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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기도 저널 105-106호(1995년 가을, 1996 겨울호)
미국이나 여타의 지역에서도 그레이시 유술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여러 류파의 무술가들에 대한 그레이시 형제들의 탁월한 대응능력은 특기할만 하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그들이 -설령 그렇게 시도를 함에도 불구하고-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지 않음에 있다.
그레이시가문의 부드럽고, 융화적인 접근은 합기(合氣)와 매우 유사하며, 게다가 그들은 실제 상황(링이나 거리에서나)에
대응하기 위해 자신들의 스타일을 강하게 만들려는 유혹을 뿌리쳐 왔다.
나는 그레이시가문을 80년대 후반에 처음 알게 되었다. 나의 매부인 크리스 포즈닉이 그레이시의 수련을 시작하였고,
그들의 유술 스타일에 대단한 호평을 하였다. 크리스와 나는 대학에서 서로 몸을 뒤엉켜보았고, 난 그의 의견을 존중했다.
이 브라질인들이 가진 특별한 것을 알기 위해 결심한 것이다. 난 개인특별수강 신청을 했다.
당시에는 도장이 호리온의 집 차고 내에 있었다. 호리온은 대략 내 키 정도에 날씬하고, 매우 예의바른 사람이었다.
뒤이은 수련은 내게 그레이시 시스템의 실전성을 확신시켜 주었다. 레슬링과 무술에서의 많은 경험과,
그보다 덩치도 크고 힘이 센 것도 몇가지 관절굳히기 기술에는 무용지물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어떻게 내가 이렇게 궁지에
몰리게 되었는지도 알 겨를이 없었다. 나는 땀에 흠뻑 젖고 지쳤지만, 호리온은 그저 평온할 따름이었다.
그의 호흡은 전혀 변하질 않았다.
수련이 끝나고 나는 호리온의 평온하고 정중한 태도만큼이나 이 무술의 실용성과 세련미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수련이 끝났으므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나에게 호리온은 놀랍게도, '아뇨, 아뇨, 제임스,
여긴 우리 둘 뿐이예요.'라며 굳은 악수로 수련을 마치도록 했다.
수년간 난 이 특이한 스타일의 유술이 여러 면에서 재미있는 구석이 많다는 걸 알았다.
호리온, 힉슨,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한) 호이스 등의 내가 만나 본 모든 형제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하지 않는,
공손하고 겸허한 이들이었다. 이 태도와 행동이 어디서 나오는 지를 알게 된 것은 본 기사를 위해 내 친구 토비 쓰레드길과 함께
사진을 찍은 1994년이 되어서였다.
헬리오 그레이시는 그레이시 가문의 장로이다. 82세의 나이와 138파운드의 체중에도, 그는 여전히 매트 위에서 힘을 겨눌 정도다.
그 정도의 수완의 많은 무술인들에게 흔한 공격적인 품성에 반해, 헬리오는 예의바르고, 부드럽게 말하는, 소탈한 사람으로,
지금도 매트 위에서 정기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레이시씨와 일하고, 그의 학생들과 자식들을 대하는 것을 지켜보면,
그 남자 전체의 가장 강한 인상을 받는다. 그의 육체적 건강과 태도는 최상이며, 이는 부드럽고 융화적인 유술의 태도를 가진
전사로서 살아온 자신의 삶과 그의 형 카를로스에 의해 개발된 특별 식이요법에 대한 신봉의 결과이다.
난 삶에 대한 이 진지한 태도의 효과에 대해 개인적 경험을 통해 말할 수 있다. 얼티밋 파이팅 챌린지 IV(UFC IV)을 앞두고
호이스와의 스파링기간 동안, 난 코치를 해주던 그레이시씨(헬리오)의 나 자신을 더 소중히 하라는 충고를 받았다.
누가 이 조언을 했는지와 처음 20분 후에 지쳐버린 나를 생각해보곤, 난 그의 조언을 가슴 깊이 새겼다.
스파링이 끝나고 나는 호리온에게 그레이시 식이요법의 사본과 그 실행을 위한 약간의 설명을 부탁했다. 결과는 괄목할만 했다.
체중이 급격히 줄었고, 이는 보다 강해진 체력과 유연성, 지구력으로 이어졌다. 전투상황에서의 실행능력도 역시 대단히 향상되었다.
오늘날 그레이시 가문만큼이나 수련에 전력투구하는 이들은 얼마되지 않는다. 유술은 그들이 누구인가와 그들이 무엇을 하는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들의 태도는 사무라이의 무술로부터 전해온다고 주장하는 여러 스타일보다는 전통적인 무사의 그것을
연상시키게 한다. 그러나, 그레이시 가문에 있어서는, 이 전통적 마음가짐은 내면에서 피어난 것이며
오직 당신이 그들의 무술과 개인의 성품을 깊숙이 들여다 볼 때에서야 명확히 드러나게 된다.
-제임스 윌리암스
다음은 1994년 가을에 있은 아이기도 저널의 제임스 윌리암스와 스탠리 A. 프래닌에 의해 이루어진
호리온 그레이시와의 2차례의 인터뷰의 편집본이다.
아이기도 저널: 브라질에 처음 일본 유술을 전파한 이는 누구인가?
'마에다 에사에(마에다 미쯔요)'이다. 그는 1914년 경에 브라질에 왔다. 내 생각으로는 그의 여행은 일본에서 열렸던
어떤 무술대회 따위의 우승의 부상이었던 것 같다. 이는 일본인들의 브라질 이민기 이전의 일이다. 나의 할아버지 개스통은 당시
정치가이자 학자였다.그는 이 일본인 챔피언이 브라질에 정착하는 것을 도왔고, 정성을 보여, 마에다는 내 할아버지의
5남 중 장남인 카를로스 삼촌에게 유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것이 그레이시 가문이 처음으로 유술계에 입문한 경위이다.
나의 삼촌은 내 아버지보다 11살 위이다. 그는 지난 10월에 92세의 나이로 별세하셨다. 그는 5남 3녀중의 첫째였다.
-당신의 아버지 헬리오는 어떻게 유술에 입문하였나?
나의 아버지는 5형제 중 가장 작았고,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는 조금만 움직여도 기절할 정도였다.
그의 주치의는 어떤 운동도 하지 말라고 경고했으므로, 그는 그저 나의 삼촌 카를로스가 지도하는 걸 벤치에 앉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는 그걸 약 2년 정도 했다. 어느 날, 그가 16세였을 때, 한 학생이 수업을 하러 왔으나, 카를로스는 자리에 없었고,
내 아버지가 말했다. '우리 형은 지금 없어. 하지만, 원한다면, 내가 기술들을 가르쳐 줄게.
난 오랬동안 관찰해왔으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알거든.'
나의 아버지는 그 학생과 함께 수련을 했다. 그는 이 학생을 만족시키기는 데 너무나도 흥분했고, 너무나도 결연했고,
너무나도 헌신적이어서 그 사람은 매우 기뻐했다. 그 학생은 아버지의 헌신적인 면에 정말 반해버렸다.
내 삼촌이 돌아와 늦은 걸 사과하자, 그 학생이 말하길, '난 당신 동생과 수련을 함께 했는데, 괜찮으시다면 이제부턴
그와 함께 수련을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당신의 아버지는 브라질에서 어떻게 평판을 쌓았나?
나의 아버지가 브라질에서 성장할 무렵 그는 모든 이에게 도전했고 그의 승리는 모두 인상적이었다.
그는 육체적으로는 보잘 것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겨우 5피트 8인치에 140파운드였다. 사람들은 그의 승리를 별로 점치지 않았고,
그가 이기면 열광했다. 유술의 가장 큰 어필하는 특징은 그가 육체적 강함을 별로 지니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거대한 사람이 이긴다면, 그건 그리 특이한 것이 아니다. 모든 이들이 세계 최강의 파이터는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그런 사람들을 우상시하지만, 결국 그들은 그들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내 동생 호이스가 크고 힘센 사람이 아니란 사실은 우리의 유술기술에 있어 가장 큰 셀링 포인트이다.
보통 체격의 사람도 '이봐, 저 비쩍마른 녀석이 하는 걸 봐! 나도 똑같이 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삼촌 카를로스가 실질적으로 지도를 그만두고, 아버지가 그의 첫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카를로스는 25세였고, 그는 식이요법을 연구하고 자신의 형제들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나의 아버지 헬리오는
우리가 지금 그레이시유술이라 부르는 것을 실질적으로 체계화한 사람이다. 처음에 그는 나의 삼촌을 관찰하면서 익힌
전통적인 일본 유술을 가르쳤다. 곧,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그는 이 무술을 갈고 닦아 보다 정련된 형태를 갖추도록 했다.
그는 그것을 보다 실용적인 형태로 만들어 결과적으로 그 자신이 더욱 고수가 될 수 있었다.
유도나 여타 유술수련자들에게서 보게되는 움직임이나 관절기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것과 동일하다.
만일 사진을 찍는다면, 똑같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목조르기를 이렇게 한다.(시범을 보인다.) 나의 아버지는 양손을 밀고,
손을 잠그고, 손목을 돌리고, 그리고 가슴을 쭉 뻗으면, 힘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이것은 같은 조르기이지만 보다 쉽게 기절하도록 만든다. 이것은 기술을 거는 이에게 보다 적은 힘을 요구한다.
근육에 힘을 주는 대신에 기술을 걸 수 있는 것이다. 그레이시 유술의 기술들은 나의 아버지에 의해 개발된 것이 아니다.
그는 그렇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그가 한 일은 이 무술을 조금 더 '보다 약한 이'에게 적합하도록 만든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유술을 발명한 것이 아니라, 이를 브라질에서 보편화되게 만든 이이다.
브라질에서 유술을 하는 모든 이들은 직간접적으로 그에게서 배웠다.
-그럼, 그레이시 유술이란 도대체 뭔가?
그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그렇게 질문해줘서 기쁘다. 그레이시 유술은 나의 아버지가 발전시킨 지도법이다.
이 지도법은 아주 효과적이어서 스피드, 힘, 또는 양자간의 균형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레이시 유술에 등록상표를 뜻하는
R자가 붙는 이유이다.
-당신의 아버지는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브라질에서는 누구라도 매일 위험한 상황에 맏딱뜨릴 수 있다. 나의 아버지는 자신의 목을 보전할 길을 찾아야만 했다.
이는 매일 칼을 가는 것과 같았다. 호신술을 배우기 위해 그레이시 아카데미에 학생이 찾아오면, 그들의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어떤 이는 몸매관리를 위해서거나, 어떤이는 무술을 좋아해서, 어떤 이는 여러 유파의 철학들을 좋아해서 등이다.
그들의 이유란 것은 우리에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의 오직 하나의 목표는 학생들이 거리에서 자신을 방어할 준비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지도법이 관심을 두고 있는 바이다.
-호흡에 대해서는? 그레이시 유술 수련자들은 대단히 좋은 호흡컨트롤 능력을 갖고 있다.
호흡 또한 수련과 관리의 결과이다. 수련에서 호흡을 배운다. 호흡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며 수련한다.
이는 이완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완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것을 배워야 한다.
어떻게 수영하는 지를 모르면서 다른 사람에게 수영장에 들어가라고 말하면서 ' 이봐! 이완해!'라고 말한다면,
그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래서 먼저 그에게 어떻게 수영을 하는지를 가르쳐줘야 한다.
기술을 배웠으므로 이완상태에 있을 수 있음을 안다. 당신이 매우 체계적인 동작들을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으므로, 긴장할 필요가 없고 근력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
기술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수련을 위해 형(形)이나 품새를 사용하는가?
자기 혼자서 동작들을 행할 수 있다. 난 지금 당장 매트 위에 올라가 나 혼자 훈련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대의 방어를 뚫거나 마운트 포지션에서 벗어나는 것을 흉내낼 수 있다. 난 그 모든 걸 할 수 있다.
혼자서 모두 할 수 있지만, 누군가와 같이 유술을 하는 것이 보다 실제적이다. 우리가 같이 뒤엉킬 때 우린 그것을 매우 부드럽게
행할 수 있다. 당신이 하는 모든 것은 자신의 적과의 교감에 있으며, 이는 무엇이 일어나든 자연스럽게 대응할 수 있도록 만든다.
격투가 진행되는 동안 변화하고 적응할 기회를 갖게 된다. 모든 상이한 기회들에 대해 이완하고 보다 민감해 지는 것은
커다란 차이를 낳는다. 보다 많은 기회를 갖게 된다. 당신이 그저 펀처(puncher)이거나 키커(kicker)이고, 적을 놓치거나
한방에 끝내지 않는다면 상대는 당신을 붙잡을 것이고, 그것은 나쁜 소식일 것이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격투는
땅바닥에서(그라운드 파이팅) 끝나고,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레이시 유술의 승급체계는?
성인의 경우 백, 청, 자주, 갈색, 흑색의 띠가 있다. 어린이들에겐 : 백, 황, 주황, 녹, 갈색, 흑색의 띠가 있다.
흑띠가 되는데는 10년 정도가 걸린다. 그러나 흑띠는 많은 기술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기본기술의 적용에 보다 민감한 사람이다.
-그럼 그것은 학생이 보다 많은 기술을 알거나 빠르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이 하는 것에 대하여
보다 더 자각하고 있다는 걸 뜻하는 것인가?
그렇다. 누구라도 40시간 정도만 수련하면 내가 아는 모든 기술을 알 수 있다. 내가 가진 적용능력은 없으나, 똑같은 동작은 알고 있다.
-당신의 무술은 당신 생활의 일부분처럼 보인다. 그것이 삶에 대한 온화하고 자각적인 태도를 갖게 하는 것인가.
그렇다. 식이요법과 유술과 결합된 나의 철학적 믿음은 인생에 대해 능동적인 자세를 갖게 해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나의 지도 비디오테이프를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위에서 상대를
컨트롤하며 아래로 눌러, 조르기를 할 수 있는 포지션을 갖추기 전에는 조르기를 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기본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저 결과만을 바랄 뿐이다.
우리가 원하는 기술로서는 이기지 못한다. 우리가 뒹굴 때, 상대는 허점을 내보인다. 그는 자신이 지길 원하는 기술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몸짓으로 말해준다. '여기 내 팔이 있어!' 그러면 그의 팔을 잡는다. 우리는 절망에 몸부림치며 기회를 제공하는
상대를 위해 혼돈의 상황을 만들어 준다. 우리는 그가 제공하는 모든 것을 받는다.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에 식이요법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알고 있다.
당신의 유연하고 자각적인 정신자세와 유연한 몸에 요구되는 것인가.
그렇다. 우리의 식이요법의 개념은 나의 삼촌으로부터 나왔다. 그는 자신이 독학한 영양학자이다.
그는 학교에 가서 학위를 따거나 한 적은 없지만, 여러 전문가들에게서 배우고 자신만의 결론에 도달하였다.
가문의 모든 이들은 거의 대부분 그의 식이요법을 따른다. 많은 학생들과 친구들이 그로부터 혜택을 받고 있다.
그는 식이요법의 개념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언제나 격투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싸움, 토너먼트,
대회가 개최되거나 하는 시절이 아니었다. 아무나 들어와서는 '이봐, 당신에 대해서 들어봤는데 나랑 싸워보자구!'하고 말하곤 했다.
그런 일이 일상생활처럼 되풀이되었다. 우리는 언제라도 준비된 상태여야만 했다. 예를 들어, 내일 싸움이 있는데 잠에서 깨었을 때
위통이나 치통, 두통이 있다면, 정상적인 컨디션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건강한 식이요법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나는 어떠한 질병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저 병든 사람들만 존재할 뿐이라 믿는다.
약해진 신체의 부분에 병이 생길 뿐이다. 이는 가장 약한 부분에서 찢어지기 시작하는 로프와 같다.
어떤 이들은 두통이 없지만, 만성 위통을 호소한다. 또 어떤 이들은 인스턴트음식을 많이 먹으면서도 위에 이상이 없지만,
항상 두통을 호소한다. 어떤 이들은 모든 종류의 인스턴트 음식을 먹고는 '이봐, 난 날씬해. 난 체중이 불지 않는다구.'라고 말하지만,
어떤 다른 증상으로 고생하고 있다. 사람들마다 다른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개념은 서로 궁합이 맞는 음식들을 신체에 공급하고,
산성(acid)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비산성 식이요법으로 소화하기에 좋다. 우린 이를 그레이시 다이어트라 부른다.
-고기를 많이 먹는가?
개인적으로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하지만 식이요법에 고기도 괜찮다. 호이스는 약간의 육류를 먹지만, 대부분의 경우
생선과 닭고기를 먹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거의 채식주의자이다.
가끔씩 생선을 먹는다. 외식을 할 때면, 난 예를 들면 생선과 밥, 야채를 주문한다.
-음주는 하는가?
아니, 알콜은 금지다. 아마 난 1년에 와인 3잔 정도만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론은 어쨌든 음주를 하면, 올바른 식사를 하라는 것이다. 스포츠계에 종사할 것이라면, 알콜이 장기적으로
미칠 영향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당신이 44,5세에다 프로선수가 아니라면, 그리 해가 되지는 않을 거다!
호리온 그레이시 인터뷰 part 2(from Aikido Journal #106)
아이기도 저널 : 어떻게 미국에 오게 되었는가?
호리온 그레이시 : 1960년대말에 처음 이곳에 오게 되었다. 17,8살이었다. 그리고 나서 브라질로 돌아가 2,3년간 있었지만,
캘리포니아가 매우 그리워졌다. 그래서 다시 몇 달간 돌아왔다가, 브라질로 돌아가 법대에 입교, 5년후 졸업했다.
법을 공부하지 않았음에도, 학사학위는 취득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브라질에서 결혼, 2명의 자식을 두었지만, 이혼했다.
난 미국으로 돌아가야만 한다고 느꼈다. 70년대 말, 27세에, 이 때가 미국으로 갈 최적기라고 결심했다.
그레이시 가문은 1930년대 나의 아버지가 브라질 최초의 스포츠 영웅이어서 유명하다. 그는 전직 브라질 대통령, 주지사 등의
여러 사람들을 가르쳐 왔다.
이곳에 와 빈손으로 시작했지만, 브라질에선 갖지 못했던 도전에 자신이 있었다. 그곳에선 난 유명하게 태어났다.
모두가 우리를 도와주려 했다. 우리는 줄을 설 일이 없었다. 우린 그저 돌아다니다가 아무곳에나 공짜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레이시'란 이름이 모든 문을 여는 열쇠였다. 정치가의 자제로 태어나는 것과는 다르다. 정치가는 어떤 이들에게는 존경받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미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는 운동선수였으므로, 모든 이들이 그를 국민적 영웅으로 받들고 있었다.
예전에 행한 미국 여행에서 나는 우리가 하는 유술스타일의 지도법이 이곳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난 모험을 찾았고,
여기서 뭔가를 해보고 싶었다. 이곳의 유술은 아주 다르게 교육되며, 그리 유명하지도 않았다. 이곳에서의 처음 10년간은 정말
고군분투의 나날이었다. 구걸에서 해변에서 노숙하는 것까지 모든 걸 해보았다. 완전한 파산상태였다. 물론, 누구도 그레이시 가문에
대해 알지 못했다. 난 내 스스로 집을 구하고, 몇 명의 친구를 만들었다. 차고에 매트를 깔고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을 집으로 데려가
무료 시험 강습을 해주었다.
물론, 모든 이들이 이 무술과 사랑에 빠졌다. 그래서 여기저기에서 햄버거를 굽고, 노동판에서 일하고, 집청소를 해주면서,
약간의 강습을 시작하게 되었다.
결국에는 집안 허드렛일을 도와주던 당시에 영화 엑스트라 일을 맡게 되었다.
한 아주머니의 집청소를 돕고 있었는데, 그녀의 남편이 '스타스키와 허치'(역자 주;왕년의 유명 형사드라마)의 조감독이었다.
그녀가 말하길,'영화 산업에 종사할 생각 없어요? 브라질 출신이니 특이한 타입이라구요.' 난 그 생각에 흥미를 내비쳤고,
그녀의 남편이 캐스팅사무실로 날 데려갔다. 결국 일을 얻었고, '판타지 아일랜드'에서 'Hart to Hart(드라마'부부 탐정')'에
이르기까지 많은 일을 했다. 10년간 여러 다른 TV드라마에서 엑스트라로 일했다.
영화 '리쎌 웨폰'의 부제작자가 내가 킥복서와 싸우는 걸 보게 되었다.
그 영화의 대본에는 큰 격투씬이 있었고, 감독은 무술감독을 찾고 있었다. 날 봤던 이가 감독에게 말했다.
'이봐, 이 사람을 한 번 꼭 만나보라구. 그는 최고야.' 그래서 감독은 나를 고용하고 '리쎌웨폰 I'의 격투씬의 설계와 멜깁슨과
게리부시(악역)를 가르치도록 했다. 몇 년 후에는 '리쎌웨폰 III'의 르네루소를 가르쳤다. 그저 그녀를 훈련시킨 것 뿐만 아니라,
격투씬에서 스턴트맨으로 고용되기도 했다.
말했듯이, 처음 10년간 난 유술을 집에서 가르쳤다. 집으로 찾아오는 120명의 제자외에도 80명이 대기자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더 이상의 학생들을 거둘 수가 없어, 지금의 위치로 1990년대 중반에 옮겼다. 당연히, 성공은 경쟁을 낳았고,
현재 브라질 유술을 지도하고, 그레이시 가문에서 훈련받았다고 주장하는 여러 사람들이 생겼다. 모두가 우리와 일하기 위해
브라질에서 오지만, 나의 기준은 매우 높다. 그들은 '제길, 당신은 애비와 똑같구만. 모든 게 정확해야만 하는군.
모든 게 완벽해야 한다구!'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만의 도장을 열고, 그레이시의 방식을 배우길 원하는
팬과 대중들을 잘못 인도하고 있다. 이런 흉내쟁이들은 아주 쉽게 '오, 난 그레이시와 수련한 누구누구와 수련했다구.'라고 말한다.
그들이 그레이시 유술 아카데미에서 공인받지 못했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현재 모든 사람들이 그레이시가문의 명성을 등에 업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연관성을 주장한다.
대중들을 우롱하기 좋은 방법이다. 개중에 흑띠를 메고 있긴 하지만, 어떠한 지도법도 배운 적이 없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그것이 이들이 나와 일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이유다. 난 수업생들이 지도받아야 하는 '최선의' 방식에 대해 너무나 까다롭기
때문이다. 돈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므로, 나는 그들과 함께 일할 수가 없다. 나의 목표는 학생들을 돕는 것이고,
돈은 나의 일의 부산물이다. 그것은 내 일의 이유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자격증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현재 나는 지도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난 그레이시 아카데미에 의해 공인받지 않은 누구도 추천하지 않는다.
-그와 같은 일이 인술(忍術)과 합기유술에서 일어난 적이 있다.
수많은 전미 유술 협회와 세계 협회가 존재한다. 그것만으론 사람들에게 인상을 줄 수 없다.
그들은 '그레이시'란 단어와 어떻게든 연결되고 싶어한다. 그 이유는 그레이시 가문이 그들의 무술의 효력에 대한 그들의 주장을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호이스(Royce Gracie)가 오픈 토너먼트에 출전하여 자기보다 큰 상대를 이기며 우승하고 있다.
-여기 다른 형제들은 없는가?
있다. 헬슨(Relson)이라고 한다. 그는 하와이대에서 가르치고, 힉슨(Rickson)은 역시 캘리포니아에 있다.
-당신과 그레이시 가문은 자신들의 정신적 육체적 접근이 현실에서 효과가 있다는 걸 증명해왔다.
당신의 아버지는 현재에도 지도를 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82세의 나이에, 그것은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당신에겐 가족이 있나?
있다. 아내와 4남 3녀이다.
-당신의 딸들에게도 유술을 가르칠 것인가?
그렇다. 이것은 여성들에게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장인은 보안관이었고, 아내는 보안관사무실에서 가끔 일을 돕곤 했다.
그녀는 칼을 든 남자들에 의해 강간을 당하는 여성들에 대한 자료를 자주 읽었다. 칼을 든 남자에게 공격당하는 악몽을 꿀 정도였다.
우리가 데이트를 시작했을 때, 그녀에게 몇가지 유술기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녀가 기술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가 되자 꿈에서
칼을 든 남자를 물리치는 자신을 보게되었다 한다. 그녀는 그 이후로 다시는 악몽을 꾸지 않았다.
내 사견으로는 무술의 진정한 가치는 공포를 제거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공포를 흘려버리고 하나의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신이 공포를 제거할 수 있을지 난 알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은 자신의 공포를 제어할 수는 있다. 선생으로서 난 당신에게
당신은 두려움에 떨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고 싶다. 당신이 지금 예전의 어떤 때보다 육체적으로 나아졌다고 느끼게 되면,
당신 자신을 극한까지 보호할 수 있게 되고, 어떤 것에도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당신 자녀의 이름을 짓는 특별한 원칙이 있는 듯 하다.
난 이름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다. '존(역자 주; 우리말로 보면 '철수'정도로 흔한 이름)'이란 이름을 보자.
세상에는 수많은 존이 있고, 특별한 존은 별로 없다. 난 이름만이 개인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보기보단, 더 특별하게는,
어떤 글자들은 다른 글자들보다 더 강하다고 믿는다. 그것이 내가 'R'이란 글자를 자주 사용하는 이유다. 강한 글자들이 들어 있는
이름을 고르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이 단 하나뿐인 이름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이미 존재하는 이름의 오라(aura)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예를 들어, 내 이름 '호리온'은 'R'자로 시작하는 것 뿐 아니라, 다른 어떤 '호리온'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이름은 'R'과 함께 오리온 성좌의 힘을 얻고 있다. 그것이 내 이름의 유래이다. 아마 내 부모님들은
나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던 듯 하다.
예를 들어, 아들 '하이론(Ryron)'의 이름을 지을 때, 그저 색다른 이름을 짓는 데만 신경쓰지 않고 강철(iron)의 이미지도 생각했다.
아이는 아주 건강하다. '헤너(Rener)'의 경우, 내면(inner)의 강함을 지닌 진정한 지식의 힘을 가진 이에 대해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inner, enner, Rener로 이름을 확정지었다. 후일, 나는 어느 회교족장에 대한 책을 읽었다.
그의 이름은 맬릭(Malik)이었다. 그는 매우 현명하고 강했다. 그것이 내 아들 '할렉(Ralek)'의 이름의 유래다. 항상 'R'자가 같이 한다.
딸 세지나(Segina)가 태어났을 때도 R자로 시작하는 이름을 생각했지만, 'S'자로 시작되는 이름을 가진 아내 수잔(Suzanne)이
'이봐요, 얘는 딸이라구요. 난 얘가 나처럼 'S'자로 시작되는 이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난 '훌륭해, 'S'자의 이름을 가진 여자라. 하지만, 이미 존재하지 않는 특이하고 어떤 뜻이 들어간 이름을 지으라구.'라 말했다.
그렇게 해서 세지나가 걔 이름이 되었지만, 중요한 어구는 '현명함(sage)'이다. 그리고, 정말 특별한 아이가 되었다!
5남중 막내인 헤이런(Reylon)의 경우, 이름을 짓는 데 6개월이 걸렸다. 포루투갈어로 're'는 왕을, 'land'는 땅을 뜻하므로
'd'를 뺀 'Reylan'을 생각하게 되었다. 기록적으로, 나의 아이들은 하이런(Ryron), 헤너(Rener), 할렉Ralek), 세지나(Segina),
그리고 헤이런(Reylan)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전처와의 자식인 두 딸들의 이름은 로즈(Rose)와 라이앤(Riane)이다.
-당신의 도장은, 일본의 도장과는 다른 것 같다. 절을 하지 않는다. 당신은 암묵적 존경과 예의의 철학을 주장하는가.
나는 일본식 절이란 것은 문화적인 것으므로 이해할 만 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선, 거리에서나 식당에서 사람을 만나게 되는 고개숙여 인사를 한다. 여긴 그런 것이 없다. 난 사람들은,
특히 많은 무술 지도자들은 학생들보다 더 중요한 사람으로서 추앙받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학생들에게 절을 하고 존경심을 보이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온당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반대로,
내가 학생들에게 절을 해야한다. 매일 그들이 나를 찾지 않는다면, 난 이 학교를 운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실에 들어오면서 내게 절을 하고, 눈에서 불이 번쩍나도록 나에게 얻어 맞고, 다시 돌아갈 때 내가 절을 한다면 이상하다.
뭔가 잘못됐다!
-당신에게 그레이시유술의 '오픈 챌린지(open challenge)'에 대해 묻고 싶다.
이 말에서 볼 때, 여타 무술들의 가치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린 모든 무술이 훌륭하다고 믿는다. 그들 모두가 훌륭하고 강한 점들을 각자 갖고 있다.
어떤 것은 다른 것보다 더 나은 것을 갖고 있으나, 그들 모두가 장점을 지니고 있다.
만일 뿌리를 찾아들어간다면, 유파에 관계없이 모든 고수들은 자신들의 믿고 있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를 증명하기 위한
도전을 했을 것이다. 그들은 들어가 '이봐, 아무나 붙자고!'라고 말했다. 내가 하고 있는 것에도 많이 있었으리라 믿는다.
초기에, 평판을 얻고 그 유파들 각각의 명성을 얻기 위해, 모두에게 도전하는 이들이 있었다. 나의 아버지와 그레이시 가문이
브라질에서 유술을 하고 있을 때, 거기에는 아프리카에서 유래한 카포에라도 있었다. 복싱과 레슬링 또한 있었다.
그래서 그곳에는 효과적인 호신술이란 평판을 얻는 유파들이 이미 존재했다. 그레이시 가문이 대중의 관심을 얻고 기술을 보여줄
유일한 길을 오픈 챌린지를 열어 누구라도 도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복싱같은 수련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다.
완벽한 펀치는 나를 넉다운시킬 것이다. 복싱이 훌륭하다는 것에는 아무런 의문이 없다. 복싱은 펀치에는 좋으나,
자기보다 크고, 무겁고, 힘세고, 잡기와 던지기에 능한 상대에게는 취약점을 갖고 있다. '그레이시 챌린지(The Gracie challenge)'는
다른 무술들을 깎아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 뜻이 아니다.
그 뜻은 말하자면, '이봐, 당신은 당신이 하는 걸 믿고, 나는 내가 하는 걸 믿어.'란 것이다.
난 나의 학생들에게 가치있는 걸 가르치길 원하고 그들을 우롱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잠이 든다. 그러므로
그것은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질문이다. 그것은 자기존중에 대한 질문이다. 나의 아버지는 140파운드의 체중으로
어느 누구와도 대항해 자신의 이름을 드높였다. 이것은 '이봐, 난 강해! 난 누구라도 쓰러뜨려!'란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봐! 난 작지만 내가 하는 것을 믿고 있어. 난 누구와도 싸울 거야!'라는 것이다. 그가 자기보다 80파운드나
더 나가는 키무라 마사히코(역자주; 일본의 유명한 유도가. 헬리오 그레이시와 장장 4시간에 걸친 격투를 브라질 콜로세움에서 벌였다. 이때 헬리오는 팔이 부러진 상태에서도 기권하지 않고 경기를 계속 했다.)와 싸운 것처럼 말이다. 마치 다윗과 골리앗과 같은 것이다.
자신의 신념이 자신을 이끌어 나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근저에 깔린 최저선이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그레이시 가문이 건방지고 허풍선이라 본다. 그들은 우리를
나쁜 녀석들이라고 말한다. 진실은 우리는 자신감에 넘친다는 것이다. 그쪽에선 그들 자신들의 스타일이 훌륭하지만 붙잡기의 면이
부족하다고 인정하는 겸손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그것을 인정한다면, 아마도 모든 이들에게 보다 존중받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시스템의 효능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는 면에서 원하던 것을 얻었다고 느끼는가?
물론이다. 수직상승하고 있고, 멈출 수가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라운드 파이팅의 중요성을 세상에 인식시킨 것이다.
-그레이시 가문이 참가했던 대회들에 대해 물어보겠다. 얼티밋 파이팅 챌린지(the Ultimate Fighting Challenge)의 비디오 중
당신의 동생 호이스가 출전한 하나를 봤다. 많은 이들이 거리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링위에서 일어나는 일로서
하나의 시스템을 평가한다. 달리 말하면, 승자는 보다 훌륭한 격투가로 판정된다. 그러나 어떤 관점에서는 링은 실제적인 면과는
상당히 괴리된 곳이다. 예를 들어, 링에서는 자신이 기권함을 알리기 위해 땅을 손바닥으로 친다. 그러한 경기는 분명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은 걸 요구하지만, 당신의 생명이 걸린 거리에서의 상황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난 이러한 대회에서는 누구도 죽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그런 방식의 대회에서는 그럴 것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그레이시 유술은 대회와 실제 상황을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는가?
아니다. 우리는 거리에서의 생존상황에서도 같은 기술을 사용할 것이다.
-1대 다수의 경우,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기본적으로, 1인이 2인을 효과적으로 대적하리라곤 생각지 않는다. 전술적으로 말한다면, 유술은 붙잡기기술을 매우 강조한다.
우리는 대부분의 싸움은 땅바닥에서 끝난다고 믿으므로 붙잡기 기술을 강조한다.
그러나 내가 2인을 상대한다면 땅바닥으로 몰고 가려고 시도 하진 않을 것이다.
물론, 나는 한 사람을 붙잡느라고 다른 사람이 내 머리에 킥을 먹이도록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누구나 그러는 것처럼,
거리를 두고 떨어진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가능하다면, 한 사람을 던지고 다음 사람을 준비할 것이다.
내 최저선은 내가 그러더라도 두 사람을 궁지에 몰 수 있으리라는 것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2명의 가라데인,
쿵푸인이나 복서들과 서로 맞붙는다면, 아마도 클린치를 하는 상황으로 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전문이 아니다.
그들은 뭘 해야하는지도 모른채 땅에 뒹굴 것이다. 유술을 함으로써, 나는 적어도 땅바닥에 뒹굴게 될 때 뭘 해야 할지를 알고 있다.
-내 질문의 답이 되는 것 같다. 그럼, 특수한 상황에서는, 링에서 하는 것과 같은 전략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인가.
물론이다. 나는 브라질 출신이지만, 바보는 아니다!
-로스엔젤레스 같은 도시에서 사는 것은 어떤가? 아마도 보통의 시민들은 주먹보다는 무기를 가진 사람들을 더 무서워할 것 같은데.
그렇다. 그래서 40여년간 유술을 했지만, 나도 총을 갖고 있다. 우리는 맨손일 때 무기를 가진 사람과 대적하는
모든 상황을 상정한 기술들을 갖고 있다. 사실 나의 차기 비디오테이프 시리즈인
'그레이시 거리 호신술(Gracie Street Self-Defense)'에서는 길을 가다가 헤드록이나 감싸안았을 때, 또는 몽둥이, 칼, 총을 지닌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비디오들은 일본어로도 번역되고 구입이 가능하다.
-나는 얼티밋 파이팅 챌린지 I에서 당신의 동생 호이스와 켄 샴록의 대결을 기억한다. 켄은 이 분야의 다른 끝을 대표하고 있었다.
그는 크고, 강하고, 공격적이며, 기술도 있다. 그는 그가 원하자마자 바로 돌진하는 타입이다. 샴록은 호이스를 제어하기 위해 그의 발을 당기고 있엇다. 그는 그가 더 이상 호이스에게 속해있지 않는 것을 붙잡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호이스는 자기 다리의 힘을 빼고 이완하고, 자신의 다리가 여전히 잡혀있다는 사실에 더 이상의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 자신의 위치를 유리하게 이끌었다. 정상의 무술가들이 때때로 그런 기초적인 실수를 한다는 것이 아주 재미있다.
그렇다. 그는 호이스가 가진 민감함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는 그저 씹어삼킬 뭔가를 찾았던 것 뿐이다.
그는 그것을 원했다. 그는 호이스가 가진 재능을 갖지 못했다. 그는 한 팔로는 다리를 잡고, 그저 한팔로만 승부했다.
얼티밋 파이팅 V에서 호이스와 대결하기 전에, 샴록은 기회포착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유술을 수련했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는 호이스에게 아주 방어적인 자세로 싸웠고, 무승부를 바랬다. 그것이 그에게는 마치 승리나 다름없으니까. 안타까운 일이다!
-당신 동생인 힉슨의 일본원정을 보았다. 1994년 중반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말한 것처럼, 호이스가 얼티밋 파이팅 챌린지에
참가한 비디오도 보았다. 평정을 유지하기 위한 어떤 특별한 수련이라도 있는가? 아니면 그저 실제적인 육체훈련의 부산물인가?
우리는 평정을 유지하길 원하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처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을 때 진정으로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긴장을 풀고 상대에게 육체적 힘을 가하지 말도록 주지시킨다. 개인수련이나 단체수련 모두에서 강조한다.
학생이 올바른 기술을 할 수 있다면, 근육질이 될 필요가 없다. 사실, 힘을 써야만 한다면 올바른 기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몇 년전 여러 무술잡지를 통해 당신의 유술시스템에 대해 처음 들었다. 그러나 그 정보들은 흥미위주의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기사를 읽었을 때에는 그레이시 유술을 그렇고 그런 류로 취급했다. 그러다가 내 일본인 친구들로부터 좀 다른 정보를 들었고, 대회를 관람하고 완전히 다른 관점을 갖게 되었다. 당신은 겸손에 대단히 강조를 두는 것 같다. 아주 자연스러워 보인다. 링에서의 힉슨과 호이스를 지켜보고, 당신의 인터뷰를 주의깊게 들으면, 생활의 일부인 것 같다. 사회생활에도 유용할 것이다. 당신은 어떤 면에서 보면 겸손한 태도는 최전방의 방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물론이다. 동감한다.
-지금까지 그레이시유술의 효과에 대해서는 충분히 보여 주었다. 그럼 이제는 방향을 바꾸어 그런 대회들에는
이전만큼 중점을 두지 않을 것인가?
요즘은 개방된 격투대회(the open fighting championship)가 있다.
단지 그레이시 유술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걸 믿는 모든 이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이제 세계에 보여줄 때다.
개방 격투대회로써, 자신의 유파가 가장 강하다고 주장하는 모든 이들이 맞붙을 장이 마련되었다. 유술은 지난 대회에서는
우승하지 못했다. 누구라도 참가해서 이길 수 있다.
무술가들은 자신이 하는 걸 믿어야 하고, 누군가를 여기 보내거나 자기가 참가하여 싸워야 한다.
호이스 그레이시가 언제나 승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얼티밋 파이팅 챌린지는 내가 호이스가 쉽게 이길 수 있도록
짜맞춘 것이라 말한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지난 대회를 보지 않았나. 게다가, 시간을 제한한 격투를 요구하는 텔레비전과 늘어나는 규칙들이 UFC를 원래의 개념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어, 난 내 지분을 팔아버렸다. 난 더 이상 프로모터가 아니다.
-당신의 비디오테이프에 대해 좀 더 알려달라.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비디오에 우리의 기술들을 집어넣으면, 전세계인들이 그걸 사보고는 기술을 익혀,
우리에게 도전해올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테이프를 통해 유술을 가르쳐야 하는지, 아니면 우리가 65년간 계속 해온 싸움을 계속 이기기 위해 그저 가문 내에서만
전수되도록 할 것인지에 대해 정말 고민해왔다. '계속 이기자. 누구에게도 가르치지 말자. 언제나 영원히 누구라도 때려눕히자!'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달리 보면, 내 아버지가 유술을 통해 이룩한 것을 난 알고 있다. 그것은 아주 연약한 아이였던,
겨우 140파운드 밖에 나가지 않던 그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다. 유술은 그의 삶과, 나의 삶 또한 바꿔놓았다.
그것은 17살짜리 소년이 무일푼으로 브라질에서 건너와, 구걸을 하는 등의 힘든 시작을 거쳐, 이제는 국제적으로 점점 자라나는
기구를 창설할 수 있는 확신을 가져다 주었다. 이것을 나혼자만 갖고 있는 것은 이기적이다. 공유하지 않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내 인생의 사명은 아버지가 발전시킨 지도법을 후세에 전하는 것이라 믿는다. 그 지식을 전파하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익혀
뒷골목싸움에서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전세계인들에게 알려야하므로, 비디오테이프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는 사막한가운데에 물 한바가지만 가지고, '어이, 이거 한 잔에 10달러야. 돈내지 않으면 못 마셔!'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들이 돈이 없기 때문에 죽도록 할 수는 없다. 난 그렇게 못한다. 난 물을 거저 줄 것이다. 게다가 상대가 우리를 꺾기에
충분한 유술을 익혀 온다면, 나의 사명은 완수되는 것이다.
-혹시 나이가 들어 힘들지는 않나?
나는 40대이고, 나의 아버지는 82세이며 계속 수련하고 있다.
유술은 한 사람의 인생전체를 통해 행하는 소중한 것이 되었다.
-특정한 나이가 들면 공개대회에 참가하는 걸 그만둘 것인가? 당신은 여전히 참가하는가?
어떤 육체적 스포츠에서건, 나이가 들수록 몸놀림이 둔화된다. 나는 아카데미의 사업으로 요즘 정말 바쁘다. 물론,
대회에 참가할 만한 레벨이 되려 한다면, 매일 수련에 할애할 특정한 시간이 요구되면, 나는 요즘 그럴 시간이 없다.
예전에 가졌던 똑같은 기술을 가졌더라도, 수련부족으로 인한 유연성의 부족을 갖는다. 내 경우, 나는 다른 계획들로 바쁘다.
인생은 40부터라는 얘기도 있는데, 요즘 그걸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보다 높은 산을 바라보고, 더 멀리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내가 모든 걸 집어치우고 격투에만 전념한다면,
오늘이라도 나설 수 있다.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의 아버지가 42세인가 43세였을 때, 세계에서 최장시간에 걸친 격투를 치렀다.
3시간 45분의 논스톱 시합! 조지 포먼이 얼마 전 세계복싱 챔피언이 되었다. 그래서 그것은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시합은 충분한 양의 스태미너, 지구력과 수련을 요구하고, 나는 현재 더 이상 그런 일을 할 만한 시간이 없다.
난 지금 다른 싸움을 하고 있다. 또한 내가 격투를 했다면, 호이스가 할 일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