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공간과 미적 거리
시적 대상과 미적 거리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에 대하여 시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무엇에 대하여’란 시의 주제, 시의 소재, 시의 제재, 또는 시의 대상에 대한 필자의 관심일 것이다. 일반인이든 시인이든 우리는 늘 나 자신이나 세계나 우주나 사물을 대하게 되고, 그것을 인식하고, 해석하고, 어떤 정서를 느끼기도 한다.
박물관엔 유물이 많다. 그러나 건축가는 과거의 건축양식에 관심이 많고, 역사가는 당대의 역사적 사실에 관심이 많고, 의류학자는 복식에 관심이 많고, 미술가는 유물들의 문양과 빛깔의 조화에 더 관심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은 박물관에서 어떤 부분에 관심을 갖게 될까. 어차피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에 대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글로 나타내는 것이다.
박물관에 대한 글은 이처럼 박물관을 보는 관찰자의 직업이나 인생관,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 표현하는 언술의 방법이나 능력에 따라서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시인이 박물관을 보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표현할 경우, 여타의 서술 방법과는 마땅히 달라야 하며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직업적 선입견이나 전문적 경험을 통하여 사물을 보고 이를 서술한다. 그런데 사물을 실용적이고 실제적이고 학문적이고 과학적으로 보려는 경우 논리적이거나 객관적인 문장으로 해석하고 평가한다. 따라서 이들과 유물들 간에는 주관이 배제된 냉정한 거리가 유지되고 객관성과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시인은 시적으로 사물을 보고 표현한다. 여기서 시적으로 본다는 것은 주관적인 순수한 심정에서 사물을 보고 미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주관적인 표현일 경우 그 대상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야 할 것인가, 가까이서 볼 것인가, 표면만 볼 것인가, 내면까지 볼 것인가 하는 거리의 문제가 제기된다. 여기서 이러한 거리의 문제란 결국 그 대상에 대한 내 감정의 개입을 어느 정도 함으로써 미적 표현이 성취될 것인가 하는 심적 거리를 말한다.
(1)
선(線)은
가냘핀 푸른 선은 ㅡ
아리따웁게 구을러
보살(菩薩)같이 아담하고
날씬한 어깨여,
4월 훈풍에 제비 한 마리
방금 물을 박차 바람을 끊는다.
그러나 이것은
천년의 꿈, 고려청자
-박종화 「청자부」에서
(2)
바다는 강물의 발목을 잡고
강물은 청산의 겨드랑을 잡고
청산은 하늘의 목숨을 잡고
해적선 노예들의 족쇄처럼
화인 맞은 엉덩이의 문신처럼
나는 당신의 폭력이 되고
당신은 나의 눈물이 되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물레방아
훠이훠이 날아가는 서역 구만리
-홍문표 「늘 푸른 강물이듯이 19」에서
(1)의 시는 고려청자에 대한 전문가의 감정이 아니라 시인의 새로운 해석이다. 특히 청자의 선에 대한 관심이 상징적으로 표현되었다. 여기서 전문가와 청자, 시인과 청자 간의 거리가 전혀 다름을 알 수 있다. (2)의 시는 모든 사물간의 거리 좁힘이다. 나와 너, 이것과 저것이란 물리적 거리를 완전히 제거한 무 거리의 세계에 대한 시적 열망이다. 이처럼 실용적이고 일상적인 관심을 벗어난 시인의 사물에 대한 주관적인 태도를 미적 태도(aesthetic atitude)라 하고, 시인이 표현하고 있는 사물의 거리를 심리적 거리(psychic distance)라고도 한다. 이러한 심리적 거리를 블로흐(Bullough)는 미적 관조의 대상과 이 대상의 미적 호소로부터 감상자 자신을 분리시킴으로써 즉 실제적 요구나 목적으로부터 그 대상을 분리시킴으로써 획득된다고 하였고 리처즈는 자기 개성이나 선입견에 맞지 않는 것이라도 이를 배제하지 않고 여러 가지 측면의 관심을 포괄하고 확대하면서 상반된 충동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결국 사물에 대한 일상적인 관심의 거리를 벗어나 순수한 마음으로 사물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는 행위나 시 창작의 태도가 미적 거리다.
첫댓글 그저 막연하던 것을 이론으로 명료하게 설명해주시어 감사합니다. 교수님.
시적거리ㆍ미적거리ᆢ
예문해석ᆢ즐감합니다
우교수님 평론시리즈 보면서 우교수님을 업그레드 하는 중입니다 ㅋ
그동안 인식했던 우교수님께 물리적 거리 좁히는 중ㆍᆢㅎ
물리적 거리~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가까워 지도록 애써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