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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의 신조협려, 양과와 그의 문제..
조회 129608.12.16 01:21
양과와 그의 문제
(楊過和他的問題)
危令敦
이글에서는 주로 덕(德)과 체(體) 두 가지 각도에서 고아인 양과가 성장과정 중에 범하게 되는 착오와 그 개정의 방법을 토론하고, 소설 속의 개인과 집단의 관계와 더불어 소설에서 표현된 부권의식(父權意識)을 논해보고자 한다. 양과의 ‘과(過, 잘못)’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로 그는 원수를 아비로 섬긴 친아버지 양강을 당당한 영웅으로 생각하고 일념으로 그의 복수를 하고자 하였다. 아직 생부의 사인을 밝히지 못했다는 전제하에서 아버지를 역적이라 칭한 곽정을 죽이려 하였다. 문화적 상징이라는 각도로 볼 때 곽정은 바로 진정한 의미의 ‘아버지’였는데 그는 진정한 ‘아버지라는 이름’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양과의 성장에 있어 중요한 관건은 바로 ‘아버지’를 인식하여 그의 가치관을 받아들임으로서 사람들이 인정하는 ‘영웅’으로 성장하는데 있다. 다음으로 양과는 전진교를 배반하고 고묘파에 들어갔으며 사부를 아내로 맞아 ‘아버지의 이름’을 범하였다. 양과가 신조를 우연히 만나는 것은 이 ‘잘못’을 해결하는 관건이었다. 신조의 가르침을 통해 그는 고묘파의 음유한 영향에서 벗어나 새롭게 다시 남성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했으며 절세무공을 연성함으로서 소용녀를 앞지르게 되고 일대 종사가 되어 두 사람의 사도관계는 역전되게 된다. 그는 협의를 행하고 외적의 압박을 물리치고 나라에 공을 세워 그 균형을 맞춤으로서 그의 과실을 상쇄함으로서 다시 새롭게 사회에 받아들여지게 된다.
一.
양과의 문제는 그의 이름으로부터 그 실마리를 볼 수 있다. 소위 ‘과(過)’라는 것은 부친 양강의 잘못이 그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다. 또한 그의 소년기의 제멋대로의 오만함과 세속의 예법을 위반한 잘못을 말한다. 그의 문제는 ‘신통광대’한 황용이 말했듯이 두 가지 난해한 옭매듭에서 끌어낼 수 있다.
「하나는 그의 부친의 죽음의 원인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사부와의 문제예요.」(一是他父親的死因,一是跟他師父的私情 : 838)1)
양과는 《신조협려》의 주인공이면서 문제적 인물이지만 소설은 방법을 찾아내 그가 끌어낸 모순을 해결하고 매듭을 풀어내었다. 소설의 이야기시간은 20여년에 달하여 양과로 하여금 소년에서 장년으로, 주변인물에서 일대종사로 변모하게 하였다. 양과의 문제는 그가 경험을 닦는 것이 필요했고 차츰차츰 성장케 됨으로서 잘못을 교정할 수 있게 되었다. 바꿔 말한다면 양과의 문제는 모순의 해결 또한 모두 개인의 성장이라는 각도에서 고찰 할 수 있으며, 그리함으로서 소설속의 개인과 집단을 설명할 수 있고, 남성과 여성의 관계, 마지막으로 소설의 구상과 의식형태를 알아낼 수 있다.
개인의 성장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성장소설에2)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성장소설의 관념의 원천은 독일로, 그 역사, 문화적 특성에서 나왔기 때문에 본문에선 견강부회할 의도가 없으며 단지 그 중 하나의 관념을 빌려 양과의 문제를 분석하는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다.3) 흔히 말하는 성장소설의 배후에는 한 가지 신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소설속의 인물은 자아의 완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자아완성의 과정은 점진적이며 끊임없는 누적을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다. 이상적인 개인의 성장은 덕(德, moral), 지(智, intellectual), 체(體, physical), 정(情, emotional), 영(靈, spiritual)과 같은 각 방면을 포괄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에 개인은 마침내 성취가 있게 되고 성공적으로 사회에 융합해 들어가는 것이다.4) 양과에 대해 말하자면 도덕(德)과 무공(體)은 그의 ‘잘못을 고치는 것(改過)’과 성장의 두 가지 관건이었다.5) 이하의 토론은 이 두 가지 실마리를 따라 전개하고자 한다.
二.
토의하기 위해선 양과의 출신부터 시작해야 한다. 제 2회에서 등장할 때 소설은 그가 고아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4회가 되어서는 더욱 진일보하여 그가 유복자라고 말한다.6) 고아라는 상황은 일종의 결핍이다. 서술학(敍述學)의 각도에서 본다면 결핍이라 것은 양과의 이야기가 반드시 이 결핍을 통해 전개된다는 논술을 이끌어 낼 수 있다.7) 양과가 결여한 것 혹은 양과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2회는 우리에게 역시 한 가지 암시를 제공하고 있다. 이 회에서 가장 의외의 사건은 정신이 혼미한 구양봉이 처음 본 양과를 아들로 거두는 장면이다. 양과는 비록 양친을 모두 잃었지만 부친의 부존재가 이야기의 중점이다. 서독은 억지로 양과로 하여금 아버지라 부르게 하고 부친이 없다는 절박함을 보충해주겠노라 말한다. 양과는 주동적으로 아버지를 찾겠다고 한 적이 없었으며 의부 역시 스스로 원한 것이 아니었다. 바꿔 말 한다면 소설은 양과의 삶에서 결여한 것은 바로 부친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8) 그는 어떤 모습의 아버지가 필요했는가?
양과의 각도에서 본다면 구양봉은 무공이 비범했고 자신에게 잘 대해 줬으므로 물론 아버지가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하지만 소설의 로직을 통해 본다면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결코 무공과 사랑에만 의존하는 것처럼 간단치만은 않다. 말할 필요 없이 구양봉의 무술은 사문이었고 게다가 구음진경을 거꾸로 연마해 경맥이 역행하고 혈도가 위치를 바꿔 신지가 맑지 못하였으므로 이미 그는 아버지가 될 자격을 상실한 것이었다. 소설의 12회에서 구양봉은 “나는 누구지?”라고 반복해서 묻는다. 자신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장애가 있는 사람이 부친의 역할을 맡고 소년인 양과의 모방의 될 수 있겠는가? 소설은 분명히 낙관적이지 못하며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구양봉은 양과가 그와 동행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겠는가? 사실 구양봉은 등장할 때 거꾸로 다니는데, 자기 몸조차 똑 바로 볼 수 없다는 것은 가치관의 전도에 대한 은유이다.
구양봉의 의부역할은 엄격히 말해 과도한 점이 있다. 그는 몇 차례 등장해 임시적인 보호자 역을 맡다가 화산에서 죽게 된다. 소설이 그를 등장 시키는 것은 사실은 양과에게 아버지라는 주제를 인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데이비스(Robert Con Davis)의 관점으로부터 양과의 상황을 분석하는데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데이비스는 서양문학에서 서술과 부친의 결여와의 관계를 논하면서 호머의 서사시 《오디세이(The Odyssey)》를 예로 들었다. 그가 특별히 흥미를 가진 것은 시 속의 다음과 같은 일단의 유명한 대화였다. 오디세이가 바다위에서 표류할 때 여신 아테네는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묻는다. 「네가 정말 오디세이의 아들이냐?」 텔레마코스의 대답은 중의적이며 매우 세련되고 깊이가 있다. 「어머니는 확실히 그렇게 말했지만 전 아직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를 알아야지만 총명한 아들이라 할 것입니다.」9) 데이비스는 아버지라는 이 말이 《오디세이》에서 두 단계의 함축적 의미를 형성한다고 생각하였다. 첫 번째 단계에서 가리키는 것은 생리학상의 부친으로 텔레마코스와 오디세이가 서로 알아보는 일막의 장면이 그 한 예이다. 두 번째는 아버지는 문화적 규범의 상징10)이라는 것이다. 첫 단계의 의미의 ‘아버지’를 알아야만 집단이 인정하는 가치 관념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됨으로서 “총명한 아들”이 되는 것이다.
오디세이는 수양을 하여 아버지가 되었고, 왕으로서 권력과 지위를 가졌으며 일을 처리함에 주동적이었으므로 상징적 의미의 ‘아버지’라고 말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트로이성을 공격할 때 승리를 갈구하여 성의 수호신상을 훔쳐 달아남으로서 문명의 파괴라는 재앙을 부르는 잘못을 범했기에 천계의 처벌을 받아 해외에서 십년동안 유랑하게 되었다.11) 데이비스는 오디세이의 고난은 바로 일종의 징벌이며 또한 일종의 새로운 학습의 과정이라 생각하였다. 고간을 겪은 후에 새롭게 문명의 의미를 이해한 후에야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며 원래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었다. 상징적 의미로 말하자면 문화를 파괴한 오디세이는 단지 한명의 ‘아이’일 뿐이다. ‘아이’라는 상태의 의미는 피동적 상태이고 ‘피동(passivity)’이란 말의 라틴어 어근(passivus)은 ‘고통을 받아 낼 수 있는(being capable of suffering)’이란 뜻이다. 피동적인 인물은 ‘아버지’를 새롭게 인식하고 동일시함으로서 ‘아버지’라는 것에 들어가고 또한 이뤄낼 수 있다. 데이비스는 심리분석의 용어를 이용해 문화적 규범은 바로 ‘아버지의 이름(name of father)’12)이라는 것을 지적해 내었다. 구양봉이 아버지의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양과는 어떠한 모습의 아버지를 필요로 하였는가?
三.
양과의 이름은 곽정이 말한 “누군들 잘못을 하지 않겠습니까? 뉘우치고 고친다면 그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라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영웅대회에서 곽정이 양과가 소용녀를 아내로 맞으려는 잘못을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장면을 통해서 해석할 수 있다. 양과에 대한 명명은 그가 잘못을 범하기 훨씬 전으로, 이것이 실제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물론 양강의 잘못이다. 양과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자신은 전혀 모르는 치욕적인 낙인이 새겨져있었던 것이다. 곽정이 이름을 지어준 것은 아버지의 잘못은 아들이 이어받는 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양과는 자가 개지(改之)였는데 그 숨겨진 의미는 바로 양강의 과실을 양과가 고쳐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부친이 잘못이 있으면 아들의 인격조차 의심스러운 것이었다. 황용은 양과의 “본성이 나쁘다.”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지 않는가? 나중에 그녀는 이렇게 털어놓기도 한다.
「내 맘에 선입관이 생겼는데 그건 그의 부친이 악행을 많이 저질렀다는 점이예요. 결국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잖아요. 그래서 그를 믿지 않았어요.」(「我心中先入為主,想到他作惡多端的父親,總以為有其父必有其子,從來就信不過 他。」)
곽‧황 두 사람의 관점은 혈통론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은연중에 부친의 영욕은 아들의 영욕이기도 하여 회피할 수 없다는 정보를 내포하고 있다.13) 《오디세이》는 그렇지 않았는가? 오디세이가 멀리 떠나 돌아오지 않자 호색가가 기회를 틈타 안방으로 들어와 오디세이의 처 페넬로페를 욕보이려 하였다. 텔레마코스는 이를 참지 못하고 집을 나가 아버지를 찾아 나중에 그의 아버지와 힘을 합쳐 이 자를 죽이게 된다. 텔레마코스가 지키고자 한 것은 부친의 명예였고 역시 그 자신의 명예였다. 사회적 윤리 혹은 ‘아버지의 명예’라는 것은 동요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양과는 생부를 본 적이 없었고 또한 그의 사람됨을 알지도 못하였다. 그의 상상 속에서는 줄곧 아버지는 따를 만한 모범적인 정면(正面)의 인물이었다. 부친이 타살된 것을 알고 나서의 그의 반응은 복수를 해서 치욕을 씻는다는 것이었다. 양과의 복수에 대한 염원은 소설을 끌어가는 서사적 수준(diegetic level)에서의 사건 발전의 자발적 동기(auto-motive) 중의 하나다.14) 아직 생부의 사람됨과 사인을 규명하지 못했다는 전제하에서 양과는 사고의 입을 통해 아마도 생부는 황용과 곽정의 손에 죽었을 것이라는 점을 알아차리고 여러 차례 기회를 엿봐 복수를 하고자 하였는데 하마터면 큰 잘못을 저지를 뻔한 것이었다. 양과는 생부인 양강을 알지 못하고 복수를 하려하였으며 의부인 구양봉을 알지 못하면서 그를 아버지라 불렀는데 이는 모두 ‘원수를 애비로 삼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었다. 양강과 구양봉은 모두 《사조영웅전》에서 수많은 악행을 저지른 무림에서 받아들 수 없는 악역이었다. 신지가 맑지 못한 구양봉 조차 죽음을 맞이해서는 스스로를 알게 된다. 《신조협려》의 11회에선 구양봉이 화산에서 홍칠공과 싸울 때 제정신으로 돌아와 상대방을 가리키며 말한다. 「그는 구양봉이다. 구양복은 악인이다.」(422) 구양봉의 오묘한 말은 ‘아버지의 복수’를 짊어지고 있는 양과에게 복수의 과정 중에 결국은 진상을 회피할 수 없으며 생부의 진면목, 바로 「그는 양강이다. 양강은 악인이다.」라는 진실을 직시해야한다는 것을 예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양강이 비록 간접적으로 황용에게 죽은 것이지만 황용은 양과의 원수가 아니며 곽정과 양강의 죽음은 더욱 아무런 관련이 없다. 양강의 죽음은 일종의 인과응보였다. 즉 외래적 동기(hetero-motive)로 인한 것이지 결코 다른 등장인물의 행위로 인해 결정된 것은 아니다. 《사조영웅전》 36회에서 양강은 구음백골조로 몰래 황용을 공격하였지만 손가락이 전부 황용의 연위갑에 찔려 상처를 입게 되었다. 상처가 남희인의 독혈에 감염되어 양강은 이로 인해 중독 되어 죽은 것이었다. 남희인 등 강남오괴는 바로 양강이 설계한 독계에 걸려 죽음을 당했었다. 황용이 말한 「천망은 회회하구나」라는 말은 바로 이런 뜻이었다. 곽정 부부와 양강의 죽음이 무관함에도 어째서 소설은 진상을 밝히는 것을 지연해서 양과로 하여금 끊임없이 곽정, 그리고 황용을 죽일 기회를 찾게 하는 것인가?
곽정의 위치는 매우중요하다. 왜냐하면 그와 양강, 구양봉 세 명은 모두 아버지 역할의 후보자이기 때문이다. 곽정도 역시 2회에 등장하는데 양과의 대부(代父)를 맡으려 하였다. 그의 자격은 구양봉보다 뛰어난데 그 이유는 곽‧양 두 집안의 누대에 걸친 교류, 양강이 생전에 곽정과 맺은 의형제 때문으로 일반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곽정과 구양봉의 무공은 백중이었다. 그러므로 소설은 곽정이 양강의 사후에 대신해서 양과의 이름을 지어주는 장치를 안배한 것이었다. 나중에 두 사람이 다시 만나 곽정이 양과의 모친이 죽은 것을 알고 그를 데리고 도화도로 와서 키우게 되는 것이다.15) 영웅대회에서 곽정은 자신의 대부로서의 신분을 대중 앞에 표명한다. 양과가 소용녀를 아내로 맞겠다고 말하자 곽정은 대노해 꾸짖는다.
「난 너를 친아들처럼 여겨왔다. 네가 나쁜 일을 하고도 뉘우치지 않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겠다.」(我當你是我親生兒 子一樣,決不許你做了錯事,卻不悔改。」)
후에 양과가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자 곽정은 그를 거의 죽이려고 까지 하였다.
곽정이 대부의 역할을 맡는 것은 물론 줄거리 편집상의 고려이다. 소설은 다시 한번 양강의 죽음의 진실을 미룸으로서 주인공의 운명에 마음을 졸이고 각본과의 충돌을 경험하게 된다. 독자들이 빨리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양과가 잘못을 범하지는 않았는지? 그가 결국 곽정을 죽이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죽음의 진상에 대해 의심한 후에도 양과가 결국 손을 썼는가? 하는 것이다. 고아인 양과의 상황은 전통문학 속의 조씨고아(趙氏孤兒)처럼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것이다. 양과는 곽정의 ‘길러주고 가르쳐준 은혜’를 생각하는 것 뿐 만 아니라 자기가 선량한 사람을 오해해 죽이는 것은 아닌지 조마조마해 했다. 조씨 고아에게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한 이유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의부의 이십년간의 키워준 은혜도 생각해보지 않았으며 그를 체포하고 형을 집행하는데 있어 심리적은 부담도 전혀 느끼지 않았다. 조씨 고아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도안가(屠岸賈)가 죄가 크고 극악한 악역이었기 때문이며 그의 생부와 조부가 모두 무고하게 죽임을 당했기 때문일 것이다.16)
하지만 본문의 각도에서 본다면 소설은 곽정을 아버지의 역할로 안배함으로서 문화적 관념을 해설해주는 역할을 가지게 되었다. 양과는 사람됨이 세상의 규범을 따르지 않는 성미였지만 곽정을 죽이기 위해서 세밀하게 곽정의 행동을 관찰하게 된다. 곽정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영웅이었고 소위 영웅이라는 것은 종종 도덕적 영웅(moral hero)을 가리킨다. 도덕적 영웅과 녹림의 호한이 다른 점은 담력, 무예, 지도자로서의 자질 외에도 충성스러움과 공평무사함이라는 두 가지 특성을 도덕적 영웅은 가진다는 점이다.17) 양과의 성장과정에서 곽정은 바로 덕의 계발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곽정은 위인 됨이 정직하였지만 양강이 마땅히 죽어야 할 자였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양강의 죽음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게 됨으로서 양과는 생부의 사람됨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소설은 이렇게 양과의 심리 상태를 쓰고 있다.
「그와 아버지는 결의형제를 맺었으니 그 관계는 보통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의 손에 돌아가시고 말았다. 설마 아버지가 정말 죄가 너무 커서 용서할 수 없는 악인이었단 말인가?」 양과는 어렸을 적부터 부친이 협의롭고 영준하며 무공이 높은 천하제일의 호남아라고 생각해왔으므로 갑자기 아버지가 악인이었다고 인정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이미 어렴풋이 아버지가 곽백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매번 이런 생각이 일어날 때 마다 억지로 누르곤 해서 지금까지 이것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他和我爹爹義結金蘭,交情自不尋常,但終於下手害他,難道我爹爹真是個十惡不赦的壞人麼?」他自小想像父親仁俠慷慨,英俊勇武,乃是天下一等一的好男兒,突然要他承認父親是個壞人,實是萬萬不能。可是在他內心深處 ,早已隱約覺得父親遠遠不及郭伯伯,只是以前每當甫動此念,立即強自壓抑,此刻卻不由得他不想到此節了.)
인용문을 통해 양과는 곽정을 알아갈 수록 생부에 대해 더욱 의심하게 되었고 손을 쓰지 못한 것임을 볼 수 있다.
분명히 곽정이 바로 진정한 ‘아버지’인 것은 그가 책 속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가치관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그가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은 「위국위민, 협지대자(爲國爲民, 俠之大者.)」라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충성스럽고 공평무사한 ‘덕’이며 또한 대다수(漢) 사람들의 이익을 지키는 처세의 도리였다.18) 이에 그치지 않고 개인적인 측면에서도 곽정은 대협의 풍모가 있었고 자신을 버리고 남을 위해주었다. 예를 들면 21회에서 양과가 몽고군중에서 곽정을 죽이려 할 때 곽정은 몽고의 고수에 잡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양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던지고 이 때문에 그로 하여금 깊은 감동을 받게 하여 ‘예전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한다. 양과의 심리변화는 비록 설득력이 부족하지만 소설에서 말하는 비단 곽정의 행동이 올바를 뿐 아니라 공평무사하다는 점은 모두 양과로 하여금 진심으로 인정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양과의 성장에 있어 가장 중요한 관건은 바로 사회에서 받아들이는 가치관을 -‘덕’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기도 한- 깨끗하게 인식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런 전제하에서만 양과가 생부의 죽음의 원인을 모른 상태에서 잠시 소위 복수라는 것을 그만두게 됨으로서 첫 번째의 잘못을 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양과가 절세의 무공을 연성한 후에 협의를 행하고 외적의 침입을 막은 것은 곽정의 영향이 적이 않다. 양과가 협의를 행한 사적은 누차 곽정 부부와 무씨형제를 구해준 것 이외에도 33회의 「풍릉야화(風陵夜話)」에서 제 3자의 입을 통해 하나하나씩 말해진다. 외적의 침입을 막은 것은 36회에서 2천의 적을 섬멸하고 군량을 불태워 양양을 보위한 장거를 통해 알 수 있다. 39회에선 더 큰 공을 세워 천군만마 속에서 법왕을 이기고 곽양을 구하고 대칸을 죽이는 것을 단숨에 이뤄낸다. 몽고군이 물러나자 곽정은 양과의 손을 잡고 성으로 들어간다. 이것이 협지대자의 문제와 덕의 완성이라는 점은 백성들이 양과를 위해 술잔을 바치는 증거를 통해 볼 수 있다.
세상에 잘못이 없는 부모는 없다. 생부는 매우 간악한 자였고 양과 역시 그를 버릴 수는 없지만 스스로의 인격을 세우고 이름을 떨침으로서 그 과오는 약간이나마 덜어지는 것이다. 두 번의 공을 세우는 사이에 양과는 아버지가 묻힌 곳을 다녀오다 생부의 비열한 행동이 부른 참혹한 죽음의 과정에 대해 마침내 듣게 된다. 생부는 마음 씀씀이가 바르지 못하고 조국을 배반하고 백성에게 해를 끼친 곽정과는 정반대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비록 생부였지만 그의 가치 관념으로는 동일시하기 힘든 사람이었다. 양과는 부끄러움과 분노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가진악이 양과를 위로하면서 하는 말은 이치에 맞는바가 있다.
「양공자, 자네는 양양에서 큰 공을 세웠으니 자네의 부친이 비록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으나 그것을 덮고도 남네. 자네 부친도 구천에서 자네가 아버지의 과오를 씻어준 것을 기뻐할 걸세.」(楊公子,你在襄陽立此大功,你父親便有千般不是,也都掩蓋過了。他在九泉之下,自也歡喜你為父補過。」)
바로 양과가 곽정을 죽이지 않고 나라에 공을 세웠기에 비로소 그는 이때가 되서야 부친의 묘비를 다시 새울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구처기가 새긴 「불초 제자 양강의 묘」를 「선친 양강 부군의 묘」로 바꾸게 된다. 「불초」라는 것은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것이기에 묘비에 「불초자 양과 근립」이라고 새겨 넣었다. 이 때의 양과는 이름이 천하에 진동했고 양강의 잘못은 마침내 양과로 인해 그 과오가 씻어진 것이었다.19)
四.
양과가 양양성에서 백성들의 환호를 받을 때 수많은 생각이 스쳐지나 갔지만 가장 감개무량 했던 것은 소년시절과 ‘아버지’와의 얽히고설킨 관계였다. 그는 속으로 생각한다.
「20여 년 전 곽백부는 이렇게 내 손을 잡고 나를 종남산 중양궁에 보내 사부로부터 무예를 배우게 하였지. 나에 대한 백부의 지성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구나. 그러나 나는 오만하게 말썽을 피웠으며 사부와 교문을 배반하여 수많은 화를 불러일으켰다! 만약 내가 나쁜 길로 빠져 들어 갔다면 어찌 오늘 백부와 손을 잡고 성에 들어 갈 수 있었겠는가?」(二十餘年之前,郭伯伯也這般攜著我的手,送 我上終南山重陽宮去投師學藝。可是我狂妄胡鬧,叛師叛教,闖下了多大禍事!倘若我終於誤入歧途,哪有今天和他攜手入城的一日?)
여기서 말하는 ‘사부와 교문을 배반했다’는 것은 양과의 두 번째 잘못이었다. 당시 조지경이 진면목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양과의 반항과 교문의 배반, 교묘파로의 투신은 사부를 능멸하고 조상을 멸한 것과 마찬가지로 죄가 크고 극악한 행위였다. 양과가 처음 강호로 나왔을 때 규범을 몰라 사문을 배반했다는 것은 -‘아버지의 이름’을 범했다고도 말 할 수 있는- 자연히 그의 소년 시기의 주제가 되었다. 도화도에서 그는 이미 조사 할아버지를 거스른 전과가 있었다. 당시 가진악은 양과를 통해 구양봉의 행방을 알고자 했는데 양과는 죽어도 말을 안 들었고 오히려 가진악을 ‘늙은 장님’이라고 욕해서 곽정에게 따귀를 한대 맞고 도화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양과가 처음으로 사문에서 축출된 것이었다.
양과로 하여금 죄를 한층 더하게 한 사건은 나중의 소용녀와의 사랑이었고 게다가 하늘 높은지 모르고 공개적으로 그것을 표현한 것이었다. 당신이 아니면 시집가지 않고, 당신이 아니면 아내로 맞지 않겠다는 이 선언은 타인의 눈으로는 의심할 바 없이 사회에 대한 도전이었으며 인륜의 파괴였으므로 ‘패륜’ 혹은 ‘난륜(亂倫)’이라 할 수 있었다.20) 양과의 경솔함은 어쩔 수 없는 것일지라도 사부라는 신분의 소용녀 조차 세속의 예법을 알지 못하였다는 것의 결과는 상당히 심각한 것이었다.21) 소설은 다음과 같이 명확히 쓰고 있다.
「만약 두 사람이 한마디 말도 없이 세상 밖의 도원이나 궁벽한 시골이나 무인도에서 부부관계를 맺고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는다면 분명히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손실이 없는 것이었다. 다만 공연히 이토록 아무 거리낌 없이 멋대로 지껄이고 소란을 피우는 것이 도리어 세도인심을 어지럽히고 무림의 패류가 된 것일 뿐이었다.」(若是他師徒倆一句話也不說,在什麼世外桃源、或是窮鄉荒島之中結為夫婦,始終不為人知 ,確是與人無損。只是這般公然無忌的胡作非為,卻有乖世道人心,成了武林中的敗類.)
무림대회 전에도 이막수는 두 사람을 ‘패륜을 범했다’으며 ‘금수나 마찬가지인 짓을 했다’고 비웃었다. 대회에서 조지경은 그들을 ‘짐승’이라고 욕했으며 무씨형제들도 뒤에서 ‘사부지만 사부가 아니고 제자지만 제자가 아닌’ ‘개 같은 남녀’라고 욕했다. 두 사람의 애정이 공분을 자아낸 것은 데이비스의 해석으로 본다면 그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범했기 때문이다. 소용녀도 사부의 몸으로서 세속의 예법을 위반하게 됨으로서 양과와 아무런 차이점이 없는 ‘아이’로 전락했으므로 반드시 징벌을 받아야만 했다. 사실상 소용녀와 양과가 사랑한 것은 본문의 규칙을 어긴 것이었다. 28회의 동방화촉의 밤에 양과는 자신이 전진파의 반역자이고 소용녀는 고묘파의 반도라는 것을 잊지 않고 지적해내었다. 고묘파는 원래 남자 제자를 거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장문인이 결혼을 하는 것은 더욱 허락하지 않았다. 이 양대 규칙을 소용녀는 모두 지키지 않았고 이 때문에 한탄한다.
「우리 두 사람에게 재난이 계속 생기는 것은 죄가 많아서 생기는 인과응보일거야.」(「咱二人災劫重重 ,原是罪有應得」。)22)
어째서 양과의 이 두 번째 잘못은 그토록 심각하였는데도 오히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는가? 이 문제와 무예를 배운다는 것은 관련이 있다. 위에서 덕을 말하면서 이미 체의 문제를 언급했다. 양과는 고아로서 항상 「사람들의 천대를 받고 괴롭힘을 당했다.」무공을 모른다는 것은 결국은 일종의 심각한 결점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부친의 형상과 같은 자애로운 보호자를 동경했다. 소설은 이렇게 쓰고 있다.
「그는 두세 살이 되면서부터 그를 사랑해주고 보호해 주는 아버지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때로는 꿈속에서 자애로운 아버지를 만나는 일도 있었지만 깨고 나면 어디론가 간 곳이 없어 엉엉 운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他從兩三歲起就盼望有個愛憐他、保護他的父親。有時睡夢之中,突然有了個慈愛的英雄父 親但一覺醒來,這父親又不知去向,常常因 此而大哭一場.)
부친의 애정도 중요한 것이지만 보호라는 능력은 더욱 중요한 것이다. 양과의 무공에 대한 욕구는 그와 구양봉의 교류를 통해 볼 수 있다. 구양봉의 행위는 기이했고 양과는 처음에는 결코 그를 아버지로 삼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구양봉이 그의 독을 몰아내주고 사랑해주자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 뿌리를 찾아보면 양과가 구양봉의 아들이 되기로 결심한 것은 구양봉이 무공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구양봉은 몸을 낮추고 입으로 구구구 세 마디를 외치더니 손을 밀어 담장을 무너뜨려서 양과로 하여금 눈이 휘둥그레지고 혀를 내두르게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구양봉이 ‘평생의 가장 자랑스러운 무공’을 그에게 전수해주겠다고 한 것이었다. 업신여김을 겪을 대로 겪은 양과가 어떻게 감동받지 않겠는가? 그래서 구양봉이 떠나려 할 때 양과는 따라가고자 한 것이었다. 비록 구양봉이 그를 데려가지는 않았지만 양과는 그에게 일찍 돌아오라고 말한다. 심지어 구양봉이 간 후에 양과는 곽정 등의 사람이 구양봉의 무공을 꺼려한다는 것을 알자 속으로 좋아한다.
양과의 성장과정에 있어 그에게 무예를 가르치려 하지 않았던 사부들 모두는 의심과 적의에 차 있었는데 곽정, 황용, 조지경이 이에 속한다. 진심으로 무공을 전수하고자 해서 죽을 때 까지 은혜를 갚으려한 사람은 구양봉과 소용녀였다. 소설의 나중에는 사람들이 곽정의 제의에 부응해서 화산에 가서 홍칠공의 묘를 청소하게 된다. 산에 돌라 사람들은 홍칠공을 제사지내는데 양과만이 옛 정을 생각해서 홍칠공에게 절한 후에 소용녀와 함께 구양봉의 무덤에 가서 절을 한다. 구양봉이 가르친 것은 피상적인 것에 불과했지만 양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감격했었다. 소용녀는 고묘파 무공의 전부를 양과에게 전수했으므로 양과는 진심으로 감격했다. 양과의 삶에 있어 부족한 것을 소용녀는 남김없이 그에게 주었으니 생명의 은인과 같은 것이었다. 나중에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기는 했지만 양과가 기꺼이 생사를 함께하고자 했던 것에 보은의 성격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감격이라는 감정 역시 소설을 끌어가는 서사적 수준(diegetic level)에서의 사건 발전의 자발적 동기이며 양과가 기꺼이 세상의 가장 큰 터부를 무릅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23)
양과의 무공에 대한 갈구는 배고플 때 음식을 가리지는 않는 것이지만 역시 문제를 만들어 냈다. 구양봉의 무공은 본래 사문이었다. 게다가 구양봉은 아버지의 역할을 발휘할 수 없었고 양과에게 몇 가지를 가르쳤는데 양과는 이것을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을 보호하는데 썼지만 이로움보단 해가 많았다. 처음 발생한 것은 도화도에서 양과가 무수유 형제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 위급한 와중에 합마공을 써 자신을 지킨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무수문은 상처를 입었고 이는 또한 그와 구양봉의 관계를 폭로케 하여 가진악의 지팡이에 죽을 뻔 하게 만들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곽정은 도화도에 양과를 머무르게 할 수 없어 그를 전진교에 보내 무예를 배우게 하였지만 이로 인해 강호의 은원은 발생하게 된다.
양과와 전진교의 원한은 합마공과 관계가 있다. 양과는 척보기에 무공이 곽정에게 못 미치는 전진교 제자인 비열함을 더 할 수 없는 사부 조지경의 구타와 질책을 초래했다. 양과는 모욕을 참지 못하고 분노해서 사부의 식지를 물어뜯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구양봉이 전수한 내공비결의 영향이었다. 양과의 난폭함과 이런 종류의 화근 때문에 조지경은 비단 무공을 전수하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그를 좋게 보지도 않았다. 조지경은 그를 전진교의 비무대회에 참가하도록 안배함으로서 그를 추하게 만들고 사형인 녹청독에게 흠씬 두드려 맞게끔 하려고 하였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양과는 두 번째로 합마공을 썼는데 결과적으로 사형을 숨이 곧 끊어지게 만들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양과는 단지 도망 갈 수밖에 없었고 사문을 배반하여 소용녀 문하에 들어가는 일장의 풍파를 불러온다.
이 뿐만이 아니라 합마공의 도덕적 문제 보다는 고묘파의 성별의 문제가 양과에게는 진정한 문제였다. 소용녀가 그를 제자로 거두려 하자 양과는 자연히 감격을 금치 못하고 열심히 수련하게 된다. 그는 무공의 성별의 방향에 대해서는 대단치 않게 여겼다. 양과의 열정을 소설은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고묘파의 무공은 임조영으로부터 나온 것인데 삼대의 전인이 모두 여자였으며 옥녀심경은 더욱 남성적인(전진파) 무공을 제압하는 것이었다.24) 소설은 고묘파의 무공이 여성적인 측면을 뚜렷이 가지고 있으며 양과로부터 나오면서 어느 정도의 왜곡을 면할 수 없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사실상 양과가 옥녀검법을 펼칠 때에는 소설에선 이미 성의 왜곡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
「소용녀가 양과에게 가르친 초식은 모두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양과가 이에 정통한 후에는 자연스레 여성스러움은 사라지고 표일하고 민첩한 것으로 변해버렸다.」(小龍女教導楊過的架式,都帶著三分嬝娜風姿。楊過融會貫通之後,自然而然的已除去了女子神態,轉為飄逸靈動。)
무공의 성별의 문제는 양과가 미녀권법을 이용해서 달이파의 예봉을 막아낼 때 더욱 두드러 진다. 미녀권법에만 의지해서는 강한 적을 제압할 수 없었다. 황용의 가르침 하에 양과는 구음진경의 이혼대법을 써서 상대방을 미혹시키고 미녀권법에 따라 춤추게 했다. 이리 되니 두 남성의 비무는 미녀권법의 사용으로 인해 우스꽝스러운 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일로일소(一老一少)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작품은 그 장소에 있던 사람들로 하여금 거북해 마지않게 하였다. 다음을 들 수 있다.
「양과가 살짝 웃자 달이파도 따라서 웃었다. 그러나 양과의 뚜렷한 이목구비에 웃음이 더해지자 그 풍채를 더해 주었지만, 달이파는 광대뼈가 불거져 나왔고 뺨이 쑥 파인 얼굴에 양과를 따라 웃음을 짓자 보는 이들의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 때 양과는 미녀권법을 시전해 가며 연꽃을 따기도 하며, 버드나무처럼 하늘하늘 거리기도 했다. 달이파가 그대로 따라서 흉내를 내자 사람들은 놀랍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했다.」(楊過這麼一笑,達爾巴已受感染,跟著也是一笑。只是楊過眉清目秀,添上笑容,更添風致,那達爾巴顴骨高聳,面頰深陷,跟著楊過作態一笑,旁觀眾人無不毛骨悚然。……這時楊過將美女拳法施展出來,或步步生蓮,或依依如柳,達爾巴依樣模倣,只將眾人看得又是驚駭,又是好笑。)
소설은 양과가 소년이라 아직 ‘성’이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여자아이로 분장해 유희를 즐기는 것과 같으니 받아들일 수 있지 않느냐고 지적하는 듯 하다. 만약 그가 나이를 먹어서도 미녀권법을 쓴다면 달이파에게 쓴 것처럼 사람들을 의아해하고 웃게 만드는 효과가 있을까? 심지어 만약 그가 오래 동안 그렇게 지낸다면 동방불패처럼 「남자도 여자도 아닌 요물로 사람들이 볼수록 놀라게 만들지《소오강호》」 않겠는가? 성별의 애매모호함이 일으킨 부자연스러움과 심지어 공포감은 여기에서 남김없이 드러나는 것이다. 양과가 강호에 처음 등장했을 때 그 기교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지만 또한 동시에 그의 남성으로서의 주체성의 잠재적 위기를 폭로한 것이었다.25)
양과가 소용녀에게 무공을 배우고 ‘정’이라는 그물에 빠져드는 것은 소설에서 상당한 불안감을 이끌어낸다. 이 난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
五.
제임슨(Fredric Jameson)은 대중문화를 논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해 내었다.
대중문예는 결코 완전한 상품이 아니며 사회적 문제와 불안에 대해 각자의 처리 방식을 가지고 있다. 대중문예가 한껏 소홀히 하는 것은 유토피아가 가지는 요소에 대한 것이다. 불안한 사회가 초래하는 문제에 대하여 문학작품은 환상을 통하여 원만하게 해결하고 자 한다. 최후에는 원래 가지고 있던 사회질서를 회복하고 긍정함으로서 세상이 평온하다는 환상을 만들어낸다.26)
양과가 소설에서 소란을 만들었던 ‘패륜’이라는 것의 해결방식도 자못 유토피아적 색채를 지니고 있다. 위 글에서 지적했듯이 양과가 협의를 행하고 나라와 백성을 위한 사적, 이 모든 것은 그의 덕행이다. 비록 협의를 행함에 반드시 무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무협소설에서 무공이 없거나 혹은 무공이 뛰어나지 못하다는 것은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이며 정의를 펼친다는 것은 논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27) 양과가 나중에 수련한 내력과 무예는 바로 소설에서의 모순의 화해의 관건이다.
양과의 절세무공은 신조로부터 나온 것이다. 23회에서 양과가 처음 신조를 만나서 신조의 어려움을 보고 도와주게 되어 친구가 되게 된다. 나중에 양과가 곽부에게 팔이 잘리게 되자 혼란 중에 신조에게 몸을 맡기게 된다. 신조를 그의 생명을 구해주고 상승의 무공까지 전수해준다. 신조가 양과를 도와준 것은 자발적인 동기의 발동이었다. 하지만 신조의 출현은 역시 외래적 동기의 개입으로 볼 수 있다. 서술학의 각도로 본다면 신조의 역할은 ‘조력자(donor)’이며 그 목적은 주인공에게 대전환점을 제공하는 신물(神物, magical agent)인 것이다.28) 소설에는 두 가지 ‘신물’이 있는데 모두 같은 관계가 있는 것이다. 하나는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뱀 쓸개이고, 또 하나는 검마 독고구패의 거의 실전된 무공이다. 스승을 섬겨 무예를 배우는 것은 양과의 번뇌의 근원이었지만 신조의 출현으로 소설로 하여금 이 문제를 피할 수 있게 하였다. 검마는 이미 죽었으므로 양과가 그의 무공을 배우기 위해선 단지 신조의 유도에 의한 맞붙어 싸우는 중의 간접적인 학습만이 필요했다. 신조는 결코 인간이 아니기에 그를 따라 무예를 배우는 것은 사문의 배반이 아니었다. 항차 신조는 영성을 가지고 있었고 초자연적인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무술의 도덕적 체계로 볼 때 검마의 무공은 중립적인 것으로 정사와는 무관하였으므로 배워도 무방한 것이었다. 우리는 심지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무술은 공리성을 넘은 ‘무공을 위한 무공’에 가깝다고 말이다.30)
양과가 연마한 검마의 능력은 최소한 3가지 작용을 가지게 된다. 이 세 가지 작용은 모두 그의 입신양명을 위한 길을 마련해 주는 것으로 의식형태의 작용으로 봐질 수 있다. 첫 번째 작용은 양과로 하여금 협의를 행하고 외적의 침입을 막게 함으로서 사람들이 인정하는 가치관을 공고하게 하고 또한 그가 도덕적인 명성을 얻게 함으로서 이에 수반되는 무형의 권력을 얻게 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 작용은 양과의 남성주체를 건립하게 하여 세 번째 작용과 상관된 것에 도달케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와 소용녀의 배분 / 존비의 관계를 역전시켜 그리됨으로서 ‘난륜’과 ‘패륜’의 문제에 맞서고 심지어 해소시키게 함으로서 두 사람의 관계를 규범화시키게 하였다.
검마의 무공이 도덕의 문제에 있어 구양봉의 합마공과 다르다면 성별의 문제 있어 소용녀의 고묘파의 무공은 마찬가지로 검마의 무공과 뚜렷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검마의 무공과 고묘파 무공과의 차이가 의식형태상에서 가장 큰 작용을 한 것은 양과의 무공의 방향을 변화시키고 그의 남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시켰다는 점이다. 조‘형(兄)’의 가르침이 없었다면31) 양과는 아마 여성성(무공)을 탈피하지 못했을 것이며 남성으로서의 제일보를 내딛지 못 했을 것이다. 소설은 비록 검마의 성별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그의 무공의 남성적 형상은 그 묘사가 생동감 있다. 양과는 신조를 따라 연공을 하고 배운 것은 결국은 강맹한 무공이었는데 이는 고묘파의 무공과는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것이다. 고묘파의 무공이 「부드러움이 넘치지만 중후함이 부족하고(215)」, 「가벼움과 부드러움이 있지만 위맹함이 부족한(517)」것이었다면, 검마의 무학은 강맹하여 양과의 ‘음허(陰虛)’함을 보충해 줄 수 있었다. 신조와 양과의 연공은 참새를 잡을 필요 없이 시작하자마자 7〜80근의 현철중검을 들고 그를 산의 홍수 속에 몰아넣고 경력을 연마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강조하는 기력, 중병기의 딱딱한 공부는 고묘파에서 가르치는 민첩하고 신속한 초식과는 확실히 천양지차가 있는 것이다. 수개월의 고련을 거듭하고 양과가 산에서 나오게 될 때에는 이미 큰 차이가 생긴 뒤였다.
「힘과 지혜를 겨루다(鬪智鬪力)」를 제목으로 삼은 27회에서 양과가 겨룬 것은 힘이다. 당시 소용녀를 포위 공격한 사람은 모두 남자였지만 양과는 다시 여성적인 무공으로 그들과 겨루지는 않고 더군다나 경공을 통해 회피하지도 않는다. 이 회는 간결하고 호방하게 양과가 음유함, 민첩함과는 완전히 대립적인 양강하고 둔탁한 무공을 사용하는 것을 묘사했는데 이는 바로 그의 남성성의 주체적 선언이다. 유의해야 할 점은 몇몇 중병기를 사용하여 맞선 사람은 가장 비참하게 패했다는 점이다. 니마성은 십 여근의 철장을 사용했는데 양과의 일격에 이십 여장을 날아갔다. 게다가 니마성은 괴장에 의지해 지탱하려 해보았지만 양과가 검으로 그의 어깨를 눌러 끊임없이 땅속으로 들어가서 꺼낼 수 없게 되었다. 금륜법왕의 금륜은 양과에게 쪼개져 버렸다. 더욱 낭패인 것은 나중에 금륜법왕이 땅에 쓰러져 있을 때 양과가 검을 휘둘러 법왕의 두 제자의 금저와 철선을 깨버리게 한 것이었다. 양과의 기력은 그야말로 천하무적이었고 조사인 구처기조차 양과의 대단함을 인정하게 하였다.
「양과, 너의 무공이 이런 수준에 이르렀으니 우리들은 한참 못 미치겠구나.」(「楊過,你的武功練到了這等地步,我輩遠 遠不及。」)
양과의 무공의 큰 진전은 그의 남자로서의 신분을 확정시킨 것 외에도 또 한 가지 중요한 작용을 가진다. 양과는 강호에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고 그의 무공은 소용녀를 뛰어넘은 것이었다. 비록 두 사람은 명목상에 있어서의 원래의 사도관계를 역전시키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무학에 있어서의 양과의 성취는 바로 남존여비의 사회적 관습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사실상 소용녀의 사부로서의 신분은 이 때부터 아무도 믿지 않았다. 모두 인정하듯이 소용녀는 아름답고(「용모가 곱고」, 「자태가 예쁘고 사랑스럽다.」) 젊었지만(「나이는 양과가 어렸지만 양과보다 젊어보였다.」) 근본적으로 불가능 했던 것은 양과의 사부였기 때문이다. 이점은 23, 4회의 영웅대회에서 특별히 뚜렷하게 드러난다. (510〜530) 더군다나 26회전에는 소용녀의 무공은 아직 일천하고 경험이 부족해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지 모르고 달려드는 것에 가까웠으므로 군웅을 제압하지도 못했다. 대사와 겨룰 때도 상황은 더욱 흉험했다. 5회에서 구처기와 겨룰 때는 이미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36회에서의 금륜법왕과의 악전고투에선 위험한 상황이 연이어 발생하여 나중에 양과, 곽정의 도움을 받고서야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소용녀의 무공은 임조영으로부터 전해진 것이다. 소용녀가 그 임무를 감당하지 못한 것이라면 조사의 무공은 어떠하였는가? 책 속의 인물들은 그녀를 매우 총명하였고 고묘파 무공을 스스로 창안할 정도로 비범하였다고 말해 소설에서는 무의식적으로 고묘파의 무공이 독보천하 했다고 말하는 듯 하다. 그녀의 옥녀소심검법은 결코 순수한 일파의 무공이 아니라 옥녀검법과 전진검법은 합벽을 해야만 했다. 26회 이전에는 소용녀와 양과는 강적을 만나면 항상 힘을 합쳐 두 가지 검법을 사용해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다. 금륜법왕(14회), 절정곡주(20회)와의 대결에서도 이와 같지 않은 것은 없었다. 쌍검합벽은 비록 위력이 크게 증가하지만 두 사람은 이미 단순히 고묘파의 검법을 빌어서만은 적을 물리칠 수 없게 되었으며 오랜 적수의 검법을 사용 할 수밖에 없었다. 26회에서 소용녀는 혼자서 다수의 적을 만난 처참한 장면에서 혼자서 두 가지 검법을 사용하지 않았는가? 소용녀가 일심이용을 알게 된 것은 전진파의 노완동 주백통 때문이었다. 그가 절기를 전수해주지 않았다면 소용녀는 아마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양과와 신조가 배운 무공은 다른 것이다. 검마의 이름은 독고구패로 천하를 주유해도 적수를 찾을 수 없었다. 이런 기개는 임조영이 두문불출하고 무예에 연마에만 힘을 써서 일파의 무공을 깨려 했던 심안(心眼)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소설은 말하지 않고 함축적으로 가치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검마의 무공을 양과가 며칠 배우지 않았더라도 이미 고묘파의 무공을 멀찍이 이길 것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평범하고 기이함이 없는 검초일수록 상대방은 막기가 더 어렵게 된다. 검을 곧게 찔러가면서 경력이 강맹하기만 하다면 위력은 옥녀검법 등의 변화가 많은 기묘한 검초보다 훨씬 강할 것이다.」(越是平平無奇的劍招 ,對方越難抗禦。比如挺劍直刺,只要勁力強猛 ,威力遠比玉女劍法等變幻奇妙的劍招更大。」)
그가 처음으로 산에서 나올 때 이미 혼자의 힘으로 적을 물리칠 수 있었으며 소용녀를 포위 공격하는 무림고수들을 낙화유수처럼 물리쳤다. 몇 년 전에 종남산에서 소용녀는 전진교에 잡힌 양과를 구해왔다. 당시의 양과는 무술을 몰랐지만 「사내대장부는 연약한 여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기개」가 있었다. 그가 보호하려 했던 사람은 「무공이 얼마나 그보다 얼마나 높은지 알 수도 없는(220)」소용녀였다. 이는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났던 또 하나의 양과의 주제였다. 소설은 결코 양과로 하여금 그의 몽상을 실현하게 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소용녀가 구대고수와 격전을 치르는 때에 이르러서 소용녀가 중상을 입었을 때 그가 나타나 실력을 발휘하게 하였던 것이다. 양과의 ‘기개’를 마침내 마음껏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것은 양과와 소용녀의 관계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양과는 마침내 주동적 지위를 얻게 되었으며 두 사람의 관계를 장악하게 되었다. 악전고투 후에 그는 소용녀의 생명이 길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사람들 앞에서 선포한다.
「무슨 놈의 스승과 제자와의 도리야? 무슨 놈의 결백? 우린 모두 상관치 않아! 모두 개 같은 소리야!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아. 우리 두 사람은 조금도 외롭지 않고 조금도 불운하지 않아요. 지금 이 시각부터 당신은 나의 사부가 아니야, 나의 아가씨도 아니야, 바로 내 아내야!」(什麼師徒名分,什麼名節清白,咱們通通當是放屁!通通滾他媽的蛋!死也罷,活也罷,咱倆誰也沒命苦,誰也不會孤苦伶仃。從今而後,你不是我師父,不是我姑姑,是我妻子!)
이 대화의 오묘한 점은 ‘〜은(는, 是)’이라는 자에 있다. 언어행동이론을 통해 본다면 양과의 이 말은 ‘단언식 화법(斷言式 話法, constative utterance)'인 듯하지만 오히려 ’이행식 화법(履行式 話法,performative utterance)'의 정수를 가지고 있다. 일단의 묘사된 대화는 사람들이 두 사람의 부부관계를 인정해주길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뿐만이 아니라 양과는 말을 꺼내면 반드시 하는 사람이었기에 즉시 중양궁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혼례는 결코 예법에 맞는 것이 아니었으며 뭇사람들의 동의를 얻지 않았으므로 그 유효성에 의구심이 남아있었다.32) 하지만 혼례를 올린 새로운 사람은 결국은 쌀이 밥이 되 버린 것처럼 명분은 이미 변해버린 것이다. 소용녀는 이를 통해 사부에서 아내로 변했고 또한 이와 같이 된 것에 기뻐했다. 최소한 소설은 이렇게 쓰고 있다. 다시 한번 두 사람이 중양궁을 나온 장면을 보자.
양과가 나직이 말했다. 「우리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꿀벌들을 지휘해요.」 소용녀는 양과의 이 말이 자신을 사부가 아닌 아내에게 하는 부탁의 말로 듣고 마음속이 달콤하고 편안해지면서 생각했다. 「아. 그이는 나를 사부가 아닌 정말 아내로 대하는 구나.」바로 대답하며 말했다. 「네!」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고 순종적이었으며....(楊過低聲道:「你指揮蜜蜂相助,咱們闖將出去。」小龍女做了楊過妻子,聽到他說話中含有囑咐之意,心中甜甜的甚是舒服,心想:「 好啊,他終於不再當我是師父,真的當我是妻子了。」當即應道:「是!」聲音極是溫柔順從……)
이 전에는 양과는 아직 두 사람의 관계를 장악할 능력이 없었고 대화의 방식도 이런 것은 아니었다. 7회에 소용녀는 구양봉에게 점혈 당해 윤지평에게 몸을 잃게 되는데 그를 양과라고 여겼다. 그 후에 소용녀는 양과에게 자신을 아내로 여기는지 물어본다. 양과는 제자였고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데 어찌 감히 허튼 소리를 하겠는가? 말을 더듬으며 사부나 아가씨라고 불러 소용녀를 화나게 해서 멀리 떠나게 하였다. 14회 영웅대회에서 곽정은 자신의 생각대로 곽부를 양과에게 주겠다고 하였지만 양과는 완곡하게 거절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소용녀를 통해 선포된다.
「바로 제가 과아의 부인이 될 거예요. 그는 당신의 딸을 맞아들일 수 없어요.(547)」(我自己要做過兒的妻子,他不會娶 你女兒的。)
말투는 결단성 있고 단호했지만 결국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사실로 바람에 불과할 뿐이었다. 양과가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항변을 하면서 한 말도 이와 마찬 가지로 ‘〜할 것이다(要)’말을 쓰고 있다. 이것은 ‘〜은(는)’에 비하면 무척 연약한 것이다.
「내가 당신들에게 무슨 일을 방해했단 말이오? 내가 또 누구를 해쳤단 말이오? 아가씨는 내게 무공을 가르친 적이 있지만 나는 그녀가 오직 나의 아내가 되기를 원해요. 여러분이 나를 천번 만번 칼로 벤다고 해도 나는 그녀에게 아내가 되어달라고 할 것입니다.」(我做了什麼事礙著你們了?我又害了誰了?姑姑教過我武功,可是我偏偏要她做我 妻子。你們斬我一千刀、一萬刀,我還是要她做妻子。」: 551)
27회의 양과는 이미 무공은 있으되 학식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무공이 소용녀를 이기지 못하였고 또 나라에 공을 세우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덕과 체 두 방면의 성장에 있어서 아직 완성을 하지 못하였으므로 두 사람의 인연은 장애를 받았던 것이다. 소설은 재차 부부사이를 갈라놓아 하염없이 16년 동안을 기다리게 하였다. 이것은 두 사람의 3번의 이별 중에서 가장 긴 이별이었다. 두 사람의 운명을 동정하는 독자들은 묻지 않을 수 없다. 절정곡에서 소용녀는 정말 아무런 대책이 없어서 결국은 이런 하책을 써서 양과를 16년 동안 우두커니 기다리게 해야지만 그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것인가? 소용녀가 중독 된 독은 정말 구할 수 있는 약이 없었는가? 이런 길고 긴 16년이라는 세월은 설마 다른 작용이 있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양과는 혼자의 몸이 되어 다시 한번 조형의 곁으로 돌아오고 마음을 방해하는 것 없이 무학에 전념하게 된다. 이 기나긴 이별은 그의 성장에서의 두 번째 단계였다. 그는 검마무공의 최고경지를 연마하지 못했지만 무학에 대한 깨달음으로 암연소혼장을 만들어내었다. 2번째로 산에서 내려왔을 때 무공은 한 단계 더욱 상승해서 일등대사, 주백통, 황약사 등의 선배들로 하여금 감탄하게 하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양과는 협의를 행하고 양양을 보위하였다. 도덕은 물론 무공에 있어서도 이미 그는 지선(至善)에 도달해 있었다. 데이비스의 이론을 통해 본다면 양과는 이미 ‘아들’이라는 피동적인 상태를 벗어나 주동적인 ‘아버지’의 권리를 장악하는 것으로 변모했다. 또한 이런 상황 하에서 만이 비로소 소설은 두 사람을 절정곡 밑에서 만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인물의 자발적 동기가 그렇게 하게 한 것이었다. 만약 소용녀가 양과를 위해 자진하려하지 않았다면 연못의 백어를 먹지 못하였을 것이고 극독을 치료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양과가 비익조처럼 정이 깊지 못했다면 그도 역시 깊은 연못 속으로 뛰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연못이 깊지 않았다면 빙실(氷室)을 보지 못했을 것이고 소용녀도 보지 못하였을 것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소설에서 말한 것에 의하면 또한 외래적 동기가 그렇게 하도록 한 것이기도 하다. 만약 ‘하늘이 돌보지 않았다면’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날 수 있었겠는가? 양과의 「좋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다」는 말과 소용녀의 「모르는 사이에 하늘의 뜻은 있다」라는 것은 바로 이런 뜻이다. 외래적 동기의 개입은 완전히 하늘의 뜻만의 작용인가? 내부적으로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가?
각도를 바꿔 토의해보면 현묘한 이치를 엿볼 수 있다. 16년의 이별은 양과의 무공을 크게 진전케 했지만 소용녀의 무공은 조금의 향상도 없게 하였다. 제 2차 양양성 수호 전쟁 중에 그녀는 단지 사소한 조연이었고 전쟁터를 누빈 것은 양과였다. 유의 할 점은 양과와 금륜법왕의 일전이다. 양과는 부부가 다시 만나 마음이 기뻤으므로 평생의 절학을 펼쳐낼 수 없었고 당장에 피를 뿌릴 뻔 하였다. 생사의 관문에 이르자 부부가 영원히 헤어질 거라는 가슴 아픈 생각에 이르자 그의 암연소혼장이 그 제서야 펼쳐져 오초 안에 법왕의 생명을 빼앗게 된다. 이 일단의 묘사는 또 다른 생각을 일으키게 한다. 소용녀의 무공이 ‘합(合)’의 최고 경지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양과의 절세 무학의 위력은 ‘이별’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전자는 온화함이 두드러지지만 적을 제압할 수는 없다. 후자는 고독하고 처연하지만 오히려 독보무림(獨步武林) 할 수 있다. 양과(사내 아이)의 성장의 비밀은 아마 여기에 있는 것이다. 양과(남성)이 만약 소용녀와(어머니 / 여성) 이별하지 않았다면 큰 그릇은 될 수 없는 것이다.33)
화산논검에서 소용녀와 양과의 무학의 고하(高下)는 정식으로 결정된다. 이때의 양과는 사람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고아가 아니었다. 그는 곽정(아버지 뻘)뿐만 아니라 심지어 황약사, 노완동, 일등대사(할아버지 뻘)와 같은 사람들과 대등한 자격을 얻고 강호오절의 지위에 올라 일대 종사가 된다. 양과가 오절에 이름을 나란히 했다는 것은 모두 그의 무학의 성취가 소용녀를 뛰어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의미를 가지게 함으로서 두 사람의 사도로서의 명분은 없어지지 않았지만 두 사람의 지위는 이미 완전히 뒤집어지게 된다.
황약사가 소용녀를 오절의 ‘중’으로 추천하면서 하는 말은 진정으로 하는 것은 아닌데, 고의로 노완동을 놀려 먹기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황약사는 이렇게 말한다.
「양부인, 당신은 고묘파의 유일한 전수자요. 임조영 여협의 무공은 탁월하며 옥녀소심검법은 신의 경지에 들어섰었어요. 당시 임조영 여협이 화산논검에 참가했다면 오절의 이름이 분명 바뀌었을 거요. 또한 중양진인이 무공천하제일이란 칭호를 반드시 얻었으리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지요. 양과의 무예는 부인에게서 전수받은 것으로 제자의 이름이 오절에 들었는데 사부는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양부인이 중앙의 자리에 합당하다고 보는데 어때요?」(楊夫人小龍女是古墓派唯一傳人。想當年林朝英女俠武功卓絕,玉女素心劍法出神入化,縱然是重陽真人,見了她也忌憚三分。當時林女俠若來參與華山絕頂論劍之會,別說五絕之名 定當改上一改,便是重陽真人那「武功天下第一」的尊號,也未必便能到手。楊過的武藝出 自他夫人傳授,弟子尚且名列五絕,師父更加不用說了。是以楊夫人可當中央之位。)
듣기 좋은 말이지만 소용녀는 완곡히 거절하였고 황약사는 바로 바꿔 황용을 거론한다. 반나절을 의논하고 나서야 다섯 남자가 오절로 자리매김 한다. 이런 것에 상관없이 황약사가 ‘양부인(楊夫人)’이라 부른 것은 매우 정중한 것이다. 이 말은 선배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 그 효과는 절정곡에서 정영, 육무쌍 등의 후배가 ‘양부인(楊大嫂)’이라 부른 것과는 물론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양과는 이미 덕을 세웠고 절세 무공을 가졌으므로 소용녀와의 관계 역시 문화적 규범에 합치되었으므로 자연히 뭇 노인들의 수긍을 얻게 된 것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소설은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소용녀로 하여금 세월이 지날수록 젊어지게 하고 양과는 나이가 들을수록 늙게 하였다. 양과의 문제는 나이의 문제조차도 모두 ‘바로잡아’ 버렸다.
두 사람이 새롭게 집단에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은 양과의 우연의 작용이 가장 컸다. 그리고 소용녀도 그 공로가 있다. 예를 든다면 25회에서 소용녀는 협의를 행해 전진교의 노선배 주백통을 구해준다. 이 일은 비단 전진파가 매국을 하게 되는 위기를 풀어줬을 뿐 아니라 조지경의 진면목을 폭로하게 하였다. 품행이 단정치 못한 사람은 사부가 될 자격이 없게 되는 것이니 양과의 ‘사부를 기만하고 조상을 능멸했다는’ 죄명 또한 안개처럼 사라지는 것이었다. 소용녀가 전진교의 은인이 됨으로서 양과가 그녀의 문하에 투신했다는 케케묵은 일은 다시는 제기되지 않게 되었다.
六.
본문은 양과의 성장을 토론하면서 주로 ‘바로잡음(改正)’이란 측면에 치중하였다. 성격의 형상화와 인물의 자발적 동기를 통해서 본다면 양과는 감정을 중시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줄거리의 발전을 따라 외래적 동기의 개입으로 본다면 소설은 그와 같은 주인공이 단지 개인만 생각하고 집단을 경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의 성장과정은 실제적으로는 바로 그의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을 문화적 제어로 향해가는 과정이다. 소년 양과의 문제는 이런 갈고 닦음의 과정 속에서 하나하나씩 풀려가는 것이다. 양과가 복종한 문화는 기실은 부권(父權)의 문화이다. 양과의 남성으로서의 위치확립과 소용녀와의 관계의 미묘한 변화, 책 말미의 무림의 지도자로 선출되는 것을 볼 때 이와 같지 않은 것은 없다. 곽정은 《신조협려》에서 부권을 대표하고 정면의 인물을 형성한다. 양과는 부권문화의 억압을 받아 비록 삐뚤어지지만 이를 의연히 받아들인다. 하지만 양과와 소용녀의 사랑은 가져온 충격이 적지 않다. 소설은 이 난제를 처리하기 위해 이미 엄청난 고심을 했다. 마궈밍(馬國明)의 연구를 근거를 통해 말한다면 《소오강호》, 《천룡팔부》이후 부권문화는 붕괴되고 분열되지만 문화적 경관은 크게 다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나중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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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본문에서 논의하는 근거문헌은 홍콩 명하출판사(明河社出版)의 《神鵰俠侶》(1996年 第22版)、《射鵰英雄傳》( 1997年 第21版),《笑傲江湖》이다.(1997年 第18版 )
2) 黃錦樹의 글〈否想金庸:文化代現的雅俗、時間與地理〉도 역시 성장소설의 관점에서 김용 작품을 보고 있다.
3) 성장 소설이 독일에서 기원하게 된 관념과 운용에 있어서의 제반 문제는 다음을 참고 할 수 있다:Fritz Martini, "Bildungsroman ─ Term and Theory;" Jeffrey L. Sammons,
"The Bildungsroman for Nonspecialists: An Attempt at a Clarification;" in Reflection
and Action: Essays on the Bildungsroman, ed. James Hardin (Columbia: U of South
Carolina P, 1991), pp. 1-25; pp. 26-45。
4) "Introduction," The Voyage in: Fictions of Female Development, ed. Elizabeth Abel,
Marianne Hirsch, and Elizabeth Langland (Hanover and London: UP of New England,
1983), pp. 5-6。
5) 무협소설에서의 ‘체’란 강인한 신체와 무술을 말한다. 정이 비록 소설에서의 실마리지만 본문에서는 두 사람의 문화적 규범을 이탈한 정을 소설에서 어떻게 반사회적인 애정을 처리하고 집단이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과정을 중점적으로 논했다. 두 사람의 애정과 문화적 규범의 충돌은 「地下愛情」이라고 할 수도 있다. 馬國明이 말했듯이 「《神鵰俠侶》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야기는 모두 지하에서 일어난 것이다. 종남산 밑의 묘혈이 그 하나이고 절정곡이 두 번째로, 절정곡 밑에는 다른 신선세계가 있었다. 양과와 소용녀가 16년간 헤어져 있다가 다시 만난 지점도 현애 밑의 동굴이었다.《神鵰俠侶》는 정을 써서 유명해졌지만 그 속의 애정이야기가 모두 지하에서 발생하지 않았다면 이처럼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을까?」〈김용과 금융(金庸與金融)〉,《길거리정치경제학(路邊政治經濟學)》(香港:曙光圖書公司,1998),頁41-80。:정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선 세상에 그 토론이 적지 않다.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 陳沛然,《정의 탐색과 신조협려(情之探索與神鵰俠侶)》(臺北:遠景,1985);吳靄儀,《김용소설의 정(金庸小說的情)》(香港:明窗,1997)。
6) 고아에 관한 논의로는 周英雄을 참조할 수 있다. 〈남녀와 친자의 심리관계──독점의 심층적 의미〉,《小說‧歷史‧心理‧人物》(臺北:東大,1989),頁99-120。
7) Robert Con Davis, "Critical Introduction : The Discourse of the Father," in The Fictional
Father: Lacanian Readings of the Text, ed. Robert Con Davis (Amherst: The U of
Massachusetts P, 1981), pp.1-26。이하의 데이비스를 인용한 글은 이 문장이다.
8) 양과의 생모 목염자는 그가 11세 때 병에 걸려 죽지만 소설에선 양과가 어머니의 은혜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는 것에 대한 언급이 없다.
9) "My mother certainly says I am Odysseus' son; but for myself I cannot tell.
It's a wise child that knows its own father." Homer, The Odyssey, trans. E. V. Rieu
(Baltimore: Penguin Books, 1946), p.30。 서명과 인명은 楊憲益의 번역법을 따른 것이다《奧德修紀》(北京:中國工人出版社,1995)。
10) 데이비스는 부권을 중점적으로 분석함으로서 여성주의 학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본문은 그의 논술에서 출발하여 그의 관점으로 《신조협려》의 이런 의식형태를 설명하고 자 하였다. Beth Kowaleski-Wallaceand Patricia Yaeger, "Introduction," Refiguring the Father, ed. Patricia Yaeger
and Beth Kowaleski-Wallace (Carbondale and Edwardsville: Southern Illinois
UP, 1989), pp. ix-xxiii。
11) 데이비스의 글 6p에서 인용한 희랍의 전통적 관점
12) 「아버지의 이름」은 또한 「아버지의 법규」이며 아이는 반드시 이 법규를 지켜야 한다. 「아버지의 이름」에 관해선 杜聲鋒의 글을 참고 할 수 있다. 《라캉의 구조주의 정신분학(拉康結構主義精神分析學)》(香港:三聯 ,1988),頁127-146。
13) 맹자가 열거한 오륜은 사회구조에서의 주요한 역할 관계를 말한다. 그 중에서 부자의 윤리가 첫 번째이다. 전통적인 단일(父) 계통의 친족조직에서는 개인간의 관계는 장유(長幼)는 물론이고 네트워크처럼 상호 긴밀히 연관되어 있었다. 개인의 영욕과 명예, 불명예는 전체 씨족과 관계된 것이며 부자관계도 그 예외는 아니다. 李亦園의 〈사회의 구조가치의 계통과 인격의 형성(社會結構價值系統與人格構成) 〉, 《문화와 행위(文化與行為)》참조 (臺北:臺灣商務, 1995),頁84-93。부자간의 밀접한 관계는 杜維明을 참조 할 수 있다:Tu Wei-ming, "Selfhood and Otherness in Confucian Thought," Culture and Self: Asian and
Western Perspectives, ed. Anthony J. Marsella, George Devos and Francis L. K. Hsu
(New York and London: Tavistock, 1985 ), pp. 231-251。
14)「복수(報)」는 전통중국사회 인간관계의 기초였다. 참고:Lien-sheng Yang, "The Concept of Pao as a Basis for Social Relations in China," Chinese
Thought and Institutions, ed. John K. Fairbank (Chicago and London: The U of Chicago
P, 1957), pp. 291-397。「복수」관념의 전통소설 서사상에서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다. 高辛勇의 연구:Carl S. Y. Kao, "Bao and Baoying: Narrative Causality and External
Motivations in Chinese Fiction," Chinese Literature: Essays, Articles, Reviews 11
(1989): 115-138。
본문에서 사용한 「자발적 동기」와 「외래적 동기(hetero-motive)」의 개념은 모두 이 글에서 나온 것이다. 전자가 가리키는 것은 인물의 성격, 동기가 소설의 사건 줄거리에 미치는 영향으로 예를 들면 복수나 보은과 같은 것이다. 후자가 가리키는 인물이 통제할 수 없는 이야기의 동력으로 말하자면 천리나 인과응보 같은 것이다. 이 두 가지 다른 동기는 비록 모두 작가가 통제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 뚜렷한 구별이 있다. 자발적 동기는 인물의 욕망과 선택에 이르기 까지 자체로서 일정한 논리적 순서를 따르고 완전히 객관적인 현실에서는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반면 외래적 동기는 작가의 구상과 의식형태의 고려(compositional and ideologicalmotivations)에서 대부분 나오는 것이다. 이는 주관성이 비교적 강한 것이다.
15) 이름을 지어주고 우연히 만나게 되는 사이에 곽정은 목염자와 양과 모자의 생활을 물어본 적이 없으며 양과는 유랑하면서 닭을 훔치면서 어려운 날을 보내게 된다. 양과가 종남산에 보내지고 나서도 곽정은 별 관심이 없었다. 양과가 전진교를 배반하는 큰일을 저지르고 나중에 영웅대회에 와서 양과와 전진도사들의 사이가 안 좋다는 것을 보고나서야 놀라게 된다. 곽정의 양강 부자에 대한 깊은 감정과 도덕적 의무로 볼 때 이는 결코 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이는 아마도 소설 이야기가 꼼꼼하지 않은 곳일 것이다.
16)조씨 고아의 과단성은 현대의 독자를 불안케 하여 그의 행위에 대한 해석을 필요로 하게 하였다. Joseph S. M. Lau , "Duty, Reputation, and Selfhood in Traditional Chinese Narratives,"
in Expressions of Self in Chinese Literature, ed. Robert E. Hegel and Richard C. Hessney
(New York: Columbia UP, 1985), pp. 363-383 。
17) Paul Zweig, The Adventurer: The Fate of Adventurer in the Western World (Princeton:
Princeton UP, 1974), pp. 34-47 。
18) 소설에서의 이런 대다수 사람들의 복리를 위한다는 관점과 楊中芳의 중국인에 대한 ‘자아’의 분석은 상당히 접근한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중국전통이념은 사회의 교화에 이르기까지 모두 개인과 집단의 밀접한 관계를 매우 중시한다. 「사회의 질서와 화해는 각 개인의 ‘자기’와 ‘개체’의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서 사회전체의 ‘자기(自己라는 것은 자신과 개체 그리고 특정한 타인을 포함하는 것이다.)’를 포용하는 것에 세워진다. 」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지적해 낸다. 「중국의 전통철학의 이념에서는 ‘사회’란 개인의 조합이지만 내적으로 각자의 개인은 결코 완전히 독립적인 것이 아니다. 사회 자체는 인륜의 관계로 개인을 조합함으로서 긴밀하고 단계적인 구조를 형성해 낸다. 각 개인은 모두 이런 무형의 관계 네트워크를 가짐으로서 그들과 사회 각 부분의 기타인물로 하여금 다른 정도의 긴밀한 관계를 가지도록 한다. 개인의 행위는 반드시 이런 네트워크에 의존해야지만 자신의 타인에 대해 지고 있는 책임과 의무를 행사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의 이러한 사회와 개인의 관계의 구조에서는 사회의 모든 개인이 그의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이행한다면 전체 사회는 마음먹은 대로 작동이 되고 발전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구상에는 사회의 개인은 반드시 한 가지 신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사회의 행복은 개인의 행복의 선결조건이라는 점이다. 전체 사회의 진보는 개인의 진보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사회규범과 법률은 제한적인 징벌에만 사용되어서는 이런 신념을 견지할 수 없으며 그를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이행하도록 할 수도 없다. 어떻게 각 개인이 모두 이런 신념을 견지하도록 하는 것을 확보하여 도덕의 교육과 그것의 내면화, 개인이 ‘자기’로 초월하는 변화를 진행시킬 수 있는가. 최종적인 것은 개인과 사회의 전진방향에 있어서 그것을 일치 시키는 것이다.」楊中芳、高尚仁 編,《중국인‧중국인의 마음─ ─인격과 사회편 (中國人‧中國心─ ─人格與社會篇)》(臺北:遠流,1997),頁 93-145。주석13의 杜維明의 글도 참조 할 수 있다. 김용 자신의 관점은 다음과 같다. 「무협의 세계에서 남성의 책임과 감정은 『인의가 우선(仁義為先)』이다. 인이란 대중의 질고와 원통함에 충분히 관심을 가지는 것이고 의는 온 힘을 다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확대 된 것이『為國為民,俠之大者』이다。」金庸,〈소서 : 남자주인공의 두 가지 유형(小序 :男主角的兩種類型)〉,吳靄儀,《김용소설의 남자(金庸小說的男子)》(香港:明窗,1997)。
19) 이는 뚜렷하게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숨긴다.’의 변주이다.《論語‧子路》 ‘세상에 잘못이 없는 부모는 없다’에 관한 토의는 錢穆의 《晩學盲言》을 참조 할 수 있다. 주석 13에서 언급한 杜維明의 글도 이 문제를 토의한 것이다.
20) 실상, 두 사람의 ‘패륜’ 혹은 ‘난륜’의 관계는 표면적인 사도간의 관계를 제외하면 다른 일종의 잠재적인 ‘모자(母子)’의 관계였다. 비교적 뚜렷이 묘사된 장면은 두 사람이 절정곡 지하에서 만나는 묘사이다. 양과는 소용녀가 거처하는 띠 집 안에서 나무옷장을 보고 열어 보았는데 「 옷장 안에는 나무껍질을 이어서 만든 어린 아이의 옷이 몇 벌 걸려 있었는데 바로 과거에 고묘에 있을 때 소용녀가 자기를 위해서 만들어준 그 옷 모양이었다.」 양과가 소용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3, 4 세였을 때지만 두 사람이 절정곡에서 이별할 당시에는 이미 부부였고 양과는 아마도 18세 정도였을 것이다. 소용녀는 심곡에서 16년을 지냈는데 그리워 한 것이 남녀의 애정을 아는 양과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양과 였다면 이는 무척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나중에 두 사람이 만났을 때의 소용녀의 말은 더욱 어머니와 같다. 양과가 말했다. 「용아, 그 아름다운 모습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구려. 나는 이렇게 늙었는데...」 소용녀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늙은 게 아니고 나의 과아가 장성한 것이지요.」 두 사람은 결코 혈연적 관계가 아니었지만 이런 잠재적인 ‘난륜’의 관계는 아마도 남자 아이가 모친 / 여성성에게 의지하는 일종의 마음 졸임이다. 남자 아이는 모친 / 여성성의 영향에서 탈피해야 남성으로 성장할 수 있는데 이는 인류학 그리고 정신분석학에 이르기까지 늘상 다루는 문제이다. 밑의 관련된 논의를 보기 바란다.
21) 양과는 세속의 예법의 무서움을 모르고 승복하지 않은 것이지만 소용녀는 이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러므로 소설에서는 두 사람이 ‘이치에 맞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라고 묘사한다. 소용녀가 세상사를 알지 못한 것은 심산유곡에 살았던 것도 관련이 있지만 우리는 또한 그녀 역시 고아라는 사실에 소홀 할 수 없다. 소용녀의 주변에는 속세를 등진 여성만 있었고 세상과 관계를 맺는 인물은 없었다. 소용녀가 결핍한 것은 아마도 양과와 같이 아버지 모른다.
22) 소용녀의 말은 완전히 맞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문규를 완전히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7회에서는 이렇게 쓰고 있다. 「고묘파 사조께서는.......상심한 나머지 문규를 하나 세웠는데 그분의 의발을 받은 진전제자는 반드시 고묘에서 평생살고 결코 종남산을 떠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해야 했어. 하지만 한 남자가 기꺼이 그녀를 위해 죽으려 한다면 이 맹세는 없어지는 거야. 하지만 이것은 절대 그 남자가 먼저 알게 해서는 안돼.」양과는 소용녀를 위해서 기꺼이 죽으려 했으므로 이 맹세는 깨진 것이다. 소용녀의 유일한 잘못은 바로 양과를 제자로 거둬들인 것이다.
23) 또 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5회에서는 이런 단락이 있다. 「양과는 너무 탄복하여 말했다. 『아가씨, 내일 이 기술을 저에게도 가르쳐 줘요. 네?』 『이게 무슨 기술이란 말이냐? 네가 열심히만 배운다면 더 무시무시한 것들도 많이 가르쳐 줄 텐데.』 양과는 소용녀가 진심으로 그를 가르칠 것을 이야기 하자, 처음의 원망이 모두 거품처럼 사라지고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며 울먹였다. 『아가씨, 이토록 내게 잘 해 주는데 처음에 나는 모르고 원망했어요.』 『내가 너를 내쫓도록 했으니 자연히 원망하겠지. 이상할 건 없어.』 『혹시 이전의 사부처럼 쓸데없는 거나 가르치는 건 아니겠지요?』 」
나중에는 이런 단락이 있다. 「소용녀가 말했다. 『너는 전진교 사부와 다툴 때도 애원하는 말을 단 한마디도 하지 않더니 지금은 대체 어찌 된 일이냐?』 양과는 웃으며 말했다. 『누가 나를 안 좋게 대하면 그가 나를 때리더라도 한 마디도 물러서지 않아요. 나를 좋게 대한다면 나는 그를 위하여 죽는 것도 달게 여기는데 애원인들 못하겠어요?』」 高辛勇의 글에서는 전통소설의 남녀의 사랑은 종종 은혜에 대한 감사와 그 보답에서 생긴다고 지적하였다.
24) 이것 역시 馬國明의 관찰이다。
25) ‘남자도 여자도 아닌’ 성별의 애매모호함은 일종의 금기라 말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성별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사람은 아직 사회화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한 남자가 옥녀 검법을 배우는 ‘제 2의 성’에 대해선 游靜의 영화 《동방불패》의 중성의 정치적 토론을 참고할 만 하다. 梁秉鈞도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馬國明도 지적한 적이 있다. 「주의 할 만 한 점은 김용의 세계에서는 남성 혹은 여성만 가능 할 뿐, 變性은 불가능하고 남자도 여자도 아닌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26) Fredric Jameson, "Reification and Utopia in Mass Culture," Social Text 1 (1979): 130-148。
27) 陳平原,《千古文人俠客夢》(北京: 人民文學,1992),頁23-41。
28) V. Propp, Morphology of the Folktale, trans. Laurence Scott (Austin: U of Texas P, 1988), p.39。중역은 高辛勇으로부터 나온 것이고,개정은《형명학과 서사이론(形名學與敘事理論)》(臺北:聯經,1987),頁32-33。
29) 김용은 소설의〈後記〉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神鵰는 기이한 새로 현실 세계에는 없다。」(頁1672)
30) 검마 역시 무공에 미친 사람이었고 복수와 협의를 동시에 하였지만 그것이 묘사의 중점은 아니다.
31) 鵰「公公(할아버지)」、鵰「爺爺(할아버지)」는 나중에 부른 것이다. 1336頁。
32) 소설에서의 언어행동과 현실에서의 언어행동은 결코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Gerard Genette, Fiction and Diction, trans. Catherine Porter (Ithaca and London: Cornell UP, 1993),p.33。「단언식 화법」、「이행식 화법」에 관해서는 Sandy Petrey, Speech Acts and Literary Theory (New York and London: Routledge, 1990), pp. 321; J. L. Austin, "Performative-Constative," The Philosophy of Language, ed. J. R. Searle (Oxford: Oxford UP, 1971),
pp.13-22。「단언식 화법」、「이행식 화법」은 周英雄의 번역법에 따른 것이다.〈從語用談小說的意義〉,《小說‧歷史‧心理‧人物》 ,頁7-8。
33) 두 사람의 잠재적인 모자 관계를 고려한다면 양과가 소용녀를 떠난 것은 남자아이가 어머니를 떠나는 것을 상징한다. 인류학과 정신분석학에서 모두 언급했듯이 원시부락의 남성계몽의식의 실제적인 작용은 모친 / 여성성으로부터 남자아이를 빼앗아와 그들로 하여금 여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하는 일련의 상징적인 환골탈태의 성장의식을 통해 남성으로 이행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상징적 의식은 상당히 복잡하고 주기와 과정이 길어서 20여세 주변에서 시작해 10여년에 이른다.
Fritz John Porter Poole, "The Ritual Forging of Identity: Aspects of Person and Self in
Bimin-Kuskusmin Male Initiation," Rituals of Manhood: Male Initiation in Papua
New Guinea, ed. Gilbert H. Herdt with an Introduction by Roger M. Keesing (Berkeley,
Los Angeles and London: U of California P, 1982), pp. 99-154; Theodore Lidz
and Ruth Wilmanns Lidz, Oedipus in the Stone Age: A Psychoanalytic Study of
Masculinization in Papua New Guinea (Madison, Connecticut: International
Universities P., Inc.,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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