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일요일 아침이지만 평상시 출근하는 시간과 같이 식사를 마쳤다. 이틀전에 자른 짧은 머리라 정리하는데 그닥 오래걸리지 않는다. 얼굴에 로션을 바르며 거울을보니 참 잘생겼다. 옆지기는 나이를 감추느라 손이 바쁘다. 위장크림 하나면 되는줄 알았는데 연필도 있고 붓도 있다. 그리고 스폰지도 보인다. 마지막으로 입술을 빨갛게 그리고 나니, 어제 저녘 내옆에서 잠자던 아낙은 보이지않고 낯선 여인이 환한 미소를 띠고있다.
처남의 어머니께서는 감기기운이 있으시다더니 아직 기침을 안하셨다. 인사도 못하고 집을 나와 나의 애마에 오른다. 얼마만에 갖는 둘만의 여행인가? 이른 시간이라 도로는 한산하다. 고속도로역시 겨울의 휴일아침 표시가 난다. 경부고속도로의 주변경치는 화성까지 아파트로 시작해서 아파트로끝난다. 이후부터 조금씩 화면이바뀐다. 충청남도로 접어드니 그림이 완전히 달라진다. 정안휴게소에서 커피한잔을 마시고 나서는 전주의 비빔밥집 찾기부터 시작되어, 주변에대한 설명으로 좁은 차안에서의 데이트가 즐거워졌다. 공주를 지나며 밤나무꽃 냄새이야기, 금강따라 달리던 마라톤코스이야기, 부여여행때 못가본 이야기에 어느덧 논산을 지났다. 이정표에 우리의 목적지가 보인다. 잠깐 볼일을 마치고 줄서는것보다 일찍점심을 먹고자 고궁이라는 명가(?)를 찾았다. 주머니에 들어있는 작은것이 다 알려주니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볼 일이 없다. 조금 사람사는 맛은 사라진게 아쉽기는하다. 일찌감치 맛나게 배를 채우고 예산 친구에게 가기위해 채칙질을한다. 작은상자안의 여인은 돈내는곳으로 가라지만 국도로 방향을 잡았다. 생소하고 한적한 농촌의 정취를 느끼고 싶어서이다. 고개를 오르다가 힘들어서 돌아갔던 길들은 돼지코를 만들어 곧장 가게 해놓았다. 구비구비 돌던길도 똑바로 고쳐 놓았다. 볏가리 놓였을 논은 공룡알로 바뀌었고, 보리심었던 밭은 비늘로 집을만들어서 추운겨울에도 딸기를 먹게한다. 우마차가 다니던 소로도 없어졌고, 올해는 유난히 가물어서 그런지 논에서 미꾸리잡는 사람도 보이질 않는다. 큰 개울도 물이 고여있으니 물고기 사냥꾼도 산으로 갔는가보다. 이제 시골은 어디가야 만날수 있을까?
2시간동안 산넘고 다리건너다 보니 예산역앞 친구네 식당이다. 휴일 낮시간이라 손님이없으니 두 친구 내외가 마주앉아 과일을 먹으면서 나누는 이야기는 학창시절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 이야기, 아이 이야기 등등. 아주 오래전부터 만난것처럼 맞장구쳐가면서 수다를 떨다보니 시간이 어떻게가는지 모르겠다. 멀리서 찾아준 동무라고 한상 차려내온다. 낙지곱창, 보쌈, 족발에 굴, 홍어, 전복까지 푸짐하다. 전주의 비빔밥이 소화도 되기전에 맛난 친구의 정을 가득채우고 아쉬움의 포옹을 한다. "아프지마!" 이 한마디에 콧등이 시리다. 푸대에 챙겨준 사과가 맛있어 보인다. 어둠이 시작되는 시간이지만 내 마음은 환하게 밝아오는 아침같다. 여운이 남아야 다음에 또 만나겠지. 평택항 밤바다가 오늘따라 외롭지않아 보인다.
병점역에서 옆지기는 다음여행을 위해 10량짜리 급행 열차를탔다. 나는 우주선으로 갈아타고 화성으로 향한다.