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빨간 등산 조끼
2006년 3월 5일
일기처럼 기록했던 <만보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운 좋게 ‘에세이작가100인총서’에 선정되어 실리게 됐다.
출판사와 계약하는 날,
총서의 특성상 표준화된 출판 방침에 따라 표지 전면에 나 ~ 만보의 얼굴이 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직장 흰돌모임(부부 동반 동우회) 청계산 산행하는 날, 산봉우리에 올라 윤석준 선배(이대자연사박물관 근무)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가 살아생전 입으셨던 빨간 등산조끼를 입고 사진 촬영을 해 출판사에 보냈다
생전 아버지는
술을 전혀 못하시기 때문에 허튼 곳에 낭비가 없으셨던 검소한 생활을 하셨다. 다만 언제나 깔끔하고 단정하신 모습으로 유독 옷에 대한 집착이 강하셨다.
항상 유행을 따라가시는 패션 감각에 상황과 장소에 맞는 아버지의 스타일을 유지하시며, 멀쩡한 상태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싫증이 날 때쯤이면 자연스럽게 나에게 대물림되는 부자지간의 연결 고리가 되곤 했었다.
그렇게 물려 받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몇 벌의 옷…. 그 중 가장 애착이 가는 1970년대 장만하신 빨간 등산조끼는 당시 메이커로 다소 색이 바래긴 했어도 지금도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이 깨끗해 산행을 할 때 가끔 꺼내 입곤 했다.
이렇듯 아버지의 생전 체취를 흠뻑 느낄 수 있는 그 빨간 등산 조끼를 오늘 꺼내 입었다. 아버지 당신 아들의 이름으로 세상에 책이 나오는 길목에 서서….
2006년
큰녀석 준이의
졸업식 날 입었던
외투 또한
생전 아버지 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