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킹 목사가 아니라 풋볼 코치일 뿐이야”
새영화 리멤버 타이탄
플로피 디스크가 처음 개발됐고, 뉴욕과 런던 간 직통 국제 전화가 가능해졌으며, ‘죽의 장막’을 쳤던 중국이 마침내 UN에 가입했던 해. 그러나 미국에서 1971년은 여전히 흑백갈등으로 내환을 앓던 해다. 보아즈 야킨 감독의 ‘리멤버 타이탄’(Remember The Titans . 14일 개봉)은 그때까지 따로 교육받던 흑인과 배인 학생을 흑백 통합정책에 따라 한 학교에 모음으로써 생겨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한복판에서 시작한다.
허먼 분(덴젤 워싱턴)은 미국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시의 T.C.윌리엄스 고교 미식축구팀 ‘타이탄스’ 감독으로 부임한다. 그 지역 배인 고등학교에서 오랫동안 미식축구팀 감독을 맡았던 빌 요스트(윌 패튼)가 조감독으로 밀려나자 백인들은 불만을 품는다.
백인들에 의해 흑인 어린이가 피살되는 사고마저 일어나 흉흉한 와중에, 허먼은 빌의 도움을 받아 팀내 흑백화합을 시도하며 팀을 단련시켜 나간다.
미식축구를 소재로 삼은 스포츠 영화로 본다면 ‘리멤버 타이탄’은 장정보다 단점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최근에 등장한 미식축구 영화들과 비교할 때, ‘리프레이스먼트’만큼 유머를 지니지 못했고, ‘그들만의 계절’처럼 상큼하지 못하며, ‘애니 기븐 선데이’에 비해 박진감이 떨어진다. 마지막 게임을 제외하면 경기 장면의 세세한 묘사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 이 영화는 대신 감돋적인 드라마에서 승부를 걸려 한다.
‘허리케인’으로 마땅히 작년 아카데미에서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안았어야 했던(‘아메리칸 뷰티’의 케이 스페이시가 수상) 덴젤 워싱턴은 이 영화에서 엄하지만 속 깊은 아버지처럼 선수들에게 삶과 화합을 가르치는 감독 허먼역을 인상적으로 해냈다. 훈련대상을 다그치는 조련자 연기야 사실 새로울 것도 없지만, 워싱턴은 타고난 카리스마로 스크린을 장악한다.
인종갈들을 핵심으로 다루고 있지만, 주목할만한 것은 허먼이 그저 충실한 스포츠인이었다는점. 부임 직후 흑인들의 환호성에 “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아니라 풋볼 코치일 뿐”이라고 말했던 허먼이 결국 어느 정치인도 해내지 못한 화합을 이뤄내는 과정을 지켜보다보면, 정말 중요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한 성실임을 깨달을 수 있다.
화합과 감동을 향해 예정된 수순을 밟아나가는 이 영화의 화법은 구식인 듯 하고, 종종 낯간지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리멤버 타이탄’이 실화를 옮겨낸 작품이라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종종 현실은 허구보다 훨씬 더 촌스러운니까. ( 이동진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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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타이탄
제리 브룩하이머 감독, 덴젤 워싱턴 주연 14일 개봉
“그라운드에 흑백은 없다”
통합된 흑인·백인 학교 미식축구팀
끈근한 팀워트로 인종갈등 극복
빛나는 15연승 신화 일궈
71년 미 TC윌리엄스고교 실화
우리말로 옮기면 ‘타이탄들을 기억하라’쯤 될 ‘리멤버 타이탄(원제Remember The Titans)’은 미국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에서 일어났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그러나 내용은 어느 영화보다 드라마틱하다.
전 미국이 인권운동으로 홍역을 앓던 1971년 알렉산드리아시는 흑백 갈등을 완화시킬 목적으로 백인학교와 흑인학교를 통합시킨다. 이 지역의 자랑인 TC윌리암스 교교의 미식축구팀 타이탄스(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거인신을 뜻함)도 흑백 선수가 뒤섞인 팀이 된다.
힘자랑하고 싶어 온몸이 근질근질 한 덩치들에게 흑백 갈등의 불씨까지 떠안긴 타이탄스는 시한폭탄 같은 팀이 된다. 여기에 원래 타이탄스를 이끌던 백인감독 빌 요스트(윌 패튼)가 코치로 밀려나고 흑인인 허만 분(덴젤 워싱턴)이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백인사회는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새 감독은 “나는 흑인도 백인도 아닌 미식축구 감독이다. 내게서 민주주의를 기대하지마라. 오직 독재만 있을 뿐”이라고 외치면서 선수들을 극한 상황으로 몰고간다. 개인플레이만 펼치던 선수들은 결국 생존(?)을 위해 몸으로 팀워크를 익히고 점차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감독에서 코치로 밀려난 요스트는 승부 근성이 투철한 허만의 든든한 후원자가 돼주고 결국 땀과 눈물로 맺어진 타이탄스는 15연승이란 놀라운 결과를 통해 알렉산드리아 시에서 인종갈등을 추방한다.
영화 속 두 가지 코드, 미식축구와 흑백갈등은 철저히 미국적인 것이다. 미식축구가 미국인들에겐 일종의 제시고가도 같이 신성한 것이라면 흑백 갈동은 그들의 영혼에 낙인처럼 찍힌 치욕스러운 상처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를 통해 그들이 가장 감추고 싶어하는 상처를 치유해낸 기적은 보편적 감동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덴젤 워싱텅과 윌 패튼, 두 주인공은 오늘날 상업 스포츠에서 찾기 어려운 고전적인 영웅상을 보여준다. 링컨의 명연설이 있었던 게티즈버그의 묘역에서 덴젤 워싱턴의 연설은 이를 힘차게 증언한다.
“여기서 죽은 5만명의 증언이 들리는가. 내 원한이 형제를 죽였고, 내 증오가 가족을 파괴했다. 죽은 자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하다면 여기서의 비극은 다시 반복될 것이다.”
‘더록‘, ’콘에어‘ 등 철저히 대중적인 흥행대작을 만들어온 제리 브룩하이머 사단에서 제작. 미국에서 1억달러가 넘는 흥행성적을 올렸다. 14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권재현 기자)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