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의 적(약4:1-3)
도입
이솝우화 중
파리와 불나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배가 고픈 파리가 날아다니다가 맛이있는 꿀을 발견합니다. 꿀단지의 주변을 돌면서 조심조심 그 꿀맛을 맛보다가 그 날개가 꿀에 젖어버리고 맙니다. 힘을 쓰면 쓸수록 그 꿀속에 더 깊이 파뭍혀 갑니다. 그 때 불나비가 한 마리 날아와서 "야 이 녀석아 음식을 그렇게 탐스럽게 먹으면 안되는 거야 네가 너무 돼지처럼 먹기를 좋아하니까 그렇게 빠져서 결국은 죽지않니!" 그렇게 비난을 하던 불나비 앞에서 파리는 할말이 없었습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촛불이 켜졌습니다. 이 불나비가 촛불 주위를 빙빙 돕니다. 그 색갈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가까이 나아갑니다. 더 잘보려고 가까이 가다가 결국은 타서 죽었습니다. 그때에 아직도 죽지않은 채 꿀에 뭍혀있던 파리가 ,"나보고 바보라고 하더니 저는 더 바보구먼. 한 번에 타죽네...."라고 했습니다.
인간에게 쾌락의 함정이 있습니다.
이 쾌락이 점점 우리를 꿀단지 속으로 빠져들어가게하고 몸을 가누지 못하고 죽을 곳을 향해서 깊이 빠져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꿀단지로 우리를 유혹하는 힘과 에너지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는 말을 바꾸어 싸움과 다툼의 근원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는냐고 묻습니다.
"너희중에 싸움( wars )이 어디로,다툼(fightings)이 어디로 쫒아 나느뇨?"(약4:1)
여고보는 싸움과 다툼의 최초의 동인을 정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싸움의 원인은 우리속에 있는 쾌락인 것입니다. 자기만족입니다. 자기 즐거움을 위해서 싸웁니다. 야고보는 이 시기와 다툼은 세상이 준 지혜요 마귀적 정욕적이라고 말합니다.
어느 여학생이 동료 학생들을 구타할 때 쾌감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나폴레옹은 자기 어머니의 칭찬을 듣기위해 세계를 정복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폴레옹에게는 두형제가 있었는데 형님은 키가크고 늘점잖은데 동생은 키도작고 성격도 못되어 가는곳마다 문제를 일으켜서 그어머니의 미움만 샀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자라면서 "두고봐라 형님보다 얼마나 큰일을 행하는가!"하고 이를 앙달물고 살았다고 합니다. 자기 어머니를 놀라게 하기 위하여 유럽을 정복했습니다. 자기 어머니의 인정을 받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자기 만족입니다. 자기정욕입니다.
히틀러가 그렇고 김일성이 그렇습니다. 김정일이 그렇습니다. 신포에서 경수로를 하고 있는 한국 근로자들을 4일째 구금하고 생떼를 부립니다. 지금의 우리 정치사에도 자기 정욕으로 물고 물리고 악순환을 계속합니다. 정욕은 우리의 무서운 적입니다.
"오직 각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약1:14)
인류의 진정한 평화는 인간의 탐욕과 욕망의 온상인 정욕을 정복하지 못하고는 전쟁과 평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을 분노의 감정으로 싸우고 다투어 결국은 넘어지도록 하는 주동은 우리속에 정욕을 통한 거짓된 욕망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을 통하여 우리 속에 있는 욕심과 탐심에 불을 지르고 있습니다.
1.잠재울 수 없는 정욕
약4:1"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싸우는 정욕이란 활동하는 정욕이란 뜻입니다.
루시안은 "인간에게 닥쳐오는 모든 악,혁명과 전쟁,몰락과 대학살은 욕망으로부터 솟아난다. 이 모든 것들은 샘의 원천보다 더 맹렬한 욕망을 지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정욕이란 쉴줄을 모르고 잠잘 줄 모릅니다. 이 세상 모든 동식물들은 수면을 취합니다. 그러나 수면을 모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정욕이란 것입니다. 이 정욕은 꿈속에서도 작용하는 것을 봅니다. 잠자리에서 불륜의 잠꼬대를 인하여 이혼 사유가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정욕은 쇠하여 멸하는 법이 없습니다. 죽어 땅에 묻히기 전에는 본성으로부터 솟아 나는 정욕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프로이드는 이 힘을 리비도라고 말했습니다. 이욕망는 쾌락으로 권력으로 그 힘을 발휘합니다.
정욕의 특성은 육체적이요 세속적인 욕망입니다.
자기만을 생각하는 마음이 정욕입니다. 나의 유익,나의 평안,나의 안일만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습니다.
정욕이란 현재적인 것입니다. 현재만 생각합니다.
정욕은 자신 속에서도 활동하고, 이웃 사이에서도 활동하고, 국가간에도 활동합니다.
정욕은 처음에는 마음속에 갈망으로 있다가 활동하기 시작하여 무의식중에 또는 꿈속에서 생각을 지배합니다. 그리고서 감정을 충동하고 상상의 세게로 들어갑니다. 상상속에서 욕망을 충족시키는 과정과 결과까지 각본을 짭니다. 그 각본 속에는 방해자를 제거하는 것까지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귀는 그 상상력을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고 결국은 자기가 원하는 목적을 위하여 행동을 개시합니다.
2.채울 수 없는 정욕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느니라(4:2)"
욕망은 채워질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1)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야고보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말씀하 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세상적인 것으로는 채울 수가 없습니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세 상의 우물을 통해서는 진정한 만족과 기쁨은 없습니다.
탕자가 아버지 집을 떠나 창기와 함께 행복을 추구해 왔으나 결코 그는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전도서 기자는 채워도 채워도 족함이 없고 먹어도 먹어도 배부름이 없다고 말합 니다.
2)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가인에게도 이 시기의 욕망이 동생을 살해합니다.
*형제의 다툼/롯과 아브라함의 다툼(창13장)
*부자간의 다툼/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에게 싸움을 걸었다(삼하13-18장)
*주님의 제자의 다툼/제자들의 다툼(눅9:46-48)
*교회안에서 다툼/고린도교회 (고전6:1-8)
결국은 욕심을 채우면 채울수록 더욱 공허하고 만족함이 없음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우리가 욕망의 노예가 되고 포로가 될 때 정욕을 채우기 위하여 남을 살인하게 되고 극단적으로 시기하고 질투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3.기도응답을 막는 정욕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합이라"(4:2하)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는 믿는 성도들이 기도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받기 위해서는 기도라는 과정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욕망에 사로잡혀 기도조차할 수 없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구하여도 정욕으로 쓸려고 잘못 구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정욕으로 구한 것은 마치 아내가 정부와 즐기기 위해 유흥비를 남편에게 청구하는 여인과 같은 것입니다. 이런 여자의 요구를 들어주는 남편이 있다면 오히려 여자를 사랑하지 않거나 차라리 그 남편에게 가기를 원하는 남편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정욕으로 쓸려고 잘못구한 성도들의 기도를 들어줄 수가 없습니다.
1)나의 뜻을 주님의 뜻에 일치하여 기도하라.(눅22:42)
요일5:14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2)변화를 통해 주님을 기쁘게 하라.
요일3: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다른 사람이 변해야 한다고 우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실수와 자기변화를 가져온다. 미운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 그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3)말씀을 순종하라.
요15:17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매말이 너희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결론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은 우리속의 정욕입니다. 이 정욕은 사탄의 공격 목표입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무너지게 할 대상은 내속에 남아 있는 욕망의 덫입니다.
1.자기 실존에 대하여 정직하시십시오
롬7:15-24/ /갈5:17성령의 소욕/육의 소욕이 다툼
롬8:1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
2..정과 욕을 십자가에 처리해야 합니다
갈5:24
그리스도 에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3성령을 쫒아 행하라.
갈5:16
"내가 이르노니 성령을 쫒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