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신의 선물이란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내게 찾아온 손님
“봄비“를 만나러 나는 길을 나섰다
세상이란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나가는 문을 찾지 못한 채 헤매다 눈 뜨면 자라나는 턱 밑에 수염 같은 한숨만 매단 채 하늘을 달려 봄의 녹음을 스쳐오는 비를 맞으며 난 걷고 있었다
목적지도 없이......
난 텅 빈 시간을 거리에 풀어놓은 채 다들 행복을 찾아 하루를 열어가는 사람들 틈으로 걸어가고 있었지만 내게서 언어는 사라져 가고 있었고
지하철 계단 끝 아래에서 조그만 여자아이가 아픔이란 나이테가 묻어있는 얼굴로 우산을 팔고 있었다
“우산 하나 얼마니?”
“5천 원이요”
“그럼 저건?”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만 갸웃거리는 아이를 보며 장사를 하면서 가격도 모르면 어떡하냐는 눈으로 바라보던 나에게
“엄마가 하시던 장사인데 아파서 대신..”
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한낮의 햇빛조차 얻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이를 보며 슬픔도 눈물처럼 따뜻할 순 없을까 라는 한 생각에 잠긴 채 난 그곳을 지나쳐가고 있었다
며칠 후,
봄비가 서둘러 귀가한 탓인지 비가 개어 장사를 마친 아이는 지하철 계단에 있는 노인에게 천 원을 건네주고는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 앞 보도블록 빈자리에 떨어지는 빗물과 정답게 이야기하는 소리가 내가 서 있는 곳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아기 물아! 너네들 여기들 다 모였구나 !“
한 뼘 더 커진 사랑으로 바라보던 아이는 상자를 가득 실은 할아버지의 손수레가 나타나자 단 몇 걸음이라도 고사리손으로 밀어주고 있는 아이의 모습 속에서
물음표가 가득했던 내 삶에 느낌표가 채워지며
그날 나는 잃어버렸던 나를 찾아가고 있었다
다음 날 ,
내 가난한 마음을 채워준 그 아이에게 나는 우유 하나를 건네고 있었다
내가 건네준 우유를 들고만 있던 아이는 맞은편 낯선 노숙인에게 그 우유를 가져다 주는 걸 보며
“너 먹지 왜? “
라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나에게
“저보다 더 필요할 것 같았어요”
라는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주 아는 아이를 보며
“내 눈에 비친 타인의 모습이 바로 나”
라는 걸 알아가며
내가 조금 양보한 그 자리 내가 조금 덜 챙긴 그 공간이 다른 이의 희망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그 아이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우산 하나 줄래?”
오천 원짜리 우산을 산 나는 오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네준 채 바쁘게 뛰어가고 있었다
어둠을 밀어낸 이 도시에 모든 선택과 결정이 사라져 버린 새벽이 왔다
어제의 생각이 데려다 놓은 오늘을 바라보며 난 또 걷고 있었다
벌써 내달려온 아침 위로
“돈을 찾아가세요”
라는 푯말이 써 붙여져 있었지만 그냥 말없이 지나치고 있었고
그날 나를 보게 해 준 그 아이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행복한 미소로 지나치고 있었다
봄비가 때 이른 새벽을 씻어낸 거리로 걸어 나온 아침이 고개를 내민 자리에 그때 그 꼬마 아이가 우산을 팔고 있었다
기억 못 하겠지 하며 다가간 나를 보자 반갑게 웃어 보이며
“아저씨 그때 돈을 잘못 주셨어요 “
아름다운 기다림으로 소녀가 건넨 45,000원을 넣어놓은 비닐봉지를 내려다보며 난 생각했다
진짜 행복은 많이 가져서가 아니라 가진 것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나의 태도의 문제였다는 걸....
엄마의 눈물로 꽃처럼 홀로 핀 아이를 보며 난 말했다
“그건 신의 선물이란다”
라고...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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