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월 중순(10수)
하루시조 131
05 11
별원에 봄이 깊고
무명씨(無名氏) 지음
별원(別院)에 봄이 깊고 사창(沙窓)에 해 긴 적에
적막중문(寂寞重門)에 물을 인들 뉘 있으리
다만 한 대화단장(對花斷腸)에 임풍루적(臨風淚滴) 뿐이로다
별원(別院) - 본원(本院) 주변에 따로 세운 집.
사창(沙窓) - 비단으로 바른 창문.
적막중문(寂寞重門) - 고요하고 쓸쓸하며 첩첩 문으로 숨어들어간 곳.
대화단장(對花斷腸) - 꽃을 대하며 느끼는 애간장 끊어지는 마음.
임풍루적(臨風淚滴) - 바람을 대하니 흘러내리는 눈물.
봄날의 고적함이 뼈에 사무치게 드러나 있습니다. 사용한 어휘로 보아 배운 사람일 텐데요.
초장의 공간적 배경은 부유한 집안의 별당으로 고적하고 봄날의 해는 깁니다. 중장에는 첩첩이 갇힌 듯한데 누가 들여다보며 물어볼 일이 있을까요. 종장에서는 꽃과 바람이 오히려 한숨과 눈물이랍니다.
읽고보니 이런 ‘갇힌 봄’도 있겠구나 싶은 것이, 예전에 산중 벚꽃은 어쩌자고 저리 무더기무더기 피어나나 싶었던 생각과 겹쳐지네요.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132
05 12
비파를 둘러메고
무명씨(無名氏) 지음
비파(琵琶)를 둘러메고 옥난간(玉欄干)에 지혔으니
동풍세우(東風細雨)에 듣드나니 도화(桃花)로다
춘조(春鳥)도 송춘(送春)을 슬허 백반제(百般啼)를 하놋다
비파(琵琶) - 동양 현악기(絃樂器)의 하나.
백반제(百般啼) - 백 번 돌면서 운다, 즉 여러 곡조로 운다.
봄이 가고 있습니다. 송춘(送春)이 아쉬운 거는 인간사(人間事)는 물론이요, 꽃이며 새도 슬프다고 적고 있습니다. 비파를 메고 옥난간에 기댄 이가 곧 작가입니다. 그의 눈에 동풍세우를 타고 지는 것이 복숭아꽃이군요. 작가의 상춘(傷春)에 빗대어진 춘조(春鳥)는 꾀꼬리일 듯한데, 사전에는 온갖 봄의 새라고 되어 있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133
05 13
사람이 죽어지면
무명씨(無名氏) 지음
사람이 죽어지면 어드러로 보내는고
저승도 이승같이 님한테 보내는가
진실(眞實)로 그러곳 할작시면 이제 죽어 가리라
죽어서도 임과 함께 하겠다는 소망을 노래했습니다. 초장에서는 사후 세계에 대한 물음입니다. 조물주(造物主)가 있다고들 믿었답니다. 여기서 ‘보내는’의 주체가 곧 그입니다. 중장에서는 이승과 저승에 대한 물음입니다.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이 있고 망각(忘却)의 강(江)을 건너간다고 믿었답니다. 거기서도 사랑하는 사람끼리 묶어주는가. 참 명료하면서도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종장에서는 임과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좋으리라 먼저 약속을 내미는 것입니다. ‘이제’는 ‘지금 당장이라도, 서슴지 않고’란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134
05 14
사랑을 낱낱이 모아
무명씨(無名氏) 지음
사랑을 낱낱이 모아 말로 되어 섬에 넣어
크고 센 말께 허리 추어 실어 놓고
아이야 채 한 번 찍어라 님의 집에 보내자
님에게 자신의 사랑을 짐으로 꾸려 말에 실어 보낸다는 애정 고백의 작품입니다. 사랑이 시작하는 때인지 끝나는 때인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말(斗)로 되어 섬(石)에 넣어, 사랑을 말질하고 섬질한다는 발상이 지극히 현대적 비유입니다. 거기에 힘깨나 쓰는 말에 허리 묶어 보내는군요. 직접 가져가지 않고 아이더러 채찍질 한 번 하랍니다. 님의 집에 이르는 길은 말이 아나봅니다. 자주 다녔을까요. 그때나 지금이나 사랑은 ‘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135
05 15
사랑을 사자 하니
무명씨(無名氏) 지음
사랑을 사자 하니 사랑 팔 이 뉘 있으며 이별(離別)을 팔자 하니 이별(離別) 살 이 뉘 있으리
사랑 이별(離別)을 팔고 살 이 없으니
장(長)사랑 장이별(長離別)인가 하노라
초장이 길어진 사설시조입니다. 사랑의 한 단면을 재치있게 읊었습니다. 모르는 어휘도 없고, 굳이 종장을 풀어드립니다만, 긴 사랑이요, 한번 이별하면 긴 이별이니, 사랑할 때는 길게 염두에 둘 것이요, 이별하기 전에 조심 또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아직도 사랑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으며, 또 이별도 거래가 가능하다고 믿으십니까. 참 바보가 여기 또 계시군요.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136
05 16
사랑을 찬찬 얽동여
무명씨(無名氏) 지음
사랑을 찬찬 얽동여 뒤설머지고
태산준령(泰山峻嶺)을 허위허위 넘어갈 제 그 모든 벗님네는 그만하여 버리고 가라 하건마는
가다가 자즐려 죽을 망정 나는 아니 버리고 갈까 하노라
얽동여 – 얼키설키 동여매어.
뒤설머지고 – 등뒤에 짊어지고.
자즐려 – 눌려.
글자수에 얽매이지 않은 장형(長型)시조입니다. 엇시조든 사설시조든 한꺼번에 장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내용에서 어의가 모모한 부분은 없습니다. ‘자즐려’는 요즘 안 쓰는 어휘입니다만.
사랑이건 아니건 인연이란 감당할 만한 무게이어야 하겠구나 싶습니다. 그 무게에 눌려 내려놓게 되면 아니 짊어짐만 못하겠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137
05 17
사랑이 어인 것이
무명씨(無名氏) 지음
사랑(思郞)이 어인 것이 싹 나며 움 돋는다
장안(長安) 백만가(百萬家)에 넌출어도 지건제고
아무리 풀려 하여도 못 다 풀까 하노라
장안(長安) - 중국 주(周)나라 문왕(文王) 이후 수도였던 곳. 여기서는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곳으로 ‘서울’이라고 풀어야 할 것입니다.
백만가(百萬家) - 백만이나 되는 많은 집.
사랑이 싹도 나고 움도 난다네요. 발상이 참 자연적입니다. 초장만 보더라도, 사랑이라는 게 어떤 것이관대 싹 나고 움이 돋는다는 말이더냐 묻고 있습니다. 중장에서는 서울의 모든 집에 넝쿨이 져서 뻗어나갔다고 사랑의 뻗어나감을 비유했습니다. 종장은 넝쿨이라는 것은 본래 엉키게 마련인지라 풀려고 해도 풀 수 없다고 사랑의 한 본질을 짚어냈습니다.
오늘도 백만 호의 집집마다 사람마다 사랑의 넝쿨이 뻗어나가 얽히고 있을 것입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138
05 18
사 없는 백발이요
무명씨(無名氏) 지음
사(私) 없는 백발(白髮)이요 신(信) 있는 사시(四時)로다
절절(節節) 돌아오니 흐르나니 연광(年光)이라
어즈버 소년행락(少年行樂)이 어제런 듯하여라
사시(四時) - 네 계절. 춘하추동(春夏秋冬).
절절(節節) - 철마다.
연광(年光) - 한 해 두 해. 세월(歲月).
소년행락(少年行樂) - 젊었을 적 즐거움을 찾아다님.
늙어감을 탄식하는 노래입니다. 백발이 곧 나이 듦을 의미하는데, 여긴에 사사로움이 없이 누구나 다 적용된다고 합니다. 또한 네 계절은 꼬박꼬박 어김없이 가고 오니 신의가 있다고 했습니다. 없다와 있다로 가름하는 듯해도 결국은 같은 결말로 흘러갑니다.
어즈버 감탄사, 어제런 듯 등 고어투가 완연해서 식상(食傷)하긴 해도 사랑타령만 줄곧 보다가 그런대로 주제가 달라 읽어두자 싶었습니다. 나이가, 연광이 쏜살 같이 들고 흐릅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139
05 19
사창이 어른어른커늘
무명씨(無名氏) 지음
사창(紗窓)이 어른어른커늘 님이신가 반겨 풀쩍 뛰어 뚝 나서니
어스름 달빛에 옐구름이 나를 속여
행여나 들라하더면 참귀천(慙鬼天) 할랏다
사창(紗窓) - 깁으로 바른 창문.
옐구름 – 흘러가는 구름
참귀천(慙鬼天) - 귀신과 하늘에 부끄러워함.
님이신가 했더니 아니네요. 잠시나마 반가웠던 마음 일시에 사라지고, 풀쩍 뚝 오두방정 떨었던 자신만이 부끄럽게 남았네요. ‘드시지요’ 안 했기 망정이요, 행여나 했다손 치더라도 들은 사람 없어 다행입니다. 웃음거리 될 뻔했습니다. 요즘말로 ‘웃픈’ 상황. 행동거지는 웃을 일이나 오지 않는 님이니 슬픈 상황입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140
05 20
살아서 동실하고
무명씨(無名氏) 지음
살아서 동실(同室)하고 죽어서 동혈(同穴)하니
은정(恩情)도 중(重)ㅎ거니와 예법(禮法)을 차릴 것이
금슬(琴瑟)을 고(鼓) 다시하여 상경여빈(相敬如賓) 하여라
은정(恩情) - 서로 사랑하는 사이의 정.
금슬(琴瑟) - 거문고와 비파. 부부간의 의좋은 사이를 비유함.
고(鼓) 다시하여 – 두드리기를 다시 시작해서.
상경여빈(相敬如賓) - 서로 공경하기를 손님 같이 하다.
부부(夫婦)의 도리(道理)를 짚어내고 있습니다. 죽어서도 예법을 지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같은 방을 쓰고 같은 동굴에 든다. 정말 죽어서도 함께하는 사이가 부부로군요. [최이해 崔伊海 해설]
첫댓글 무명씨 안에는 여성시인들 가령 무명의 기녀라든가 해어화 축에 들었던 가녀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노래만 남고 사람은 잊힌, 문학의 한 끝을 보는 맛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