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에서 백두대간 얘기를 또 해볼까 한다.
백두산에서 뻗은 산줄기는 13 정맥과 1 정간을 만들고 거기서 또 수많은 산줄기와 물줄기들이 갈라지고 이어져 우리나라의 국토를 이루고 있다.
사람으로 말하면 대간은 척추이고 나머지 산줄기는 팔, 다리, 갈비뼈이고 물줄기는 혈관과 같다. 사람도 자신의 몸을 알아야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고 그에 따른 건강한 정신을 갖는다.
마찬가지로 우리 산줄기, 물줄기 또한 한발 한발 밟으면서 알아가고, 보호. 관리하면 이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그중 한 곳이라도 상처가 나고 병이 든다면 몸이 아프 듯 산줄기도 훼손되고, 끊어지고, 막힌다면 아픔을 넘어 그 의미를 잃고 사익의 대상으로만 전락할 것이다.
다음 대간 산행지인 삽당령~백봉령구간에서 다시 얘기가 나오겠지만 자병산과 함께 오늘 산행구간인 삼양목장 또한 대간을 훼손한 대표적인 지역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렵고 배고팠던 시절 국민들의 영양 공급을 위해 분유를 생산 공급했던 곳이다. 당시 대간의 개념도 없었고 여유 있게 등산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라 지금의 시선으로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대간이라는 개념이 보편화되어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사유지라는 것 만 고집하지 말고 목장으로 산의 기능이 손상되었다 하더라도 굳이 산행을 막고 제한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이 지역을 지날 때마다 마치 범죄자처럼 도둑산행을 해야 하니 말이다.
한발 더 나가 나라에서도 생태보호가 목적이겠지만 차라리 야간산행을 금지하고 대신 대상 구간에 등로를 정비한 다음 신고 또는 허가제를 도입해서 국민들이 우리 백두대간을 즐기고 알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어떤지 생각해 볼일이 아닌가 싶다.
진고개, 니현(泥峴). 비가 오면 땅이 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새벽에 비소식이 있고 아침 이슬에 신발이 젖을 수 있어 춥기도 하니 모두 우의들을 착용하였다.
올 듯 올 듯한 비가 오지는 않는다.
이제부터 나무 계단이 끝나고 비교적 편안한 길이 노인봉까지 이어진다.
노인봉 삼거리. 어두워 경치는 볼 수 없지만 그래도 노인봉에는 다녀와야겠다.
늘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인데 새벽이라 그런지 정상은 고요하다.
산이름이 사료에 나타나지 않아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산삼을 캐기 위하여 치성을 드리면 노인이 나타나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는 전설과 산정에 기묘하게 생긴 화강암 봉우리가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백발의 노인처럼 보인다고 해서 노인봉이라 불렸다는 속설이 「강릉시 사」에 기록되어 있다.
황병산 정상의 불빛이 소황병산 갈 때까지 어두운 산길의 길잡이를 해 준다.
다시 삼거리로 내려와 대간 분기점인 무인 대피소로 향한다.
대피소 앞 목책뒤로 진행해야 한다. 길은 비교적 뚜렷하지만 야간이라 집중해야 한다.
무인대피소에서부터 오는 동안 이정목도 없고 등산객들이 달아 놓은 시그널도 별로 없었다.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무사히 이곳 소황병산 초소까지 왔다.
이곳 초지에 소황병산 인조 표지목이 있는데 후미이고 날도 어두워 찾으려고 조금 둘러보다 그냥 지나쳤다.
백두대간을 보호하는 방법?
대간 산행을 안 할 수는 없으니 지정된 등로를 만들어 놓고 야간 산행을 없애고 출입금지를 없애면 우리 산을 좋아하는 산꾼들이 더 자연보호를 할 텐데...
이제 오대산 국립공원은 이 목책이 있는 여기가 끝이다.
소위 삼양목장 사유지로 들어선다.
이 목책이 나오면 우측에 보이는 임도로 가지 말고 좌측 임도 흔적이 끝나는 곳에 매봉으로 올라가는 희미한 등로가 마루금을 따라 있다.
이제야 어둠이 걷히고 강릉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구름은 잔뜩 껴 있으나 온다는 새벽비는 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러나 바람이 부니 추위를 느낀다.
지금부터는 오롯이 목장길을 걷게 되는데 간혹 목장에서 사유지라고 단속을 하나 보다. 걸리면 입장료도 받고 목장에서 내쫓기기도 한단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하다니 공산당도 아니고....
우리 회원 중 과거 그런 경험이 있어 그때부터 이 라면은 절대 안 먹는다고 한다. ㅋㅋ
어쨌든 대간길은 없어졌지만 새벽 목장의 푸른 초원의 모습은 이국적이기도 하고 가슴이 탁 틔이는 시원한 느낌을 주는 건 사실이다.
↑ 지나온 매봉을 돌아본다
↑ 황병산은 구름에 가리고 소 황병산만 이곳을 보고 있다. 우측 매봉.
드디어 동해전망대에 왔다.
지난 대간 때는 우중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는데 오늘은 좀 다르다.
조금은 흐렸지만 동해 전망대이니 동해바다를 내려다본다.
일출장관, 망망대해라 쓰여 있는데 일출은 보지 못했고 망망대해라 했는데 바다인지 구름인지 하늘인지 구별이 없다.
황병산은 아직도 구름 속.
앞 봉우리 곤신봉과 뒤 선자령이 눈앞에 들어온다.
길가에 있는 곤신봉 정상석.
곤(坤)은 땅을 뜻할 테고 신(申) 평평하다는 뜻이니 산이라도 솟아있지 않은 듯하여 붙인 이름인가?
「강릉시사」에 의하면 곤신봉은 강릉부에서 볼 때 거의 서쪽, 즉 전통적 방위용어로 곤신(坤申)에 위치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참고로 곤신봉 동쪽 봉우리가 대궁산인데 그 위 대궁산성이 있다.
이곳의 이름이 ‘선자령 낮은 목이’ 이곳 왼쪽으로 강릉 보광리 보현사 내려가는 등로가 있다.
사실 곤신봉과 지금의 선자령의 사이 낮은 지역 이곳이 옛 선자령이 아닌가 한다.
지금도 몇몇 지도에 옛 이름 선자령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멀리 황병산도 구름이 걷히고 날씨는 맑아졌다.
왜 봉우리 이름이 선자령일까?
안내문에도 이유가 없다. 그냥 옛 선자령 위에 있는 봉우리.
주변 산을 둘러본다.
↑↓능경봉과 골폭산 뒤로 노추산일 테고석병산 뒤로 멀리 청옥과 두타가 그리 멀지 않게 보인다.
가운데 발왕산 왼쪽 상원산 우측은 평창 두타산 그리고 뒤엔 백석산 같다.
가리왕산은 발왕산 뒤에 숨었다.
가운데 멀리 청옥과 두타가 보이고 우측으로 고적대에서 뻗은 중봉산?
오늘 산행의 마지막 전망대인 새봉에 도착. 오늘의 산행도 거의 끝나간다.
끝으로 전망 한번 더 즐기고 부지런히 하산해야겠다.
배가 고프다....
강릉시내가 더 깨끗하게 보이고 하늘과 맞닿은 동해도 고요하다.
능경봉에서 흘러내린 제왕산과 그 뒤로 칠성산.
나무 끝에 걸려있는 석병산 우측으로 두타, 청옥, 고적대.
능경봉과 골폭산. 가운데는 노추산.
도상거리 26km가 넘는다. 이래저래 30km 가까이 될 것 같다.
어려운 구간은 아니나 거리 때문에 인내력이 필요한 구간이다.
산행은 이와 같이 인내가 필요한 활동이다. 우보천리라 했다. 시작할 때는 언제 도착하나 했지만 한발 한발 딛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내가 가끔 하는 얘기. “시작해야 끝이 있고 출발해야 도착한다.”
시작과 출발해도 그 여정은 늘 힘들다. 그러나 그 끝과 도착에서 느끼는 만족은 그동안의 어려움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아주 작은 이탈이 있었지만 모두 무사히 즐거운 표정으로 산행을 마쳤다.
모두 산행의 구력이 붙어 입산만 하면 산사람들이 되는 걸 보면 나도 거기에 묻어갈 수 있어 기분이 좋다.
갑자기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가 생각난다. 가사가 뭐였지?
첫댓글 전설따라3000리?
30000리?
뭐 암튼
역쉬 공부는 복습이 쵝오~^^
절대 독수리 아님
이럴수가 없거든
저도 그 라면 안먹어요
맛없어서
심곡님 산행기를 읽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지나온 산들이 다시 마음에 들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