1844), 인생 여정의 여러 단계들(Etapes sur le chemin de la vie, 1845), Post-scriptum non-scientifique et définitif aux Miettes philosophiques, 1846) 미래에 자기의 작품이 “읽히고 또 매우 많이 읽힐 것”이라고 예감한 키에르케고르는 그 자신이 겸손하게 “종교의 시인”이라고 규정했다. 마찬가지로 그는 종교의 영웅이다. (40PMH)
운동감각 kinesthésiqu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148.(P.304)
신체의 운동에 연관 있는 것.
신체 운동의 감성은 유기체적이고 기본적으로 심리적인 감정(sentiment)에 속하며, 신체 기관들의 운동 감정이다. 이것은 18세기 말부터 데스뛰 드 트라시(Destutt de Tracy 1754-1836)에 의해서 밝혀졌다. 이 운동감각은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1)가 증명한 대로, 지각의 분석과 마찬가지로 심리학적 모든 분석의 출발점을 구성한다. (44LMH)
꼬이레 Alexandre Koyré 1892-1964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148.(P.304)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인식론자이자 철학자이다.
꼬이레는 1892년 러시아 타간로크(Taganrog)에서 태어나 1964년(72살) 파리에서 죽었다.
그는 1908년(16살)에 독일 괴팅겐(Göttingen)에서 고등교육을 마치고,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과 힐버트(David Hilbert 1862-1943)의 교육을 따랐다. 그리고 1910년에 파리로 왔다. 거기서 그는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과 브륑슈비끄(Léon Brunschvicg 1869-1944)의 강의에 참석했다.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가 독일과 프랑스에서 후설과 베르그송을 공부한 것, 그리고 수학을 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철학과 과학사의 관계가 그의 모든 사유를 활성화하였다. 그의 인식론적 작업은 경험적 인식론과 구별되고 동시에 실증적 인식론과 구별된다. 경험적 인식론은 선천적(a priori) 사유를 곡해하고 경험만을 근거로 삼고, 실증적 인식론은 그 형식주의가 수학과 그 아래 깔린 실재성과 단절을 도입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에서 신의 관념과 신의 현존 증명들(Idée de Dieu et les preuves de son existence chez Descartes, 1922)과 성 안셀무스 철학에서 신의 관념(Idée de Dieu dans la philosophie de saint Anselme, 1923)을 통하여 고전철학에 관한 연구를 출판함으로써, 그는 16세기 17세기 우주론들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였고, 야콥 뵈메의 철학(La philosophie de Jacob Böhme, 1929)을 통하여 과학적 사유에 새로움을 기초할 원리들에 대해 분석도 시도하였다. 그는 갈릴레이 연구들(Etudes galiléennes 1939)로서 1. 고전과학의 여명기(A l'aube de la science classique), 2. 물체의 낙하법칙(La Loi de la chute des corps), 3. 갈릴레이와 관성의 법칙(Galilée et la loi d'inertie)를 출판하였다. 또한 그 덕분에 닫힌 세계에서 무한 우주로(Du monde clos à l'univers infini, 1957)와 천문학적 혁명 (La Révolution astronomique : Copernic, Kepler, Borelli, 1961)와 Etudes newtoniennes, 1965)도 읽을 수 있다. (44LM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