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은 김천(金泉) 처가(妻家)를 갈 때 항상 지나가는 곳이지만 마을로 들어가 본적이 없어 이번이 처음이다.
네비로 "정지용 생가터"를 치고 가니 큰길에서 좌회전하더니 다시 좁은 길로 좌회전 하란다.
좁은 길로 들어서는데 이정표에 "향수 길"이라기에 조금 안심을 하고 계속 들어간다.
자그마한 사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안내를 종료한단다.
우리는 정지용 생가부터 직선으로 위로 가면서 육영수 여사의 옛집까지 가 보기로 했다.
사거리에 있는 벽화.
이곳도 다른 곳처럼 벽화가 많은데 주로 정지용 시인의 시(詩)를 이야기 하고 있다.
조금 한가한 주차장에 차를 대고 다리를 건느면 오른쪽 위에 정지용시인의 문학관과 생가(生家)가 개울옆으로 있다.
지금이야 홍수대비책으로 석벽을 높이 쌓은 개천이지만 옛날에는 "실개천"이란 표현이 맞을 듯하다.
담장 밖에서 보는 정지용 시인의 생가.
문학관으로 들어서면 좌측으로 생가로 들어갈 수 있는데 조그만 수로(水路)를 건너는 디딤돌이 무척 웅장하다.
오른쪽에 이 돌판에 대한 설명이 있다.
"황국 신민 서사비"(皇國 臣民 誓詞碑)였다고 한다.
당시의 글자는 지우고 뒤집어 다리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황국 신민 서사비"(皇國 臣民 誓詞碑)는 전국의 학교에 세워져 있었으나 해방이 되면서 거의 다 없애버렸다고 한다.
근래에 학교를 신축하거나 운동장을 보수 할 때 더러 발견이 된다고 한다.
얼룩배기 황소.
원래 있던 집은 없어지고 새로 복원했다고 한다.
문학관 앞의 시인의 상.
문학관을 들어서면 시인의 상을 만들어 놓아 그 옆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도록 했다.
문학관의 이야기.
정지용 시인은 한 때 월북작가로 되어있어서 그의 시(詩)는 일반인에게는 늦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의 사망이야기도 여러가지 설이 있고 어떻게 생을 마쳤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한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
얼룩백이 황소가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 사철 발벗은 안해가 /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향수"(鄕愁) 전문(全文), 『朝鮮之光』 통권 65호(1927.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