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아이들을 만난 것은 94년 7월 말경이다. 새벽기도차 교회에 들어갔을 때, 7-8명의 아이들이 엉겨 자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아이들을 깨워 집에 가서 자라며 내 보냈더니 아이들은 계단을 채 다 올라가지도 못하고 다시 쓰러져 자는 것이었다. 그 때서야 안된 마음이 들어 아이들을 다시 들어오라 하여 재웠다. 아이들은 낮 12시 가까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밥을 먹여 내보내며 밖에 나와서 고생하지 말고 집에 들어가라 당부를 하였다.
그 이후로 아이들은 툭하면 교회로 스며들었다. 그냥 얌전히 잠을 자고 가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완전 난장판을 만들어놓고 갔다. 급기야 몇 무더기 볼 일(!)까지 본 것을 발견하고 더 이상 아이들이 들어올 수 없도록 셔터문을 내리고 굳게 자물통을 사서 잠갔다. 그 이후로 아이들은 교회로 들어오지 못했다. 종종 아이들의 소문이 들렸지만 그저 귓등으로 흘렸다. 한 달쯤 지난 10월 9일, 우리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교회 옆에 있던 안산서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운동을 나갔다. 아이들은 운동장 옆 계단에 오종종 앉아있다 우리를 보고는 쪼르르 달려왔다. 팔짱을 끼고 아침밥을 사달라고 졸랐다. 아침밥을 먹여보내면서 저녁에 오라고 초청을 했다.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지금까지는 아이들을 그냥 "참 이상한 녀석들이야"라는 정도였다면 10월 9일 아침 처음으로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것일까? 저녁을 먹고 이불을 깔고 앉고 눕고 했는데 아이들은 자기들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어떻게 집을 나오게 되었는지, 거리에서 어떻게 먹고 살게 되었는지...아이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서로 먼저 하려 싸우기도 하고 이야기에 이야기를 보태기도 하며 빼기도 하면서 밤이 깊어갔다. 아이들은 11살에서 13살 어린 아이들이었다. 남자 아이 6명 여자 아이 2명, 8명이었다.
"처음에는 저하고 누나하고 가출했거든요. 00가 제 동생이예요. 자꾸 따라오는 거예요. 할머니한테 잡혀서 끌려가기도 했는데 지금은 신경도 안써요."
"우리가 처음에는 안산역에서 놀았어요. 심심하잖아요. 저녁때까지 누가 돈을 많이 훔치나 내기를 했는데 처음에는 P가 왕을 먹었는데, 나중에는 K가 왕 먹는 때가 제일 많았죠. 원선파출소 김순경한테 걸리면 옥상에 끌려가서 작살이 나요."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깔깔대기도 하고 훌쩍거리기도 하면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밤 늦도록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들과 일주일 동안 시간을 함께 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이들을 좀더 알고 싶었다. 아이들과 함께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찾아보기로 하고 먼저 아이들 집과 가정을 방문하기로 했다.
우리가 10월 9일을 들꽃창립기념일로 삼는 것은 이 날 비로소 아이들과의 만남이 이뤄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만남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굳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사람은 그 마음을 안다. 밤새도록 아이들 이야기를 들은 1994년 10월 9일 밤을 들꽃의 출발점으로 삼는 이유. 비로서 만남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쓴이 : 들꽃청소년세상 김현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